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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醫와의 만남 - 고혈압·당뇨 관리가 돌연사 막는다 

‘심혈관 질환 권위자’ 승기배 서울성모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글·허정연 이코노미스트 기자 사진·전민규 기자
20년간 1만 번 이상 관상동맥중재술 시행… 새로운 수술법으로 재발률 5%대로 낮춰

▎승기배(오른쪽) 서울성모병원장이 9월 9일 관상동맥중재술을 집도하고 있다. ‘스텐트 삽입술’로 불리는 이 시술은 가느다란 철선을 넣어 혈관을 확장하는 방식이다.



주요 질병 분야에서 한국 의료 수준은 세계적이어서 OECD 국가 중에서도 선두권에 속한다. <월간중앙>은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한국의 명의들을 차례로 만나 국내외 의료기술의 현주소와 질병관리, 예방법 등을 듣는다. 네 번째 순서는 심혈관 질환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승기배 교수다.

인기리에 방영 중인 KBS 드라마 <굿 닥터>는 대학병원 소아외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휴먼 메디컬 드라마다. 주인공 시온은 자폐증을 앓지만 천재적인 암기력과 공간지각 능력으로 병원 레지던트가 된다. 사회성이 떨어져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받기도 하지만 환자를 생각하는 진심 어린 마음으로 어린 환자들의 지지를 받는다. 이 드라마의 실제 배경이 된 곳이 서울 서초동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이하 서울성모병원)이다.

9월 1일 19대 병원장으로 취임한 승기배(58) 원장은 순환기 내과 교수 시절부터 ‘친절한 의사’로 정평이 나있다. 그는 20년간 1만 번 이상의 심장질환 관상동맥중재술(스텐트 삽입술)을 시술한 국내 심혈관 질환 치료의 권위자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환자들, 수천 번의 수술에 힘들 법도 하지만 그는 늘 미소를 잃지 않는다.

승기배 원장이 의사가 된 것은 어린 시절에 뵀던 외할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시골 교회의 장로였던 외조부는 곁눈질로 배운 의술로 가난한 환자들을 돌봤다. “그 당시엔 다들 먹고 살기 막막하니 형편이 좋은 사람이 드물었어요. 쌀 한 가마니나 밭에서 기른 채소로 치료비를 대신하는 사람이 많았죠. 그마저도 부담이 되는 사람에겐 기꺼이 무료로 병을 고쳐주셨고요. 의술을 넘어 인술을 베풀던 외조부의 모습이 귀감이 됐습니다.”

그는 의대에 진학해 심장 전문의의 길을 택했다. 생사를 넘나드는 병원에서 심장을 뛰게 하는 일만큼 보람된 일은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승 원장은 “사람의 장기 중에 24시간 쉬지 않고 역동적인 활동을 하는 심장이야말로 생명의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했다”며 “힘든 만큼 다이내믹한 면에 매료됐다”고 말했다. 서울성모병원의 진정한 ‘굿 닥터’, 승기배 서울성모병원장을 9월 4일 오후 만났다.

외할아버지 영향받아 의사의 길 택해

사랑하는 가족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등지는 일만큼이나 황망하고 슬픈 일은 없을 듯하다. ‘돌연사’란 말 그대로 평소 건강하던 사람이 급사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원인이 되는 질병이 나타난 후 1시간 이내에 사망하는 것을 뜻한다. 돌연사의 주요 원인은 심혈관 질환으로, 통계청의 2011년 사망 원인 통계에 따르면 암, 뇌혈관 질환에 이어 우리나라 성인 사망률 3위를 차지할 만큼 심각한 질병이다. 매년 이 질환으로 진료받은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이며 그중 관상동맥질병으로 인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관상동맥질병으로는 혈관이 막혀서 생기는 심근경색증과 혈관이 좁아져서 생기는 협심증으로 나눌 수 있다.

일반인들은 흔히 ‘심장마비’로 인식하는 질환이다.

“심장은 일생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혈액을 전신으로 공급하는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이다. 심장은 온몸으로 혈액을 보내는 역할을 하지만 심장 자체 운동을 위해서도 혈액이 필요하다. 이때 필요한 산소와 영양분을 관상동맥으로부터 공급받는다. 심장이 갑자기 멈추는 것을 흔히 심장마비라고 하는데 대표적인 원인이 관상동맥 질환이다.

관상동맥에 콜레스테롤을 비롯한 여러 물질이 쌓이는 동맥경화가 발생해 혈관이 좁아지는 것을 협심증이라고 한다. 이때 혈관이 완전히 막히는 것이 심근경색이다. 관상동맥은 크게 세 개의 가지로 나뉘어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이상이 생기면 심장에 산소와 영양공급이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심장 근육의 조직이나 세포가 죽는 괴사가 발생해 급사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주요 발병 원인은 무엇인가?

“건강한 관상동맥은 혈전이 잘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고지혈증·당뇨병·고혈압·흡연 등에 의해서 혈관 내피 세포가 손상을 받게 되면 동맥경화증이 진행된다. 이렇게 형성된 동맥경화증의 내부 파열에 의해 관상동맥 안을 흐르던 혈소판이 활성화되면서 급성으로 혈전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생긴 혈전이 혈관을 막는 것이다.”

돌연사의 주요 원인인데 특별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나?

“대표적인 증상이 흉통(가슴통증)이다. 가만히 있을 땐 괜찮다가도 등산이나 계단을 오르는 등의 활동을 하면 갑자기 가슴이 뻐근해지는 증상이 올 수 있다. 이 통증이 1~2분가량 지속되는 게 가장 흔하고도 알기 쉬운 증상이다. 급성 심근경색 시에는 갑자기 형성된 혈전이 관상동맥을 완전히 막아버리므로 안정 상태에서도 급작스럽고 심한 흉통을 겪게 된다.

명치 끝이나 턱 끝이 아프다는 경우도 있다. 가끔 호흡곤란이나 어지럼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당뇨 환자나 노인·여성의 경우 흉통 없이 구역질이나 구토, 소화불량 증상만 있는 경우도 있다.”

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돌연사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고혈압이나 당뇨로 인해 동맥경화가 생기므로 사전에 이런 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운동과 금연도 도움이 된다. 실제로 미국에선 대대적인 금연운동을 펼치면서 심혈관 질환자가 확 줄었다. 평소에 채소 위주의 식사를 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심혈관 질환은 요즘 같은 환절기나 새벽~아침에 이르는 시간에 가장 많이 발생한다. 이럴 때 과도한 운동은 삼가는 것이 좋다. 매년 마라톤을 하다가 심혈관 질환으로 인해 돌연사하는 사례가 나오곤 한다. 마라톤에 참가하기 전 건강검진을 받아 자신이 위험군인지 먼저 파악해야 한다.”

서울성모병원 심혈관센터는 조혈모세포이식센터·안센터·장기이식센터와 함께 4대 중점센터로 꼽힌다. 승 원장은 2009년 센터 개소 당시부터 수장을 맡았다. 심혈관센터는 지난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발표한 급성심근경색평가에서 1등급을 받았다. 특히 1등급의 기준시간인 ‘90분 이내에 관상동맥중재술을 시행했는가?’라는 항목에서는 기준 시간내 모든 심근경색환자에게 시행한 것으로 평가됐다. 시행 시간도 기준치보다 30분이 빠른 평균 60분 이내에 시행했다.

응급의료센터를 통해 입원한 환자의 30일내 생존과 사망여부를 보여주는 생존지수에서도 101점을 기록했다. 이 점수는 환자상태와 여러 가지 위험인자를 고려해 매겨지는 점수로 100점이 넘으면 위험도가 높은 환자를 살릴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걸 의미한다.

심혈관센터를 찾는 환자들의 편의를 생각한 ‘심장 원스톱 클리닉’을 도입한 것도 승 원장의 아이디어였다. 심혈관 질환에 대한 진단은 한두 가지 검사로 불충분한 경우가 많아 다른 검사의 결과까지 기다리려면 일주일 이상 소요되기 일쑤다. 특히 지방에서 올라오는 환자들은 여러 번 병원을 오가기 어려워 불편한 점이 많았다. 승 원장은 원스톱 클리닉에서 환자들이 당일에 진료와 검사를 모두 받을 수 있게 했다.

서울성모병원은 환자의 생존율을 높이고,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 2011년 8월부터 응급의료센터 내 흉통센터를 개설해 24시간 운영한다. 이곳에는 순환기내과 전문의가 24시간 상주해 있으며 흉통전용전화를 설치해 신속한 치료가 가능하게 했다. 또한 심장전문병상 3개와 실시간으로 심장상태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춰 초기 대응수준을 향상시켰다는 평가다. 이 센터를 만드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승 원장이다.




흉통센터, 검사부터 수술까지 1시간이면 끝

흉통센터를 개설한 이유는?

“심혈관 질환은 초기에 어떠한 조치를 취했느냐에 따라 생사가 갈린다. 여러 병동을 옮겨 다닐 시간도 부족하다. 일단 심혈관 질환이 의심되면 바로 심전도 검사를 실시한다. 구토나 호흡곤란 등의 증상 때문에 소화기내과를 찾는 경우도 있지만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진단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진단 후 곧바로 관상동맥 조영술에 들어간다. 관상동맥 조영술은 혈관이 어느 부위에서 어느 정도 좁아졌는지, 직접 진단하는 방법이다.

대부분 손목의 요골동맥을 이용해 관상동맥까지 길을 확보한 후 조영제를 쏘면서 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힌 부위를 찾는다. 조영제는 엑스레이가 투과되지 않는 물질이므로 조영제를 통해서 혈관이 막히거나 좁아진 곳을 볼 수 있다. 문제가 된 부위를 찾으면 바로 수술(관상동맥중재술)에 들어갈 수 있다. 우리 병원 흉통센터에선 이 모든 게 1시간 안에 이뤄진다.”

관상동맥중재술은 무엇을 말하는가?

“간단히 말해 막히거나 좁아진 혈관을 확장시키는 시술이다. 혈관 안이 70% 이상 좁아지면 피가 흐르는데 장애가 생긴다. 장애가 생긴 뒷부분으로 피가 잘 가지 않는 것이다. 과거에는 가슴을 열어서 혈관의 막힌 부위 뒤쪽에 새 길을 만드는 수술이나 풍선 확장술이 일반적이었다. 풍선 확장술은 혈관에 풍선을 넣고 부풀려 확장시키는 방법이다. 그러나 혈관이 다시 좁아지는 재발률이 30~40%에 달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스텐트 삽입술이다.

아주 작은 부위만 열어서 0.3㎜ 굵기의 가느다란 유도철선을 넣고, 그물 모양의 관처럼 확장시킨다. 스텐트는 스테인리스스틸이나 합금으로 만들어졌는데 인체 내에 들어가 있어도 금속성분 때문에 발생하는 부작용이 거의 없다. 시술 후 혈관 내에서 자연스럽게 정착돼 평생 다시 몸 밖으로 빼낼 필요가 없다. 최근에는 이 스텐트에 약물을 코팅해 부작용을 최소화했다. 재발률도 5% 이내다.”

하이브리드 수술법, 상처·수술시간 절반으로 줄여줘

심근경색 수술에 ‘하이브리드 수술법’을 도입했는데 어떤 방법인가?

“말 그대로 수술과 시술을 융합한 방법이다. 심장 여러 곳이 막혔을 때는 시술과 수술을 함께 하는 것이 치료 효과가 높을 뿐 아니라 출혈이 적고 회복 기간도 줄어든다. 모든 혈관을 스텐트로 수술하긴 힘들다. 혈관이 구불구불한데다 딱딱해진 상태이면 스텐트가 통과할 수 없다. 그래서 중요한 심장혈관에는 가슴을 7㎝ 정도 열어서 우회로를 만드는 수술을 하고, 나머지 혈관은 스텐트를 넣어서 치료한다.

우리 병원 흉부외과 송현 교수가 심장 우회술을 하고, 내가 스텐트를 삽입하는 식이다. 이 수술을 하면 기존 수술보다 피부 절개 길이가 절반 이상 줄고 수술 시간도 반으로 줄어든다.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한 센터에서 이 시술을 우리만큼 많이 한 곳이 없다.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하이브리드 수술법이 예후가 더 좋은가?

“전 세계적으로 아직 결과가 없다. 현재 우리 병원에서 케이스를 모으는 중인데 현재까지는 기존 수술법에 비해 예후가 나쁘지 않다. 1~2년 정도 경과를 더 지켜볼 예정이다.”

승기배 원장은 “심장혈관에 동맥경화로 인한 질환은 스텐트 삽입술만으로도 치료 가능할 만큼 획기적인 시술”이라고 설명했다. 승 원장은 스텐트 시술법과 기존 우회로 수술의 효과를 비교한 ‘관상동맥 좌주간지 병변에 대한 경피적 스텐트 시술 및 관상동맥 우회로 수술의 비교’ 논문에 제1저자로 참여해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JM)>에 등재되기도 했다.

NEJM은 세계 최고 권위의 의학저널로 꼽힌다. 승 원장은 이외에도 3건의 논문에 공동저자로 참여해 같은 저널에 이름을 올렸다. 이외에도 200여건의 연구논문을 국제학술지(SCI)에 게재할 만큼 활발한 연구활동을 펼치고 있다.

심혈관 질환 분야에서 한국의 의료수준은 높은 편인가?

“상당히 높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체로 손재주가 좋지 않나. 기초 분야는 아직 미국·일본이 앞서지만 임상 분야의 수준은 우리가 더 높다. 심혈관 분야에서도 특히 관상동맥중재술은 미국·유럽 등 의료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과거에 좌주간부의 수술을 금지했다. 이 부분을 수술하다가 자칫 혈관이 막히거나 문제가 발생하면 급사할 만큼 위험한 수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병원은 이 부분에 스텐트 삽입술을 시행해 효과를 입증했다. 이후 미국에서도 승인이 떨어져서 이젠 수술을 할 수 있게 됐다.”

2011년 ‘심혈관 중재시술 인증제’를 도입한 이유는?

“대한심장학회 심혈관중재연구회장(현 대한심혈관중재학회)을 역임할 때 중재시술의 질을 높이고, 환자의 안전을 위해 도입했다. 이 수술이 의료보험 수가가 높은 시술이다. 그래서 아직 숙련이 덜 된 의사나 시설이 부족한 중소병원에서도 수술을 시행했다. 최근 노령화로 심혈관 질환이 늘어나면서 이러한 사례가 늘었다. 그래서 중재시술학회 차원에서 시술의 안전성과 의료기관·의료진의 내실을 기한다는 의미에서 인증제를 구상했다.

이러한 시술인증이 해외에선 흔한 일이지만 국내에선 처음 시도된 일이어서 초기엔 잘될지 의문이었다. 시술인증에 강제성도 없고, 인증 비용도 당사자가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막상 시행해보니 많은 의료기관과 의료진이 인증을 받았다. 시행 첫해 전국 83곳의 의료기관과 300여 명의 전문의가 인증을 받았고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201310호 (2013.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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