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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 “중임제 개헌만이 약속 지키는 대통령 만들 수 있어” 

3選 광역단체장들의 고언(苦言) - 박준영 전남도지사 

최재필 월간중앙 기자 사진·오상민 기자
친환경 농업·바다경영·신재생 에너지 3대 비전으로 전남 미래 성장동력 기틀 마련… 중앙정부의 지방 이해 부족이 균형발전 저해

▎박준영 전남도지사는 대선에서 나오는 각종 지방발전 공약이 이행돼야 지역 간 균형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대통령 중임제 개헌을 주장했다.



언론인, 청와대 대변인, 공보수석, 국정홍보처장, 그리고 3번의 전남도지사. 박준영(67) 전남도지사가 걸어온 길이다. 겉으로 보기에 승승장구한 인생처럼 보이지만 고난과 역경, 극복의 연속이었다고 자평한다. 박 지사는 전형적 농촌인 전남 영암이 고향이다. 가난한 농가 출신으로 고등학교(서울 인창고)와 대학(성균관대 정치학과)을 다닐 때 고학을 하다시피 했다. 1972년 중앙일보에 입사해 기자로 활동하던 중 1980년 7월 신군부의 ‘언론계 숙정’으로 해직되기도 했다.

박 지사는 2004년 6·5 보궐선거에서 처음으로 전남도백의 자리에 올랐다. 그 첫 도전부터 박 지사에게는 험로(險路)였다. 노무현 정부 시절로 열린우리당이 여당으로서 전성기를 누릴 때였다. 박 지사는 열린우리당 창당 때 따라가지 않고 쪼그라든 민주당을 지키고 있었다. 그렇게 소신과 의리를 지킨 박 지사를 민주당은 전남도지사 후보로 전략공천했다. 그러나 당시 그의 지지율은 열린우리당 후보의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런 객관적 열세를 극복하고 그는 어렵사리 승리를 일궈냈다.

그에 비해 재선·3선은 비교적 수월했다. 현직 프리미엄이 작용한 결과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박 지사는 충실히 도정을 이끈 데 대해 도민들이 화답한 결과로 받아들인다. 6개월 남짓 마지막 임기를 남겨둔 시점에서 3선의 박 지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전남지사직을 떠난 후의 계획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궁금증을 안고 박 지사를 만나기 위해 12월 4일 전남 무안군의 전남도청으로 향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박 지사는 때로는 날카롭게 중앙정부를 비판하고, 열정적으로 전남의 미래 청사진을 보여줬으며, 전남의 현재 문제점을 거침없이 지적했다. 언론인 출신답게 답변은 대체로 간결하고, 정리가 잘된 느낌이었다. 돌발성 질문이나 답변이 곤란할 때는 능란하게 ‘안개 화법’으로 응수했다. 언행이 신중한 원칙주의자라는 주변의 평가가 적절한 표현인 듯했다.

‘가장 못사는 지역’ 오명 벗겨내

박준영 지사는 재임 10년 동안 자신의 도정철학을 ‘실용주의’라는 한마디로 요약했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개혁적 성향이지만, 도정을 이끄는 데는 보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이런 철학을 가장 잘 반영하는 원칙 중 하나가 ‘무상’이라는 단어를 도정에서 철저히 배제시킨 것이다. 대신 그는 ‘적재적소’와 ‘균형발전’이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했다.

박 지사가 처음 도지사에 취임했을 때 전남은 가구당 농가부채 1위의 지자체였다. 박 지사는 이 오명을 씻어내고 전남을 가구당 농가소득의 상위권으로 탈바꿈시켰다. 일자리가 없어 고향을 등지는 이들을 정착시키고자 노력해 비교적 성공적인 결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취임 전부터 전남도정을 기획해 이를 꼼꼼히 실천에 옮긴 듯하다. “도지사 출마 1년 전부터 전남의 문제점을 연구했다. 사람들이 왜 떠나는지, 농가소득은 왜 낮은지 등이 관심사였다. 취임할 때 전남의 운명을 바꿔보자고 결심했던 마음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10년간 전남도정을 이끌어오면서 가장 보람을 느낀 점은?

“재임 기간 동안 전국에서 가장 못산다는 얘기를 듣던 전남을 일으켜 세우는 데 전력을 다했다. 그것이 바로 창조라고 생각한다. 취임 당시 전남 인구가 연간 약 3만6천 명씩 줄어드는 상황이었다. 농가소득은 최하위권이고 농가부채는 최상위권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전남은 확연히 달라졌다. 전남의 비교우위 자원을 찾아내 산업 경쟁력을 강화한 결과, 농가부채가 전국에서 최하위권으로 떨어졌다. 인구의 역외 유출은 2013년에는 3천 명 선에 그쳤다. 사람 사는, 사람이 떠나지 않는 전남으로 변모했다.”

박 지사가 방금 말한 전남의 비교우위 자원은 어떤 것이 있나?

“크게 3가지다. 풍성한 먹거리와 풍부한 일조량, 리아스식 해안·다도해 등 다양한 해양자원이 그것이다. 이를 활용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현재의 전남보다 미래의 전남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박 지사가 펼친 대표적인 도정을 꼽는다면?

“친환경 농업정책과 해양 먹거리와 레저를 포함한 바다 경영, 신재생 에너지 등이다.”

박 지사는 특히 친환경 농업정책을 이 지역의 운명을 변화시켜가고 있다고 자부한다. 전통적 농촌지역인 전남이 전국 먹거리의 22%가량을 생산한다는 사실에 착안해 첫 임기 시작 때부터 이 정책에 힘을 쏟았다. 하지만 사업 초기에는 많은 반대에 부딪혀 이를 극복해야 했다.

“주변에서 실패하면 다음 선거 때 어렵다고 만류를 많이 했다. 그러나 전남의 농가소득도 올리고 또 국민들에게 건강을 주는 정책이라면 가야 할 길이라고 판단했다. 더구나 전남은 깨끗한 물과 맑은 공기, 오염되지 않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어 친환경 농업의 최적지다. 이를 통해 전남의 운명을 바꿔야겠다는 결심도 했다.”

이 같은 박 지사의 소신과 뚝심은 결국 전남을 친환경 농업의 메카로 만들었다. 박 지사는 임기 시작 이듬해인 2005년부터 마지막 임기가 끝나는 2014년까지 10년간 생명식품산업 육성 5개년 계획을 1차(2005~2009년, 투자액 1조799억 원)와 2차(2010~2014년, 투자액 1조 6620억 원)로 나눠 수립해 시행했다. 그 결과 전남 농업은 비약적 발전을 하게 된다.

2012년 말 기준으로 친환경농산물(유기농·무농약) 인증면적은 7만5948㏊로, 전국 인증면적(12만7124㏊)의 60%를 전남이 차지한다. 2004년 박 지사 취임 당시에 비해 인증면적이 20배가량 늘었고, 농가수도 16배나 증가했다. 특히 서울 등 수도권으로부터 전남의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안전성을 인정받아 이 지역의 학교 급식 공급점유율이 크게 증가했다고 한다. 현재 서울 1293개 교(476억 원), 경기도 814개 교(183억 원) 등에 납품하고 있는데, 안정적 수입원이 생기면서 전남의 농가소득 향상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이와 함께 박 지사는 농산물의 고부가가치화에도 진력을 쏟아왔다. 전남 특산물 격인 천일염 사업이 대표적 사례다. 그는 도지사 첫 취임 당시 대부분 사양길에 접어든 천일염 사업을 활성화하고자 가공기업을 유치하고, 브랜화를 추진했다. 그 결과 천일염 사업 규모가 당초 400억 원 규모에서 현재는 약 2천억 원으로 5배 규모로 성장했다. 박 지사는 전남의 너른 바다도 전남 발전의 자산으로 활용한다. 그는 “전남의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길은 주어진 여건을 어떻게 살리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했다”며 말을 이어갔다.

“전남은 전국의 37%에 해당하는 2만6천㎢의 바다면적과 65%에 이르는 2219개의 섬, 6475㎞의 해안선, 1037㎢의 갯벌 등 다양하고 풍부한 해양·수산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수산물 생산량도 2012년 112만9천t으로 전국 수산물 생산량의 43%를 차지한다. 특히 김·다시마·미역·톳 등은 전국 생산량의 85% 이상을 점하고 있다. 타 지역에 비해 절대우위를 점하고 이런 여건을 최대한 활용해 해양·수산 산업의 발전을 적극적으로 도모해왔다.”

전국 평균의 10%, 수도권보다 20%가량 더 많은 일조량과 풍력까지 박 지사는 전남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전남은 우리나라 최대의 신재생 에너지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5GW 풍력프로젝트, 해양에너지 생산기반 구축, 국내 최대의 태양광발전시설 사업 등을 통해 전남의 신재생 에너지 생산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


▎박준영 전남지사가 2013년 11월 28일 전남 나주 혁신도시 현장에서 열린 농촌경제연구원 신청사 준공식에 참석해 축사하고 있다.



‘일하는 은퇴도시’ 만들기에 매진

박 지사는 전남이 강해지려면 기본적으로 지금보다 인구가 많아져야 한다고 믿는다. 전남을 떠나는 이들을 붙잡는 데는 성공을 거뒀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가 내놓은 것이 바로 ‘일하는 은퇴도시’ 정책이다.

“전남은 공기의 질이 좋다. 이산화탄소는 수도권에 비해 10~20배 적은 반면 음이온은 5~20배나 많다. 나이 든 사람들이 살기에 상대적으로 좋은 환경조건이다. 은퇴도시는 단순히 요양 목적의 개념이 아니다. 은퇴자라 해도 100세 시대에 일을 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한 편이다. 그리고 일을 해야 더 건강해진다. 전남을 농장 운영 등 일을 하면서 노후를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지역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는 지방자치제가 부활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중앙 정부의 경직성과 지방에 대한 이해부족이 지방자치의 발전을 더디게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과 지방정부가 가장 크게 부딪치는 부분이 예산 문제다. 예산 편성 권한은 논외로 치더라도, 중앙정부의 예산편성 기준을 보면 도대체 창의력이 보이지 않는다. 모든 지방이 같은 상황일 수는 없지 않나? 그러면 포괄예산을 줘서 지역에서 필요한 곳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중앙정부는 스스로 정해놓은 예산항목에 맞지 않으면 아예 예산을 내주지 않는다.

그러니 지방에서 무슨 창의적 사업을 하겠나? 전남도는 수년 전부터 면 단위 공중목욕탕 사업과 경로당 공동 숙식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중앙정부에 관련 예산을 요청했더니 관련 항목이 없다고 거절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이를 언급한 뒤에야 중앙정부는 부랴부랴 관련 예산 확보를 추진하는 식이다. 중앙정부의 행태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인사권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렇다. 혹자는 인사권을 지방정부에 주면 권한이 너무 비대해지지 않을까를 걱정한다. 하지만 이는 기우다. 재선 혹은 3선을 노리는 단체장이 인사권을 남용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다.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인사에 관해 재량권을 줘야 한다. 도지사와 교육감의 러닝메이트 제도 도입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시·도 교육청 예산의 일정부분은 해당 지자체가 부담하지 않나? 그리고 각 지방별로 교육방법도 다르다. 지자체와 해당 교육청의 뜻이 같아야 지역실정에 걸맞은 특화 교육도 가능해진다.”

지방정부 재정난을 해결할 방법은 뭔가?

“국비와 지방비 지출은 약 4대 6 수준인 반면 국세와 지방세의 비중은 약 8대 2의 수준인 우리나라의 재정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선진국 수준인 5.5대 4.5 수준은 아니더라도 6대 4 정도로 지방세의 비율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

박준영 지사는 광역단체장의 경우 3선까지 허용하고 있는 현행 제도의 장점을 들어 대통령도 중임제로 바꾸는 개헌을 검토할 만하다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피력했다. 그가 말하는 장점이란 광역단체장은 재선·3선을 위해 공약 이행에 상대적으로 충실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앙정부가 공약한 것은 중앙에서 책임 있게 해야 한다. 지방에서 공약한 것은 지방에서 하지 않나. 단임제가 약속 안 지키는 대통령을 만든다. 대통령에 대한 신뢰와 지지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개헌을 통해 정·부통령제에 4년 중임제로 바꿔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그래야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높아질 것으로 본다.”

차기 도지사의 중요한 덕목은 ‘비전’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두 가지 이유에서 참여했다. 하나는 민주당이 좌로 가지 말고 중도로 가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그런 점에서 당시 대선 때 민노당과 선거 연대를 하는 것은 옳지 않았다. 17대 대선에서 정동영 민주당 후보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530만 표 차이로 졌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국민이 심판을 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 대통령을 모셨거나 따르는 소위 ‘친노’ 인사들은 18대 대선을 비롯해 역사의 전면에 나서지 말아야 한다는 경고를 주려고 했다.”

전남도지사는 어떤 자질을 가진 인물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가장 큰 덕목은 비전이다. 서비스 산업이 중심인 시·도도 많은 편이지만 전남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통합의 지도력과 지혜를 갖고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책의 연속성에 대한 의지도 필요하다.”

퇴임 후의 계획은?

“현재로서는 없다. 자연인 박준영으로 돌아가고 싶다.”

자연인으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고 싶나?

“글을 쓰려고 한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사후약방문’ 같은 아마추어리즘을 벗어나야 한다. 그동안 전남도정을 이끈 행정력과 정치인으로서 경험한 정치력을 바탕으로 국가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

박 지사는 2004년 첫 당선된 후 3차례 연속 전남도민들의 선택을 받았다. 철저한 자기 관리와 비전 제시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는 도지사 이후의 행보에 대해 이렇다 할 계획은 없지만 역할이 주어진다면 그때 가서 생각해보겠다며 여운을 남겼다.

201401호 (201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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