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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 “이대로 가다간 지방 곳간 거덜난다” 

3選 광역단체장들의 고언(苦言) - 박맹우 울산시장 

지방재정 안정성 위해 국세·지방세 비율 6대 4로 조정해야…환경 투자는 미래 생존을 위한 기본

▎박맹우 울산시장은 16명의 광역단체장 중 세 차례 연임으로 12년 동안 임기를 채운 유일한 단체장이다. 박 시장은 12월 11일 울산시청 접견실에서 열린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지방을 믿고 권한을 과감하게 이양해야 진정한 지방자치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울산에 가면 이 도시를 상징하는 탑이 하나 있다. 바로 ‘울산공업센터기념탑’으로 현지에서는 보통 ‘공업탑’으로 부른다. 이 탑에 새겨진 글귀가 새삼 과거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1962년 2월 3일 울산공업단지 기공식에 참석한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치사문이 그것이다.

“…루르의 기적을 초월하고 신라의 번영을 재현하려는 이 민족적 욕구를 이곳 울산에서 실현하려는 것이니… 산업 생산의 검은 연기가 대기 속에 뻗어나가는 그날엔 국가 민족의 희망과 발전이 눈앞에 도래하였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시로서는 “잘살아보겠다”는 국가적·국민적 염원이 담긴 문구이리라.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박정희 의장의 이런 꿈은 이뤄졌다. 공단이 완성되면서 울산 하늘은 삽시간에 ‘산업 생산의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로부터 시작된 울산의 산업화는 일찌감치 ‘루르의 기적’을 넘어섰다. 당시 울산 인구는 불과 8만5천 명 정도였다. 지금은 그 10배가 훨씬 넘는 110만 명에 육박한다. 국내 최대 공업도시로서 1인당 국민소득(GDP)이 5만6천 달러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전체 1인당 국민소득의 두 배 수준으로 다른 지역을 압도한다.

당시 울산공단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연기’가 울산의 울타리를 넘어 대한민국의 부를 창출하면서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같은 시기에 울산에서 또 다른 기적 아닌 기적이 일어났다. 울산의 젖줄인 태화강이 시커멓게 죽어갔다. 울산 앞바다의 생선과 어패류, 맛 좋기로 유명했던 울산배도 사라졌다.

주민들도 원인 모를 갖가지 공해성 질병에 시달렸다. 한국의 대표적 공해병으로 일컬어지는 ‘온산병’이 크게 사회 문제화되면서 울산은 ‘공해도시’라는 달갑지 않은 별칭까지 얻었다. 이런 ‘공해도시’가 수년 전부터 ‘생태도시’를 자부할 만큼 크게 변모했다. 죽음의 강으로 불렸던 태화강에는 연어·은어·황어·재첩 등 사라졌던 생명들이 다시 돌아왔다. 울산의 이런 변화가 박맹우(63) 울산시장의 작품이라는 데 시민들은 대부분 고개를 끄덕인다.

박 시장을 설명할 때 ‘생태도시’, ‘살아난 태화강’이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4대강 롤모델로 태화강을 수차례 언급하기도 했다. 언론은 그에게 ‘환경시장’이라는 명예스러운 호칭을 붙여줬다. 그래서 12월 11일 울산시청에서 박맹우 시장을 만났을 때도 자연스럽게 환경 얘기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죽음의 강 살려낸 환경시장

박 시장에게는 ‘환경’이라는 단어가 늘 분신처럼 따라다닌다. 환경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난 원래 환경주의자였던 것 같다.(웃음) 어렸을 적 제비가 집을 짓는데 어느 날 보니 새끼가 죽어 있더라. 알고 보니 나락(벼)의 벌레를 먹고 사는데 농약 때문에 죽은 것을 알고 가슴아파했다. 태화강이 검게 변한 것을 보면서 누구보다 절망감도 많이 느꼈다. 타지에 있을 때 고향 울산을 가리켜 ‘공해도시’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부끄러웠다. 환경의 소중함을 일찌감치 체험하고 깨달은 셈이다.”

일부 시민은 경제성이 낮은 환경 인프라 구축에 너무 많은 돈을 쏟아부었다는 지적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환경문제를 경제적 효율성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환경은 기본적 생존 조건이다. 과거 울산이 환경문제로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했나. 많은 식물과 물고기들이 사라지고, 사람까지 병들어 고생했다. 건강한 환경은 모든 인간에게 행복감을 안겨준다. 길게 보면 사회발전에 더 크게 기여한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환경투자야말로 가장 효율적인 투자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를 산술적으로 계산하기가 어렵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시간이 상대적으로 오래 걸려 현실에서는 피부로 느끼지 못할 뿐이다. 환경투자는 다른 모든 투자에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맹우 울산시장은 1951년 울산 중구 다운동에서 태어난 토박이다. 경남고와 국민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뒤 행정고시(25회)에 합격해 경남도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공무원으로서 울산과 인연을 맺은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1997년 경남도청 울산광역시 준비단에서 일하면서부터다. 이후 울산시 기획실장·내무국장·건설교통국장 등을 역임했다. 그리고 2002년 지방선거에서 울산광역시장으로 처음 당선된 데 이어 2006년 재선, 2010년 3선에 성공했다.

박 시장은 현재 16명의 광역단체장 가운데 4년 임기씩 꽉 채워 세 차례 연임한 유일한 단체장이다. 광역시장으로서는 처음이다. 역대 도지사 중에서는 김혁규 전 경남도지사가 내리 3선을 기록했었다. 그런 만큼 박 시장은 지방행정 전반에 대해 누구보다 두루 꿰고 있는 전문가로 통한다.

그래서인지 박 시장은 인터뷰 도중 지방자치제도의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하며 중앙정부에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중앙정부가 아직도 지방정부를 제대로 믿지 못하고 도시계획이나 환경 정비, 문화재 관리 등에 이르기까지 너무 많은 통제를 한다”며 “이제는 지방정부에 권한을 과감하게 이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정부의 확대된 복지정책으로 재정 부담이 커진 지자체의 반발이 거세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재원배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복지확대는 사회적·시대적 요구이고 앞으로 더 확대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지불능력에 맞게 복지정책을 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근 중앙과 지방정부가 영·유아 보육료와 기초연금 등 몇 가지 복지정책을 두고 갈등을 빚고 있다. 이는 결국 중앙정부나 지자체 모두 지불능력이 부족한 데서 빚어진 문제다.

기초노령연금만 하더라도 도입 취지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열악한 지방재정 상태로는 2014년 8천억 원, 2015년 1조6천억 원 등 막대한 부담을 감당할 수 없는 형편이다. 그래도 반드시 해야 하는 정책이라면 전액 국비사업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박맹우 시장(왼쪽)과 박상조 울산시 공무원노조위원장이 노사단체 교섭 상견례 후 밝은 표정으로 악수하고 있다.



“지방 믿고 권한 과감히 이양해야”

지방정부의 재정난을 해결할 방안을 제시한다면?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지 거의 20년이 돼가지만 지방정부의 재정 상태는 아직도 걸음마 단계다. 지방정부가 제 몫을 다하려면 재정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자체 수입으로 인건비도 해결하지 못하는 지자체가 태반이다. 지방정부 재정 확충을 위해서는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현행 8대 2에서 6대 4 정도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 선진국에서는 대체로 5대 5 또는 5.5대 4.5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또 지방정부가 부담하는 복지 예산도 갈수록 증가해 재정난 가중의 원인이 된다. 울산의 경우에도 2013년 예산에서 복지비가 24%였으나 새해에는 28%로 늘어난다. 영·유아 무상보육료, 국민기초연금, 기초생활 수급비, 장애인·노인·정신생활시설 사업 등 국민 최저생활 보장과 관련된 보편적 복지는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지방정부 예산의 효율적 운용을 위해 어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가?

“예산은 능력 범위 내에서 철저히 경중(輕重)과 완급(緩急)에 따라 효율적으로 편성하고 집행해야 한다는 게 ‘예산 사용법칙 제1조’에 해당한다. 예산 배분 때 포퓰리즘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지방정부 또한 할 일은 끝이 없고 예산은 늘 부족하기 마련이다. 울산은 2002년 취임 당시 울산시의 채무비율이 40.8%였으나 그간 끊임없이 절약하고 노력해서 현재 16%선까지 낮췄다.”

예산 운용과 관련 박 시장은 무상급식 등은 불필요한 선심성 행정이라고 단언한다. 지방 재정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인데 결국 모든 부담은 시민에게 돌아간다는 점을 들어 안타깝다는 심정을 피력했다. “울산의 경우 매년 1천억 원 가량이 무상급식에 들어간다. 어려운 계층의 혜택은 늘리더라도 전 계층의 무상급식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다.”

중앙이 지방에 우선적으로 이양해야 할 권한이 있다면?

“이제 지방자치제가 많이 성숙했다. 재원과 권한이 문제다. 울산에서 한 해에 걷히는 세금이 15조~16조 원 규모이지만 정작 울산시에서는 수천억 원의 예산을 따내기 위해 중앙정부에 사정해야 하는 처지다. 모순이지 않나? 지방에서 발생한 경제적 성과가 해당 지방정부 재정에 전혀 연결되지 않는 것은 지방자치의 근본 취지에 역행하는 것이다. 자치조직의 중앙 예속은 동의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방정부의 방만한 경영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울산시청은 타 시·도와 조직을 비교해 보면 2국 3과가 적다. 특히 도시계획 관련 업무에 중앙정부의 간섭이 많은 편이다. 도시계획 등은 시의성이 중요한데 그 판단 권한이 중앙에 집중되어 있으면 자칫 타이밍을 놓칠 수 있다. 도시계획 등에 관한 권한을 지방에 이양할 필요가 있다.”

3선의 박 시장이 12년 재임하는 동안 내걸었던 시정 목표를 보면 울산의 발전사가 엿보인다. ‘전국 제일의 복지·문화·경제도시’를 첫 임기 중 슬로건이었다면 2006년 재선됐을 때는 여기에 ‘생태환경 도시’라는 구상을 추가했다. 그리고 2010년 3선에 성공한 뒤엔 ‘더 큰 대한민국, 우뚝한 선진 울산’을 내세웠다. 그의 12년 울산시정은 평소 강조했던 경제와 환경, 그리고 미래발전으로 요약된다.

그는 임기 중에 경부고속철도(KTX) 울산역, 혁신도시, 2차 전지산업 유치 등 굵직한 현안을 성사시켰다. 특히 울산에 국립인 울산과학기술대학교(UNIST)를 신설한 것도 큰 업적으로 시민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울산시장으로서 3선을 하는 동안 보람을 느꼈던 일과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개인적으로는 울산의 경제발전을 이끌고, 또 울산을 친환경도시로 탈바꿈시켰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 울산은 단일도시로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물게 한 해 1천억 달러를 수출하는 도시로 성장했다. 태화강 수질은 2002년 시장으로 처음 취임하던 당시 6급수에서 현재 1급수로 개선됐다. 다만 하이테크 밸리 조성, 주요 역세권 개발, 반구대 암각화 문제 해결 등 심혈을 기울였음에도 계획대로 성과를 못 낸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울산시장으로서 임기가 6개월밖에 남지 않았는데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나?

“완료 단계에 접어든 사업을 확실하게 마무리하는 데 주력할 생각이다. 우선 울산야구장과 태화루 건립 사업은 임기 내에 반드시 완료해 시민들의 여가와 휴식 공간이 되게 할 것이다. 또 울산의 미래를 위한 대형 프로젝트의 추진 기반을 다지는 일도 마지막까지 멈출 수 없는 일이다. 이를 위한 역점사업에 전력을 다해서 울산 백년대계의 초석을 놓겠다. 동북아 오일허브사업, 테크노산업단지 조성, 국립산업기술박물관 등이 그것이다. 또한 어렵게 실마리를 찾은 반구대 암각화 보존 대책도 정부와 합의한 대로 차질 없이 추진해나가겠다.”

박 시장은 특히 지난달 착공한 동북아 오일허브사업의 중요성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동북아 오일허브사업은 항만과 저장시설과 같은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석유거래소 개설, 각종 규제완화 등 소프트웨어가 함께 구축되도록 해서 울산이 ‘정유도시’에서 ‘석유거래 도시’가 되는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박 시장은 첫 임기 시작과 함께 시민을 위한 행정을 펼치겠다고 스스로 약속했던 초심을 12년 동안 지켜낸 것을 무척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 원동력은 시민들이 준 지지와 성원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울산 발전의 새 동력 확보 절실

울산시장으로 재임하는 기간 동안 계획했던 바를 얼마나 이뤘나?

“운 좋게도 12년이란 긴 세월 동안 시장직에 있으면서 원도 한도 없이 열심히 일했고, 세웠던 목표를 거의 대부분 이뤘다고 생각한다. 시장으로서 첫 임기를 시작하면서 울산경제의 지속 발전과 망가진 울산 환경의 복원, 국립대·고속철도 유치 등 울산의 숙원사업 해결이 내가 내건 숙제였다.

12년 재임기간 동안 울산에 지방공단 12개를 만들고 511개 기업을 유치하면서 끊임없이 성장동력을 보강하는 노력을 계속했다. 그 결과 한 해 울산의 수출액이 첫 임기 시작 때 약 242억 달러에서 한국 수출의 10% 정도인 1천억 달러를 넘어서는 등 경제 관련 거의 모든 분야에서 평균 2~3배의 신장세를 기록했다.

환경 부문 역시 9개의 하수처리장을 신설 또는 고도화하고, 4천㎞의 하수관거를 설치했다. 음식물 처리장, 슬러지 소각장, 폐기물 소각장 설치와 함께 100년을 사용할 수 있는 쓰레기매립장도 확보했다. 울산은 대기질이 최상의 상태로 개선되는 등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환경도시로 거듭났다. 하늘공원 조성 등 지역현안도 대부분 성공적으로 해결했다. 돌아보면 정말 행복한 시장이었던 것 같다.”(웃음)

시장은 임기가 있지만, 시정은 끝이 없다. 차기 시장에게 당부할 말이 있다면?

“내 생각으로는 울산의 3대 주력산업인 석유화학·자동차·조선산업만으로는 울산을 업그레이드시키기에는 부족하다. 울산 발전의 새로운 동력 확보가 절실하다. 선심성 사업에 현혹되지 말고 복지정책은 재정능력 범위 내에서 시행하는 등 재정 건전성 유지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시민들과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는 자세가 주요하다는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청탁인사를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시장 임기를 마친 후 또 다른 정치적 계획이 있나?

“아직까지는 깊이 있게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향후 무슨 일을 할 것인지 시간을 갖고 고민해보겠다. 총리 하마평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중앙 정계로 복귀하는 것 역시 지금은 말할 때가 아닌 것 같다. 나름대로 보람된 일을 찾아보겠다.”

박 시장의 12년 동안의 시정 경험은 개인의 자산이면서 동시에 나라의 자산이기도 하다. 박 시장이 그 자산을 활용해 향후에 국가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

201401호 (201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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