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심층취재

Home>월간중앙>특종.심층취재

보수 통일론 vs 진보 안보론, 누가 더 셀까 

 

박성현 월간중앙 취재팀장
박 대통령, 경제민주화·복지 이어 통일까지 진보 의제 잇따라 장악…민주당은 북한인권법 제정 통해 종북 프레임 벗고 중간층 공략 꾀해

▎김한길 민주당 대표(앞줄 가운데)와 당 지도부는 지난해 7월 평택2함대를 방문해, 2700t급 호위함인 인천함에 승선했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왼쪽 둘째)와 최고위원들이 1월 9일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를 방문해 서상국 22사단장의 설명을 들으며 북측 지역을 살펴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 대박’이라는 말을 언제부터 사용했을까? 박 대통령 자문교수나 친박 의원으로 불리는 이들은 그런 용어를 잘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대략 5년 전부터 ‘통일은 대박’이라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 대통령의 한 참모는 “2009년인가, 2010년부터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걸 들었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그 뒤로 ‘통일은 대박’이라는 얘기를 자주 언급했다는 것이다. 물론 공개석상에서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이번에 대통령이 되시고 처음으로 공식 언급하는 바람에 임팩트가 큰 것 같다”고 이 참모는 유추했다.

박 대통령은 1월 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만약 남북 통합이 시작되면 전 재산을 한반도에 쏟겠다’는 세계적인 투자자의 말은 인용하면서 “그럴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연초 국내 언론과 인터뷰한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을 지칭한 말이다. 청와대 측은 “짐 로저스의 말이 대통령의 생각과 딱 들어맞는다”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오래전부터 통일되면 해외 유력 자본이 북한에 본격적인 투자를 하리라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그러면서 이 참모는 “통일 대박론은 통일비용 때문에 통일을 하지 않는게 낫다는 우리 사회의 인식들에 대해 확실하게, 오랜만에 쐐기를 박는 말”이라고도 해석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과거에는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런 노래를 불렀다. 분단이 오래 지속되다 보니까 또 일부에서는 그것에 대해 조금 인식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통일) 그게 언제 될지 어떻게 알겠느냐? 그러나 그런 날이 하루빨리 오도록 우리가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되겠다”라며 “통일 인식이 더욱 높아지도록 통일의 당위성에 대해 힘써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통일 대박론’ 임기 내내 지속

왜 하필 2014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 대박을 언급했느냐’는 물음도 나올 법하다. 일각에서는 장성택 전 노동당 행정부장 처형 등 북한 내부 정세의 급박함을 들어 북한 급변사태 가능성에 연계된 발언이 아닌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통일 대박’이라는 용어가 기존의 분단 유지, 현상 유지 정책을 접고 통일 준비로 이전한다는 뉘앙스를 주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남재준 국정원장도 송년회 자리에서 “2015년에는 자유대한민국 체제로 조국이 통일돼 있을 것”이란 발언을 한 것으로 보도돼 이런 의혹을 부채질했다. 나중에 남 원장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예의주시하라는 취지로 얘기한 것”이라고 한 발 물러서기는 했지만 북한 내부의 어수선한 분위기와 국내 유력 인사들의 통일 발언은 서로 맞물려 엉뚱한 추측을 낳곤 한다.

박 대통령은 이런 북한의 사정에 정통하지만 상황논리에 따라 통일 문제를 언급한 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의 한 참모는 “통일 논의와 관련해 사람들이 간과하는 점이 하나 있다”고 했다. 바로 박 대통령이 지난해 정권 출범과 함께 제시한 4대 국정기조(경제부흥·국민행복·문화융성·평화통일 기반 구축)에 이미 ‘통일기반 구축’은 들어가 있다는 사실 말이다. 박 대통령의 4대 국정기조는 단순한 선언에 그치는 게 아니라 정권 임기 5년 동안 쭉 그 방향으로 간다고 이 참모는 말했다. 통일 문제는 선거나 정치일정 등 눈앞의 필요에 따라 동원되거나 좌우될 이슈가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평화통일 기반 조성은 비단 국내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지난 1년간 박 대통령은 자신이 설정한 목표에 따라 평화통일 기반 구축 작업에 매진했다고 한다. 한반도 주변 4강 국가 중 관계가 소원한 일본을 제외한 미국·중국·러시아 3국 지도자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통일에 대한 명시적 공감과 지지를 문서로 남기는 데 공을 들였다는 것이다.

청와대 측은 “한반도 통일에 관한 굉장히 깊은 얘기를 나눴고, 한반도 통일이 분단 유지보다 자국의 이익에 유리하다는 점을 설득했다”고 박 대통령의 통일기반 조성 의지를 설명했다. 평화통일 기반 구축이라는 국정기조의 연장선상에서 외교기반 구축에 심혈을 쏟아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박 대통령의 ‘통일=대박’ 등식은 오래전에 성립했으며, 통일 환경이 조성되면 외국 투자가 일고, 통일비용 때문에 통일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메시지와 다름없다.

그렇다고 북한 김정은 체제를 안정적으로만 보는 건 아니다. 박 대통령은 1월 14일 방영된 미국 CNN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의 숙청이 결과적으로 (김정은 제1 국방위원장의) 권력 장악력이 더 취약해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측은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 체제가 어디로 갈지 모른다”는 시각을 내비치기도 했다.

3대 세습체제의 불안정성에 대한 얘기들도 여권에서 오간다. 이를테면 과거 왕조시대라면 세습도 가능하지만 지금 시대에는 조리에 맞지 않는다는 인식이 자리한다. 북한의 국호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국체가 왕국이 아닌데도 세습이 이뤄지는 현실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와 관련해 2012년 대선을 앞둔 박근혜 캠프는 대선 이후의 남북관계 구상도 치밀하게 해온 것으로 확인된다. 당시 캠프에서 경제정책을 담당한 인사의 말이다. “통일비용은 준비단계에서부터 비용 처리를 하는 게 통일이 닥치고 일거에 투입하는 것보다 더 저렴하게 먹힌다는 시각이 내부적으로 존재했다. 대통령도 이번 신년 기자회견에서 외국 투자자를 언급했는데 개발 단계부터 외국자본을 참여케 하면 국내적으로 통일비용을 줄이게 된다는 점이 고려됐다.”

여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이번 박 대통령의 ‘통일대박’ 발언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상당기간 준비되고 숙성된 구상의 일단이다. 급변사태나 어떤 노림수를 가지고 한 발언으로 해석하기엔 무리가 따른다는 것이다. 국정기조에 있듯이 앞으로 4년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공개된 과제의 하나다.


▎지난 2002년 금강산 관광객들이 온정각 휴게소에서 한일월드컵 한국-폴란드전을 시청하며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다.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찾은 일본인 관광객들이 황해도 개풍군 관산반도 일대를 살펴보고 있다.



통일외교 없는 대한민국

여와 야는 각기 자기 식의 주판알 튕기기에 여념이 없다.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의 발언을 거당적으로 뒷받침하듯 일제히 통일 관련 어젠다 양산에 나섰다. 황우여 대표는 신년사에서 “통일은 미래 성장동력”이라면서 “통일 대한민국을 대비해 당 체제를 새롭게 정비하겠다”고 공언했다. 당내 ‘통일위원회’를 강화하고, 당 부설 여의도연구원에 가칭 ‘통일연구센터’를 두는가 하면 통일한국의 헌법과 제반 법도 연구해나가겠다고 했다.

최경환 원내대표도 대통령 기자회견 다음날인 1월 7일 “2014년은 국민과 정치권, 정부가 소통하고 한마음으로 달려가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며 “이것이 대통령 말씀대로 경제가 대박을 치고 북한의 위협과 불안한 한반도 정세 속에 튼튼한 안보를 다지는 길”이라고 거들었다.

당 차원의 모임도 활기를 띨 전망이다. 지난해 10월 창립된 ‘통일을 여는 국회의원 모임(간사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이 새로이 조명을 받는 것도 박 대통령 기자회견의 후방효과다. 이 모임은 2월 들어 통일부장관 초청 모임을 여는데 이어 광역 단위 투어를 통해 통일 논의의 확산을 꾀한다는 방침이다.

이완영 의원은 “전문가들은 빠르면 4∼5년 안에 통일이 되며, 늦어도 10년을 넘기지 않는다고 한다”면서 “심지어는 박 대통령 임기 내에 통일을 본다는 의견도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6월 이인제 의원 주도로 창립된 ‘한반도통일연구원’, 다음달 창립 예정인 김무성 의원의 ‘통일경제 교실(가칭)’ 등도 여당 내 통일 논의를 이끌어갈 동력이 될 전망이다.

특히 ‘통일을 여는 국회의원 모임’에서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의 강연은 오늘의 통일 논의 만개를 예측이나 한 듯하다. 박 이사장은 “지난 60여 년간 대한민국 대북정책의 목표는 여야를 막론하고 분단 관리에 있었다”면서 “북한을 변화시켜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확실히 이루겠다는 강력한 의지와 실천이 함께 하는 통일정책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통일을 위해 “지도자와 국민이 통일할 의지와 열정을 가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지금까지 대미정책, 대중정책, 대일정책은 있었어도 통일외교는 없었다. 우리가 통일하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하고, 통일비전을 보이며, 통일이 그들에게도 이익이 됨을 설득해야 한다.”

박 이사장은 특히 통일신당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통일신당이란 통일시대를 대비한 전국정당으로, 북한 동포의 정치적 이해와 요구까지 올바르고 공정하게 대변하는 정당을 말한다. 그는 “통일신당은 북한 조선노동당을 대체하고, 통일 이후 중국의 공산당과 경쟁할 수 있는 정당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덩달아 민간 연구단체들의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동아시아재단·한반도평화포럼 등 남북관계와 연관 있는 단체들도 각기 박 대통령 통일 대박 발언 이후 비공개 회의나 전문가 토론을 여는 등 기민하게 움직인다. 특히 1월 15일 동아시아재단 전문가 토론회에 참석한 한 전문가는 “현 정권이 통일과 남북관계라는 이슈를 선점하면서 향후 재집권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고 박 대통령의 발언 배경을 분석했다.

그는 여권 내 인사들이 북한 급변사태를 언급하는 것도 ‘보수층 달래기’의 일환으로 풀이하면서도 “6월 지방선거가 끝나면 박근혜 정부는 본격적으로 남북관계에 시동을 걸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방선거 이후 남북관계가 경협과 정상회담 등 본궤도에 오를 것으로 예상한 이 전문가는 지금 여권에 나도는 통일론을 선거 및 내치를 겨냥한 정치적 담론으로 치부했다.

이 전문가의 말대로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새누리당으로서는 남으면 남았지 손해 볼 일은 없다. 통일 논의를 앞세워 중도 내지는 진보 진영까지 당의 외연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으니 말이다.

정동영의 훈수와 박근혜의 화답

민주당은 박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에 맞서 김한길 대표가 ‘새로운 국민통합적 대북정책 수립’을 기치로 ‘북한인권민생법’ 카드를 꺼내 들었다. 김 대표는 1월 13일 신년기자회견에서 북한인권민생법 제정 등 ‘햇볕정책 2.0’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새 대북정책으로 새누리당이 쳐놓은 종북 프레임을 벗어나 중도와 보수층 공략에 나서는 사다리다. 이게 햇볕정책의 계승인지, 수정인지를 놓고 당내 논란이 있지만 큰 틀에서 보면 보수가 선점하던 어젠다에 민주당이 다가서는 그림이다. 과거 새누리당은 북한인권법을 집요하게 추진했으나 번번이 민주당의 반대에 열매를 맺지 못했다.

사실 민주당은 박 대통령의 예기치 않은 일격에 명치를 맞은 꼴이다. 민주당이 목이 터져라 외칠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통일정책이 박 대통령의 한마디에 일약 핫 뉴스로 등장한다. 이게 정부 여당의 프리미엄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뼈아프다.

대표적 인물이 바로 민주당 상임고문으로 있는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이다. 정 전 장관은 지난해 12월 자신의 저서 <10년 후 통일>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그의 지론은 ‘통일은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이뤄내야 한다’는 것으로 압축됐다. 구체적으로는 “통일이 옳은 것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떠한 통일을 만들어내냐는 것”이라고 했다. “통일은 고양이 발걸음처럼 오도록 만들어야 하고 신중하게 관리해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전 장관은 여권의 전·현직 대통령을 겨냥한 훈수도 잊지 않았다.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은 ‘통일은 도둑처럼 찾아온다’고 했는데, 그 방법에 반대한다”고 강조하고, “그런 통일이라면 정치·경제·군사·영토적으로 혼란이 오고 대재앙을 맞이한다”고 했다. 박 대통령을 향해서는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은데 박근혜 대통령도 답답할 것”이라며 “사실상 통일의 상태로 길을 열면 청년들의 일자리와 미래, 밥줄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10년 후 통일> 책을 청와대에서 꼭 읽어보라는 조언을 덧붙였다.


▎지난 2007년 동해선 금강산청년역을 출발한 북측 열차가 금강산을 뒤로하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 제진역을 향해 달리고 있다.

▎분단의 상징이었던 베를린장벽을 부수고 있는 독일 국민들.



해법 없는 햇볕정책 2.0

박 대통령이 그 책을 읽었는지 확인할 수 없으나 ‘통일 대박론’은 정 전 장관의 메시지와 궤를 같이한다. 게다가 생방송에서 툭 튀어나온 박 전 대통령의 발언은 아주 극적이어서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대박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이 크게 이루어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지만 그리 점잖은 표현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도박판에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주식투자, 횡재를 하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새누리당의 한 국회의원은 대박 발언에 대해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에서 쓸 표현으로는 적절치 않았다”면서 “그럼에도 그렇게 말한 것은 통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너무 강해 장래에 축복이 된다는 걸 강조하려는 의도 같다”고 해석했다.

국민 입장에서는 이 말처럼 간단 명료한 표현이 없었다. 통일이 되면 잘산다는데 일단 나빠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통일이 주는 비용과 갈등을 우려해 통일을 당위론적으로만 받아들이던 이들도 통일이 미래의 경제상황을 개선하리라는 기대를 갖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통일은 대박이라는 콘셉트에 국민 70%가까이가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변신해야 할 이유가 새누리당보다 훨씬 많다. 먼저 안철수 정당에도 밀리는 지지율을 회복하고 지방선거에서 중도층의 호응을 이끌어내야 한다. 지난 대선에서처럼 ‘안보무능·’ ‘종북’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고생했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민주당이 먼저 안보 이슈를 치고 나가도 시원찮다. ‘북한인권법’과 같은 안보 어젠다를 만지작거리는 찰나에 박 대통령의 통일론이 터져 나왔다.

뒤늦게나마 안보 행보에 나설 수 있지만 효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군사평론가인 김종대 <디펜스21 플러스> 편집장은 보수와 진보가 각기 선점한 의제를 맞바꿀 경우 보수가 더 유리해진다고 본다. “보수가 통일을 얘기하고, 진보가 안보를 주장하면 전자가 더 파괴력이 있다”고 그가 말했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 지금까지 군 부대를 단 한 번 방문했다. 보수진영의 대통령 치고는 아주 드문 경우다. 김 편집장은 “그만큼 새누리당과 보수는 안보에 자신감이 있으며, 확고한 자기 자산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누가 봐도 지금의 진보는 통일을 그저 먹는다고 자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보수가 통일로 접근할 때가 진보가 안보를 껴안을 때보다 훨씬 파괴적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그래서 야권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이 비록 설익었을지언정 보수와 진보의 담론을 다 끌어안는 효과로 귀착될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한다.

게다가 새누리당은 통일로 매진하는데 민주당은 햇볕정책2.0의 진행 방향을 놓고 이견을 보이는 등 당력을 소진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김한길 대표는 선거 때마다 여당이 공격해 온 북한 인권문제를 공론화하겠다는 방침이지만 그 방식을 놓고 각양각색의 논란을 낳는다. 민주당에서는 햇볕정책2·0이 결국 여당의 안보프레임에 말려들 거라는 회의적인 견해가 대두된다. 햇볕정책의 진로를 놓고 강온파 간 갈등이 재연될 수 있다.

홍익표 민주당 의원은 당내 햇볕정책2.0 논의에 대해 “정책은 문제제기 시점에 해법을 제공해야 한다”며 “아무 내용 없이 화두만 제시하고 이제부터 머리를 맞대자는 접근법은 국민에게 신뢰를 주지 못한다”고 말했다. 사실 홍 의원은 이 시점에 햇볕정책 문제가 왜 공론화됐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당의 정체성과 관계되는 중요한 사안일수록 공개하기에 앞서 내부적으로 충분한 검토를 거쳤어야 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지난 대선 국면을 거치면서 경제민주화, 복지 이슈를 박근혜 대통령에게 빼앗긴 채 패배의 쓰라림을 감내해야 했다. 그런데 이번에 박 대통령이 통일 이슈를 들고 나옴으로써 진보진영의 자산이라고 여겼던 통일 담론마저 손에서 빠져나가는 결과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박근혜 정부 남은 임기 동안, 또 다음 정권까지 정국 운영의 주도권을 상실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하지만 여야는 물론 박 대통령까지 통일 문제를 너무 가볍게 다룬다는 자성론도 고개를 든다. 과정이 제대로 공개되지도 않은 채 불쑥 통일 의제만 제시된다. 그래서 통일 대박론이 뜬금없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손학규 민주당 전 대표는 1월 16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회관에서 열린 동아시아미래재단 신년 하례식에서 “지금은 인내심을 갖고 한반도에 평화를 자리 잡게 할 때”라며 진지한 접근을 주문했다.

그는 이날 모임 인사말에서 “통일은 대박이라는 말은 이제 국민적 경구가 되었다”면서 “그러나 무엇이 통일을 앞당길 것인가, 우리는 통일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를 깊이 있게 생각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실 한반도 주변 정세는 통일을 논하기에는 불안한 요인이 너무나 많다. 당장 2월 말로 예정된 한미연합훈련인 키리졸브-독수리 훈련(KR/FE)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킬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KR/FE를 ‘북침 핵전쟁 책동’으로 규정하고 “조선반도에는 사소한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도 전면전쟁으로 번질 수 있는 위험한 정세가 조성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통일을 희화화할 가능성도

주독일 한국대사관에서 7년 동안 국방무관으로 근무한 바 있는, <독일통일과 한반도 선택>의 저자 김동명 박사(국제정치학)는 빈약한 통일 의지를 고양하는 취지라면 몰라도 마치 통일이 곧 도래할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말한다. 특히 동서독과 남북한의 구조적 차이점을 직시해야 효과적인 통일기반 조성이 가능하다고 했다. 예컨대 동독은 정권이 체제와 함께 무너지면서 1년 만에 국가 자체가 사라졌다. 북한은 동독처럼 정권이 무너진다고 체제가 함께 붕괴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게 김 박사의 시각이다.

“설령 김정은 체제가 소멸하더라도 이를 대체할 군부 집단이 등장한다면 북한 체제는 그대로 유지된다”고 그는 말한다. “현재 김정은 체제가 흔들린다고 해서 흡수통일을 점친다면 전체를 못 본 것이다. 통일이 곧 올 것 같은 착시현상을 경계해야 한다. 통일은 중장기적으로 멀리, 크게 봐야 한다.”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는 쏟아지는 통일 논의에 대해 “날로 통일에 대한 열정이 줄어드는 현실을 생각하면 통일 논의는 바람직하다”면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통일은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조명이 없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통일을 ‘대박’과 같은 경제적 요소에 주안점을 두거나 남북 양자문제로 보는 경향도 멀리해야 한다고 했다. 통일은 기본적으로 한반도 주변국의 지지가 있어야 순조롭다. 따라서 한반도 주변국들에 주는 영향을 감안해서 논의를 진전시켜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회 외교통일위의 홍익표 의원(민주당)도 통일 논의 확산을 반기면서도 너도나도 통일론을 말하는 세태를 경계한다. 그는 “밥상에 숟가락부터 올려놓고 보자는 심정으로 통일 논의에 뛰어드는 이들도 없지 않다”면서 “잘못하다가는 통일 문제를 희화화하는 결과로 치달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평소 통일 논의에 관여하지 않던 개인과 기관들이 진지한 고민 없이 인기영합적으로 참여하는 경우도 있어 통일 논의가 건강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201402호 (2014.01.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