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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포커스 - ‘POSCO the Great’ 깃발 걸고 권오준號 닻 올렸다 

 

정치인맥 적은 이공계 출신 중심의 현장전문가 경영 일선 배치…권 회장 “전임 회장 포부 커 수십 개 사업 올려놔, 비판적 검토”

▎권오준 신임 포스코 회장(오른쪽)이 3월 14일 취임식을 마친 뒤 임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포스코가 달라졌다. 조직은 슬림해졌고 업무 집중도는 높아졌다. 연구개발(R&D) 부문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도 예고했다. ‘외풍’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이번 조직 개편 곳곳에서 엿보인다. 철강제조업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겠다는 것이다. 권오준(64) 신임 회장의 차기 경영방침이 가져온 변화다. 3월 14일 권 회장의 친정 체제가 모습을 드러냈다.

권 회장은 이날 포항 본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위대한 포스코(POSCO the Great)’를 새로운 비전으로 제시했다. 국가 경제 발전에 지속적으로 기여해 국민의 사랑을 받고, 새로운 가치를 인류에게 제공해 세계인으로부터 존경받는 기업이 되겠다는 의지다. 이를 실현하는 계획이 ‘혁신 포스코 1.0’이다. ‘1.0’은 기본, 처음, 하나, 일등을 의미한다. ‘제철보국’의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를 구현하기 위한 조직 개편의 핵심이 ‘전문화’와 ‘집약화’다.

신설 가치경영실, 투자사업·경영정책 조율

포스코는 이날 단행한 조직개편과 정기 임원인사가 ‘본원 경쟁력 강화’를 위한 포석이라고 자평했다. 한국 철강산업의 맏형으로서 자존심을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기존의 기획재무·기술·성장투자·탄소강사업·스테인리스사업·경영지원 등 6개 부문을 4개 본부(철강사업·철강생산·재무투자·경영인프라)로 개편했다. 산재했던 철강사업 분야를 통합하고 마케팅과 연구조직을 융합한 게 개편의 핵심이다. 여기에 그룹의 사업구조 재편과 재무구조 개선 등 조정 기능을 수행할 가치경영실을 신설했다.

눈에 띄는 대목은 가치경영실을 신설하고 성장투자사업부문과 기획재무부문을 재무투자본부로 통합한 부분이다. 업계에서는 무리한 사업투자를 요구하는 정치권의 외풍을 차단하려는 장치로 보고 있다. 기존에는 투자분야와 재무분야의 조직이 달라 각종 투자사업에 대한 재무적 검증과 판단에 일관성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이 때문에 정부가 각종 핵심투자사업 참여를 압박해도 재무 상황을 분석해 방어막을 치기가 어려운 구조였다. 앞으로는 투자사업에 대한 철저한 재무적 검증을 통해 가치경영실이 투자사업과 경영정책을 조율하겠다는 것이다.

이공계 출신 임원들이 경영 전면에 나선 것도 외풍 차단 의지와 일맥상통한다. 권 회장과 함께 포스코를 이끌 대표이사 3인방인 김진일 사장(철강생산본부장), 장인환 부사장(철강사업본부장)은 각각 서울대 금속공학과와 고려대 금속공학과를 나왔다. 포스코에 입사해 철강산업 밑바닥부터 잔뼈가 굵은 순수 현장형 철강 전문가들이다. 정치적 인맥이 거의 없는 권 회장과 코드가 맞는다.

이영훈 부사장에게 재무투자본부장을 맡긴 것은 포스코의 위기의식을 대변한다. 이 부사장이 포스코건설 재무담당 임원(전무)으로 부임한 2012년 이후 포스코건설은 지난해 매출 8조 원, 영업이익 4066억 원을 달성했다.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이었다. 권 회장이 포스코의 곳간 열쇠를 이 부사장에게 맡긴 이유다. 윤동준 경영인프라본부장도 2011년 포스코건설 경영기획본부장을 맡아 포스코건설의 전성기를 이끈 주역이다.


▎권오준 회장의 취임과 함께 포스코는 정치권의 외압 차단막도 마련했다. 사진은 포스코 기술진이 냉연코일 내경 표면을 검사하고 있다.
신설된 가치경영실은 권 회장의 혁신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게 된다. 실장은 조청명 대우인터내셔널 경영기획총괄 전무가 선임됐다. 조 실장은 1986년 포스코에 입사해 혁신기획실장과 베트남 일관제철소 추진반장, 경영기획실장 등을 거쳤다. 그는 혁신 추진 태스크포스인 ‘혁신 포스코 1.0 추진반’의 공동 총괄도 맡고 있다. 재무 전문가인 최명주 포스텍기술투자 사장과 투 톱이다. 두 사람은 권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어발 경영의 실패 ‘초심’으로 극복

포스코의 위기의식은 어느 때보다 깊다. 2009년까지 17%를 넘었던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말 5%까지 추락했다. 신용등급은 A(안정적)에서 BBB+(부정적)로 하향 조정됐다. 무리한 사업 확장이 원인이었다. 정준양 전 회장이 취임한 뒤 포스코 계열사는 36개에서 71개로 늘었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부채 비율이 2009년 54.5%에서 2년 만에 92.4%로 치솟았다.

포스코 내부에서조차 “IMF도 견뎠던 포스코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르렀느냐”는 한탄이 나올 정도였다. 권 회장조차 취임 후 첫 공식석상에서 정 전 회장의 경영 실패를 직접 언급했다. 권 회장은 3월 14일 주주총회가 끝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전임 회장이 꿈도 많고 포부도 커서 수십 개의 사업을 테이블에 올려놨는데, 면밀히 비판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번엔 다르다”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날 권 회장이 발표한 ‘4대 혁신 어젠다’는 비핵심 사업을 정리하고 철강 경쟁력을 높이는 것으로 요약된다. 권 회장은 “글로벌 경쟁력 확보가 어렵다고 판단되는 사업은 중단·매각·통합 등 과감하고 신속한 조처를 하겠다”며 “상장 요건을 갖춘 계열사들은 적절한 시기에 기업공개나 보유지분 매각을 통해 유동성을 최대한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정 전 회장이 만들어낸 문어발식 계열 조직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예고한 것이다.

철강 본원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선 생산량을 무조건 늘리는 ‘최대화’ 전략 대신 ‘최적화’ 전략을 추구하기로 했다. 자동차 강판, 에너지용 강·선재 등 고부가가치 제품 위주로 재편해 중국과 일본 업체의 저가 공세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전략이다. 또 광양에 공장을 짓고 있는 클린콜(SNG·석탄을 이용한 합성천연가스 채취) 사업을 신 성장동력사업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포스코의 세계적 경쟁력은 여전히 독보적이다. 순풍만 타면 얼마든지 순항할 수 있는 저력이 있다. 철강전문 분석기관인 WSD(World Steel Dynamics)가 세계 34개 철강사를 대상으로 한 경쟁력 조사에서 포스코는 2009년부터 5년간 1위 자리를 지켜왔다. 이런 저력이 연구개발 투자에서 나온다는 게 포스코의 철학이기도 하다. 앞으로는 철강기술력을 응용할 수 있는 신소재 개발에도 집중하기로 했다. 리튬과 탄소 등 이차전지 소재, 고순도 알루미나 소재 등이 대상이다.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는 것도 철강 본원 경쟁력 강화를 위한 조치다. 포스코의 연구개발 투자는 1989년 매출액 대비 0.93%에서 지난해 1.83%(5160억원)으로 배가됐다. 세계 철강사 중 최고 수준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기술 경쟁력은 경쟁사들이 쉽게 따라오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며 “철강의 본원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세계 최고의 생산성과 품질 확보가 가능한 독창적인 기술 개발이 필수”라고 말했다.

201404호 (201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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