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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의 성서 오디세이 ―예수의 위대한 질문⑩ 

“잃었다가 되찾았으니,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느냐?”(누가복음 15장 31∼32절) 

배철현 서울대 인문대학 종교학과와 서아시아언어문명학과 교수
상대방과 하나가 되는 순간에 일어나는 신비…렘브란트의 명작 <탕자의 귀환> 통해 본 인간사 최고의 가치 ‘용서’

▎렘브란트가 1669년 완성한 <탕자의 귀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예르미타시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예수는 ‘탕자의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준엄하게 경고한다. 다른 사람들의 기쁨에 동참하지 못하는 인간, 자신이 쌓은 이기심 때문에 희생된 인간에 대한 연민이기도 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거룩한 일은 가족과 지인, 심지어는 원수까지도 용서하는 마음이다.

용서(容恕)라는 한자어는 그 본래 의미를 추적하는 중요한 단서를 남겼다. 먼저 용(容)자에는 ‘얼굴; 모습; 몸가짐, 그릇에 담다’라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용(容)자 모양은 ‘집’을 의미하는 갓머리(宀집, 집 안)와 ‘계곡’을 의미하는 곡(谷)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떤 대상을 보고 그 대상을 요목조목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한 느낌, 커다란 산과 계곡을 하나의 커다란 덮개로 씌울 만큼 그 대상에 품어내는 인상(印象)같은 것이 아닐까?

한자 서(恕)의 의미는 ‘용서하다; 헤아려 동정하다; 깨닫다; 밝게 알다’이다. 서(恕)자 모양은 ‘동일한 것’을 의미하는 여(如)와 ‘마음’을 의미는 심(心)이란 글자의 합성어로 ‘다른 사람의 마음과 내 마음을 일치시킬 때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용기 같은 것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작업이 ‘공부’다. 그래서 ‘서’는 중국의 성현 공자(孔子)가 뽑은 인생의 최고 덕목이기도 하다.

<논어> 위령공 15편에서 공자의 수제자인 자공이 묻는다. “선생님, 인간이 일생을 통해 명심하고 행해야 하는 가르침을 한마디로 말씀해주십시오.”(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 그러자 공자는 “아마도 서(恕)일 것이다(其恕乎)”라고 말했다. 공자는 인간 수양의 최고의 단계를 바로 ‘용서’라고 말한다.

용서는 상대방의 실수나 잘못에 대해 일방적으로 무효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상대방의 마음을 깊이 묵상하고 상상하여 내가 상대방과 하나가 되는 순간에 일어나는 신비다. 우리는 특정한 시간과 공간 안에서 존재한다. 자신의 실존적 경험에서 대상인 세상을 이해하려고 시도하고, 자신이 경험한 세계가 유일한 세계가 아니라는 깨달음에서 ‘용서’의 긴 여정을 시작할 수 있다.

우리가 다른 동물이나 식물이 아닌 인간으로 태어난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신비며, 수많은 나라 중에 왜 한국인으로 태어났는지도 그 이유를 명확하게 찾지 못한다. 자신이 경험한 편협한 세계가 전부이며 최고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나와 다른 세계 안에서 살고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용서에 도달할 수 없다. 유럽 최고의 화가라고 추앙받는 렘브란트는 죽음이 다가오자 자기 삶을 반추하고 최고의 가치인 용서에 관한 걸작을 하나 남겼다.


▎렘브란트의 에칭 자화상. 수많은 자화상을 남긴 렘브란트는 죽음에 임박해 온갖 영욕으로 점철된 자신의 인생을 심각하게 되돌아봤다.
네덜란드 출신인 렘브란트(1606∼1669)는 젊은 시절부터 초상화 화가로 이름을 날려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지만 말년에는 바닥이 없는 깊은 수렁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인생을 정리하면서 두 개의 그림을 그렸다. 하나는 미완성 작품으로 알려진 <시몬과 아기 예수>, 다른 하나는 그의 유작이 된 <탕자의 귀환>이다. 렘브란트는 이 그림들에서 자신을 노환으로 거의 장님이 된 시몬과 아버지로 각각 묘사하면서 동시에 영적으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인물로 그렸다.

<탕자의 귀환>으로 삶을 비유한 렘브란트

젊은 시절 렘브란트는 성공의 화신이었다. 자신의 천재성을 누구보다도 확신하고 있었고 이 세상이 부여한 성공의 화려함도 만끽했다.

렘브란트와 그의 첫 아내 사스키아는 출세가도를 달렸지만 이들의 삶은 4명의 자녀 중 3명이 연달아 죽는 불행으로 점철됐다. 3명의 자녀가 생후 2∼3개월 만에 사망한 것이다.

이들 부부의 자녀들 중 유일한 생존자는 아들 티투스였으나 아내 사스키아는 티투스를 낳은 후 폐렴으로 그 이듬해에 죽는다.

이때 렘브란트의 두 번째 여인 헤르트에 디르크가 등장한다. 그녀는 티투스의 유모가 되면서 바로 렘브란트의 정부가 되었지만 사스키아의 보석들을 훔쳐 판 것이 발각되어 렘브란트는 그녀를 고우다라는 도시에 있는 정신병원에 12년 동안 감금시킨다.

1640년대 후반 집안일을 도와주던 하녀 헨드리키에 스토펠스가 다시 렘브란트의 정부가 되었다. 이들 사이에 코르넬리아라는 딸이 1654년에 태어났다. 네덜란드 개혁교회 신자였던 헨드리키에는 렘브란트와 간음하여 자식을 낳았다는 이유로 교회의 성만찬에 참여할 수 없었다. 렘브란트는 자신의 유산을 유일한 자식인 티투스에게 넘길 작정으로 헨드리키에와 공식적으로 결혼하지 않았다.

자신의 사치와 가족의 불행으로 예술에 전념할 수 없게 되자 그의 인기도 급격하게 떨어졌다. 급기야 1656년에는 개인파산을 신청한다. 진귀한 예술품과 보석을 그 후 세 차례 경매에서 다 팔았지만 채무가 남아 집과 작업도구도 압류당한다. 그는 1660년 암스테르담의 볼품없는 집으로 이사한다. 채무자들이 그가 그림을 팔고 사는 것을 금지하여, 렘브란트는 헨드리키에와 그의 아들 티투스가 그림을 판매하는 조그만 회사를 설립하게 한 후, 자신은 종업원 행세를 한다.

그 후 여러 가지 초상화를 그렸으나, 그는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예술가로 전락했다. 자신을 헌신적으로 돌보던 헨드리키에가 1663년에 죽고, 1668년 그의 아들 티투스마저 죽자 그의 삶은 완전히 붕괴된다. 가족의 죽음을 목격한 렘브란트도 그 충격으로 그 다음해인 1669년 죽는다. 혈육은 딸 코르넬리아, 자부 막달린 반 로오, 그리고 손녀 티티아 뿐이었다. 유럽의 가장 위대한 화가에서 보잘것없는 가난한 노인으로, 그는 알려지지 않은 무덤에 매장되었다.

렘브란트는 모든 것을 잃은 인생의 마지막 길에 삶을 반추하는 그림을 그렸다. 부질없는 삶을 돌아보고 이전에 몇 번 에칭으로만 그렸던 신약성서 <누가복음>에 등장하는 ‘탕자의 비유’를 화폭에 담기로 결심한다. <누가복음>에 등장하는 탕자가 자신과 너무 닮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렘브란트는 이 그림에서 외적인 화려함보다 그 대상의 정신적이며 영적인 심리상태를 포착하기 시작했다.

<탕자의 귀환>이란 그림은 현재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예르미타시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262×205㎝ 유화인 이 그림은 1661년에 그리기 시작한 후, 별 진전이 없다가 1668년 유일한 자녀 티투스가 죽은 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하여 1669년에 완성했다. 임박한 죽음을 인식하면서 <탕자의 귀환>에 삶에 대한 회한과 희망을 담았다. 렘브란트는 한 장면에 집중한다. 작은 아들이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와 아버지를 만나는 장면이다.

이 그림을 가장 감동적으로 설명한 학자는 미술사 학자도 아니고 르네상스 학자도 아닌 ‘20세기의 마지막 영성가’로 알려진 네덜란드 출신 사제 헨리 나우웬이다. 그는 미 하버드대의 유명한 교수였지만 영혼의 안식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다 우연히 1983년 <탕자의 귀환> 그림을 포스터로 만난다. 그는 3년 후 러시아 상트페트르부르크 예르미타시 미술관에 가서 이틀 동안이나 이 그림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 묵상하면서 자신의 삶에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나우웬은 1986년 하버드 교수직을 사임하고 정신지체장애인 공동체인 라르쉬 데이브레이크(L’Arche Daybreak)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여 1996년에 심장마비로 소천할 때까지 장애인들과 함께 살았다. 나우웬은 렘브란트의 그림을 보고 자신이 회심한 과정을 그 그림의 제목과 동일한 제목 <탕자의 귀환>이란 제목으로 출판했다.


▎렘브란트 작 <책을 읽고 있는 화가의 아들>(1665년). 렘브란트의 외동아들을 그린 작품이다. 렘브란트의 인생은 이 아들을 잃은 후 급격하게 붕괴됐다.



‘나흘라’ 파괴한 탕자 작은아들의 행위

나우웬은 이 그림에서 세 가지 이야기를 구분한다. 즉 렘브란트 자신의 이야기, 인류 이야기, 그리고 신 이야기. 이 세 가지 이야기는 하늘나라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세 가지 영적인 단계다. 인간이 추구해야 할 최선의 영적인 단계는 ‘자비로운 아버지’가 되는 것이며, 그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는 작은 아들과 첫째 아들의 고민과 역경을 이해하고 극복해야 한다.

예수가 전한 ‘탕자의 비유’는 작은아들이 갑자기 아버지의 집으로 상징되는 고향을 떠나 타향으로 떠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작은아들이 아버지에게 ‘아버지, 재산 가운데서 내게 돌아올 몫을 내게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살림을 두 아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며칠 뒤에 작은아들은 제 것을 다 챙겨서 먼 지방으로 떠났다.”(누가복음 15장 12절) 작은아들은 느닷없이 아버지의 재산 가운데 자기 몫을 달라고 요구한다. 이 요구가 얼마나 충격적 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몫’이란 단어의 의미를 먼저 밝혀야 한다.

이 몫은 그리스어로 ‘메로스(meros)’인데 ‘할당’, ‘운명’, ‘전체 중 한 부분’ 등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예수가 사용하던 아람어 ‘메로스’를 다시 아람어로 역추적하면 그 단어는 ‘나흘라’(히브리어 ‘나할라’와 같은 의미)이다. ‘나흘라’는 ‘유산(遺産)’이란 의미로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수 없는, 신이 가족단위로 할당한 재산을 의미한다. 이 재산에는 동산과 부동산 모두를 포함한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는 ‘직계가족; 가정’이란 의미를 지닌 ‘베이트’다.

부모와 직계 자녀로 이루어진 ‘베이트’는 자신들에게 할당된 ‘나흘라’가 있다. 이 ‘나흘라’는 그 가족에게 할당된 유산이다. ‘베이트’보다 큰 단위는 8촌까지 포함하는 ‘미쉬파하’이다. 흔히 ‘친족’이라고 번역되는 ‘미쉬파하’도 그들에게 할당된 ‘나흘라’가 있다. 미쉬파하의 나흘라는 수십 개의 베이트 나흘라로 구성된다. 미쉬파하 위에는 부족의 나흘라가 있고, 부족의 나할라 위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나흘라가 있다.

작은아들의 이 행위는 고대 이스라엘 사회의 근간인 ‘나흘라’를 파괴한다. 특히 부모가 살아있는 동안 이런 요구를 한다는 것은 사회의 관습을 무시하는 행위를 넘어 신성모독이며 아버지와의 인연을 끊겠다는 협박이다. ‘나흘라’는 아버지 사후에 아들에게도 넘어가도록 되어 있는 수천 년 동안 이어진 전통이다.

“아버지, 재산 가운데서 내게 돌아올 몫을 내게 주십시오”라는 주장은 “아버지! 제가 당신이 죽을 때까지 못 기다리겠습니다. 나흘라를 내주십시오. 저는 당신과 인연을 끊겠습니다”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그가 아버지 집을 떠나는 행위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난 가장 중요하고 가치가 있는 전통과의 충격적 단절을 의미한다. 유목사회에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버리는 행위는 반역이며 신성모독에 해당하는 범죄이다. 수천 년 동안 내려오던 거룩한 전통, 즉 이들이 살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방식과의 결별이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공동체의 부재

그가 간 곳은 ‘먼 지방’이었다. ‘먼 지방’은 아버지 집과는 달리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으로 살아남는 장소다. 이곳은 또한 모든 사람이 권력과 돈, 그리고 명예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약육강식의 치열한 싸움터이다. 영적으로 고갈되어 있는 이곳에선 그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순간의 쾌락을 위한 유혹이 난무한다. 쾌락은 이곳에 존재하는 무시무시한 경쟁을 잠시 잊게 해주는 마약이다. 작은아들은 “거기에서 방탕하게 살면서, 그 재산을 낭비하였다.”

인간은 언젠가 이와 유사한 과정을 밟는다. 가정이라는 위대한 공동체를 통해 사랑과 헌신이 가장 소중한 가치라는 것을 배웠지만 우리는 학교와 사회에서 경쟁에서 살아남는 방법만 연마한다. 우리는 그 욕망의 소용돌이 안에서 영적으로 빈사상태가 되고 끝없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상대방을 경쟁과 극복의 대상으로 여긴다.

‘방탕하게 살았다’라는 표현은 육체적인 타락뿐만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정신적인 병리와 더 깊이는 영적 고사상태를 의미한다. ‘사랑과 용서’라는 나흘라는 고갈된다. 집으로부터 먼 곳으로 가면 갈수록 자신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의 대상이 된다. 가정에서는 자신이 사랑을 받는 존재라는 영적인 인식으로 가득 차 있으나, 먼 곳에서는 살아남기 위한 기만과 경쟁의 소용돌이만 있을 뿐이다.

<누가복음>은 먼 곳에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가 그것을 다 탕진했을 때에, 그 지방에 크게 흉년이 들어서, 그는 아주 궁핍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그 지방에 사는 어떤 사람을 찾아가서, 몸을 의탁하였다. 그 사람은 그를 들로 보내서 돼지를 치게 하였다. 그는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로라도 배를 채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주는 사람이 없었다.” 작은 아들이 자신을 사랑해주는 공동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엄연한 현실을 직시한 것이다.

이제야 작은아들은 “제정신이 들었다”라고 <누가복음>은 기록한다. ‘제정신’이란 자신이 아버지 집에서 사랑을 받아온 자식이란 자아인식이다. 자신이 아직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생각을 떠올린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꾼에게는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에게 돌아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 하겠다.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나는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으니, 나를 품꾼으로 삼아주십시오.’” 작은아들은 아버지 앞에서 할 변명을 외우며 집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한다.

1667년 렘브란트는 이 작은아들처럼, 경제적으로 파산하고 정신적으로 피폐하여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몇 해 전 파산하여 허름한 집으로 이사 온 후, 그의 세 번째 여인 헨드리키에가 죽고 1668년엔 그의 아들 티투스마저 죽었다. 재산·명예·권력이 사라지고 가족이 모두 사망한 후,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희망도 사라졌다. <탕자의 귀환>에서 렘브란트는 이런 비참한 상태의 자신을 작은아들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우선 아버지의 품에 무릎을 꿇고 안겨있는 작은아들의 모습을 보라.


▎예수는 <누가복음> ‘탕자의 비유’를 통해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과 용서의 가치를 가르쳤다.



탕자의 왼쪽 신발이 벗겨진 이유는?

작은아들이 집을 떠날 때 휘날리던 빛나는 긴 머리가 사라졌다. 머리숱이 거의 사라진 삭발의 모습으로 아버지의 품 안에 안겨 있는 작은아들. 우리는 수용소나 군대처럼 자신의 정체성이 사라질 때 삭발을 통해 그 공동체로 들어가 숫자를 부여받게 된다. 그 곳에서 작은아들은 아들로 불리지 않고 숫자가 된다.

거대한 이익집단의 이익을 위한 대치 가능한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그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린 작은 아들은 눈을 감고 아버지의 품 안에 안겼다. 몇 년 전 집을 떠날 때 입었던 화려한 겉옷은 사라지고 속옷만 입고 달려왔다. 이 속옷은 다 떨어져 누더기가 되었지만, 그 테두리를 보면 아버지의 소매 장식과 유사하다.

아버지에게 돌아오기 위해, 아직 아버지의 아들이 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선물한 그 속옷을 입고 왔다. 그 옷은 작은아들의 비쩍 마른 몸을 겨우 가렸다. 작은아들의 발을 보면 그가 어떻게 인생을 살았는지 발견할 수 있다. 오른쪽 신발의 밑창부분을 다 닳고 갑피부분은 사라졌다.

그가 사랑받고 용서받는 가정을 떠나, 먼 곳에서 겪은 수모와 고통을 말없이 증언한다. 그의 왼편 신발은 벗겨져 있다.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신발을 신고 일생을 살다 집에 돌아와 벗겨졌다. 그의 발바닥은 상처와 각질투성이다. 왼쪽 신발이 벗겨진 이유는 무엇인가? 그가 다 닳은 신발을 신고 아버지에게 급히 달려오느라고 벗겨진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품 안에서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상징이다.

<출애굽기> 3장에 모세가 시내산에서 신을 만났을 때, 신이 요구한 행동은 신을 벗으라는 명령이다. 이 명령엔 두 가지 의미가 숨겨져 있다. 첫째, 신발은 자신이 소중하게 매달리던 가치나 이데올로기를 상징한다. 그 과거의 관습을 폐기하라는 의미다. 둘째, 아버지의 품 안은 안전하고 사랑이 넘치는 거룩한 장소이기 때문에 신을 벗어야 한다. 마치 우리가 신전에 들어갈 때 신을 벗는 것처럼.

작은아들의 그림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바로 그가 차고 있는 단검이다. 이 당시 평민들이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단검이긴 하나, 아버지를 찾아와 용서를 비는 장면에서 이 단검은 이해하기 힘들다. 헨리 나우웬은 작은아들의 단검을 ‘아들의 상징’으로 해석한다. 작은아들은 단검을 팔 수도 있었지만, 이 단검을 소중하게 간직함으로써 귀향할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 단검은 다른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왼편에 서 있는 붉은 겉옷을 입고 상황을 파악하려는 큰아들은 두 손으로 긴 칼을 땅 바닥에 대고 움켜쥐고 관조하고 있으며, 그 옆에 앉아 있는 검은 모자를 쓰고 다리를 꼬고 앉은 사람을 분석해보면 왼손으로는 꼰 오른쪽 다리를 쥐고 오른손으로는 확실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품 안에서 단검을 꺼내려 한다. 이 장면은 일촉즉발의 위급한 상황이다. 작은아들에게 단검은 아버지에게 돌아왔지만 아직도 집안의 다른 사람들과 풀어야 할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형이나 다른 종들은 작은아들이 집으로 돌아옴으로 이해관계가 복잡해졌다.

작은아들이 집으로 돌아간다. “그는 일어나서,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먼 거리에 있는데, 그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서, 달려가 그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부터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작은아들이 돌아오기를 매일매일 기다렸다. 작은아들이 집에 도착하려면 아직도 먼 거리지만, 아버지는 멀리서 오는 작은아들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측은히 여겨 그에게 달려간다. 나이가 들어 앞이 잘 보이지도 않지만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작은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춘다.

그림 전체에서 가장 빛나는 아버지의 얼굴

렘브란트는 이 감동적인 순간을 포착하여 아버지의 얼굴을 그린다. 그는 아마도 이 아버지의 그림을 통해 신을 가장 사실적이면서 감동적으로 표현했다. 그림 전체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바로 아버지의 얼굴이다. 그 얼굴의 왼편은 어둡게 처리하였고 왼쪽 눈은 감겨 앞을 거의 보지 못한다. 밝은 색으로 처리한 오른쪽 눈도 거의 감겨 있고 눈동자는 오른쪽으로 완전히 돌아가 초점이 없다. 아버지의 사랑은 상대방의 자격과는 상관없다. 그 사랑은 자신의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연스러운 용기다.

렘브란트는 아버지의 얼굴뿐만 아니라 양손을 통해 신을 표현한다. 그는 양손을 다르게 묘사했다. 아버지의 왼손은 작은아들의 왼쪽 어깨를 어루만지고 있다. 그 손은 강인하며 남성적이다. 왼손의 손가락은 벌어져 작은아들의 어깨 대부분을 가린다. 특히 엄지손가락은 다른 손가락과는 달리 어깨와 등을 강하게 누르고 있다.

돌아온 작은아들을 다시 놓지 않겠다는 아버지 마음의 표식이다. 아버지의 오른손은 왼손과는 정반대로 표현했다. 오른손은 오른쪽 어깨보다는 등을 살포시 어루만지고 있다. 이 손은 아버지의 손이 아니라 어머니의 손과 유사하다. 손가락들은 가지런히 정렬되었고 등을 누르거나 잡지 않는다. 왼손은 작은아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위로한다.

렘브란트의 삶에 있어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바로 첫 번째 부인 사스키아와 그 사이에서 태어난 티투스의 죽음이었다. 사스키아가 1642년 티투스를 낳은 후 죽었고 티투스는 이 그림을 완성하기 전해인 1668년에 죽었다. 그는 이 그림에서 엄마 없이 일생을 살다 27세에 죽은 티투스를 작은아들로, 그림 왼쪽 뒤에서 이 광경을 응시하고 있는 검은 색 목걸이를 하고 있는 여인을 사스키아로 그린 것 같다.

아버지는 돌아온 작은아들을 위해 잔치를 벌인다. 작은아들은 자신이 아들이 아닌 종으로 일하겠다고 아버지에게 간청한다. 그는 아직도 먼 곳에서 작동하던 원칙대로 아버지에게 요청한다. 자신이 일한 만큼 대가를 바라고 생활하겠다는 요청이다. 이 요청이 한편으로 타당한 것 같으나, 아버지의 사랑과 용서를 감안하면 적절하지 않다. 아버지의 반응은 단호하다. 아들의 요구에 아랑곳하지 않고 종들에게 명령한다. “어서 좋은 옷을 꺼내서 그에게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내다가 잡아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아버지는 작은아들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한다.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위해 아버지는 아들에게 세 가지 상징적인 행위를 감행한다. 먼저 새 옷을 입힌다. 우리가 졸업식이나 입학식에서 가운을 입거나 새 옷을 입는 것처럼,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기 위하여 과거와는 전혀 다른 정체성을 부여하는 행위가 새 옷 착용이다.

두 번째, 손에 반지를 끼운다. 반지를 착용한다는 의미는 결혼반지처럼 아버지와 다시 하나가 될 것이라는 약속이자 결심이다. 아버지와 작은아들이 이제 한 몸이 되었다. 세 번째, 새 신을 신는 행위를 통해 아버지와 계약을 체결한다. 과거의 습관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헌 신발을 버리고, 아버지가 주는 새 신을 신어 새로운 사람으로 완성되었다.

아버지는 이 세 가지 상징적인 행동뿐만 아니라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였다. 송아지는 잔치에서 사람들이 먹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작은아들의 죄를 대신 지고 죽어야 하는 ‘희생물’이다. 작은아들의 죄가 송아지에게 전가되어 살해되면 그의 죄는 사라지게 된다. 이렇게 살해된 송아지를 사람들이 모두 먹음으로써 하나의 공동체가 형성된다. 이 공동체는 작은아들이 아버지의 아들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지 곁에서 지켜본다.


▎렘브란트가 에칭화로 남긴 <탕자의 귀환>. 성서의 내용을 즉자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창조적인 주석을 예술적으로 표현했다.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이 그림의 오른편에서 아버지와 작은아들의 감동적인 만남을 지켜보는 세 사람이 존재한다. 아버지 바로 왼쪽 뒤로 희미하게 쳐다보는 젊은 여인이 있다. 이 여인을 렘브란트의 삶과 연결시킨다면, 그녀는 1640년대부터 가정부로 일하다 정부가 된 헨드리키에다. 그녀도 그림의 왼쪽에 희미하게 그려진 첫 번째 부인 사스키아와 마찬가지로 거의 유령처럼 묘사되었다.

렘브란트 시절의 성서주석서와 그림들을 살펴보면 ‘탕자의 비유’는 <누가복음> 18장에 등장하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와 깊이 연결되어 언급되었다.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환>에서도 이 전통에 따라 그림의 오른편에 바리새인과 세리 두 명을 그려 넣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이 의롭다고 확신하여 남을 멸시하는 대표적 인간이다. <누가복음> 18장에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하나는 바리새파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세리다. 바리새파 사람은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토색하는 자나 불의한 자나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않으며, 이 세리와도 같지 않습니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내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그런데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우러러볼 엄두도 못 내고, 가슴을 치며 ‘아,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의롭다는 인정을 받고서, 자기 집으로 내려간 사람은 저 바리새파 사람이 아니라, 이 세리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검은 모자를 쓰고 나름대로 화려하게 차려입고 앉아 있는 사람은 바로 세리와 죄인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오른쪽 다리를 왼쪽으로 꼬고 앉아 왼손으로 잡았다. 문제는 오른손이 하는 일이다. <누가복음> 18장 내용을 따른다면 이 세리가 가슴을 치며 회개하고 있는 모습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정체성을 표시하는 돈주머니를 쥐고 있는 모습이다. 혹은 쥐고 있는 것이 단검일 수도 있다. 세리가 하는 일은 로마 제국을 위해 유대인들로부터 세금을 무자비하게 수금하는 일로, 유대인들의 경멸의 대상이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이 유대사회에서 로마앞잡이라는 수모를 견디고 자신을 지켜주는 단검과 같은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

세리 옆에 서 있는 자는 바리새인이다. 렘브란트는 이 집안의 큰형을 바리새인으로 묘사한다. <탕자의 귀환> 전체에서 빛을 받아 부각된 인물은 바로 아버지와 큰아들이다. 렘브란트는 아버지와 작은아들의 만남을 목격하는 인물로 큰 형을 그렸다. 정작 <누가복음> ‘탕자의 비유’에서는 형은 들에서 일하다 집에 돌아오다 잔치하는 소리에 집안에서 일어난 사건을 알게 된다.

렘브란트는 성서의 내용을 축자적으로 따라 묘사하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창조적인 주석을 예술적으로 표현했다. 잔치가 벌어지는 집에 거의 도착했을 때 그는 너무 화가 나 집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아버지는 밖으로 나와 큰아들과 마주한다. 큰아들은 아버지에게 말했다. “나는 이렇게 여러 해를 두고 아버지를 섬기고 있고 아버지의 명령을 한 번도 어긴 일이 없는데, 내게는 친구들과 함께 즐기라고,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신 일이 없습니다.”

렘브란트는 이런 큰아들을 바리새인으로 그렸다. 자기 동생이 돌아온 사실에 아버지처럼 기뻐 함께 부둥켜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려야 할 큰아들이 아버지와 동생의 만남을 화가 나서 관조하고 있다. 렘브란트는 이런 형의 감정을 아버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의 손으로 표현하였다. 그는 단검이 아니라 장검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장검을 두 손으로 감싸 그 끝이 지면에 닿게 했다.

여차하면 칼을 빼서 자기 동생을 찌를 찰나다. 아버지와 같이 붉은 겉옷을 입어 이 집안의 유산자는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확인시킨다. 아버지가 돌아가진 후 아버지의 유산은 바로 큰아들 몫으로 당연히 넘겨질 것이었다. 그러나 작은아들이 등장하는 순간, 이 모든 계획이 무산되었다. 형은 두 손으로 칼을 단전에 밀착시키고 갈등하고 있다. 그의 왼손은 아버지의 왼손처럼 강인하고 남성적인 손이다. 오른손보다는 밝다. 왼손은 당장 칼을 빼서 동생을 찌를 준비가 되어 있다. 끓어오르는 분노의 왼손을 오른손이 누르고 있다.

아버지의 기쁨에 동참하지 못한 큰아들

그는 아버지에게 항의한다. “창녀들과 어울려서 아버지의 재산을 다 삼켜버린 아들이 왔습니다. 그를 위해 살진 송아지를 잡은 것이 옳은 일입니까?” 큰아들은 아마도 주위 모든 사람이 따르고 싶은 전형적인 인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작은아들이 돌아와 아버지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자, 그는 정반대의 인간이 되었다. 마음속에 숨겨져 있던 경쟁심이 분출하여 복수심에 불타고 이기적인 인간이 되었다.

렘브란트는 아버지가 돌아온 아들을 위해 베푼 연회의 흔적을 희미하게 표시했다. 아버지 뒤쪽에 있는 여인의 머리 옆에 피리를 부는 사람이 그려져 있다. 렘브란트는 아버지와 작은아들이 만난 기쁜 자리에 들어오지 못하는 큰아들의 심리를 묘사했다. 남들보다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큰형을 제단 위에 그렸다. 아버지가 큰아들에게 질문한다. “아들아,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지 않느냐? 또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네 것이 아니냐? 너의 이 아우는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으니,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느냐?” <누가복음>의 ‘탕자의 비유’는 이 질문으로 마친다.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환>은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하면서 아버지, 작은아들, 그리고 큰아들의 심리묘사를 통해 자신의 회한과 희망을 그렸다. 인간은 자신이 누리고 있는 행복에 감사하지 못한다. 오히려 만족하지 않고 먼 곳으로 나간다. 작은아들처럼 권력과 명예, 그리고 돈이 우리의 신이며 우상이 된지 오래다. 이런 것들이 삶의 우선이 될 때, 거기에는 경쟁과 질시, 그것을 풀기 위한 극단적인 쾌락이 우리를 유혹한다. 소수만이 다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온다. 아버지의 품이란 대상의 자격과는 상관없이 그 사람을 용서(容恕)하는 마음이다.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이 ‘용서’로 하나가 된 기적을 의심의 눈초리로 본다. 마치 큰아들처럼, 언제든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긴 칼로 모두를 파괴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 그림에서 큰아들은 남들이 보기에는 가장 당당한 체격과 무기를 지녔고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은 성공한 인물 같지만 그의 치명적인 결점은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놓은 제단에서 내려오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바로 이 큰아들과 너무 닮았다.

<누가복음>의 ‘탕자의 비유’도 사실 큰아들에 대한 경고다. 다른 사람들의 기쁨에 동참하지 못하는 인간. 자신이 쌓아놓은 이기심이라는 제단에서 희생된 인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가 가장 거룩하고 가치 있다고 구축한 그 이데올로기, 그 신념, 그 원칙이라는 제단을 부수고 우리의 가까운 가족, 친족, 심지어는 원수까지도 용서하는 마음이다.

201407호 (2014.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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