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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의 성서 오디세이–예수의 위대한 질문⑫ “여자여, 그것이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요한복음 2장 4절) 

‘은총(카리스)’을 위한 예수의 여정에 묵묵히 동행한 여인이 바로 어머니 마리아…십자가에서 숨을 거둔 예수의 시신을 받아 들고서야 ‘카리스’의 의미 깨달아 

배철현 서울대 인문대학 종교학과와 서아시아언어문명학과 교수
마리아의 존재 규정은 그리스도교 역사의 가장 중요한 논쟁의 흐름으로 기록된다.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보장해주는 역할에서 스스로 신적인 지위를 획득하기 시작했는데…. 그녀는 예수를 잉태하기 전 태중의 아이가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라는 사실을 확신했을까?

매년 3월 스페인 발렌시아 시에서 열리는 ‘라파야스 축제’. 비르헨 광장에 세워진 거대한 성모 마리아상이 꽃으로 단장돼 있다.
어린아이가 자랄 때 정서적으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사람은 ‘어머니’이다. 다른 동물과는 달리 털이 없는 벌거숭이 인간이란 종(種)은 뇌가 다른 온혈포유류보다 점점 커졌다. 그래서 어미의 자궁을 통과할 수 있도록 미성숙한 상태로 태어나기 시작했다.

인간이 태어나서 걷기까지 1년 정도 걸리니, 인간이란 종은 이 세상에 1년 정도 먼저 태어났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갓 태어난 아이는 어미의 젖을 통해 생존한다. 어미는 아이의 성장을 위해 본능적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다. 아이는 이 세상에 태어나 알지도 못하는 존재가 자신을 위해 목숨까지 바친다는 것을 어렴풋이 확인한다. 아이는 이 존재를 어머니라 부른다. 모든 인간은 어머니를 통해 인류 최고의 가치인 사랑을 배운다.

마리아는 예수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우리는 예수나 마리아를 그리스도교가 자신의 신앙공동체를 마련하고 강화하기 위해 만든 교리라는 렌즈를 통해 이해한다. 그나마 예수와 마리아의 민낯을 볼 수 있는 마리아의 존재 규정은 그리스도교 역사의 가장 중요한 논쟁의 흐름으로 기록된다.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보장해주는 역할에서 스스로 신적인 지위를 획득하기 시작했는데…. 그녀는 예수를 잉태하기 전 태중의 아이가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라는 사실을 확신했을까?

기록은 복음서에 등장하는 몇몇 구절뿐이다. 신약성서에는 예수의 활동을 기록한 네 권의 복음서가 있다. 이들 복음서 중 예수의 탄생이나 어린 시절을 기록한 복음서는 <마태복음> <누가복음>이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복음서 중 가장 먼저 기록된 <마가복음>(기원 후 60년경)을 참고하여 자신들이 속한 신앙공동체의 신앙고백에 맞게 예수의 생애를 기록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마가복음>에는 예수의 탄생 기사가 없다.

A.D. 120년경 가장 나중에 기록된 <요한복음>은 그리스 철학을 원용하여 예수를 ‘로고스’로 해석했기 때문에, 인간적인 예수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 예수의 탄생기사가 <마가복음>에 없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유추할 수 있는가? 사실 예수가 30세되어 세례요한의 회개운동에 참여하고 사막에서 ‘40일간’ 영적인 수련과정을 거쳐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까지 팔레스타인에서 예수의 존재를 알던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등장하는 동방박사들은 페르시아에서 아후라마즈다를 신봉하는 조로아스터교 사제들이다. 이들이 별을 따라 베들레헴까지 찾아온 이야기는 분명 후대 예수를 신격화하는 과정에서 첨가된 내용일지 모른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복음서 저자와 교부들은 예수를 단순히 인간이 아닌 ‘하느님의 아들’, 더 나아가 ‘하느님’으로 만드는 중요한 신학적인 미화 과정을 거쳤다.

예수는 ‘인간’인가 혹은 ‘신’인가?

초기 그리스도교가 그리스-로마 철학과 견주어 사상적인 체계를 구축하는 데 중요했던 것 중 하나는 예수의 본성에 관한 문제였다. 한마디로 질문하자면 예수는 ‘인간’인가 혹은 ‘신’인가? 혹은 예수는 ‘신’이며 동시에 ‘인간’인가? 우리가 보기에 다소 황당한 질문 같지만, 이 문제는 4세기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의 공인종교가 되면서 고민한 가장 중요한 난제였다.

황제가 주제하는 여러 차례의 종교회의를 거쳐 ‘교리’를 만들었다.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예수를 정의하는 신학적인 용어는 ‘호모우시아(homoousia)’였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주제한 니케아 종교회의(325년)는 아버지 하느님과 아들 예수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하는 알렉산드리아의 사제 아리우스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아들 예수가 본질적으로 아버지 하느님과 동일하다는 ‘호모우시아’를 교리로 수용한다.

그러나 많은 동방그리스도교 사제들에게 이 용어는 이전 사모사타의 바울이 사용하여 이단으로 금기한 용어였다. 그 후에 콘스탄티누스 2세(337∼361)와 발렌스(364∼378년)가 아리아주의를 선호하자 교부들은 아리아주의와 ‘호모우시아’를 절충하여 ‘호모이우시아(homoiousia)’ 즉 아버지 하느님과 아들 예수가 본질에서는 동일하지만 존재에 있어서는 유사하다는 교리를 만든다. 테오도시우스 1세는 콘스탄티노플 회의(381년)에서 삼위일체를 완성한다.

예수가 삼위일체 안에서 완벽한 인성과 완벽한 신성을 지닌 존재로 수용되자 예수의 본성에 관한 문제가 다시 야기되었다.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는 소아시아 에베소에서 제3차 공의회(431년)를 소집한다. 논쟁의 초점은 예수의 본성에 대한 교리 확정이었다. 이 문제는 사실 예수와 하느님의 관계 안에서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예수의 신성을 보장하는 문제는 그의 어머니 마리아의 본성 문제와 직결되어 있었다. 이 공의회는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시릴과 콘스탄티노플의 감독 네스토리우스의 신학적 입장을 판단하는 회의였다.

두 명 모두 그리스도가 참으로 하느님이며 삼위일체 중 한 명이란 사실에는 동의하였지만, 그리스도의 본성에 대한 의견은 달랐다. 안디옥 학파의 사상적인 세례를 받은 네스토리우스는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 한 위격을 지닌 것이 아니라 공존하는 두 위격을 지녔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시릴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은 하나로 융합된 하나의 위격이라고 해석하였다. 지금 보면 터무니없는 신학적 말장난 같지만 그 시도는 그리스-로마 사상과 견주어 견고한 신학적인 기반을 구축하고자 하는 교부들의 숭고한 노력이었다.

네스토리우스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바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로부터 물려받은 본성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는 인간 예수 안에 ‘로고스’로서 내재한다고 보았다. 네스토리우스는 마리아를 ‘그리스도를 잉태한 자’란 의미를 지닌 ‘크리스토토코스(Christotokos)’라고 불렀다.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신성의 어머니가 아니라 인성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사람의 어머니’ 즉 ‘앤스로포토코스(anthropotokos)’ 혹은 기껏해야 ‘크리스토토코스’이다. 시릴은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이 하나의 위격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마리아를 ‘테오토코스(theotokos)’ 즉 ‘신을 잉태한 자’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마리아의 아들 예수는 신인 동시에 인간이기 때문에 ‘테오토코스’가 더 적절한 용어라고 주장한다.

‘무염시태(無染始胎)’ 교리는 왜 필요했나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상. 비잔틴 양식의 스테인드글라스로 예수와 마리아 사이의 운명적인 가족관계를 묘사하고 있다.
시릴은 한 편지에서 말한다. “나는 아직도 거룩한 처녀를 테오토코스라 부르는 것에 대해 의심하는 자들이 있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만일 우주 예수 그리스도교 하느님이라면, 그를 잉태한 거룩한 처녀는 테오토코스가 아니겠는가?”

테오토코스라는 용어는 사실 마리아의 위상보다는 예수의 위상을 다지기 위한 전략이었다. 네스토리우스는 에베소 종교회의에서 교리논쟁에 휩싸인 후 451년 칼케돈공의회에서 이단으로 물렸다.

네스토리우스파는 독자적인 그리스도교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페르시아, 인도, 그리고 아라비아로 이주하여 급기야는 비단길을 따라 중국에 까지 이르렀다. 알로펜을 중심으로 한 네스토리우스파의 선교단이 경교(景敎)라는 이름으로 중국에 도착한 것은 635년 당나라 태종 때였다.

테오토코스가 된 마리아는 단순히 그리스도의 신성을 보장해주는 역할에서 스스로 신적인 지위를 획득하기 시작했다. 마리아는 예수를 잉태하기 전 태중에 아이가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라는 사실을 확신했는가? 1세기 후반에 기록된 복음서, 특히 <누가복음>에는 마리아에 대한 기록이 등장한다.

테오토코스로서 마리아에게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바로 순결성이다. 마리아가 이 순결의 상징으로 등장하는데 신학적인 논거를 제시해준 가장 중요한 중세 학자는 클레르보의 베르나르(1090∼1153)였다. 그는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하기 전이나 후, 심지어는 예수를 잉태하는 순간에도 처녀성을 유지했다고 주장한다.

<누가복음> 1장 27절에 등장하는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다”라는 문장에서 ‘마리아’를 ‘바다의 별’을 의미하는 은유로 설명한다. 베르나르는 별이 자신을 해치지 않고 빛을 내보내듯 동일한 방식으로 처녀가 자신을 해치지 않고 자신의 아들을 보낸다고 주장하였다. 베르나르는 별이 빛을 발하듯, 마리아도 편안하게 예수를 잉태하였으며 자신의 처녀성을 유지했다.

예수가 이런 식으로 원죄가 없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신학적인 장치가 필요했다. 마리아도 흠 없이 태어나야만 했다는 점이다. 마리아가 다른 인간처럼 태어났다면, 어떻게 자신의 순결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 마리아도 원죄의 영향을 받지 않고 태어났다는 마리아의 ‘무염시태(無染始胎)’ 교리가 필요했다.

마리아도 흠 없이 태어났다는 교리가 동방정통교회에서는 8세기부터, 그리고 서방가톨릭교회에서는 11세기 영국에 등장하여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마리아의 ‘무염시태’ 교리는 ‘모든 어머니의 어머니’란 의미를 지닌 ‘마테르 마트리스’인 마리아 숭배의 핵심적인 가르침이다.

마리아의 어머니가 복음서에는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교 정경인 신약성서 안에 포함되지 않은 문헌들을 조사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2세기 중반의 문헌으로 예수의 어린 시절 기록이 담겨 있는 <야고보의 원복음서>를 참조하였다.

이 복음서는 신약성서에서 예수의 동생으로 묘사된 야고보가 직접 썼다고 전해진다. <야고보의 원복음서>는 다른 초기 그리스도교 교부들의 문헌과는 달리 마리아를 자세히 기록한다. 마리아의 부모는 요아킴과 안나이다. 이들은 원래 불임이었는데 기적적으로 마리아를 임신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마리아를 봉헌하였다.


예루살렘 성지순례 길의 정점에 위치한 성분묘 교회의 예수상은 십자가에 매달려 “엘리엘리라마 사박다니”를 외치고 숨을 거두는 순간의 장면을 포착하고 있다.
임신 중 영적으로 정화된 마리아

마리아가 결혼할 시기가 다가오자 그녀의 부모는 마리아를 위해 나이가 지긋한 홀아비였던 요셉과 맺어 준다. 요셉은 마리아의 처녀성을 인정하고 보호하며 그녀가 임신하였을 때, 그녀의 편을 들어줄 사람이었다. 이 복음서에 의하면 마리아는 예수를 잉태할 때도 처녀성을 유지했다고 전한다. 살로메라는 여인이 마리아의 처녀성을 확인하겠다고 주장하자 그녀의 손에 불이 붙는 기적이 일어났다. 마리아는 이 중요한 2세기 문헌에서 이미 순결의 극치이며 자신의 어머니 안나에 의해 기적적으로 태어난 처녀-어머니였다.

신약성서의 몇몇 구절은 예수의 형제들을 언급함으로 마리아의 영원한 처녀성에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예수의 기적 이야기에는 마리아가 낳은 예수의 형제들이 등장한다. 예수가 동생들이 있었다면 마리아의 영원한 순결성을 주장할 수 있을까? 파리의 주교였던 피터 롬바드(Peter Lombard, 1100∼1160)의 <선언(Sententiarum)>에 의하면 예수의 동생들은 나이 든 요셉의 전처 자식들이거나 마리아의 사촌들이라고 주장한다. 14세기에 들어서 ‘안나’를 예수와 마리아 가계의 시점으로 만들기 시작하였다. 안나는 예수의 할머니일 뿐만 아니라 <야고보>와 <요한복음>의 저자인 요한의 할머니로 정착되었다.

안나의 자손들이 예수의 형제들의 어머니가 되었고, 이들은 안나의 세 번의 다른 결혼으로 생긴 결과다. 안나가 맨 처음 요아킴과 결혼하여 기적적으로 임신하여 낳은 자가 바로 마리아다. 안나는 요아킴이 죽고 나서 유대인들의 ‘형수취수’ 풍습에 따라 요아킴의 동생인 글로바에게 시집간다. 안나와 글로바는 딸을 잉태하였고 마리아와 구별하기 위해 글로바의 마리아라고 불렀다. 그 후에 글로바가 죽자, 요아킴의 다른 동생인 살로메에게 다시 유대관습에 따라 시집을 간다. 안나와 살로메 사이에 세 번째 딸을 낳았고 이전에 두 명의 마리아와 구분하기 위해 살로메의 마리아라고 이름지었다.

안나는 중세시대 성서해석에 따라 거룩한 세 번의 결혼이란 의미를 지닌 ‘트리누비움(trinubium)’에 따라 세 명의 마리아를 잉태하였다. 안나의 딸들은 예수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인물의 어머니들이다. 성모 마리아는 성령으로 무염시태를 통해 예수를 낳았고, 마리아 글로바는 ‘주님의 동생’인 야고보의 어머니이며, 마리아 살로메는 바로 <요한복음>의 저자인 요한의 어머니가 되었다.

물론 무염시태 교리에 대한 반론도 있었다. 스콜라 철학의 창시자로 캔터베리 대주교를 지낸 안셀무스(1093∼1109)는 마리아도 다른 인간처럼 원죄를 지녔다고 주장했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가장 뛰어난 철학자이며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1224∼1274)도 마리아가 다른 여인들처럼 아이를 가졌지만 임신 중에 영적으로 정화되었다고 말했다. 도미니크 수도회와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이 교리를 수용하여 가톨릭교회의 중요한 사상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 가면 마리아의 수태고지 장면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그림이 하나 있다. 시모네 마르티니는 1333년 자신의 시동생 립포 멤미와 함께 이탈리아 시에나 성당 안에 위치한 성 안사노 제단 장식화를 그렸다. 나무판 위에 안료와 수성 용매를 섞어 만든 물감과 섞은 템페라와 금으로 그렸다.

이 그림 밑에 다음과 같은 라틴어 비문이 적혀있다. “SYMON MARTINI ET LIPPVS MEMMI DE SENIS ME PINXERVNT ANNO DOMINI MCCCXXXIII”, 즉 “시에나 출신 시몬 마르티니와 립푸스 멘미가 1333년에 나를 그렸다.” 이 그림은 그리스도교가 탄생하기 위한 신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사건을 다뤘을 뿐만 아니라 당시 영국이나 프랑스에서는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중세 고딕양식을 표현하였다.

올리브 잎을 통해 고지된 인류의 구원자


체코 프라하의 성수태고지 성당. 뾰족한 첨탑 등 고딕 건축양식의 정수를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대천사 가브리엘이 하늘에서 지금 막 내려와 땅에 착지하였다. 그의 날개는 아직 접혀지지 않고 하늘로 치켜져 있으며 그의 겉옷도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반갑지 않게 등장한 천사를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 본다. 마르티니는 수태고지의 순간을 그리며 가브리엘의 아직도 펄럭이는 겉옷과 기도문이 된 그의 인사말, 그리고 마리아의 거룩한 당황스러움과 불쾌감을 모두 표현하였다.

가브리엘과 마리아 사이에는 네 개의 흰색 백합이 담긴 금색 꽃병이 놓여 있다. 하얀색 백합은 유럽이 십자군전쟁을 통해 아시아로부터 들여온 꽃이다. 마르티니는 백합을 마리아의 순결과 처녀의 상징으로 그렸다. 그리스 신화에서 백합은 헤라 여신의 젖이다. 헤라의 젖이 하늘로 올라가 은하수가 되었고 땅에 떨어져 백합이 되었다. 백합은 바로 신의 거룩한 씨앗을 의미한다.

가브리엘은 왼손으로 올리브나무 가지를 들고 있다. 머리에도 올리브 잎사귀로 만든 관을 쓰고 있다. 올리브는 구약성서 노아방주 이야기에 등장하는 것처럼 구원과 희망의 상징이다. 노아는 방주에서 비둘기를 내보내 홍수가 그쳤는지 확인한다. 비둘기는 한참 후에 올리브 잎을 물고 온다. 올리브 잎은 이제 방주에서 하선해도 된다는 표시다. 마르티니는 올리브잎을 통해 새로 태어날 아이가 인류에게 구원자이며 희망을 가져다줄 메시아라는 소식을 전해준다.

마치 최초의 인간 아담을 창조하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는 것처럼 마리아의 귀를 향하여 인사를 불어넣는다. “Ave gratia plena Dominus tecum.” 번역하자면 “평화가 있기를! 은총이 넘치는 자여,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하시기를” 정도가 될 것이다.

가브리엘의 오른손을 살펴보면, 검지가 위쪽을 향하고 있다. 천사들이 사각형을 이루고 그 안에 비둘기가 있다. 비둘기 역시 부리를 열어 바람을 보내고 있다. 가브리엘의 바람과 비둘기의 바람이 마리아의 코에서 만난다. 비둘기는 노아 홍수사건에서 희망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신약성서에서 예수가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 제단화에는 위쪽으로 네 명의 예언자가 두루마리 성경을 펼쳐 들고 있다. 이들은 왼쪽부터 예레미야, 에스겔, 이사야, 다니엘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메시아의 탄생을 예언했다는 것이다. 마르티니의 그림에는 마리아가 갑자기 등장한 가브리엘에 놀라 자신의 겉옷을 오른손으로 목에서 여미어 쥐고 얼굴을 비스듬하게 돌린다. 순박한 소녀와 같은 반응이다. 마리아의 왼손은 책을 감싸고 있고 엄지는 책 사이에 끼워져 있다. 그녀는 경전을 묵상하고 있다가 가브리엘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독서를 잠시 멈춘

듯하다.

마리아는 얼굴을 4분의 3정도 가브리엘 쪽으로 돌렸다. 마르티니는 아마도 <누가복음> 1장 28∼29절의 내용을 염두에 두고 그린 것 같다. “천사가 안으로 들어가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은혜를 입은 사람아,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마리아는 이 말을 듣고 몹시 놀라 ‘이 인사말이 대체 무슨 뜻일까’ 하고 생각하였다.” 마리아는 가브리엘의 말의 의미를 판독하고 있는 듯하다. 그녀는 혼돈에 빠진 것처럼 눈을 가늘게 흘긴다. 눈썹과 코가 만나는 지점에 그림자가 생겨 고민에 빠진 모습이 역력하다.

이 그림 양쪽으로는 시에나 대성당과 연관된 인물을 그렸다. 바로 시에나의 성인인 성 안사누스와 그의 대모인 성녀 막시마이다. 왼편의 성 안사누스는 수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45∼312)의 박해 때 20세의 젊은 나이로 순교한다. 그의 손에는 순교를 상징하는 종려나무 가지와 부활을 의미하는 깃발이 들려 있다. 오른쪽엔 성 안사누스의 대모인 성녀 막시마가 서 있다. 그녀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순교했다.


1333년 시모네 마르티니가 그린 <수태고지>. 마르티니는 천사 가브리엘이 들고 있는 올리브 나무 가지를 통해 새로 태어날 아기가 인류에게 희망을 가져다 줄 메시아라는 점을 암시한다.
인간은 스스로 ‘은총’을 획득할 수 없다.

시모네 마르티니의 ‘수태고지’는 인간으로서 놀란 마리아의 모습을 그렸다. 그 모습은 ‘테오토코스’로서의 마리아가 아니라 우리가 흔히 만날 수 있는 처녀의 모습이다. 가브리엘이 전한 인사말 ‘Ave gratia plena Dominus tecum’에서 ‘gratia plena’의 의미는 ‘은총이 넘치는 여인’이 아니라 ‘은총을 많이 입은 여인’이다. 마리아는 원래부터 은총이 넘치는 신의 경지에 도달한 여인이 아니라, 마음을 비우고 가난하여 신의 은총을 듬뿍 받을 수 있는 여인이었다.

‘은총’이란 라틴어 단어 ‘그라티아(gratia)’로 본래 의미는 “모양, 균형, 움직임 혹은 표현의 아름다움; 매력적인 특성이나 태도”이다. 그라티아는 지속적인 수련을 통해 자기 몸과 행동에 배어 있는 그 사람만이 가진 매력이다. 이 라틴어 단어는 신약성서의 언어인 그리스 단어 ‘카리스(charis)’로 번역되었다. 그리스 문화에서는 좋은 와인이나 언변의 우아함을 지칭할 때 카리스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특히 어떤 이가 섬세하고 지혜로우며 예술적이라면 카리스를 소유한 자라고 말한다.

카리스는 그리스 문화에서 기본적으로 미적인 의미이지만, 윤리적인 의미로도 사용된다. 신약성서 저자들은 미적인 의미보다는 윤리적인 의미에 집중한다. 카리스는 친절, 관대함이란 의미다. 카리스는 또한 ‘매력과 같은 힘’이란 뜻도 내포한다. 고대 그리스 비극작가 유리피데스는 카리스를 죽은 영웅이 자신의 추종자들로부터 요구받는 지하세계로부터 오는 마력이라고 정의한다. 신약성서에서 카리스는 하느님의 권능이 되어 부활한 예수와 함께 새로운 삶을 살도록 만드는 힘이 되었다.

카리스의 내외의 의미가 일맥상통한다. 육체적으로 아름답고 용기가 넘치며 지혜롭고 우아하고 효과적인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친절하고 관대하며 언제나 다른 사람을 도우려는 마음씨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다. 특히 이런 카리스를 신으로부터 부여받았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복음서 저자들은 카리스에 그리스의 용례와 다른 심오하고 신학적이며 영적인 차원을 덧붙인다. 인간은 스스로 카리스를 획득할 수 없다. 신이 자신이 원하는 사람에게 느닷없이 무작위로 주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장에는 신이 이 땅에 인간과 함께 살려고 내려와 인간을 위해 죽었다고 주장한다.

이것을 대속(代贖)이라 부른다. 내가 빚을 졌는데 누군가 나타나 그 빚을 대신 갚아 청산해준다. ‘대속’이란 개념에는 그 은총을 베푸는 자의 희생이 따른다. 그런 희생에도 불구하고 그런 은총을 그 수용자의 자격과는 상관없이 마치 산타클로스의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선사한다.

이런 선물과 같은 대속은 히브리어로 ‘거울라(ga’ulla)’다. ‘거울라’는 ‘가알(ga’ala)’이라는 동사에서 파생한 명사로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법과 관습에서 노예를 해방시키거나 다른 사람의 빚이나 의무를 대가 없이 지불해주는 행위다. 1세기 랍비 유대교에서는 ‘대속’이란 개념이 세상의 마지막에 올 메시아와 연결된다.

메시아가 와서 이스라엘인을 과거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해방시킨 것처럼, 자신들을 영적으로 해방시킬 것이라고 믿었다. 복음서 저자들은 나사렛 예수를 바로 대속자로 여겼다. 예수는 이스라엘이 그렇게 기다리던 메시아이며, 신으로 떨어져 나간 인류를 자신의 죽음을 통해 회복시킬 자다.

예수를 ‘로고스’로 보았던 <요한복음>의 저자


이스라엘 베들레헴의 예수탄생교회에서 성직자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다. 예수가 탄생한 베들레헴의 현장이며 동방박사 3인이 경배한 곳이다.
<누가복음> 1장에는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를 방문하는 장면이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천사가 갑자기 나타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은혜를 입은 사람아,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이 말을 들은 마리아가 당황하여 ‘이 인사말이 대체 무슨 뜻일까’라고 생각한다.

그러자 천사가 다시 말한다. “두려워하지 말라. 마리아야, 너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 보아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는 위대하게 되고, 가장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 주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의 조상 다윗의 왕위를 주실 것이다. 그는 영원히 야곱의 집을 다스리고, 그의 나라는 무궁할 것이다.”

마리아는 천사에게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임신하여 아이를 잉태할 수 있습니까? 유대 율법에 의하면 결혼이 아닌 방법으로 임신한 사실이 발각되면 마을 한가운데에서 돌에 맞아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어느 여인도 이런 상황에서 침착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태어날 아기가 거룩한 분이고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말해도, 그 당시 종교의 입장에서 보면 황당하기 그지없는 요구다.

<누가복음> 저자는 이 당혹스러운 상황에서 마리아가 천사의 말을 겸손하게 수용했다고 전한다. “저는 주의 여종입니다. 천사님의 말씀대로 나에게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마리아의 입장에서 보면 ‘은혜를 입었다’는 천사의 말은 자신을 사회에서 추방당하게 만들고 심지어 죽음으로 내모는 저주일 수도 있다.

천사가 정말 강림했는지, 아니면 예수의 탄생에 관해 <누가복음> 저자가 꾸며낸 이야기인지 알 수는 없으나 마리아는 미천한 자신을 통해 일어날 신비를 노래한다. “내 마음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영혼이 내 구주 하나님을 높임은 주께서 이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예수를 인간이 아닌 ‘로고스’로 보았다. 태초에 ‘로고스’가 있어 세상을 창조했고 그 로고스가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 그가 바로 예수라고 해석하였다. 플라톤 철학에서 로고스나 이데아와 같은 원형은 저 너머 피안의 세계에만 존재하며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그 원형에 대한 그림자이거나 원형을 흉내 낸 것일 뿐이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자기 스승인 플라톤의 이런 철학을 버리고 피안의 원형이 이 세상 안에서 구현 가능하다는 철학을 주장한다. 그렇게 구현된 사상이 바로 로고스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바로 예수를 로고스로 여겼다. <요한복음> 저자는 예수가 로고스란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기적’이라는 주제를 사용한다.

예수가 자신이 로고스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왜 가나라는 지역의 한 혼인 잔치를 선택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유대전통과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메타포를 이용하여 깊은 의미를 찾아갈 수 있다. 혹자는 가나의 혼인잔치가 사도 요한의 결혼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초청되었기 때문이다.

요한의 어머니 살로메는 아마도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동생일 것이다. 이렇게 가정한다면 예수와 요한은 사촌간이다. 이 당시 유대의 혼인잔치는 일가친척들이 원근각지에서 모여 7일 동안 거행되는 가장 중요한 집안행사다. 신랑과 신부는 잔치 기간 내내 음식과 와인을 제공해야만 한다. 음식이나 와인이 떨어지는 것은 그 잔치를 벌이는 주인의 치명적인 실수로 간주됐다.

<요한복음>의 가나 혼인 잔치는 “사흘째 되는 날에”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이 구절은 축자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사흘’이란 숫자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깊이 관련되어 있다. 이 잔치는 사촌이자 제자인 요한의 결혼식이기 때문에 어머니 마리아와 모든 제자가 참석하였다.

<요한복음> 저자는 잔치에 대한 묘사를 모두 생략하고 바로 “포도주가 떨어졌다”라고 기록한다. 와인이 떨어지니 잔치에 참석한 손님들이 불평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사고는 마리아 집안에 큰 오명이 될 것이다. 요한의 어머니 살로메가 자신의 사촌언니인 마리아에게 찾아와 이 사실을 알린다.


<요한복음> 2장의 혼인잔치가 열린 가나(Cana)에서 서남쪽으로 큰 고개를 두 개 넘으면 접시처럼 큰 분지의 동네가 나타난다. 여기가 바로 예수가 태어나고 자라난 나사렛이다.
“여자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마리아는 포도주를 사러 종들을 시장으로 보내지 않고 예수에게 다가간다. <요한복음> 저자는 마리아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예수의 어머니’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얘야, 포도주가 떨어졌다”라고 말한다. 이 말의 의미를 축자적으로만 해석한다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잔칫집에 술이 떨어진 것과 예수가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포도주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얻어지는 성령, 신의 새로운 말씀을 의미한다.

그러자 예수가 대답한다. 그 대답이 다소 충격적이다. “여자여, 그것이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직도 나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누구라도 자신의 어머니를 다른 사람 앞에서 “여자여!”라고 부르지 못할 것이다. 1세기 그리스도교가 유대인과 로마제국에 의해 박해를 받은 이유가 바로 사회의 구심점인 가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아버지를 집에 있는 분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고 어머니를 ‘여인’으로 부르며 선행을 하는 자들을 ‘형제-자매’라고 불렀다. 이들이 사용하는 가족 용어들만을 본다면 이들은 가정 파괴범이다.

<요한복음> 저자는 “여자여!”라는 단어를 또 다른 곳에서 의미심장하게 사용하였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있을 때의 장면이다. <요한복음> 19장 25∼27절이다.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예수의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사람 마리아가 서 있었다. 예수께서는 자기 어머니를 보시고, 또 그 곁에 자기가 사랑하는 제자가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어머니에게 ‘여자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하고 말씀하시고, 그 다음에 제자에게는 ‘자,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로부터 그 제자는 그분을 자기 집으로 모셨다.”

예수는 이 절박한 상황에서 어머니를 다시 한 번 ‘여자여’라고 호칭한다. <요한복음>에서 예수와 마리아는 두 번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는데 이 두 장면에서 모두 어머니를 ‘여자’라고 부른다. 여기서 ‘여자’라는 의미는 구약성서 <창세기> 2장 23절에 등장하는 모든 인간의 어머니인 ‘이브’를 상징한다. 아담이 새로 창조된 여인을 ‘여자’라고 불렀다. 이 이야기에서 예수는 새로운 아담이 되며, 마리아는 새로운 ‘이브’가 된다.

예수는 “아직 나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이제 제자들과 새로운 깨달음을 가지고 시작하는 3년간의 공생애는 바로 이 ‘때’를 맞이하는 과정이다. 이 때는 일반적인 양적인 시간을 의미하는 ‘크로노스’가 아니라 신이 개입하여 순간이 영원이 되는 특별한 시간인 ‘카이로스’를 의미한다.

예수의 ‘카리스’를 위한 여정에 묵묵히 동행한 여인이 바로 마리아다. 마리아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고 예수의 시신을 받아 들고서야 가브리엘이 자신에게 말했던 ‘카리스’와 자신의 아들이 죽음으로 보여주려 했던 ‘카리스’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201409호 (2014.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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