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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 위대한 아티스트의 ‘아주 특별한 사소함 

성급한 영국인 맨 얼굴 드러낸 존 레논의 서간집… 치밀한 주석과 매끄러운 번역도 돋보여 


▎존 레논 레터스 / 헌터 데이비스 지음·김경주 옮김 / 북폴리오 | 2만6000원
존 레논은 죽었지만 살해범 마크 채프먼은 아직 살아 있다. 종신형을 선고받은 그는 올해 59세로 미국의 한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매 2년마다 가석방을 신청했지만 사법당국은 이를 불허했다. 올 8월 가석방 심의위원회가 채프먼에게 보낸 불허 사유서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석방되면 다시 법을 위반할 것으로 보인다. 희생자는 그날 당신에게 친절함을 보였다. 고인을 사랑했던 모든 사람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그렇다. 존 레논의 죽음은 그를 사랑했던 사람을 비탄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팬이 속출했고, 사상 유례 없는 규모의 추모 기도회가 열렸다. 사이가 극도로 나빴던 폴 메카트니도 그의 죽음에 대해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존 레논이야말로 나의 유일한 음악적 파트너였다”고 그는 고백했다.

존은 음악 활동 외에도 시집을 발간하는 등 문학에도 심취했다. 노랫말에서 시의 품격과 언어의 높은 질감이 느껴지는 이유일 것이다. 성격은 괴팍했고, 그만큼 이념에도 충실했다. 기질적으로 전쟁을 혐오했다. 1965년 엘리자베스 여왕이 대영제국 훈장을 수여하려 했으나, 이를 거부했다. 레코드·악보출판 등의 매출이 영국의 수출액을 높이는 데 기여한 공로의 포상일 뿐, 음악을 기리는 상찬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가치판단에 엄격한 철학자의 단면, 까칠한 아티스트의 기질이 잘 드러난 삽화다.

생전에 남긴 편지는 음악 사상의 뒤안이며, 구체적인 인간 의 맨 얼굴이다. 비틀스 전기작가 헌터 데이비스가 친척과 친구, 팬과 애인, 심지어 세탁소 주인 앞으로 쓴 편지와 엽서 300여 점을 추적해 모은 결과물이다. 친척과 절친한 친구, 그리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수집가가 이 프로젝트에 적극 협조했다. 아내이자 저작권 소유자인 오노 요코도 이 책에 아낌없는 정성을 쏟았다는 후문이다.

음악계를 떠나 오노 요코와 사실상 은둔생활을 하던 1979년, 존은 세탁소 주인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오노 요코는 땀을 흘리지 않아요. 새로 산 제 하얀 셔츠가 누렇게 변했는데 해명해보시죠. 존 레논.”

존은 세탁소에서 보낸 오노 요코의 셔츠가 망가졌고 자신의 흰 셔츠가 더러워진 데 대해 분개했다. 집안일을 해주는 프레드라는 젊은이에게 항의를 부탁했으나 제대로 처리되지 않자 직접 세탁소에 편지를 보낸 것이다. 치밀한 주석도 곁들였다. 편지의 사연을 하나하나 소개하고, 편지가 쓰일 당시 존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내용과 맥락의 편지인지를 설명했다. 어떤 편지는 온화하고, 유쾌하지만 어떤 편지는 분노와 격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쓰였다.

편지나 메모 내용의 9할은 고뇌하는 시인이나 천재 음악가로서의 존이 아닌, 유치하고 성질 급한 평범한 영국 사람 존의 것이다. 미친 사람처럼 ‘사랑해’를 26번이나 쓰고, 말미에 키스를 뜻하는 ‘X’를 편집증적으로 여러 차례 그려 넣기도 했다. 18세에 막 사귀기 시작한 여자친구 신시아 파월에게 보낸 크리스마스카드에서다. 그럴 땐 ‘러브 미 두’나 ‘쉬 러브스 유’를 틀어놓고 책장을 뒤적이는 것도 좋겠다. 언어 조탁의 달인 김경주 시인의 뛰어난 번역 솜씨로 더 돋보이는 책이 되었다.

201411호 (2014.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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