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생활

Home>월간중앙>문화. 생활

장석주의 ‘日常반추’ - 음식이 삶에 주는 저 무상(無常)의 기쁨 

인류는 맛에 탐닉하고 열량 높은 음식을 섭취하면서 놀라운 약진 이뤄… 요리는 심오함으로 가득 찬 철학이고 영감으로 충만한 예술이다 

장석주 전업작가
한상에서 밥을 먹고 음식을 나누는 일은 단순히 끼니를 때우는 의미를 넘어선다. 그것은 살아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잘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지는 숭고한 의식이다. 잘 사는 삶을 위해 혼자 밥을 먹는 것을 멈춰라. 잘 사는 삶을 위해 무리와 함께 밥을 먹어라!


겨우내 묵은 김치를 먹었더니, 입춘 무렵이면 묵은 것에 배인 소금기에 혀가 진저리를 친다. 추위로 움츠린 몸에 양의 기운이 차오르는 봄과 함께 기지개를 켤 때 몸은 생기를 되찾으려고 신선한 것을 갈망한다. 몸에 활기를 더하려는 본능이 미각을 예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생각난 김에 잡곡밥을 지어 햇것으로 만든 반찬과 함께 조촐하게 저녁 한끼를 때우려고 망원시장을 다녀왔다. 재래시장에서 사온 봄동을 씻어 된장 한 숟가락을 넣고 조물조물 무친다. 거기에 무생채를 만들고 제주도에서 올라온 고등어 한 손을 구워 상차림을 했다. 봄동은 아삭거리며 입안을 개운하게 만들고, 무생채는 어찌나 상큼한지 사라졌던 입맛이 확 돌아온다.

모란과 작약이 난만하게 활짝 핀 봄날 슴슴한 묵밥 생각에 혀뿌리 아래 침이 괴고,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여름 저녁 전골요리는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날이 쌀쌀해지고 싸락눈이 창호지 바른 문을 때릴 무렵 뜨거운 두부탕수 생각이 간절해진다. 어디 그뿐인가? 이른 봄 목포에서 먹은 코를 톡 쏘는 흑산도 홍어앳국, 단오 무렵 통영의 민어 완자, 이마에 닿는 햇빛이 촛농처럼 뜨거운 여름 한낮 어머니가 콩을 갈아 만들어준 콩국수, 햇살이 엷어진 초가을 새우젓으로 간을 맞춘 호박젓국, 입동 뒤 먹는 새로 띄운 청국장, 김장을 담글 때 겉절이와 생굴을 곁들인 돼지고기 수육, 놋그릇에 담긴 동지 팥죽도 원기를 돋우고 살맛 나게 하는 음식이다.

※ 해당 기사는 유료콘텐트로 [ 온라인 유료회원 ] 서비스를 통해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201503호 (2015.02.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