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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의 ‘생명예찬’③ - 은빛 비 내리는 들판의 경이 - 정보의 처리가 생명의 본질이다 

생명은 여리고도 강인한 것… 작은 충격에도 상하지만, 거듭된 좌절을 딛고도 일어선다 

복거일
막 숨을 거둔 사람의 몸은 살아있을 때와 별 차이가 없다. 분명히 달라진 것은 정보 처리가 멈췄다는 사실이다. 말라버린 풀이나 나무도 마찬가지다. 정보 처리가 멈춘 순간, 생명이 깃들었던 몸은, 나무든 짐승이든, 무생물이 된다.
“우수 경칩이면, 대동강 물도 풀린다.” 어릴 적 추위가 좀 누그러지면 어른들은 그렇게 말하곤 했다. 또 하나의 겨울을 견뎌냈다는 자부심 어린 목소리로. 대동강은 그만두고라도, 군 복무를 한 장정들 말고는 한강 구경한 사람도 드물었던 1950년대 초엽 충청도 칠갑산 자락 작은 마을의 얘기다. 그만큼 그때는 절기에 대한 관심이 컸다. 삶이 자연과 밀착되었고 모두 농사를 지었으니, 절기와 날씨에 마음 쓰는 것이 당연했다. 추위와 양식 부족으로 겨울을 나기가 워낙 힘들었으므로, 날씨 풀리고 나물 돋는 봄이, 요즈음 젊은이들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간절히 기다려졌다.

높은 건물과 포장된 도로로 자연이 지워져버린 도시에서 살다 보면, 철이 바뀌는 것을 느끼기 어렵다. 모두 온상에서 키워서, 채소와 과일도 이제는 철이 없어졌다. 삶은 물론 크게 안락해졌지만, 가끔 무엇을 놓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둘러보면, 그래도 봄 기운이 느껴지고 모두 바쁘다. 땅속에선 씨가 싹트고, 가지가 좀 파릇해진 나무는 물을 올린다. 사람의 낯빛과 움직임도 활기차다. 간밤에 내린 비로 산비탈 응달의 얼음도 녹았을 터이다.

은빛 비 내릴 때/ 땅은 새 삶을 다시 밀어 올리고,/ 파란 풀들은 자라고 꽃들 고개를 쳐들고,/ 온 들판 위에/ 경이가 퍼진다/ 삶의,/ 삶의,/ 삶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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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호 (2015.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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