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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이슈] KTX가 열어젖힌 포항시의 꿈 - ‘산업의 요람’ ‘관광 날개’까지 달았다 

KTX 타고 서울까지 2시간 ‘반나절 생활권’ 접어들어 동해안시대 메카 꿈꿔… 통일시대 대비한 유라시아 철도망 전초기지 역할도 기대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사진 오상민 기자

▎4월 2일 정식 개통한 KTX 동해선은 포항을 서울과 두 시간 대에 연결하는 ‘반나절 생활권’으로 편입시켰다. 포항시는 KTX 신역사(사진)를 중심으로 새로운 변화를 준비 중이다.
경상북도 포항시의 철강공단에서 근무하는 김태현 과장은 본사가 있는 서울로 출장이 잦은 편이다. 초임 시절엔 그 일이 기다려지곤 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에게 서울 출장은 피곤한 업무가 돼버렸다.

서울 본사에서 오후 1시에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려면 이른 새벽부터 출발을 서둘러야 한다. 버스를 타고 1시간쯤 달려 신경주역으로 가서 KTX로 갈아타고 2시간을 더 가야 하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서울역에 내려 지하철을 타고 본사에 도착하면 4시간이 훌쩍 넘는다. 2시간 정도 회의를 마친 뒤 간단한 업무를 보고 내려오면 늦은 밤에야 포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니면 아예 서울에서 하룻밤을 자고 새벽 열차를 타고 내려오는 걸 택해야 했다. 그러니 한 번 출장을 다녀오면 몸이 녹초가 되기 일쑤다.

하지만 올 4월부터 김 과장의 이런 고민이 사라졌다. 포항과 서울을 오가는 KTX 운행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포항에서 KTX를 타면 2시간 10분여 만에 서울역에 도착한다. 오가는 데 드는 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든 셈이다. 덕분에 몸과 마음의 부담이 한결 줄어들었다.

지난 4월 2일 KTX 서울-포항 노선(KTX 동해선)이 개통되면서 포항의 생활지도가 바뀐다. 2007년 포항시가 KTX 노선 유치를 추진한 지 8년 만이다. KTX 동해선은 사업비 1조2126억원이 투입돼 2009년에 착공했다. 경부고속철도에서 동대구역을 지나 신경주역 직전에 신포항역으로 연결된다. 주중에는 상·하행 합쳐서 하루 16회, 주말에는 20회 운행하는데 그중 2회는 인천공항까지 왕복 운행한다.

그동안 포항은 서울에서 새마을호로 5시간 20분이 걸리는 먼 지방도시였다. KTX를 이용해도 인근 신경주역이나 동대구역에서 시외버스로 갈아타면 4시간 넘게 걸려 당일 왕복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나 동해선 개통으로 서울까지 2시간대 생활권에 편입이 된 것이다. 서울역에서 포항까지는 최단 2시간 15분, 평균 2시간 32분이 걸린다. 서울역을 출발해 2시간만 달리면 동해안 호미곶에서 일출을 보고 죽도시장에서 싱싱한 해산물로 점심을 먹고 서울로 돌아가도 하루 일정이면 너끈한 시대가 열린 것이다.

KTX 타고 온 관광객들로 죽도시장 ‘들썩’


▎KTX 개통 첫날인 4월 2일 서울에서 출발한 KTX 열차가 포항역에 들어서고 있다.
KTX 동해선은 단숨에 많은 여행객을 포항으로 불러들였다. 4월 8일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포항을 찾아갔다. 평일 오전인데도 열차는 만석이었다. 서울을 출발한지 2시간 20분 만에 포항역에 도착했다. 업무상 출장을 나온 듯 서류가방을 든 회사원, 알록달록한 가벼운 옷차림의 나들이객 등이 뒤섞여 열차에서 줄이어 내렸다.

포항역 주변은 아직 시가지 형성이 안 돼 황량하다. 포항시는 역 주변에 205만414㎡ 크기의 택지개발지구 3곳(이인·초곡·성곡지구)을 개발 중이다. 주거기능과 상업·업무·숙박 기능이 복합된 역세권 신도시가 들어서게 된다. 주요 지역과 접근성은 좋은 편이다. 시청까지는 8.6㎞로, 지난해 새로 뚫린 영일만대로를 이용하면 승용차로 12분 거리에 불과하다. 또 포항의 관광 명소인 죽도시장까지도 15분이면 닿는다.

역 앞에서 택시를 타고 죽도시장으로 향했다. 마침 점심시간이어서 시장은 상인과 관광객들로 활기찬 모습이었다. 상점 앞 수조에는 몸통이 어른 손바닥보다 큰 대게가 그득했다. 도로 한쪽에 길게 늘어선 관광버스 10여 대에서 관광객들이 쏟아져 나왔다. 서울에서 식당을 한다는 한 50대 여성은 “대게를 직거래할 업소를 찾으려고 아침 기차를 타고 직접 내려왔다”며 “KTX가 개통된 덕분에 직접 와보고 거래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잠시 시장을 둘러보는 동안에도 관광버스가 쉴 새 없이 오가며 관광객을 실어 날랐다.

상인들의 얼굴은 싱글벙글하다. 곳곳에 나붙은 현수막에는 ‘KTX 개통 기념 할인 행사에 상인들의 동참을 바란다’는 독려문구가 붙어 있다. KTX 승차권을 보여주면 시장 내 업소와 식당에서 가격할인을 받을 수 있다. 회센터 안에 있는 한 횟집에 들어갔다. 오는 동안 택시기사가 추천해준 곳이다. 택시기사는 “죽도시장에 가면 어느 집을 가도 다 신선하고 양도 많다”며 자신이 자주 찾는다는 한 식당을 추천했다. 포항의 별미로 유명한 물회와 막회를 주문하자 멍게, 해삼을 비롯해 푸짐한 상이 차려졌다. 양은 물론 맛도 훌륭했다. 가격도 저렴했다. 식당 주인은 “KTX가 개통된 뒤부터 손님이 1.5배쯤 늘었다. 그중 대부분은 서울이나 대전 등 내륙 쪽에서 오신 분들”이라고 전했다.

KTX 이용객은 코레일의 예상치를 훨씬 넘어섰다. 코레일이 4월 2일부터 7일까지 6일간 KTX 동해선 이용객 수를 집계한 결과 상·하행선 총 승객 수가 2만6888명에 이르렀다. 1일 평균 4481명이 KTX를 이용해 서울과 포항을 오간 것이다. 코레일 철도연구원이 당초 수요 예측조사에서 1일 평균 3천 명 미만으로 예측했던 것보다 1.5배가 많은 수치다.

‘산업화 요람’ 주춧돌 포항 철도 100년


▎1. 포항 죽도시장은 대게철로 북적댄다. KTX가 개통된 뒤 시장을 찾는 관광객이 크게 늘어 상인들은 싱글벙글한다. / 2. 지난해 7월부터 운행을 시작한 포항운하 유람선은 영일만과 포스코의 야경을 즐길 수 있어 인기다.
KTX 시대가 열린 건 포항에 기차가 들어온 지 꼭 100년 만의 일이다. KTX가 개통되기 하루 전인 4월 1일에는 새마을호와 무궁화열차가 마지막 운행을 마쳤다. 포항역은 포항의 역사뿐만 아니라 한국의 현대사, 산업화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해왔다. 1914년 간이역으로 출발한 포항역은 1918년부터 협궤열차가 다니는 보통역으로 정식 영업을 시작했다. 1935년에는 부산과 울산까지 연결되는 동해남부선이 개통된 데 이어 1945년 7월 해방 직전 표준궤로 개량되면서 대흥동에 있는 지금의 포항역이 준공됐다. 그러나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용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당시 포항시 인구는 5만 명에 불과했다.

포항역이 한국 현대사의 중심무대 중 하나로 떠오른 건 1960년대부터다. 1965년 7월 베트남 정부의 요청에 따라 파병을 결정하면서 포항역은 월남 파병의 출발지가 됐다. 파월 부대인 청룡부대원들은 포항의 해병대 1사단으로 집결해 훈련을 받은 뒤 포항역에서 열차를 타고 부산항으로 떠났다. 1965년 10월 2일 새벽 청룡부대 1진을 태운 것을 시작으로 6년여 동안 파월 장병들의 애환이 포항역에 덧칠해졌다.

포항역은 1969년부터 두 번째 임무의 전초기지로 자리매김했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포항 영일만에 제철소를 짓기로 결정하면서부터다. 1973년 첫 쇳물을 뽑아내면서부터 포항은 한국 산업의 요람이 됐고, ‘산업역군’들의 발이 됐다. 1975년 7월에는 포항제철소 안의 제철역에서 포항역, 효자역을 하루 10회 오가는 통근열차가 신설됐다. 1992년에 신설된 포항-서울간 새마을호의 운행거리는 지구 13바퀴를 돌고도 남는 520만㎞에 달한다. 그 새마을호의 자리를 KTX가 이어받았다.

KTX 개통은 포항의 새로운 미래를 예고한다. 방점은 ‘관광’과 ‘통일’에 찍혀 있다. 김영철 포항시 국제협력관광과장은 “KTX 개통으로 자연과 역사, 문화, 산업시설과 같은 지역 자원을 활용한 관광산업의 활성화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포항시는 민간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정책적·제도적 지원을 강화하고 나섰다. 지난 2010년에 시행된 ‘역세권 개발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을 통해 용적률과 건폐율 제한이 완화돼 제도적 지원체계는 어느 정도 마련된 상태다. 포항시는 KTX역사와 복합환승센터 개발에 더해 지자체에 의한 나머지 역세권 개발이 연계되도록 하는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 중이다.

포항테크노파크가 실시한 ‘KTX 포항역 및 철도 인프라 개선에 따른 포항지역 파급효과’ 분석 결과에 따르면 포항지역 내 철도 인프라 개선사업으로 인한 경제적인 파급효과는 1조175억원(건설사업 9506억원, 향후 5년간 운영사업 669억원)에 달한다. KTX를 이용한 수도권 주민들의 동해안 지역 당일관광이 가능하게 된 것은 물론 울릉도, 독도를 연계한 해양관광이 활성화될 전망이다.

산업에 관광 더해진 ‘포항형 창조경제’ 시도


▎포항의 해병 1사단에서 훈련을 마친 파월 장병들이 포항역에서 부산항으로 향하는 열차에 오르고 있다. 포항역은 1960년대부터 우리나라의 현대사와 산업화의 중심에 있었다.
동해선이 가져온 속도 혁명은 포항에만 머물지 않는다. 포항을 중심으로 동해권역으로 확산된다. 2018년, 경북 영덕과 강원도 삼척을 연결하는 동해선 철도 건설사업이 완공되면 포항에서 동해중부선·동해북부선이 연결돼 북한을 통해 중국·러시아·유럽에 이르는 유라시아 철도망의 초석이 다져지게 된다. 동해남부선 복선전철과 영일만항 인입선, 중앙선 복선전철 등 5대 철도사업과 차례로 연계되고, 포항-울산간 고속도로를 시작으로 한 동해안 고속도로와 향후 울릉공항 등과도 이어지게 되면 포항을 중심으로 한 동해권역은 더 이상 교통의 오지가 아닌 사통팔달(四通八達)의 교통허브가 될 전망이다. 특히 포항이 서울과 대구, 부산은 물론 동해안, 경북 내륙 등의 접근성이 크게 개선되면서 다양한 산업과 문화의 시너지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

관광에만 주력하는 것은 아니다. 그 동안 다져온 산업인프라를 활용해 작지만 내실 있는 강소기업 육성을 또 하나의 목표로 정했다. 포항은 제조와 연구 분야 인프라가 다른 어느 지역보다 풍부하다. 세계적인 철강기업으로 발돋움한 포스코가 있고 연구중심대학인 포스텍(포항공대)과 산업과학연구원(RIST)이 있다. 이곳의 첨단과학연구소들에서 연구하는 석·박사급 고급 인력만 3500여 명에 이른다.

포항시는 지난해 9월 ‘창조도시 건설 로드맵’을 정해 첨단과학 인프라를 활용한 ‘강소기업 성장’ 촉진을 통한 창조도시 구축을 지역 산업의 청사진으로 제시했다. 이를 위해 ‘강소기업 육성’, ‘물류산업 육성’, ‘해양관광산업 육성’, ‘행복기반 조성’ 등 4대 전략을 내세웠다. 그중 강소기업 육성을 위해 올해 말까지 세계에서 셋째 규모인 제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완공하고, 고출력레이저 상용화기반을 구축할 계획이다. 또 차세대 신기술로 주목받고 있는 3D프린팅 지원센터를 구축하고 나노융합기술개발과 인력을 양성하는 데에 1556억원을 투입한다.

이 밖에 2020년까지 1300억원을 들여 국민안전 로봇 프로젝트를 추진해 로봇 관련 산업과 벤처기업을 유치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 1월에는 창업활성화와 강소기업 육성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게 될 포항창조경제혁신센터를 열었다. 관(官) 주도가 아니라 민간기업(포스코)이 자발적으로 지역경제와 국가경제에 이바지할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만든 국내 첫 사례다. 센터를 중심으로 포스코와 포스텍, 상공회의소 등을 아우르는 산·학·연·관의 협력체계를 구축한다. 에너지와 소재, 환경, 스마트 팩토리, ICT관련 분야의 예비창업자와 신생기업들의 사업화를 지원한다. 포항시는 이를 ‘제2의 영일만 기적’이라 부른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선진국들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해서 포항만의 모델을 만들어나간다면 사람과 기업이 몰려오는 새로운 국가경제의 견인차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글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 사진 오상민 기자

201505호 (2015.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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