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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혜련의 인생 이모작] ‘봉사의 달인’이 된 유장근 전 LG그룹 부사장 

“인생 후반전의 키워드요? 바로 ‘사랑’이었죠 

최재필 월간중앙 기자 글 고혜련 월간중앙 기획위원, 제이커뮤니케이션 대표 / 사진 오상민 기자
퇴직 후 아내와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얻은 깨달음… 호스피스·미술 해설가·중국어 강사로 봉사하며 새로운 인생 경작

▎분홍색 봉사자 가운을 입은 유장근 씨가 강남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고통완화치료를 받고 있는 한 여성 환자와 대화를 하고 있다.
“일단 퇴직을 하면 허전하고 우울함에 빠지게 돼요.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니 나답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기도 하죠. 매순간을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바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환자의 몸을 씻기고 발을 주무르는 활동을 교대로 맡아서 하는 봉사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봉사일정에 대해 의논하고 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라는 전염병이 전 국민을 긴장시키고 있던 7월초, 서울 강남성모병원의 호스피스 병동에서 만난 그는 주 1회씩 말기암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 퇴직 후 4년째 해오는 일이다. 공포감 때문인지 병원은 눈에 띄게 한산해 보인다. 일반인들은 병원 가까이에 가는 것조차 꺼리는데도 그는 별로 개의치 않는 듯한 표정이다. 마치 간호사처럼 가운을 입고 익숙하게 병동 이곳저곳을 오가는 그의 몸놀림이 가벼워 보였다. 세월의 연륜이 묻어나는 나이지만 넘치는 활력과 긴장감이 그를 보다 젊어 보이게 만들었다.

갑작스런 퇴직, 봉사활동으로 마음 다잡아


▎인생 후반전의 뜻 깊은 삶을 위해 마음을 다잡고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나섰던 유장근·이윤순 씨 부부가 여행 도중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서 다정한 모습으로 포즈를 취했다.
“퇴직 후 한동안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지나온 삶에 대해 감사하면서 앞으로 누군가에게 보답하는 길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았죠. 결국 남에게 도움을 주고 사회에 기여하는 삶을 사는 것으로 정리가 되더군요.” 그가 호스피스 활동을 결심한 배경이다. 오랜 고민 끝에 타인에게 봉사하는 것을 인생2막의 목표로 삼은 그는 LG그룹 영업 총괄 부사장을 지낸 유장근(61) 씨다. 대학(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후 25세에 입사해 2009년 말까지 30년을 근무했으니 청장년의 세월을 거기에 묻은 셈이다.

하지만 현재의 활동을 봉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병동에서 죽음을 앞둔 이들을 보며 앞으로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맞아야 할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어서 오히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르침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죽음을 앞둔 환자들을 돌보는 시간들은 은총입니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쁨이요, 소중한 가치임을 깨닫게 해주거든요.”

그의 생활은 호스피스 활동이 전부는 아니다. 자신의 재능을 살릴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간다. 일주일 중 하루는 미술관에서 관람객들을 위해 전시 작품을 설명하고 안내하는 도슨트(Docent) 활동도 하며, 또 하루는 중국어 강의를 하는 ‘선생님’으로 변신한다. 모두 급여가 없는 순수 자원봉사 활동이다.

하루하루를 쪼개 세 가지 일을 병행하고 있지만 여기서 그칠 것 같지 않다. 또 다른 기회를 얻기 위해 공부를 계속한다. 그가 앞으로 새로 시작할 일은 경제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자립을 돕는 재무설계사 역할이다. 평생을 회사에서 재무관련 전문가로 일했지만 보다 충실한 도움을 주고자 시간을 쪼개 학원 강의를 듣고 있다.

유씨는 2009년 말, 55세의 나이에 인생의 절반 이상을 몸담았던 회사를 떠났다. 남들처럼 퇴직할 나이가 가까워지는데도 자신만은 예외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갑작스레 회사측으로부터 퇴사 통보를 받았다. 적지 않은 충격이었단다. 한동안 딴 직장을 구하기 위해 헤드헌팅 업체의 문을 두드려보았다. 한편으론 다른 퇴직자들처럼 헬스클럽과 골프장을 전전하며 백수의 한가함과 무기력감도 함께 맛보기도 했다.

처음에는 체력도 연마하고 책도 열심히 보면서 ‘이제부터 나답게 살아보자’는 각오를 다졌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결심도 흐릿해져 무의미하게 시간을 탕진하며 백수생활에 길들여진 자신을 보면서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 스스로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는가?’ 하는 회의감이 밀려왔다. 그런 그를 곁에서 지켜보던 아내가 조심스레 제안을 해왔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아내 이윤순(55) 씨는 “스페인 북부 산티아고 여행을 다녀오는 게 어떻느냐”고 말했다. 한 달여 동안 800여㎞를 걷는 성지순례였다. 처음엔 “뭐? 800㎞를 걸어? 미쳤어?”라며 정색을 했다. 아내의 제안은 고려할 여지도 없이 그냥 묻혀버리고 말았다.

800㎞ 순례여행에서 얻은 깨달음


▎성모병원 내 다른 병동에서 각각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유씨 부부가 성모병원 내 마리아상 앞에서 잠시 만났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왔다. 회사를 그만둔 뒤 아내의 권유로 세례를 받기도 했던 유씨는 어느날 성당에서 진행하는 피정(천주교에서 세속을 피해 고요한 곳에서 자신을 되돌아보며 기도시간을 갖는 행사)에 참가했다가 번쩍 새로운 생각에 빠졌다. 그 자리에서 그는 오랫동안 고집했던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계기를 얻게 됐다는 것이다. “나란 존재에 대해 오랜만에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됐는데 매우 혼란스러웠죠. 믿음이 약한 신앙인으로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의미 있는 시간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아내의 산티아고 여행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 거죠. 제게 남은 제2의 삶을 어떻게든 새롭고, 다르게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인터뷰 중 옆에서 조용히 미소를 짓고 있던 유씨의 아내 이씨가 말을 거들었다. “남편은 일단 하지 않겠다고 말하면 그것을 한번도 뒤집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그런 그와 산티아고 순례여행을 함께 하리라곤 생각지 못했는데 정말 기뻤습니다. 남편의 바쁜 직장생활로 인해 늘 따로따로 시간을 보내야 했었는데 남편이나 저나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됐으니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지요.” 이씨는 당시의 감격에 다시 젖은 듯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이들은 순례여행을 위해 곧바로 체력단련에 들어갔단다. 800㎞가 넘는 카미노(산티아고 순례길)를 한 달여 동안 걷는다는 것은 어지간한 체력으로는 엄두도 내지 못할 대장정이었다. 10㎏이 넘는 등짐을 지고 하루 평균 30㎞에 가까운 길을 매일 걸어야 한다. 먹을 음식도, 잠자리도 서울에서의 안락한 생활과 동떨어진 ‘고행길’이어서 두 사람은 기대 반 두려움 반의 심정으로 치밀한 준비를 해야 했다. 떠나기 전 3개월 동안 실내 스포츠센터에서 10㎞씩 러닝머신을 이용해 걸었고, 매주 한차례씩 무거운 배낭을 메고 북한산 둘레길을 20㎞ 이상 걸으며 ‘실전훈련’에 돌입했다.

한겨울 내내 이어진 고된 훈련 과정이었다. 유씨 부부는 2011년 3월말 드디어 순례길에 올라 33일만인 5월 2일 무사히 일정을 마치고 돌아왔다. 카미노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야고보 성인이 이곳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예루살렘에 돌아가 순교한 후 우여곡절 끝에 그 유해가 이곳 성당에 모셔진 것을 기리기 위해 생긴 순례길이다. 예루살렘, 로마와 함께 가톨릭 3대 순례길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물집이 잡혀 아픈 발과 무거운 짐을 이끌고 땀에 절어 걷고 또 걷는 ‘고난의 행군’을 하는 동안 그는 매일 자신에게 숱한 질문을 던졌다. 부부가 함께 걸으며 생각하기로 한 주제는 ‘사랑’이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사랑, 부부사랑 등등. 한 달 후 귀국할 때 두 사람은 나름대로 해답을 얻었다. “서울에서의 안락했던 일상을 그곳에서 버리고 왔어요. 대신에 일상의 평범한 것들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고 그것으로 저를 채울 수 있게 됐습니다.” 카미노의 길 위에서 전혀 다른 일상을 겪고 많은 사람을 만나 얘기하면서 그는 가톨릭 신자로서 부끄럽지 않게 사랑을 실천하자는 데 마음이 모아졌다고 했다.

“사랑의 출발점은 상대방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며 사랑은 자기를 낮추는 겸손함으로 표현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어요.” 유씨는 “사랑의 행동은 자기를 희생함으로써 나타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하면서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자신과 일생을 함께해온 아내와 가족, 이웃의 사랑을 상기하면서 “사랑은 행동할 때에 의미가 있음을 뒤늦게나마 깨닫게 되자 남은 삶의 방향이 보다 또렷해졌다”고 말했다.

봉사 위해 호스피스·미술·중국어 공부 매진


▎서울대 미술관에서 도슨트 봉사를 하면서 미술에 대해 새롭게 눈떴다는 유씨가 관람객들에게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의 뜨거운 감동을 책(<산티아고길의 소울메이트>, 가톨릭출판사, 2012)으로 엮었다. 평생 제대로 글을 써본 적이 없어서 그 자신의 저서를 펴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여정 동안 순례길 위에서 틈틈이 메모해둔 글과 아내가 찍은 사진을 정리해서 만든 책이다. 새롭게 거듭 나려는 부부의 간절함이 곳곳에 담겨 있어서인지 서점에서 책은 제법 팔려나가 3쇄까지 찍는 ‘영광’을 누렸다. 그는 “남을 감동시킬 수 있는 글재주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매우 기뻤다”고 했다.

유씨는 순례에서 얻은 깨달음을 책으로 낸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행동으로 옮겨나간다. 처음에는 영어회화 능력을 살려 외국인 환자를 위한 통역을 맡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성이 안찼다. 더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옆에 있고 싶었다. 그래서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해 죽음을 기다리는 말기암 환자들을 돌보기 위한 호스피스 교육을 받았다. 병원에 봉사 신청서를 접수하고 면접 등 자격심사를 거친 뒤 강남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 배치됐다. 이미 10년째 다른 병동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아내가 도움을 주었다.

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는 현재 23명의 말기암 환자가 입원 중이다. 그가 호스피스 활동을 해온 4년간 많은 사람이 유명을 달리했다. 그는 일주일에 하루씩 묵묵히, 때로는 크게 슬퍼하며 죽음의 공포와 힘겹게 싸우고 있는 환자들과 그 가족에게 필요한 일을 돕는다. 유씨가 주로 하는 일은 환자를 목욕시키거나 발마사지를 해주는 일. 또 죽음을 앞둔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환자나 가족을 다방면으로 돌보는 일이다.

“처음에는 환자나 그 가족과 얘기를 나누면서 어떻게 그들을 편안히 해드릴까 생각하니 매우 조심스럽고 어려웠어요. 하지만 온 마음과 정성을 행동에 담으면 감사하게도 그것이 곧 전달된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래서 그는 한 순간도 헛되이 보내지 않겠다는 생각에 잰걸음으로 종일 분주한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이 모두가 제 아내 덕분입니다. 평생 직장밖에 몰랐던 저를 말없이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준 아내가 있었기에 제대로 방향을 잡을 수 있게 된 겁니다.” 그는 앞으로 점차 더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아 이 병동 환자들의 마지막 길을 따뜻하게 배웅하리라고 다짐했다.

유씨가 일주일 중 다른 날에 하는 봉사활동은 호스피스와는 전혀 다른 일이다. 서울대학교 미술관에서 열리는 각종 전시회의 작품과 작가에 대해 관람객들에게 설명하고 안내하는 도슨트의 역할을 한다. 회사에서 재무와 영업 쪽에만 집중했던 그에게는 전혀 다른 도전이기도 했다. 당초 미술분야에는 문외한이었던 그가 도슨트 활동에 나서게 된 건 서울시 산하의 한 복지센터에서 마련한 도슨트 과정을 수강한 것이 계기가 됐다. 60시간 강의를 듣고 난 후 자신에게 이런 문화적 소양과 흥미가 숨어있다는 걸 발견하고는 스스로 놀랐단다. 이후 미술 관련 강의를 찾아다니며 미술사와 미술작품을 공부했다. 일반 회화에서 설치미술에 이르기까지 공부할 거리가 무궁무진해 하루하루가 설렘의 연속이었다. 지난 15개월 동안 각종 기획전시 작품이나 작가에 대해 철저히 사전공부하고 정확하게 전달해 요즘 그는 “관람객이나 주최측으로부터 실력 있고 재미있는 도슨트라는 칭찬을 듣는다”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갖가지 미술 작품이 이토록 다양한 인간사와 역사를 품고 있는지 예전엔 전혀 몰랐어요. 그런 재미를 발굴해 관람객들에게 들려줌으로써 안목을 넓혀줄 수 있으니 얼마나 즐거운 일입니까? 아직 개발되지 않은 능력이 저를 포함한 누구에게나 숨어 있다고 생각하면 하루가 아깝고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그런 자질들을 밖으로 끌어내 정말 나다운 삶을 풀어나가고 싶어요.” 유씨는 마치 전시장에서 관람객에게 작품을 해설하듯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봉사하며 스스로 더 큰 깨달음 얻어


▎서울 중림동 복지관에서 중국어 시니어기초반 학생들을 가르치는 유장근 씨. 꾸준한 노력 끝에 중국어 공부를 시작한 지 2년여 만에 학생에서 선생님으로 변신할 정도로 실력이 크게 늘었다.
그의 변신은 예서 그치지 않는다. 요즘은 인기 강의 목록 중 하나인 중국어를 서울 중림동 복지관에서 무료로 가르치는 강사선생님으로도 활약하기 때문이다. 중국어 역시 그 전에는 전혀 할 줄 몰랐다. 퇴직 후 공부를 시작해 불과 2∼3년 만에 학생에서 선생님으로 변신했으니 그의 노력과 끈기, 집념이 얼마나 강한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

중국어 평가시험 5급을 따낸 그는 현재 기초반 시니어 학생들을 가르친다. 어차피 늦게 시작한 중국어 공부라 ‘그만하면 됐지’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어르신 수강생들이 다음 단계도 맡아서 가르쳐달라고 해 고급반 공부에 박차를 가하게 됐다고 했다. 조만간 최고급 단계인 6급에 도전해 중·고급반 학생들을 맡아 가르칠 예정이란다. 그는 서울인생이모작센터가 주관하는 ‘세상을 바꾸는 시니어 강연’에 연사로 서기도 했고 KDB 시니어브리지센터에서 공모한 사회공헌활동수기에 응모해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서 제가 참 운 좋게 잘 살아왔음에 감사하게 됩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 위기도 많았는데 잘 견뎌내 대과 없이 이 나이에 이르렀으니 두루두루 고마울 뿐입니다.” 그는 여러 차례 아내에 대한 사랑과 감사를 나타냈다. 인생 후반전을 큰 갈등 없이 가치 있게 펼쳐나가는 데 기여한 아내의 숨은 역할이 컸다는 것이다.

“퇴직 후의 삶은 그 무료함과 허탈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려 있고, 그에 따라 제2 인생의 가치가 달라진다고 봅니다. 만약 기회가 주어진다면 직장생활을 더 하고 싶습니다. 직장생활로 돈을 벌기도 하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역량을 사회에 공헌하는 데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죠.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저는 자신 있습니다. 퇴직 이후 지금까지 살아온 방법대로 앞으로도 살아간다면, 그 삶은 남에게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저 자신에게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정말로 멋진 삶일 것이라는 걸 믿기 때문입니다.”

치열하게 경작하는 그의 이모작 농사가 풍성한 수확을 얻게 되리라 기대한다.

고혜련 - 칼럼니스트. 이화여대에서 국문학, 미국 뉴저지주립대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했다. 중앙일보 기자를 거쳐 파이낸셜뉴스 문화부장과 런던특파원을 지냈다. 저서로 <신문, 취재와 기사작성> <자연에 산다> <매스커뮤니케이션개론> 등이 있다. 홍보 및 콘텐트 기획사 ‘제이커뮤니케이션’과 블로그(www.우리들이사는법.com)를 운영하고 있다.

201508호 (2015.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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