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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포커스] 이 정도 고생쯤이야! ‘극한 아르바이트’의 세계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면 되죠” 

사진 주기중, 전민규 기자 jeonmk@joongang.co.kr / 글 김벼리 인턴기자 kimstar1215@hanmail.net
“금수저? 헬조선? 저는 그런 말 몰라요.” 새벽 찬 공기 맞으며,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작업장에서 인생 배우는 4인의 청춘

▎장서원(19) 씨가 스키장 슬로프 한가운데에서 무전을 치고 있다. 온도나 풍향에 따라 제설작업이 좌우되므로, 본부와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아야 한다.
“인생은 스케이트장이야. 수많은 사람이 넘어지거든.” 2016년 대한민국에서 저 잠언에 누구보다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은 청년층일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취업을 한 번도 못한 대졸 이상 실업자’는 6만5천명. 1년 전에 3만 명이었던 것이 갑절 이상 늘어났다.

솔직히 스케이트장에서 넘어지는 것보다 더 무서운 건 추위다. 엉덩방아 찧었다고 스케이트를 그만 타려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추위가 엄습할 땐 너나할것없이 스케이트장을 떠날 테니 말이다. 청년들이 느끼는 고통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들의 좌절이다. ‘금수저’, ‘헬조선’, ‘노오력’ 등 지난해 우리 사회를 달궜던 많은 신조어 중의 대부분이 젊은층에서 만들어졌다.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대졸·중퇴 미취업자 중 구직활동을 하고 있는 비율이 2014년 15.4%에서 2015년 13% 로 2.4%포인트 줄었다.

하지만 고통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청년도 분명 존재한다. 그들은 어떻게 좌절감에 함몰되지 않고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걸까? 24절기 중 가장 춥다는 소한(小寒). 소위 ‘극한알바’를 뛰고 있는 청년들을 수소문해 만나보았다. 사인사색(四人四色) 이들 청년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1. 분홍빛 긍정형 | 한국민속촌 알바 김다예 씨


▎김다예(20) 씨는 뮤지컬 배우 지망생이다. 일을 하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많지만, 그때마다 김씨는 “민속촌은 나의 무대”라고 상상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개장 30분 전, 한국민속촌 분장실이 배우 여덟 명의 움직임으로 부산하다. 대여섯 벌의 옷을 껴입고 있는 남자들 사이에서 홍일점인 김다예(20) 씨가 콧물을 그리는 것으로 자신의 분장을 마무리한다.

대학에서 뮤지컬을 전공하고 있는 김씨는 ‘광년이’ 역을 맡았다. 어눌한 말투가 핵심이다. 따로 정해진 무대나 대본은 없다. 축구장 하나만한 공간이 전부 무대다. 즉흥적인 말과 행동이 대사와 지문이 된다. 매 주말, 8시간 정도 관람객을 상대한다.

“다른 건 몰라도 손발이 시린 건 아무리 해도 적응이 안 되네요.” 핫팩을 꽉 쥔 양손을 소매 속에서 앙다문 채 김씨가 말했다. 학창시절 장거리 달리기를 한 번이라도 완주해보는 게 소원이었을 정도로 허약한 그이기에, 일이 힘에 부치는 건 어쩔 수 없다. 실제로 한 번은 다리에 힘이 풀려 고꾸라진 적도 있단다.

하지만 가장 힘든 건 막무가내형 관람객을 대할 때다. “이 미친X이. 왜 거기 앉아 있어?”라는 말을 듣거나, 화장실까지 아이들이 쫓아올 때에도 미소를 보여야 한다. 그만큼 서러운 것도 없다. 김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알바몬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알바노동자의 약 78%가 감정노동으로 속앓이하고 있다.

설혹 그런 일이 있을 때도 김씨는 “민속촌은 나의 무대”라고 상상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관람객들의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은 달리 생각하면 김씨가 그만큼 ‘광년이’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실제로 이런 마음가짐을 갖게 되자 연기력 향상에도 도움이 되었다.

“하루 종일 연기할 수 있는 기회가 흔하진 않잖아요.” 질문에 진지하게 답하다가도, 관람객들이 말을 걸면 바로 천치가 되어버리는 그녀. 똘똘함과 어눌함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김씨는 이미 베테랑이다.

#2. 푸르른 인내형 | 가락시장 알바 송원재 씨


▎송원재(26) 씨는 스물 살부터 가락동농수산물시장에서 일해왔다. 어려워진 가정형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일이지만, 어느새 가락시장은 그에게 “인생의 배움터”가 되어 있었다.
오후 4시의 가락시장은 온통 초록색이다. 건물 안에선 차량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대형트럭이 몰고 온 바깥 공기에 썰렁한 경매장. 깻잎 상자를 옮기는 송원재(26) 씨의 몸이 다부져 보인다.

송씨는 일주일에 다섯 번 출근한다. 4시에 출근하면 채소를 실은 트럭이 하나둘 도착한다. 대여섯 명이 함께 채소를 내리다 보면, 6시에 쌈채소 경매가 시작된다. 그동안 송씨는 추가로 오는 잎채소를 배열한다. 7시부터 부추, 미나리를 정리하다 보면 11시가 된다. 퇴근이다. 그때까지는 저녁식사를 할 시간조차 없다.

제일 무거운 건 미나리다. 포대 하나가 20~30㎏에 달한다. 송씨는 100포대 정도 실린 차 대여섯 대를 맡는다. 협력작업을 한다고 하지만, 1인당 미나리 200포대쯤을 옮겨야 한다. “여기서 일하는 10명 중 3명이 디스크 환자예요.” 온몸에 붙여놓은 파스를 내보이며 송씨가 말했다.

작업 환경도 ‘최악’이다. 양철 건물이라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냉장고다. 차량이 수없이 들락거리는데, 환기가 잘 안돼 늘 쾨쾨한 냄새가 고여있다. 먼지가 심해 무조건 마스크를 쓴다. “먼지를 마시는 것보단 숨을 참는 게 나아요.”

그런 가락시장이 송씨에게는 “인생의 배움터”다. 노동자는 못 배우고, 불만만 많은 사람들이라고 지레짐작했던 그였다. 더구나 하루 20시간씩 일하고, 외국 대학이나 고위직 출신의 노동자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송씨는 지난해 하반기 공채로 조선소에 채용되어 2월 입사를 앞두고 있다. 관리직이다. 도매시장에서 5년 넘게 알바를 뛰면서 보고 들은 것이 그만의 무기가 되었다. “놀면 뭐해요. 입사할 때까진 계속 일하려고요.” 인터뷰를 마치고 그가 쏜살같이 다른 트럭을 향해 뛰어간다.

#3. 샛노란 의지형 | 조선소 알바 이종수 씨


▎이종수(가명·24) 씨는 의류사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조선소 일을 시작했다. 3천만원을 모을 때까진 무슨 일이 있어도 이를 악물고 버틸 생각이다.
웬만한 동(洞) 하나 크기의 A조선소. 축구장 두세 개보다 넓은 배들 사이로 부는 겨울바람이 매섭다. 옷깃을 세우는 이종수(가명·24) 씨의 등 뒤로 아파트 40층 높이의 골리앗 크레인이 우뚝 서 있다.

이씨가 조선소 일을 시작한 건 목돈마련을 위해서였다. 의류사업으로 자신의 이름을 날리는 게 그의 인생목표다.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하는 데 3천만원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때 조선소 모집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일당 10만원, 한 달에 최대 300만원을 벌 수 있어 큰맘을 먹었다.

막상 조선소에서 일을 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위험했다. 주로 세로 40㎝, 가로 3m의 발판을 벽에 층층이 설치하는 일을 하고 있다. 종종 건물 10층 높이에서 발판 하나에 의지해 서 있으면 “이대로 떨어지면 죽겠다”는 생각에 다리가 후들거린다. 머리 위에서 철재가 떨어진 적도 숱하다.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그는 말했다. 일하러 와서 하루 만에 포기한 사람이 많다.

그의 작업은 주로 용접가스로 가득 차 있는 밀폐구역 안에서 이뤄진다. 마스크와 고글을 쓰고 들어가더라도, 두세 시간 머물다 보면 “화생방훈련이 따로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다. 그럼에도 이씨는 조선소 일을 하면서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사실 그가 이 일을 시작한 건 이곳 조선소가 처음은 아니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 그런 소문을 들었는지 지금 일하는 A조선소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일을 시작한지 불과 두 달 만이었다. 당시 시급에 2만5천원을 얹어 12만5천원을 주는 좋은 조건이었다. “살아오면서 누구한텐가 인정받은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며 이 씨가 빙그레 웃었다.

땀으로 범벅이 된 이씨의 몸은 퇴근길 찬바람에 금세 말라버린다. 숙소로 들어서는 그의 얼굴이 새까맣다. “샤워를 할 때가 하루 중 제일 행복하다”고 그가 말했다. 욕실 수채구멍으로 흘러 들어가는 목욕 물에 그의 고단함마저 씻겨 내려가는 듯하다.

#4. 순백의 열정형 | 스키장 제설(製雪) 알바 장서원 씨


▎스키장 제설팀의 업무는 오후 10시 반에야 시작된다. 직원들이 제설기의 팬(fan)을 점검하고 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조명이 환하게 비추는 슬로프에 시끄러운 엔진 굉음을 내며 돌아가는 제설(製雪)기가 굵은 인공눈발을 토해낸다. 쏟아지는 눈 속에서 장서원(19) 씨가 삽으로 연신 눈을 퍼 흩뿌린다. 장씨는 야간 제설작업 아르바이트생이다. 그가 담당하는 스키장은 여의도 면적(2.9㎢)의 10배에 달한다.

지난해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장씨는 대학을 가지 않았다. 재수를 하고 싶었지만 어려운 가정형편이 발목을 잡았다. “군대나 가라”는 아버지의 핀잔에 입대 신청을 했으나 그마저 여의치 않았다. 한동안 방황하다 부모님에게서 독립하기로 결심했다. 자립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장씨의 눈에 띈 게 ‘스키장 제설 알바’ 모집공고였다. 주저 없이 지난해 11월 짐을 꾸려 강원도 평창의 산골짜기로 향했다.

장씨의 일과는 영업이 끝난 밤 10시 이후 시작된다. 제설기를 설치·조종하는 게 주 업무다. 제설기가 공중에 작은 물방울을 흩뿌리면 떨어지면서 얼음알갱이(인공눈)가 된다. 제설기의 송풍기(팬)는 2층 침대만하고, 사출구 높이는 건물 2층과 맞먹는다. 원하는 대로 조종하기가 쉽지 않다. 나중에 수작업 할 때를 고려해 눈을 골고루 뿌리는 게 요령이다. 두세 시간 작업하면 한 시간 정도 휴식이 주어진다. 이 과정을 세 번 반복하면 퇴근 시간이 된다.

제일 힘든 건 삽질이다. 제설기 주변에 쌓이는 인공눈을 삽으로 퍼내는 일이다. 제때 치우지 않으면 순식간에 사람 키보다 높이 쌓이곤 한다. 눈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왕복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슬로프를 매일 세 번씩 오르내린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는 두꺼운 털부츠와 여러 겹의 옷을 뚫고 뼛속까지 엄습한다. “땀이 맺힐 정도로 일을 하고 기숙사에 돌아오면 아침 8시 반이에요. 바로 기절이죠.” 우의(雨衣) 위로 얇게 쌓인 눈을 툭툭 털어내며 장씨가 말했다.

스키장 제설 알바는 청년들 사이에 ‘극한 알바’로 통한다. 같은 스키장 알바라도 패트롤(안전요원)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시급은 최저임금 수준으로 박하다. 그런데도 장씨의 목소리는 밝기만 하다. “앞으로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디서 뭘 하든 여기보다 힘들겠어요?” 얼마 전에는 무뚝뚝하기만 한 아버지로부터 멋쩍은 응원 전화도 받았단다. “지금처럼만 열심히 살려고요.” 하얀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는 송씨의 얼굴이 새하얀 설원처럼 빛나고 있었다.

- 사진 주기중, 전민규 기자 jeonmk@joongang.co.kr / 글 김벼리 인턴기자 kimstar1215@hanmail.net

201602호 (2016.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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