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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분석] 36년 만에 열리는 北 노동당 당 대회 

김정은, 간부 세대교체로 김정일 흔적 지우기 나서나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국가정보원, 5월 초 5~7일 동안 열릴 것으로 전망, 참가자격은 1000대 1 경쟁률 뚫어야... 주민 삶 나아지는 등 뚜렷한 성과가 보이지 않을 경우 김정은 체제에 ‘부메랑’ 될 수도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추대(4월 11일)와 국방위 제1위원장 추대(4월 13일) 4주년을 맞아 중앙보고대회가 4월 11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렸다. 이날 대회에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 박봉주 내각 총리를 비롯해 당·군·내각의 주요 간부들이 참석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보통 6개 면을 발행한다. 하지만 1980년 10월 11일자는 달랐다. 이례적으로 네 배나 많은 24개 면을 냈다. 이유는 하나. 전날 개막한 제6차 노동당 대회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다. 역시나 이례적으로 붉은색으로 인쇄된 ‘조선노동당 제6차 대회 개막’이라는 큼지막한 헤드라인 옆으로는 김일성 주석이 박수를 치는 사진이 한 면의 3분의 1을 장식했다. 당 대회가 김일성의, 김일성을 위한, 김일성에 의한 대회라는 상징이었다.

<월간중앙>이 당시 노동신문을 입수해 살펴본 결과 제6차 당 대회가 10월 10~14일 닷새간 열리는 동안 노동신문은 폐막 소식을 전한 15일자를 제외하고는 매일 24면을 발행하는 특별판을 발행했다. 폐막 당일부터 대회가 끝난 뒤로도 사흘간 매일 20개 면이 나왔다.

북한에서 당 대회라는 행사가 갖는 의미를 보여주는 사례다. 제6차 당 대회는 당시 68세였던 김일성이 자신의 후계자로 김정일을 공식 데뷔시키는 자리이기도 했다. 북한으로서는 모든 역량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 대대적 이벤트였던 셈이다. 통일연구원 박형중 부원장은 “북한의 당 대회는 지도자를 빛내주기 위한 잔치”라며 “북한 사회 전체가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최고 수준의 행사”라고 설명했다. 북한 지도자에게는 북한 말로 최고로 ‘은을 내는(보람이 있는)’ 행사가 당 대회라는 얘기다.

북한은 그러나 당 대회를 80년 이후로 한 번도 열지 못했다. 약식인 ‘당 대표자회’를 2010년과 2012년 각각 하루씩 열었을 뿐이다. 노동당 규약엔 5년마다 당 대회를 개최한다고 돼 있지만 2011년 개정 과정에서 이를 슬그머니 삭제했다. 이런 사정이 있기에 북한이 지난해 10월30일, 다음과 같은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결정서를 발표하자 정부 관계자들과 북한 관련 학자·기자들은 귀를 쫑긋 세웠다.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 수행에서 우리 당과 혁명 발전의 요구를 반영해 노동당 제7차 대회를 2016년 5월 초에 소집할 것을 결정한다.” 북한이 36년 만에 당 대회를 열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 무대의 연출자이자 주인공은 32세의 지도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 1위원장이다.

“휘황한 설계도 펼쳐놓겠다”는 32세의 지도자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실시된 ICBM 엔진 분출시험 시찰하고 있다.
우선 떠오르는 의문은 두 가지다. 북한은 왜 36년간 당 대회를 개최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김정은은 왜 지금 그 당 대회를 부활시키려는 걸까?

첫 번째 질문에 대해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익명을 전제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개최하지 않은 게 아니다. 못한 거다.” 김일성은 제6차 당 대회를 치른 후 차기 당 대회 개최 시기와 관련해 “인민들에게 고깃국에 기와집에 비단옷을 입히기 전까지는 당 대회를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경제적 성과를 빨리 이룰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에서 내놓은 발언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의 뜻과는 다르게 돌아갔다. 94년 김일성은 급서했고,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는 식량난이 북한을 덮쳤다. 당 대회는 사치에 가까워졌다. 체제의 생존 여부가 위급한 상황에서 잔치를 벌일 상황이 못 됐기 때문이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장용석 선임연구원은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김일성은 남측보다 경제발전에서 앞설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며 “김일성은 제7차 당 대회에선 경제 성과를 바탕으로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계획은 36년간 실행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할아버지의 못다 이룬 꿈을 김정은이 이루겠다고 나선 셈이다.

그 꿈을 어떻게 이루겠다는 것일까? 김정은의 올해 신년사에 힌트가 있다. 그는 지난 1월 1일 노동당사에서 육성으로 읽은 신년사에서 제7차 당 대회를 우선과제로 언급했다. “우리 혁명의 최후 승리를 앞당겨나가기 위한 휘황한 설계도를 펼쳐놓을 것”이라며 “력사적인(역사적인)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구체적 구호도 내놨다. “당 대회가 열리는 올해에 강성국가 건설의 최전성기를 열어나가자”라는 식이다.

말은 화려한데 구체적인 청사진으론 무엇을 내놓을까? 노동신문은 “강성국가 건설에 일대 앙양을 일으키기 위한 전략적 대강(요지)을 (제7차 당 대회에서) 제시할 것”이라 보도했다. 이 “전략적 대강”이란 김정은식 경제 발전계획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북한은 제4차 당 대회 때부터 인민경제발전 6~7개년 계획을 발표해왔다. 김일성도 제6차 당 대회에 ‘80년대 10대 경제전망목표’를 들고 나왔다. 이번에도 이런 식의 비전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북한경제 전문가인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복수의 중국 관계자를 인용해 “김정은이 경제 성과 관련 비전을 정하면서 ‘손에 잡히게 쉽게 만들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며 “새로운 외자조달 시스템이나 은행제도 등을 제안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손에 잡히게 쉽게 만들라”는 것은 김정은이 주민들에게 성과를 선전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는 의미라고 조 연구위원은 해석했다. 북한의 경제담당 관리들 일부가 이를 위해 중국에서 관계자들을 만나고 토론회도 열고 있다고 한다.

장밋빛 경제 전망을 내놓기엔 상황이 녹록지 않다. 지난 1월 4차 북한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가 대북제재 국면으로 돌아선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 시점에서 구체적인 경제 성과를 자랑하거나 앞으로의 경제 비전을 제시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외교관 출신 고위 탈북자는 익명을 전제로 “(4차 핵실험 이후) 대북제재 국면인 만큼 구체적 성과를 제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신 앞으로의 비전을 추상적으로 나열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그러나 뚜렷한 경제적 성과가 없다고 해서 제7차 당 대회의 의미가 바래지는 않는다는 것이 정부 안팎의 평가다. 정부 관계자는 “김정은은 이미 북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을 성과로 내세워 자축 분위기를 만들 것”이라며 “경제보다는 정치적 의미에 이번 당 대회의 방점이 찍혀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정치 기반을 확고히 닦는 데 집중한다는 의미다.

김정은, 총비서 추대될 가능성도


▎1980년 열린 북한 노동당 제6차 대회 준비 과정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이 얘기를 나누는 모습. 김정일은 이 당 대회에서 후계자로 대내외에 공식 데뷔했다. 김정일 본인은 당 대회를 한 번도 열지 못했다.
북한의 노동당 규약은 21항에서 “당 대회는 당의 최고기관”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김정은은 당 대회에서 후계자로 등극하는 정식 ‘책봉’ 절차를 밟지 못했다. 아버지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건강이 악화하자 급하게 2010년 9월 28일 하루 당 대표자회를 연 게 전부다. 여기에서 김정은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당 중앙위원에 임명됐다. 이듬해 12월 김정일이 사망하면서는 권력 승계에 급급했다.

그러나 5년차에 들어선 올해엔 대내외에 자신의 체제가 안정궤도에 들었음을 과시하고 자신의 시대를 선포하고 싶어할 것이라는 게 정부와 학계의 공통된 견해다.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김정은의 새 시대를 당 중심으로 열겠다는 의미로 여러 조치를 할 것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통일연구원 김갑식 북한연구실장은 “그동안 당 대회가 열리지 않은 비정상을 정상화하면서 김정은의 새 시대가 열렸음을 대내외에 공표하겠다는 의지”라고 해석했다.

김정은의 새 시대를 선포하려면 사람부터 바꿔야 한다. 당 대회에서 가장 중요한 관전 포인트 중 하나도 인사 관련 조치다. 북한 노동당 규약에 따르면 당 대회에선 ▷당 중앙위원회와 당 중앙검사위원회의 사업 총화 ▷당의 강령과 규약 채택 또는 수정 보충 ▷당의 노선과 정책, 전략전술의 기본 문제 토의 결정 ▷조선노동당 총비서 추대 ▷당 중앙위원회와 당 중앙검사위원회(재정관리 사업을 감사하는 기구) 선거가 이뤄진다.

대부분이 당 중앙위에서 내린 결정을 사후 추인하는 형식적 절차임을 감안하면 최대의 관심사는 당 중앙위원회, 그중에서도 정치국 명단이 어떻게 바뀔지다. 김정은은 이번 당 대회를 기점으로 세대교체를 노리는 것으로 정부는 분석한다.

통일부 당국자는 최근 “이번 당 대회의 의미와 특징 중 하나는 김정은을 중심으로 한 세대교체가 될 것”이라며 “김정은이 신년사 등을 통해 ‘청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말한 바 있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이수석 통일전략 연구실장도 “김정은은 앞으로 자기와 몇십 년을 함께 할 친위 세력을 양성하기 위해 청년 당원들을 중시해왔다”며 “이번 당 대회에서 60대 이상 간부들을 30~40대의 젊은층으로 교체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김정은이 이른바 ‘김정일 흔적 지우기’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급작스러운 세대 물갈이 수준까지는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장용석 선임연구원은 “북한은 노(老)·장(長)·청(靑) 조화 원칙을 갖고 있기에 원로들의 일거 퇴진은 없을 것”이라 전망했다.

당 권력의 핵심 중 핵심인 중앙위원회 정치국 명단이 어떻게 짜일지도 관심사다. 현재 정치국 상무위원을 구성하는 인물은 김정은, 명목상 행정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 위원장과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등이다. 이 중 88세로 고령인 김영남이 박봉주 내각 총리로 교체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정치국 위원과 후보위원도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지난해 사망하고 이영길 군 총참모장이 지난해 처형되는 등 인사 수요가 있다. 여기엔 김정은 시대 떠오르는 별인 박영식 인민무력 부장과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겸 당 비서가 거론된다.

김정은 본인도 직함을 바꿔 달 수 있다. 김정은에겐 현재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당 중앙위 제1비서 ▷조선인민군 총사령관 등의 직함이 붙는다. 집권 후 열었던 2012년 4월 당 대표자회에서 아버지 김정일을 ‘영원한 총비서’로 추대하고 자신은 ‘제1비서’로 직함을 낮췄다.

그러나 이번 당 대회에서 김정은도 총비서로 추대될 수 있다는 관측이 조심스레 제기된다. 익명을 원한 정부 관계자는 “당 규약에서 당 대회의 역할 중 하나를 ‘당 총비서 추대’로 삼고 있다”고 지적하며 “김정은이 본인의 시대를 개막했음을 알리기 위한 상징적 장치로 ‘총비서’ 모자를 쓸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개최비용 300만 달러… 남북정상회담도 언급될까


▎북한이 당 대회를 앞두고 발행한 우표들. 5월 초로 예정된 당 대회를 앞두고 북한 당국이 주민들에게 독려해 진행 중인 속도전 ‘70일 전투’ 등을 선전하고 있다. 김정은 체제에서 강조하는 ‘자강력’ ‘청년’ 등의 문구도 보인다.
이 모든 일이 벌어질 당 대회 날짜는 언제가 될까? 국가정보원은 지난 3월 국회 정보위원회에 “5월 7일로 예상한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5월 2~3일쯤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북한이 당 대회를 앞두고 벌이고 있는 ‘70일 전투’가 2월 23일 시작돼 끝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70일 전투’는 당 대회를 앞두고 북한이 주민들에게 성과를 더 빨리 내라고 독려하는 일종의 속도전이다. 지난 제6차 당 대회 때도 북한은 ‘100일 전투’를 벌이며 ‘하루 과제를 매일 2배로’ 등의 구호를 내걸었다. 이번에는 ‘만리마 속도’를 비롯해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강조한 ‘자강력 제일주의’ 등이 단골 구호로 등장하고 있다.

70일 전투를 비롯해 당 대회를 위한 준비는 착착 진행 중이다. 김정은은 4월 12~13일 진행된 당 조선인민군 대표회에서 제7차 대회 대표로 추대됐다. 관영 조선중앙방송은 이 같은 소식을 전하며 “인민군 각급 부대 당 조직에서 뽑힌 대표자들이 참가했다”고 전했다. 북한 전역에서 당 대회에 참가할 간 단위 당 대표를 선출하는 절차가 진행됐다고 발표한 셈이다.


▎해방 직후 김일성과 그의 부인 김정숙, 그리고 장남 김정일의 기념사진.
북한에서 당 대회에 참가하려면 1000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고 한다. 제6차 당 대회에선 320만 명으로 추산되는 당원 중 최종 3200여 명이 선발됐고, 이번에도 비슷한 비율이 될 것이라고 정부 당국자는 전했다. 시·군에서 당에 대한 충성도 등을 고려해 후보자를 결정해 올리면 도·직할시 단위에서 거르고, 이들 중 중앙당이 최종 후보를 선발한다. 고려대 남성욱(통일외교안보학부) 교수는 “이런 절차를 밟는데만 적어도 한 달이 걸린다”며 “당 대회는 예산과 시간이 그만큼 많이 걸리는 특대형 행사”라고 말했다.

비용도 많이 든다. 고위 탈북자는 익명을 전제로 “예전에 당 대회를 하면 참가자들에게 가전 일습을 선물로 줬다”며 “이번엔 경제사정 때문에 텔레비전 한 대 정도는 주지 않을까 예상되고, 이런 선물부터 당 대회를 치르는 데 드는 비용을 계산하면 300만 달러(약 34억6300만원) 정도가 들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막을 올릴 당 대회 기간은 대략 5~7일로 예상된다. 첫날 김정은은 우선 80년부터 올해까지의 성과를 검토하고 앞으로의 전망을 담아 ‘사업총화보고’를 할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 역시 제6차 당 대회를 사업총화보고로 열었다. 장장 5시간에 걸친 연설이었다. 김일성은 이를 통해 사회주의 경제 건설 10대 전망 목표와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 방안을 제안했다.

김정은은 4차 핵실험 등을 거론하며 핵·경제 병진 노선을 강조하는 동시에 대남 메시지를 던질 것으로 보인다. 통일연구원 김갑식 소장은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 주장을 되풀이하고, 남측에 대해서는 자신의 통일강령을 발표할 가능성이 있다”며 “남북정상회담 등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제안을 던지며 ‘통 큰 지도자’로서의 이미지 구축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당 대회 후도 주목된다. 북한이 당 대회를 치른 후 대화에 나설 가능성도 점쳐진다. 문제는 당 대회의 성공 여부다. 김정은이 북한식 신도시라고 할 수 있는 여명거리 건설을 주도해 가시적 성과를 드러내려 하는 것은 김정은이 그만큼 초조하다는 얘기다. 김 소장은 “주민의 삶이 나아지는 등의 뚜렷한 성과가 보이지 않을 경우 당 대회는 김정은 리더십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며 “당 대회는 김정은의 도박인 셈”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본인의 말대로 이번 당 대회는 북한과 남북관계에 있어 모종의 역사적 분수령이 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201605호 (2016.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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