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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제7회 ‘홍진기 창조인상’ 영광의 얼굴들 | 문화예술 부문 김달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장 

“더 풍성한 한국 미술사 기록 남기겠다” 

글 최경호 기자 squeeze@joongang.co.kr / 사진 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여성잡지에 나오는 세계적 명화 오려 붙인 것이 미술자료 수집 ‘운명’으로 이어져… “향후 아날로그 자료의 디지털화, 이용자 서비스 개선 등에도 더욱 집중할 터”

▎서울 홍지문 1길에 있는 김달진미술연구소는 한국 미술사 희귀 자료의 보고(寶庫)다. 김 관장은 폐지 수거상으로 오해를 받으면서까지 각종 미술 자료를 끌어 모았다.
김달진 관장은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의 ‘얼굴’이다. 미술관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것처럼 그는 평생을 한국 근·현대미술 자료를 수집·정리하고 연구했다. 그 공을 인정받아 제7회 홍진기 창조인상 문화예술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김 관장에겐 ‘금요일의 사나이’라는 닉네임도 있다. 주요 미술전시가 있는 금요일이면 어김없이 가방을 메고 나타나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우표·담뱃갑·껌·상표 등 인쇄물 수집이 취미였던 김 관장에게는 청계천 고서점이 놀이터나 다름없었다. 여성잡지에 나온 세계적 명화를 오려 모은 것이 미술자료 수집으로 이어졌고, 오늘날 ‘걸어다니는 미술백과사전’ 김달진을 만들었다.

그는 이 스크랩북을 들고 이경성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찾아가 보여주면서 넙죽 엎드려 큰절을 했다. 그 인연으로 1981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자료실에서 일하게 됐다. 취미가 직업이 돼버린 것을 운명이라고 해야 할까.




폐지 수거상으로 오해받기 일쑤

서울 홍지문 1길 김달진미술연구소에는 한국 미술사 희귀 자료의 보고(寶庫)다. 이곳을 둘러본 사람들은 미술자료에 대한 김 관장의 집념과 열정에 절로 경의를 표하게 된다.

그는 화랑과 신문사 등을 돌며 미술 관련 자료를 꼼꼼히 챙겼다. 찢어진 카탈로그까지 가방에 담았으니 폐지를 수거하는 사람으로 오해받았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렇게 팔았던 다리품이 요즘 빛을 발한다. 최근 들어 자료 활용 미술전이 늘면서 국내외 전시기획자들이 김 관장을 자주 찾기 때문이다. 자료 대여가 늘었고 연구자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미술에 바친 세월만 45년. 그의 열정은 ‘미술계 114’인 김달진 관장의 뒤를 잇는 후배들에게서 열매를 맺으려 한다. 그가 4년째 주최해온 ‘라키비움 프로젝트’는 100여 명의 아키비스트(기록 관리자)를 배출했고, 올해도 6차 교육프로그램 정원 30명이 일찌감치 마감됐다. 라키비움(Larchivium)은 도서관(Library)과 기록보존소(Archive)와 박물관(Museum)의 영어 합성어다.

김 관장은 “좋아서 하던 일이 발전해 사명감이 생기고 직업이 됐는데 또 사회에서 인정받아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됐다”며 “앞으로도 주목받지 못했던 미술가들을 기록해 더 풍성한 한국 미술사를 기록하겠다. 아날로그 자료의 디지털화, 이용자 서비스 개선 등에도 집중하겠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 글 최경호 기자 squeeze@joongang.co.kr / 사진 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201606호 (2016.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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