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Home>월간중앙>히스토리

[김승중 교수의 ‘그리스 문명의 결정적 순간’(4)] 고대 그리스 드라마, 어떻게 이해할까 

수천 년 전 스토리가 이 순간에도 재현된다 

김승중 캐나다 토론토대 희랍미술고고학과 교수 seungjungkim@gmail.com
이미지와 텍스트는 영원한 비교 대상…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

▎헤로데스 아티쿠스의 오데온(Odeon of Herodes Atticus, AD 161). 로마시대 때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 고유의 디오니소스 극장 옆에 지어진 시설이다. / 사진제공·김승중
고대 그리스의 음유시인은 우리나라 전통의 판소리 소리꾼과 무척 비슷한 예술인이었다. 소리꾼이 음률과 장단에 맞춰 그 내러티브를 전부 외워서 공연하듯, 그리스의 음유시인 또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비롯해 많은 전통 운문을 가락에 맞춰 암송했다. 이 구조 안에 현대 모든 공연의 원형질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얼마 전 처음으로 나는 드디어 한국 드라마의 열풍을 만끽했다. 미국에 사는 백인 친구들의 권유까지도 마다하면서, 나는 지난 10여 년간 그 한국 TV드라마의 참을 수 없는 열풍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써온 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손아래 올케가 바로 ‘형님이 기다려 오던 그런 드라마’라며 <응답하라 1988> 첫 회를 나에게 들이밀었다. 그 후 나는 여지없이 그 드라마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1988년 올림픽을 처음으로 개최한 이래로 우리 사회가 급격한 변화를 거치면서 지금까지 우리는 정신 없이 앞만 보며 하루하루를 살아왔다. 나는 <응답하라 1988>을 보면서 곧 이 드라마 속의 시절에 사로잡히게 되고, 당시 중학교를 다니고 있었던 나의 뇌리 속 조각 기억들이 절로 되살아났다.


▎사튀르극(Satyr Play)을 준비하는 대기실의 장면. 남근을 차고 사튀르 마스크를 들고 있는 배우들이 연습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1922)가 그의 자전적인 걸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la recherche du temps perdu, 1913년에서 1927년 사이에 7부작으로 출간됨)에 쓴 유명한 구절이 바로 이러한 노스텔지어의 느낌을 적절하게 묘사한다. 이른바 ‘프루스트의 마들렌(Madeleine: 카스테라와 같은 프랑스인들이 즐겨먹는 작은 케이크)’이다. 차에 담갔던 마들렌이 입 안에서 부스러지며 자기도 모르게 갑작스런 흥분과 행복함이 물밀듯이 몸으로 느껴졌다. 처음에는 왜 그러한 감정이 생기는지 몰라 어리둥절했지만, 프루스트는 곧 그 마들렌의 맛과 향기가 바로 어릴 적 일요일 아침마다 이모네에서 먹던 기억과 함께 그 시절 그곳의 장면들이 하나하나 생생히 되살아났다고 전한다. 객관적인 과학적 시간 관념에 도전하는 프루스트의 장편 대작 중에서 이 자그마한 마들렌의 이야기가 가장 대표적인 예가 된 것은, 우리 모두가 각자의 ‘마들렌의 모멘트’를 체험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러한 동질감 없이는 영상 네러티브 형식의 이야기 전달은 무효하다. 프루스트의 마들렌의 예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은 곧 잠재적인 기억이나 직관적인 동질감각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있어서 감각의 중요성이다. 무엇인가가 행해지는 것은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는 것, 즉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리얼 타임으로 경험한다는 것이 영상매체의 가장 큰 특징이며 또 이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이 텍스트가 주가 되는 문학적 네러티브와 대조되는 점이다.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A picture is worth a thousand words)”는 속담은 동서를 불문하고 모든 문명과 문화가 공감할 수 있는 명언이다. BC 6세기의 시인 시모니데스(Simonides)도 “그림은 말이 없는 문학, 문학은 말하는 그림”이라 하였고, 유명한 라틴어의 표현 “우트 픽투라 포에시스(ut pictura poesis)”는 곧 “문학은 그림과도 같다”는 뜻이다. 이렇듯 이미지와 텍스트는 항상 비교의 대상이 되었다. 지금 트위터(twitter)를 능가하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소셜미디어 인스타그램을 보아도 느끼는 점이 많다. 1000개의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한 순간의 느낌을 이미지로 포착한다는 정신으로 시작한 인스타그램. 벌써 1년 전 텍스트가 매개체인 트위터를 이겨내고 4억 명의 어마어마한 사용자를 자랑하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 우리 삶에 이토록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영상 미디어, 특히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개체로서의 영상 미디어는 그 근원을 어디에 두고 있는 것일까?

반복되는 구절의 패턴은 기억을 돕는 수단


▎영국박물관 소장 호메로스(Homeros)의 초상화. 헬레니스틱 시대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BC 2세기~AD 1세기경)
많은 고대문명의 이야기 전래방식의 공통점은 ‘구전(口傳)’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신화나 전래동화, 그리고 서사시 등은 모두 체계적으로 쓰여지기 전에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가장 대표적인 대 서사시, 호메로스(BC 8∼BC 7세기경의 인물로 추정)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도 물론 예외가 아니다. 고대 그리스 언어학자들에 의하면, 이 서사시의 문법과 문체 구조가 오랜 기간에 걸쳐 구전된 문학의 흔적을 보인다고 한다.

특히 반복되는 구절의 패턴을 분석해보면, 그 형식이 마치 그 서사시 전체를 암송하며 읊는 것이 통속적인 관습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 반복 형식은 바로 기억을 도와주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고대 그리스의 음유시인들은 우리나라 전통의 판소리를 하는 소리꾼과 무척 비슷한 예술인이었다. 소리꾼이 판소리를 할 때 음률과 장단에 맞춰 그 이야기 내 러티브를 전부 외워서 공연하듯, 그리스의 음유시인 또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비롯하여 많은 전통운문(韻文)을 가락에 맞춰 암송하였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극장이라는 건축 구조가 생기기 전에는 유랑하는 음유시인들이 대표적인 공공 광장인 아고라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마치 소리꾼이 판소리를 하듯 올림포스의 신과 영웅들의 이야기를 서사시 형식으로 암송하여 전달하였다.

정확히 어느 시점에 고대 그리스의 원초적인 서사시들이 문자로 적혀 문헌으로 전해내려 오게 되었는지는 지금도 판단하기 힘들다. 지금 우리에게는 호메로스라는 전설적인 장님시인이 도대체 어떤 인물이었는지 밝힐 만한 직접적인 증거가 거의 없다. 호메로스라 하면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저술한 특정 인물이고 BC 8세기에서 BC 6세기까지의 시간의 범위 내에서 살았던 위대한 작가로 보통 알고 있다. 그러나 위에서도 말했듯이 그 서사시가 문자화되기 훨씬 오래전부터 구비로 전승되었다면, 호메로스라는 작가는 역사적인 특정인물이 아닌 전설적인 음유시인이었을 가능성도 있고, 어떻게 보면 굳이 한 사람이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적혀진 파피루스 문헌(영국박물관 소장). 많은 고대 그리스의 문헌이 로마시대 때 이집트에서 생산되는 파피루스에 적혀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 사진제공·김승중
어떤 시나리오를 믿건 간에 한 가지 틀림없는 점은 BC 5세기경에 이르러서는, 호메로스라는 인물이 확실하게 그리스 문학의 시조라는 신원을 확고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트로이전쟁의 이야기가 그들에게는 신화가 아닌 역사였기에 그 이야기를 처음으로 쓴 호메로스라는 작가는 역사적으로 위대한 특정 인물이었고, 그가 장님이었다는 설이 전해졌으며, 그의 초상화 조각상도 그 이후로부터 흔히 만들어졌다. 이는 물론 상상의 초상화임이 분명하지만, 우리에게 전해지는 그의 많은 조각상을 보게 되면 곧 그 인물을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호메로스라는 정체불명의 인물(들) 또는 전통은, 실로 고대 그리스의 문학뿐만 아니라 서구문명 전반에 걸쳐 근본적인 밑거름이 되는 중대한 역할을 하였다. 트로이전쟁을 둘러싼 그 모든 이야기가 수없이 되풀이되면서 재삼재사 여러 다른 형식으로 전해져 내려온다. 지난회에서 논의한 영웅들의 이야기가 바로 호메로스적 전통에서 비롯되었다. 플라톤이 <국가>에서 호메로스를 문학의 시조일 뿐만 아니라 ‘비극의 최초 스승’이라 하였는데, 이는 서사시의 전통이 그 이후로 생겨난 드라마 형식의 비극의 주제로 많이 쓰여졌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극이라 하면 BC 6세기 말~BC 5세기 초에 아테네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연극의 형식이다. 특히 영웅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예술의 일종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현대 연극을 비롯하여, 뮤지컬, 오페라, 그리고 400년 전에 무대에 올린 셰익스피어의 희극과 비극까지 모두 고대 그리스극에 근원을 두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전하는 바로는 고대 그리스극은 BC 6세기 인물 테스피스(Thespis)가, 음유시인들처럼 신화의 이야기를 암송하며 노래하는 대신에, 처음으로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흉내 내며 연기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우리의 판소리처럼. 그가 BC 534년에 각기 다른 캐릭터를 혼자서 다른 마스크를 써가며 연기했다는 원맨쇼가 희랍비극의 시초였다고 전해 내려온다. 이것은 바로 아테네에서 행하여진 최초로 기록된 비극 콘테스트(tragic competition)였다. 그리고 테스피스는 이 콘테스트의 최초의 우승자였다. 그 뒤로 디오니소스(Dionysos)신을 숭배하는 페스티벌인 디오니지아에서 해마다 극작가들이 새로운 드라마를 선보였다.

그리스극의 근원은 술 파티인 심포지엄?


▎디오니소스 극장 앞열에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VIP 좌석들이 보존 되어 있다. 귀족출신의 상위층 시민이나 권력을 잡은 정치인들이 차지하는 좌석이다. / 사진제공·김승중
그리스극은 근본적으로 디오니소스라는 신에게 경의를 표하는 종교적인 밑바탕에서 생겨난 것이다. 희극/비극 콘테스트는 해마다 며칠에 걸쳐 행해지는 디오니지아 페스티벌의 중심 행사였다. 그러나 이러한 행사의 성격은 현대의 엔터테인먼트 위주의 공연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술의 신으로 알려져 있는 디오니소스가 드라마의 신이기도 한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흔히 연극의 근원이 술 파티인 심포지엄(Symposium)에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또한 디오니소스의 마스크를 쓰고 집단으로 노래와 춤으로 행사하는 코러스(chorus)의 공연(디티램 dithyramb: 디오니소스를 찬양하는 열광적인 코러스 노래)이 그리스극의 시조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리스극의 배우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공연했다는 점도 디오니소스 신과 관련하여 이해할 수 있다.

테스피스가 처음으로 콘테스트에서 승리한 BC 534년 뒤로 30여 년이 지나서야 3대 비극 작가 중의 하나인 에스퀼러스(Aeschylus)가 등장한다. 다시 그 뒤로 BC 5세기 초에 희극(Comedy)이라는 장르가 소개되었다. 이는 신화와 영웅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는 비극(Tragedy)의 소재와 형식과는 다른, 당 시대의 정치·사회적 풍자를 주로 다루는 해학적인 내용의 연극이었다. 성적인 소재도 다뤄졌다. BC 5세기 전반에 걸쳐 비극과 희극 모두 각각 다른 종목으로 콘테스트가 이루어졌고, 우리에게 현재 전해지는 40여 개의 극본은 모두 특정한 해에 상을 받은 작품인 것이다. 고대 그리스 비극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에스퀼러스(Aeschylus)는 비극이라는 장르의 형식을 체계화한 3대 비극 작가 중 가장 선배격이 되는 인물이다. BC 499년에 기록된 첫 승리를 거둔 그는 비극을 3부작(trilogy)의 형식으로 굳혔고, 디오니지아에서 3부작으로 공연되었던 비극은 짤막한 사튀르극(satyr play)으로 종결되었기에 4부작 형식(tetralogy)이라고도 한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언덕길에 위치한 디오니소스 극장.(Theater of Dionysos, BC 5세기)
이 사튀르극(satyric drama)이라 하는 것은 비극의 소재를 풍자하여 해학적으로 그린 연극이다. 그것은 비극의 공연 후에 비극의 장중한 느낌을 발산시키는 막간처럼 가볍게 공연되기도 하였다. 이 사튀르극은 본격적 희극과는 달리 주인공들이 다름아닌 사튀르(satyr)이다. 즉, 호색의 반인반염소, 그리고 술을 특히 즐기는 디오니소스 신의 졸병 노릇을 하는 말썽쟁이들인 것이다. 사튀르극은 영웅과 신들의 비극적인 소재를 쾌활한 광대극으로 전환시켰다고 해서 트래지코메디(tragicomedy)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풍자를 뜻하는 영어 단어 ‘satire’가 바로 고대 그리스의 사튀르극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가 제목을 알고 있는 사튀르극은 많지만, 안타깝게도 현존하는 대본은 단지 하나뿐이다. 그것은 3대 비극작가 중 막내격인 에우리피데스의 <싸이클롭스>다. 제목 그대로 <오디세이> 중에서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 영웅 오디세우스가 싸이클롭스, 즉 외눈의 거인인 폴리페모스(Polyphemos)의 동굴로부터 탈출하는 바로 그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사튀르극의 진짜 주인공들은 그 섬에 먼저 표류하여 이미 폴리페모스의 포로가 되었던 사튀르들이고, 영웅 오디세우스의 탈출을 도와주는 이도 바로 그들이다.

심리적 불안감을 조성하며 엔딩으로 치달아


▎디오니소스신과 함께 서 있는 사튀르의 전형적인 모습을 이 술대접 안에서 볼 수 있다. 영웅과 신들의 비극적 소재를 쾌활한 광대극으로 전환시켜 트래지코미디(tragicomedy)라 부르기도 한다. / 사진제공·김승중
익살스런 대사와 행동으로 이 사튀르들은 외눈의 거인에게 술을 권하여 취하게 하고, 오디세우스가 취해서 쓰러져 자고 있는 거인의 눈을 장대로 찌른 다음에는, 이들이 또 장님이 된 폴리페모스에게 오디세우스가 탈출하는 경로를 일부러 잘못 알려주면서 영웅의 탈출을 가능케 해주는 것이다. 결국 희비극을 포함한 모든 드라마의 제작과 공연이 디오니소스 신을 위한 것이라면, 술의 힘을 빌려 괴물을 물리친 이야기보다 더 적합하고 멋드러진 풍자극이 또 어디 있을까?

술과 색을 밝히는 종족으로 알려진 사튀르들은 디오니소스를 항상 따라다니며 말썽만 피우는 졸개들이고, 이들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모두 털 복장을 입고 우뚝 선 남근을 찼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디오니지아 축제의 막을 올리는 한 부분으로 거대한 남근을 앞장세워 행렬했다고 한다. 이것의 근원은 디오니소스 신이 처음 그리스 땅에 발을 디뎠을 때부터다. 아무도 그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무시한 대가로 사람 모두를 발기시켜 불타는 성욕을 채우지 못하게 벌을 내렸다고 한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익살맞은 이야기다. 이러한 신화나 예식 속에서, 인간의 동물적 본능과 사회적 이성의 이중성을 종교화했다는 깊은 뜻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풍성한 와인이 철철 흐르고 제물로 바친 수십 마리의 가축의 고기를 구워 온 동네에 그 냄새가 진동했다. 이 봄날의 잔치가 결국에는 모두 아크로폴리스(Acropolis)의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새로 선 보이는 드라마를 보기 위한 것이었다. 지난번 <스타워즈>가 나올 무렵 할리우드의 극장 앞에 12일 동안 밤을 새고 줄지어 서 있는 열광적인 팬들 못지않게, 남녀를 불문한 아테네의 전 주민, 그리고 축제에 온 여행객들은 엄청난 기력과 활기를 느꼈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문자 그대로 전해지는 대본들은 수많은 이가 자자손손 대대로 베껴왔을 만큼 그 인기가 비상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드라마라는 새로운 장르의 예술이 BC 5세기 그리스에서 그토록 인기를 끈 이유는 우리가 TV프로나 영화 등 시각적 내러티브를 즐겨 하는 이유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한 사람의 소리꾼이 판소리로 읊는 이야기 전달 방식만을 알고 있던 고대 그리스인들이 갑자기 눈앞에 일어나는 사건처럼 무대에서 이야기가 펼쳐지는 경험을 처음 하였다고 생각해보라. 말로만 듣던 그 찬란한 영웅들의 이야기를 강렬한 이미지와 짜릿한 극적인 플롯으로 관중들을 사로잡는 드라마의 파워는 형언하기 어려운 인상적 체험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호메로스의 대서사시는 오랜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을 서술하는 반면, 고대 그리스 비극은 주로 한 가지 드라마틱한 사건을 중심으로 하루 동안에 일어난 일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성격을 띤다. 또한 이 장르가 발달되면서 모든 사람이 잘 알고 있는 신화나 영웅의 이야기들을 다룰 때에도 극작가들은 종종 얼터너티브 엔딩(alternative ending)을 활용했다. 심리적인 불안감을 조성하며,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지 모르게 하여 관중들이 스릴을 십분 만끽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비극의 궁극 목표는 카타르시스


▎에우리피데스(Euripides)의 사튀르극(satyr play) <싸이클롭스>의 한 장면. 술을 담는 항아리인 크레이터(Krater)를 장식한 이야기로서 이보다 더 적합한 이야기가 있을까? (영국박물관 소장, BC 420∼410) / 사진제공·김승중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는 그 유명한 <시학>(Poetics, BC 335)에서 비극의 구성과 성격, 그리고 성공적인 비극을 제작하기 위하여 충족시켜야 하는 조건들을 상세히 분석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고대 그리스 드라마를 연구하는데 필수 논문일 뿐 아니라, 문학개론의 가장 기본적인 카논(canon)이 되었다. 나는 중학교 때 ‘카타르시스(catharsis)’라는 용어를 배운 기억이 난다. 그 당시 국어 선생님이 들었던 비유가 너무 강렬해서 나는 아직도 그 이미지를 지우지 못하고 있다.

배가 막 아팠을 때 설사를 하고 나면 시원해지지 않느냐며 선생님은 그것이 바로 감정의 정화와 비슷하다고 하셨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적절한 비유였지만, 나는 이 단어를 볼 때마다 설사 생각을 안 할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때는 몰랐지만, 바로 카타르시스라는 것은 <시학>에서 처음 논의되었던 개념이었고, 이는 바로 비극의 한 중요한 조건이었던 것이다. 짧은 시간 내에 집중적으로 촘촘히 짜인 드라마를 관청하는 동안에는 순간순간 리얼타임으로 감정이입이 완전하게 이뤄진다. 주인공의 상황에 따라 격렬한 감정을 체험함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는 동정심이나 두려움의 예를 든다) 비극의 궁극적인 목표인 카타르시스에 다다른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현재 사회에 그렇게도 중요한 시각 내러티브(드라마, 영화, 비디오 게임 등등)의 근원인 그리스 드라마 중 <오이디푸스 렉스>를 소개함으로서 이 글을 마치려고 한다. 지난 회에서 영웅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호메로스의 대서사시를 집중적으로 파헤쳤다. 서사시의 주인공인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 등은 에픽 히어로(epic hero)라 칭했는데, 이번에는 비극영웅, 또는 트래직 히어로(tragic hero)라는 카테고리의 주인공을 살펴보자! ‘트래직 히어로’라 함은 글자 그대로 비극에 등장하는 캐릭터라고 단순히 정의할 수 있다. 비극의 주인공으로서 이들은 공통된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적절히 분석했다. 일단 비극영웅은 아예 반신 반인이거나 귀족출신이라는 고귀한 배경을 가지며, 본성이 근본적으로 착하고 어느 정도 도덕적인 밑바탕이 뒷받침해주어야 한다.

이것은 결국 관중들로부터 강렬한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한 것이고, 완벽한 존재가 아닌, 자기도 모르게 인간적인 오류를 범할 수 있는 그러한 인물이어야 한다. 그러기에 비극 영웅의 불운은 깊은 결함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순간의 실수나 조상의 죄로 인한 것이어야 한다. 그에게 떨어진 불행은 부당할 정도로 심하게 겪어야만 관중들이 그 비극영웅과 감정적인 동화가 이루어진다 하였다. 3대 비극작가 중 중간에 자리잡은 소포클레스(Sophocles, BC 497~BC 406)의 가장 유명한 비극<오이디푸스 렉스>(Oedipus Rex, BC 429)가 그 대표적인 예다. 테베(Thebes)의 왕자로 태어난 오이디푸스는 불운의 예언으로 인해 수많은 영웅이야기처럼 갓난아기 때 버려진 채로 양치기에게 발견되고, 대신 코린뜨(Corinth)의 왕실에서 자라난다. 이 예언은 알다시피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것인데, 결국 이 비극영웅은 자신도 모르는 차에 이 예언에 따라 테베를 구하면서 아버지를 죽이며, 어머니와 결혼을 하게 된다. 자신의 오류를 깨달은 오이디푸스는 저주를 받았다고 여기며 스스로 눈을 멀게 하였고, 어머니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안티고네의 불운도 예언하게 된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3부작은 <안티고네>(BC 441)로 끝나는데, 이 역시 죄 없는 공주 안티고네가 당시의 왕 크레온의 명령을 어기고, 전통 예식에 따라 전사한 오빠를 땅에 묻었다가 죽임을 당하는 이야기다.

인류 문화에는 비슷한 특질의 신화적 인물이 산재


▎앵그르(Ingres, 1780~ 1867)의 걸작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1808). 테베(Thebes)의 문을 지키는 스핑크스의 3가지 질문에 답하는 영웅의 모습이다.(루브르 박물관 소장) / 사진제공·김승중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는 물론 그 당시에도 중요한 극의 소재였지만, 우리에게 이렇게도 잘 알려진 연유는 지그문드 프로이드(Sigmund Freud, 1856∼1939)의 영향력이 컸다고 볼 수 있다. 프로이드의 후배이며 동료인 오토 랭크(Otto Rank, 1884∼1939)라는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는 <영웅탄생의 패턴>(The Myth of the Birth of the Hero, 1909)이라는 중요한 저서를 남겼다. 모든 문명의 신화적 영웅은 오이디푸스와 동일한 패턴을 전시한다는 주장을 분석한 결과를 제시했다. 이러한 논리는 그 뒤를 이은 조세프 캠벨(Joseph Cambell, 1904∼1987)과 같은 신화학자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모세(Moses)와 예수(Jesus)를 비롯한 기독교의 ‘영웅’이나, 헤라클레스와 같은 그리스의 영웅, 바그너의 오페라로 유명해진 바이킹 히어로 로엔그린, 또는 고대 인도의 크리쉬나 등 많은 신화적 인물은 모두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인류 문명의 공감대가 그만큼 폭이 넓다는 점을 웅변하는 것 아닐까? 알을 깨고 태어난 우리의 주몽은 마찬가지로 알에서 태어난 제우스신의 딸 헬레네와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조세프 캠벨에 의하면 이러한 영웅의 패턴 또한 우리에게 가장 근원적으로 ‘어필’하는 이야기 줄거리의 한 부분이고, 이 줄거리 형식을 그는 ‘영웅의 여행(Hero’s Journey)’이라 불렀다. 캠벨은 영웅인 주인공이 먼 곳으로 여행해서 괴물들을 물리치고 다시 돌아온다는 24단계의 여행 줄거리의 형식을 제안한다. 우연치 않게 하나하나의 단계 모두가 조지 루카스가 감독한 <스타워즈> 원작의 플롯구조에 딱 들어맞는다. 우리는 결국 몇 천 년 동안 존재해왔던 똑같은 이야기의 형식을 매번 다른 이름을 붙여 즐기고 있는 셈이다.


▎고대 그리스 도기화에 표현된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오이디푸스는 여행객의 모자와 옷을 입고 스핑크스가 물어본 수수께끼를 풀려고 생각에 잠겨 있다.(바티칸박물관 소장, BC 470년경의 작품)
김승중 - 서울대학교 천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했다. 프린스턴대 천체물리학과에서는 우주론을, 콜롬비아대학 예술사고고학과에서는 희랍미술을 전공해 각각 박사학위를 받았다. 콜롬비아 박사과정에 들어가기 전에는 버지니아대학에서 미술사학 석사코스를 밟았다. 이 시기 다양한 현지발굴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고고학의 생생한 지식을 얻었다. 현재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희랍미술고고학을 가르치고 있다.

201607호 (2016.06.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