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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물거품 된 유럽합중국의 꿈 

브렉시트 쇼크! ‘포스트 1945년 체제’의 붕괴 신호탄?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세계화 가장 먼저 도입하고 전파했던 영국이 선택한 고립… 미국의 유럽 개입 명분 약해지고, 러시아·중국은 아태지역의 영향력 키워갈 호재

▎유럽 역사에서 영국이 브렉시트(Brexit) 국민투표를 실시한 6월 23일은 ‘분열의 날’로 기록될 전망이다. 7월 2일(현지시간) 런던에서 열린 브렉시트에 항의하는 ‘유럽을 위한 행진’에는 4만여 명의 시민이 참가했다.
“영국이 유럽연합(EU) 탈퇴를 선택해 죄송하다. 최선을 다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나에게는 매우 슬픈 밤이다. 나는 영국이 EU에 잔류하도록 하기 위해 머리와 마음과 영혼을 다 던졌지만 실패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지난 6월 28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28개 회원국 정상회의 만찬에서 밝힌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EU 탈퇴)에 대한 소회의 한 대목이다. 7월 13일 사임한 캐머런 총리에게 이날 식사는 영국의 정상으로서 참석하는 ‘최후의 만찬’이었다. EU 회원국 정상들은 다음날인 6월 29일 캐머런 총리를 배제한 채 별도의 회의를 갖고 브렉시트에 따른 대책을 논의했다. 캐머런 총리는 정상들의 조찬모임조차 참석하지 못한 채 영국으로 쓸쓸히 돌아갔다.

영국이 브렉시트를 선택한 이후 EU와의 관계는 벌써부터 차갑게 변해버렸다. EU의 좌장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영국은 혜택만 누리고 탈퇴의 비용을 치르지 않기를 바라선 안 된다”면서 영국의 ‘과실만 따 먹기’(로지넨피커라이, Rosinenpickerei)는 배제하겠다는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독일어 로지넨피커라이는 빵에서 건포도만 쏙쏙 뽑아먹는 이기적 행동을 가리키는 말이다.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면서도 EU 단일시장에 접근할 권한을 가지려는 의도를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자비에르 베텔 룩셈부르크 총리는 “영국과 EU 관계 형태 중에는 결혼과 이혼만 있을 뿐 중간지점은 없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유럽 역사에서 영국이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실시한 6월 23일은 ‘분열의 날’로 기록될 것이다. 탈퇴 51.9%, 잔류 48.1%라는 국민투표 결과가 나오자 영국은 물론 유럽과 국제사회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독일의 베를린장벽 붕괴 이후 유럽에서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이란 말까지 나왔다. 영국의 EU 탈퇴는 단순히 EU 회원국 수가 한 개 줄어든다는 의미 이상의 엄청난 파급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EU는 영국의 탈퇴로 창설 이래 최대의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일각에선 앞으로 EU가 해체의 길로 들어선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영국은 독일, 프랑스 등과 함께 EU를 받쳐온 삼각축의 일원일 뿐만 아니라 EU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18%, 인구의 13%를 차지하고 있다. 영국의 탈퇴로 당장 EU가 해체되지는 않겠지만, 위상과 영향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EU는 그동안 재정·금융 위기와 난민유입 사태 등으로 분열 양상을 보여왔다. 또 지난해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했던 그리스 사태로 EU의 단결력이 크게 흔들려왔다. 때문에 영국의 탈퇴 결정은 EU의 통합에 직격탄을 쏜 것이나 다름없다. EU는 1957년 유럽경제공동체(EEC)로 첫발을 내디딘 뒤 59년간 통합을 위한 길을 걸어왔다. EU는 애초 1946년 당시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의 ‘유럽합중국’(United States of Europe)이란 비전에서 출발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하나의 유럽’이라는 이상과 꿈은 영국의 탈퇴로 사실상 좌절될 가능성이 높다. 크리스 비커턴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EU가 갑자기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장기적으로 EU는 점차 쇠퇴할 것이며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바뀔 것”이라면서 “EU는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섰으며, EU가 앞으로 밟을 다음 단계는 힘든 여정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U 탈퇴 요인은 이민자에 대한 반감


▎EU는 영국의 탈퇴로 창설 이래 가장 큰 위기를 맞았다. 영국의 브렉시트 쇼크를 묘사한 현지 언론의 만평.
영국 국민이 국민투표에서 EU 탈퇴에 찬성한 중요한 요인을 꼽자면 이민 문제라고 말할 수 있다. 영국 국민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이민자들에 대해 상당한 반감을 보여왔다. 일자리와 임금, 교육, 복지, 주택 등에서 이민자들의 대거 유입으로 영국 국민들이 어려움과 불편을 느껴왔기 때문이다. 영국의 EU 회원국 출생자는 2004년 149만 명에서 지난해 313만 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총인구에 대비하면 EU의 다른 회원국 국적자 비중은 4.6%로 EU 주요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난해 영국에 들어온 전체 이민자는 33만3000명으로 1975년 통계를 작성한 이래 둘째로 많았다. 전체 취업자 3150만 명 가운데 520만 명이 영국 외 출신이고, 이 중 220만 명이 EU 회원국 출신이다. EU 국민은 영국에서 석 달만 일하면 영국인과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 일정 수준의 임금을 받지 못하는 이주자들도 자녀 보조금과 노동보조금, 집세 보조금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사회보장 시스템에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낀 영국 국민이 EU 탈퇴에 표를 던졌다. 게다가 지난해 사상 초유의 유럽 난민 유입 사태, 프랑스 파리 테러와 벨기에 브뤼셀 테러 사태로 영국 국민의 불안감은 더욱 고조됐다.

영국이 EU 탈퇴를 결정한 근본적인 이유는 유럽회의주의(Euroscepticism)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영국은 EU 회원국이지만 유럽 단일통화인 유로화를 사용하지도 않고 있고, 국경 통제를 철폐하고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한 솅겐 협정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영국은 또 안보·경제·조세·복지·교육·의료 등 다양한 정책 분야에서 다른 회원국들보다 폭넓은 자율권을 인정받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나라인 영국은 줄곧 유럽 대륙을 불신해왔다.

안보나 정치적 이유에서 EU 결성에 적극적이었던 대륙 국가들과는 달리 1000년 이상 외세의 침공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영국은 애초부터 EU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지 못해왔다. 또 영국은 과거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했던 영광스러운 역사에 대한 자부심과 향수도 갖고 있다. 게다가 독일과 프랑스가 주도하는 대륙 중심의 유럽 통합에 대한 반감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영국은 1973년 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한 이후부터 줄곧 탈퇴를 외쳐왔다.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 투표가 처음이 아닌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1975년 실시된 EEC 잔류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선 잔류에 찬성했지만 이번 국민투표에선 결별을 선택했다.

그렇다면 영국은 앞으로 EU와는 어떤 관계를 맺을까. 앞으로 영국이 EU에 공식적으로 탈퇴를 통보하면 회원국 탈퇴에 관한 EU 리스본 조약 50조가 사상 처음으로 발동된다. 조약에 따라 영국은 2년 내에 다른 EU 회원국들과 관세, 규제, 국가간의 이동 등 전반적인 사항에 대해 협상해야 한다. 영국이 EU와 거래할 때 적용되는 세금 면제나 감면, 규제 단일화 등 민감한 제도를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2년 협상 시간이 끝나면 영국의 EU 탈퇴가 자동으로 확정된다. 이 경우 영국은 EU 회원국들과 개별적으로 모든 조건을 협상해야 한다. 다만 EU 회원국들과 영국이 만장일치로 동의할 경우에는 협상 기간이 연장될 수 있다. 현재로선 영국이 공식적으로 EU에서 탈퇴하려면 5∼10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영국 GDP 2030년까지 최대 14% 줄어들 수 있어


▎영국의 공식 탈퇴가 결정될 경우 EU 회원국들과 개별적으로 세금 면제, 규제 단일화 등 민감한 제도를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영국의 GDP가 2030년에는 14%까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영국은 EU와의 협상에서 탈퇴에 따른 상당한 경제적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통상과 투자 분야를 보면 세계 5위 경제대국인 영국은 5억 인구의 단일 시장인 EU에 완전 무관세라는 조건으로 상품이나 서비스를 팔 수 없게 됐다. 또 EU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들과도 무관세로 교역할 수 없게 됐다. 외국인 투자도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영국은 EU 회원국들 중 최고의 외국인직접투자(FDI) 대상국이다. 다국적기업의 유럽법인 절반 이상이 영국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들은 다른 EU 회원국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금융 분야에서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하다. 이에 따라 세계 금융 중심지라는 말을 들어온 런던의 위상과 역할도 크게 축소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기축 통화 중 하나인 파운드화의 가치도 하락할 수밖에 없다. 자칫하면 영국 경제가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영국의 GDP가 2020년 3%, 2030년 5% 위축될 수 있다는 추정치를 내놨다. 독일 싱크탱크 베르텔스만 재단도 영국의 GDP는 2030년까지 최대 14%나 줄어들 수도 있다고 추정했다. 게다가 스코틀랜드의 독립여부도 영국에게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다. 스코틀랜드 독립 문제는 2014년 9월 주민투표에서 부결이 됐는데, 이번 탈퇴로 다시 부상하고 있다.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6월 25일 독립 주민투표 재실시를 위해 필요한 관련 조치들을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만약 독립 여부를 놓고 주민 재투표가 실시되고 찬성이라는 결과가 나올 경우 영국은 자칫하면 ‘리틀 잉글랜드’가 될 수도 있다.

영국은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르웨이 모델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노르웨이는 EU 회원국이 아니지만 유럽 단일시장에는 제한 없이 접근할 수 있다. 노르웨이는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분담금을 납부하고 있다. EU 이민자들이 노르웨이 국민과 똑같은 복지혜택을 받는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영국이 노르웨이 모델을 수용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브렉시트를 선택한 이유가 이동의 자유에 따른 이민자의 과도한 유입에 대한 반감이었기 때문이다. EU도 영국에게 유럽 단일시장 접근권을 원한다면 재화, 자본, 노동력, 서비스 등 4가지 이동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다른 방안은 캐나다 모델이다. 캐나다는 EU와 공업 제품의 관세 철폐 등을 담은 포괄적 경제·무역협정(CETA)에 합의했다. 이주 노동자의 수용 의무는 포함되지 않았고 갹출금 부담도 없다. 하지만 이 협상을 합의하는데 10년이란 시간이 소요됐다. 영국과 EU 간의 협상이 결렬되고 새로운 협정이 맺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경우 영국은 세계무역기구(WTO) 규칙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다. 영국이 EU에 기여금을 지불하거나, 자유로운 왕래를 허용할 필요는 없지만 관세 장벽이 부활해 단일 시장으로서의 혜택은 모두 잃게 된다.

EU는 브렉시트로 회원국이 27개국으로 줄어들게 됐을 뿐만 아니라 ‘탈퇴 도미노’라는 새로운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EU를 탈퇴할 조짐을 보이는 국가들은 덴마크를 비롯해 체코·스웨덴·네덜란드·핀란드·폴란드·슬로바키아·오스트리아·헝가리 등이다. 실제로 슬로바키아의 극우정당인 슬로바키아국민당(SNS)은 슬렉시트(Slexit)를 요구하고 나섰다. 마리안 코틀레바 슬로바키아국민당 대표는 “EU는 침몰하는 타이타닉호”라면서 “지금이야말로 침몰하는 EU를 떠날 수 있는 최적의 시기”라고 주장했다. 슬로바키아 의회는 총 150석이며, 슬로바키아국민당은 14석(8%)을 차지하고 있다. 인구 540만 명인 슬로바키아에서 국민투표를 실시하려면 국민 35만 명으로부터 청원서명을 받아야 한다. 유권자의 50% 이상이 투표를 하면 국민투표의 결과는 법적 구속력이 있다. 2004년 EU에 가입한 슬로바키아는 네덜란드에 이어 7월 1일부터 6개월간 EU 순회 의장국 역할을 수행한다.

덴마크·스웨덴 등 연쇄 탈퇴 가능성도


▎현재의 국제 상황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가는 길목에 나타난 1930년대 대공황기와 닮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시에도 경제상황에 대한 불안과 분노, 기존 질서에 대한 반기, 민족주의의 부상 등이 전쟁 발발의 원인이 됐다
EU 회원국들 중 영국에 이어 탈퇴 가능성이 높은 국가는 덴마크다. 덴마크는 지난해 12월 유럽공동경찰기구(유로폴) 탈퇴를 놓고 국민투표에 부쳐 찬성 53%로 통과시켰다. 덴마크는 영국처럼 유로화 대신 자체 화폐인 크로네를 사용해 탈퇴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덴마크는 그동안 EU에 대해 회의적 태도를 보여왔다. 덴마크 공영방송 DR의 최근 여론조사 결과 총 응답자의 42%가 영국과 같이 EU 탈퇴를 묻는 국민투표를 원한다고 답했다. 특히 극우정당인 덴마크국민당(DF)은 EU 탈퇴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덴마크국민당은 지난해 총선에서 반(反)이민·반EU를 기치로 내걸고 21%를 득표해 제2당이 됐다.

‘스칸디나비아의 영국’이라고 불리는 스웨덴에서도 탈퇴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스웨덴은 EU의 모든 이슈 가운데 90% 정도를 영국과 의견을 같이해왔다. 이를 미뤄봤을 때 브렉시트는 스웨덴에서도 연쇄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스웨덴 정부는 지난해 수십만 명의 난민을 수용했지만 극우 정당인 스웨덴민주당은 난민 추방을 주장하고 있다. 인구 1000만 명이 안 되는 스웨덴은 인구 대비 난민 유입 수가 유럽에서 가장 많다. 이 때문에 반감도 상당히 높다.

네덜란드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네덜란드 하원은 6월 28일 극우정당인 네덜란드자유당(PVV)이 발의한 넥시트(Nexit) 법안을 150명의 재적 의원 중 14명만 찬성해 부결 처리했다. 네덜란드에서 넥시트 국민투표가 이뤄지려면 의회 과반수 의원이 찬성하거나 총리가 국민투표를 제기해야 한다. 의회에서 법안이 부결됐다고 해도 넥시트 움직임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네덜란드자유당의 헤이르트 빌더스 대표는 내년 3월 총선에서 승리하면 영국처럼 EU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공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족주의 세력이 득세하고 있는 체코·폴란드·헝가리 등 중·동부 유럽 국가도 EU를 탈퇴할 가능성이 있다. 경기 침체로 EU 가입에 따른 혜택이 줄어들고 있는데다 난민들이 대거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폴란드도 EU 탈퇴 국가 대열에 합류 가능성이 있는 나라로 꼽히고 있다.

2차대전 이후 미·영이 구축한 국제질서 ‘흔들’


▎미국으로서는 영국의 EU 탈퇴로 유럽에 개입할 수 있는 중요한 연결고리를 잃었다. 영국의 정치 경제적 지위가 흔들리면서 유럽에서 양국의 영향력을 보장해준 나토(NATO)의 힘도 약화되리라는 분석이다.
유럽 극우정당들 중 대표주자인 프랑스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대표는 “프랑스도 영국처럼 EU 탈퇴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르펜 대표는 자신을 ‘마담 프렉시트’(Frexit)라고 부를 정도로 EU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왔다. 최근 프랑스의 여론조사를 보면 55%가 국민투표가 필요하다고 답했고, 이 가운데 41%는 프렉시트에 찬성한다는 입장이다. 르펜 대표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내년 4월 치러지는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2차 결선 투표에 진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탈리아 극우정당인 북부동맹의 마테오 살비니 대표도 이탈리아에서도 EU 탈퇴 국민투표를 시행할 것을 촉구했다. 유럽 각국의 극우정당들은 브렉시트로부터 자신감을 얻었으며 향후 총선 등에서 EU 탈퇴를 공약으로 내세울 것이 분명하다.

EU는 앞으로 탈퇴 도미노를 막기 위해 독일을 중심으로 더욱 단단하게 결속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EU에서 경제규모 1위인 독일은 영국이 빠진 EU가 더 이상 분열하지 않도록 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게 됐다. 독일 경제가 EU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분의 1에 달한다. 2위인 영국이 빠져나가면 독일 비중이 4분의 1까지 커진다. 메르켈 총리는 “유럽 통합 성공에 대해 독일에는 특별한 이익과 책임이 있다”면서 “앞으로도 독일이 유럽 통합에 앞장서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메르켈 총리가 앞으로 EU를 어떻게 이끌어나갈지 복안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EU 체제에 대한 회원국들의 반감을 완화하고 추가 이탈을 막기 위한 대응책으로, 각국의 재량권을 늘리는 쪽으로 개혁의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독일은 EU를 이원적으로 운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원적인 운용체계는 독일 등과 같이 경제여건이 좋은 회원국들은 EU 조건을 더욱 엄격하게 적용하고, 그리스 등 경제 여건이 나쁜 회원국들에 보다 많은 자율권을 주는 방식이다. 유로존 국가를 재정적으로 통합해 한 명의 경제장관이 이끄는 재정동맹으로 만들고, 나머지 회원국은 경제정책을 별도로 시행하되 연구, 에너지, 농업 등의 정책만 공동 추진하는 느슨한 연합을 구축하자는 방안도 나온다. 미국 싱크탱크 유라시아그룹의 이언 브레머 대표는 “광범위한 유럽 통합은 실패한 실험이 되겠지만 독일을 중심으로 한 핵심 유럽 국가들은 정치·경제적 통합을 아주 잘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존 매클로플린 미국 홉킨스대 국제대학원(SAIS) 메릴전략연구센터 연구원은 “EU의 다른 회원국들도 영국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이 경우 향후 5년 전후로 EU는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브렉시트는 앞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영국이 구축해온 국제질서를 뒤흔들 가능성이 높다. 2차대전 승전국인 미국과 영국은 그동안 유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등에서 한 목소리를 내면서 핵심 파트너로 전후 세계 정치·경제 질서를 주도해 왔다. 미국은 영국과의 대서양동맹을 기반으로 나토와 EU를 통해 서유럽 국가들을 결집시켜 옛 소련과 후신인 러시아에 대응해왔고, 중·동부 유럽 국가들에까지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특히 영국은 나토와 EU에서 미국의 대변자 역할을 하면서 이슬람국가(IS) 격퇴를 비롯한 중동 문제와 아프가니스탄 사태 대처,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제재 등에 앞장서왔다. 하지만 브렉시트는 이런 ‘포스트 1945년 체제’가 붕괴되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미국으로서는 영국의 EU 탈퇴로 유럽에 개입할 수 있는 중요한 연결 고리를 잃었다고 볼 수 있다. 또 영국이 브렉시트로 나토에서 탈퇴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경제적 지위가 흔들리면서 나토에서의 입지가 축소될 것이다. 이 경우 유럽에서 미국과 영국의 영향력을 보장해온 나토의 힘도 약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브렉시트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영국의 나토 회원국 지위는 미국 외교·안보 정책의 핵심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대서양동맹 약화에 따른 세계질서 변화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짐 스타브리디스 나토군 전 최고사령관은 “미국은 앞으로 영국이 세계적인 문제에서 덜 효과적이고 덜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일 것이라는 사실을 직면해야 한다”면서 “불행히도 미국과 영국과의 관계는 덜 특별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제상황에 대한 분노, 1930년 대공황기와 비슷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에선 새로운 세계 정치경제 질서를 구축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을 수 있다. EU와 나토의 대 러시아 압박이 약화될 가능성이 높고, 중국은 미국이 유럽으로 눈을 돌린 틈을 타서 아·태 지역의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
미국과 대립해온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에선 브렉시트는 새로운 세계 정치·경제 질서를 구축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러시아는 브렉시트에 따라 외교·안보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입지가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EU와 나토의 대 러시아 제재 및 압박이 약화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소련 해체와 함께 상실한 중·동유럽 국가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브렉시트는 단기적으로 중국의 경제에도 타격이 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세계 정치·경제 질서 주도국으로 나서려는 중국에 상당히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특히 EU의 경제력 약화로 중국은 더욱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중국은 미국이 힘의 공백이 생긴 유럽으로 눈을 돌린 틈을 이용해 아·태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브렉시트를 계기로 신고립주의와 반세계화가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따라 각국에서 민족주의와 보호무역주의가 득세할 것으로 보인다. 신고립주의가 나타나고 있는 것은 세계화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 세계화는 그동안 각국의 경제성장에 기여하기도 했지만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했다. 빈부격차와 소득 불평등에 따른 양극화가 심화되는 원인이 돼왔다.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1년 유럽연합(EU)의 재정위기로 양극화는 더욱 악화됐다. 이 때문에 각국에서 저소득층과 청년층을 중심으로 세계화를 적극 추진해온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분노가 표출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세계화를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도입하고 또 적극 전파했던 영국이 브렉시트라는 정반대의 선택을 가장 먼저 하고 나섰다. 세계화에 대한 반감은 미국에서도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아웃사이더인 공화당의 도날드 트럼프가 대선 후보로 결정되는가 하면 민주당에서 버니 샌더스 후보가 경선에서 선전한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의 국제상황은 1930년대 대공황기와 비슷하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미국의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은 “경제 상황에 대한 분노와 불안, 기존 정치적 질서에 대한 반기, 민족주의의 부상, 국제주의의 후퇴 등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가는 길목이었던 1930년대를 떠올리게 한다”고 분석했다. 대니얼 플래트카 미국기업연구소(AEI) 부소장은 “각국 정치권이 대중의 불만을 해결하는데 집중하지 않는다면 분열된 정치, 분노, 고립주의가 만연했던 1933년의 재현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1933년은 독일에서 나치 정권이 수립된 해다. 당시 경제는 대공황으로 극도로 어려웠고, 이 때문에 기성 정치권에 대한 반감이 팽배했었다. 미국과 영국은 유럽 대륙의 문제에 얽히지 않기 위해 고립주의를 택했었다. 결국은 이런 상황이 2차대전 발발의 원인이 됐다. 아무튼 브렉시트는 앞으로 국제질서 변화의 변곡점이 될 것이 분명하다. 영국과 EU의 미래 및 국제질서와의 함수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된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201608호 (2016.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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