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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미국 영웅에 관한 종횡무진 탐험 보고서 

미합중국의 창조는 인류 최대의 모험… 5세기를 훑어나간 인물 오디세이 아메리카나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glutton4@joongang.co.kr

영국의 언론인이자 가장 대중적인 보수주의 역사학자 폴 존슨. 1928년에 태어난 그는 <뉴 스테이츠먼>지의 편집장을 역임하면서, 역사·인문·종교 분야에서 30권이 넘는 책을 저술했다. 이 중 <모던 타임스>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수십 개의 언어로 번역됐다. 지나치게 보수적인 역사관에 눈살 찌푸리는 사람도 물론 적지 않다.

<기독교의 역사>와 <유대인의 역사> 또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가 쓴 <예수 평전>도 많은 독자가 언젠가는 꼭 읽어보고 싶은 도서 목록에 포함시킨다.

<엘리자베스 1세: 권력과 지성에 대한 연구> <요한 바오로 2세와 가톨릭의 복원>도 가슴 두근거리며 읽었다고 고백하는 독자가 많다. 폴 존슨에게 ‘대중적 역사가’로서의 풍모를 가장 여실하게 부여한 책은 <위대하거나 사기꾼이거나>다. 20세기를 풍미했던 유명인사 100명에 대한 직설적이고, 살벌하고, 거침없는 인물평을 담았다. 다이애나 왕세자비, 조지 부시, 코코 샤넬, 마오쩌둥, 조지 오웰 등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예를 들면 이렇다. “피카소는 내가 실제로 만났던 사람 중에 가장 사악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고트족, 반달족, 청교도 혁명가들과 전체주의 악당들의 해악을 모두 합해도 그가 예술에 끼친 해악은 따라올 수 없다.”다이애나 왕세자비에 대해선 “언론과의 관계, 섹스를 포기하지 못했으며, 무엇보다 남자 보는 눈이 없었다”고 평가한다.

폴 존슨은 급기야 미국사에까지 손을 댔다. 대단한 오지랖이다. 전 2권, 총 1664쪽에 이르는 방대한 ‘미국인의 역사’다. 사람에 초점을 맞춰 기술하여 그 나레이션은 감칠맛이 넘친다. 폴 존슨은 16세기 식민지 시대부터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까지 무려 5세기를 훑어나간다. 토마스 제퍼슨 편을 보자. 그는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창조주에게서 생명과 자유와 행복 추구를 비롯한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얻었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미국의 독립선언서에서 말이다.

그러나 폴 존슨이 보기에 제퍼슨은 모순 덩어리의 인물이다. 60만 명의 노예가 가축 취급을 받고 있는데 어떻게 모두가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할 수 있는가. 제퍼슨은 노예제는 부도덕하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은 평생 노예를 부리며 사고 팔았다. 케네디가의 신화도 조작된 것이다. 케네디는 대통령 취임식 날에도 부인 재키가 잠든 뒤 다른 여자를 끌어들였다. 폴 존슨은 “너무 심한 거 아니냐”고 묻는다.

존슨의 역사 서술은 보수색이 짙다. 그가 보기에 공화당 출신 로널드 레이건은 위대한 대통령이다. 하지만 민주당 출신인 해리 S. 트루먼에도 그는 후한 점수를 매겼다. 김일성의 남침 소식을 전하는 국무장관에게 트루먼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 개자식들을 저지할 거네”라고 소리쳤다. 그는 집무실에 ‘최종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는 명패를 놔두고 일했다.

존슨은 “미합중국의 창조는 인류 최대의 모험”이라고 말한다. 또한 “미국인은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국민”이며 “미국은 여전히 인류에게 가장 큰 희망”이라는 덕담을 건넨다. 그러나 그 많던 과거 미국 영웅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클린턴이나 트럼프 같이 왜소한 인물들이 판치는 미국 사회를 바라보며 폴 존슨이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glutton4@joongang.co.kr

201608호 (2016.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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