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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취재│한일 동병상련 연구] 보이지 않는 폭력, 사이버불링 

스마트폰 왕따가 더 서러워! 

김경철 일본 고단샤 서울통신원(뉴스잡지 부문)
집단적으로 괴롭힘 당해도 무시하거나 저항할 수 없어… 일본에서는 넷상의 공격으로 인한 피해 보상받을 수 있는 보험상품도 출시

▎사이버불링은 학교뿐만 아니라 직장 내에도 만연해 있다. 한국사회의 뿌리깊은 집단주의 문화가 사이버불링의 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 사진·중앙포토
IT 강국 대한민국은 스마트폰 보급률이 91%(KT경제경영연구소 조사, 2016년 3월 기준), 이용시간은 하루 평균 4.6시간(미래창조과학부 조사, 2014년 기준)에 이를 정도로 스마트폰에 푹 빠져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손에 잡는 것이 스마트폰이다. 버스와 지하철은 물론, 길을 걸으면서도 스마트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식사시간조차 대화보다는 스마트폰에 열중한다. 특히 청소년은 스마트폰을 통해 자신들만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소통함으로써 정체성을 확인받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전 국민의 스마트폰 의존도는 절대적이다. 그런데 SNS를 이용해 온라인상에서 피해자를 집단적으로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현상이 불거지고 있다. ‘사이버불링(cyber bullying)’이라는 신종 왕따문화는 우리 청소년들 사이에서 만연, 기존의 학교폭력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

중학 시절 내내 심한 왕따를 당해 온 김아름(가명·17) 양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웃음을 되찾았다. 드디어 친구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수다 떠는 재미에 푹 빠진 김양은 늦은 밤까지 울어대는 카톡 소리에 잠을 설쳐도, 수업시간에 카톡을 주고받다가 선생님께 꾸중을 들어도 학교생활이 즐겁기만 했다. 그러나 4월에 접어들면서 김양의 카톡은 더 이상 울어대질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양의 페이스북에 김양이 중학교 시절 왕따를 당하던 사진이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다시 한 번 지옥 같은 학교생활을 견뎌내야 했다.

중학 동창생이 페이스북을 통해 그녀가 왕따였던 사실을 폭로하면서 고등학교 친구들도 그녀를 괴롭히는 데 동참하게 된 것이다. 같은 반 친구들이 공유하던 반톡방은 ‘왕따방’으로 명명되어 방치되었다. 친구들은 그녀를 쏙 뺀 채 새로운 반톡방을 만들어 공유하고 있었다.

중고생 20%가 사이버불링 가담 경험


▎현재 대한민국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91%나 된다. 최근 스마트폰을 이용한 ‘사이버불링’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페이스북에는 김양의 중학 시절 사진과 모욕적인 합성사진이 돌아다녔고, 본 적도 없는 동급생들로부터 악플이 수도 없이 올라왔다. 급기야는 누군가에 의해 김양의 개인 정보와 연락처가 음란 사이트에 올려지면서 김양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원조교제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파악한 김양의 부모는 이 사실을 학교 측에 알렸으나 가해자들은 1명이 강제전학, 1명은 봉사활동이라는 가벼운 처벌만 받았을 뿐이다. 김양은 등교를 거부한 채 정신과 병원에서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사이버불링의 유형도 다양하다. 카카오톡 대화방에 피해 학생을 불러놓고 다수가 욕설을 퍼붓는 ‘떼카’, 피해 학생이 대화방을 나가도 자꾸 초대해 괴롭히는 ‘카톡감옥’, 대화방에 피해학생을 초대한 뒤 한꺼번에 나가버려 피해학생만 남게 하는 ‘카톡방폭’, 이름은 적지 않지만 누구나 알아볼 수 있도록 특정학생을 향한 비방글을 올리고 조롱하는 ‘저격 글’ 등이 그것들이다. 물리적인 폭력은 없더라도 언어적, 심리적으로 상대를 괴롭히는 사이버불링은 갈수록 진화되고 교묘해지고 있다.

교육부의 ‘2015년 2차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들어 학교폭력은 20% 이상 줄어들었지만 사이버불링은 지속적인 증가추세에 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2014년 전국 중고생 4000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사이버불링의 피해를 당한 적이 있다는 중고생은 27.7%에 이른다. 사이버불링에 가담한 경험이 있다고 대답한 학생도 19.4%나 됐다.

피해 유형을 살펴보면 남학생의 경우는 사이버스토킹(거부의사를 표시해도 계속적으로 문자나 사진 등을 보내 공포심과 불안감을 유발하는 행위)이나 사이버갈취(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이용해 돈이나 사이버머니, 캐릭터 등을 요구하거나 데이터, 와이파이를 갈취하는 행위)가 많았던 반면, 여학생들은 카톡이나 SNS 등을 통한 왕따가 가장 많았다.

스마트폰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사이버폭력은 교실에서 당하는 폭력보다 더 치명적인 정신적, 심리적 고통을 초래한다고 한다. 학교폭력 예방과 근절을 위한 NGO단체인 (재)푸른나무청예단의 학교폭력 SOS지원단 최민희 팀장은 “또래관계를 중시하는 아이들은 카톡감옥처럼 그 안에서 옴짝달싹 못하도록 갇혀서 집단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무시하거나 저항할 수 없다. 학교생활에서 완전히 단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견디어 내야만 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최 팀장은 또한 “전통적인 학교폭력에 비해 사이버불링은 시공간을 초월해 24시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만큼 피해학생들의 공포와 두려움은 훨씬 크다”고 말했다. 사이버불링이 청소년들에게 어른들로서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심각한 심리적 외상을 줄 수 있다는 경고다.

심리상담 전문가인 곽소현 경기대 교수도 사이버불링의 위험성에 대해 “비가시적인 공간에서 남들이 알지 못하는 은밀한 따돌림을 당하는 피해자들은 정신적으로 더 고통스러워한다”고 지적한다. 전통적인 학교폭력은 물리적인 힘이 행사되기 때문에 피해자의 상처 등 증거가 눈에 띄고 선생님이나 부모님들이 개입하기 쉽다. 즉 피해자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생긴다. 이에 비해 사이버불링은 학생들의 스마트폰 등 어른들이 볼 수 없는 공간에서 벌어진다. 그 경로를 파악하거나 개입하기가 어려운 이유다. 피해자 본인들도 정신적인 폭력에 대해서는 혼자서 감당하려 하기 때문에 더 궁지에 몰리는 경향이 있다.

사이버불링은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에서 이루어지고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가해자들이 죄책감을 느끼기 어렵다. 현장을 목격한 학생들도 농담이나 장난쯤으로 치부하고 가세하게 되면서 엔터테인먼트화하는 특징을 가진다. 파급력도 엄청나다. 전통적인 괴롭힘은 주로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데 비해, 사이버불링은 SNS 등을 통해 다른 학교나 다른 지역까지 관계의 고리가 연결되기 때문이다. 전학을 간다고 해도 끝없이 따라붙는다. 즉 피해학생들이 등교를 거부하거나 전학을 가더라도 사이버불링의 피해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심한 경우에는 김양처럼 연락처 등의 개인정보가 인터넷에 유출되어 또 다른 심각한 피해를 초래하기도 한다.

사이버불링은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기 쉽다는 점이 문제다. 곽 교수는 “피해를 당하던 학생들이 가해자 아이디를 도용하거나 해킹을 해서 인터넷상에 개인정보를 퍼트리는 방식으로 복수를 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고 말했다. 피해가 가해자를 만들어내는 악순환에 주의해야 한다는 경고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실태조사에서도 사이버불링 피해와 가해경험을 동시에 가진 청소년들의 비율이 13.1%로 높게 나타났다. 특히 사이버불링 피해경험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살펴본 결과 사이버불링 가해경험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피해가 피해를 부르는 악순환


▎올해 4월에 발생한 구마모토 지진은 16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국가적 재난이었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사이버 상에서 지진 피해자들과 아픔을 같이하려는 일부 명사의 선행을 왜곡해 공격했다. / 사진·중앙포토
최민희 팀장 역시 “최근에 가장 문제가 되는 신상털기나 유포를 보면 피해가 피해를 부르는 식으로 발생한 경우가 많은데, 정작 본인들은 이것이 사이버폭력이라는 사실조자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디지털 문화에 대한 교육을 통해 사이버불링의 실체와 심각성을 확실히 인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세계 최고의 인터넷 강국 한국의 사이버불링 문제는 비단 청소년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학생이나 직장인들 역시 카톡 왕따에 시달리고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 난무하는 언어폭력이 피해 당사자들을 자살로 내몰기도 한다. 2007년에는 가수 유니가 악플을 비관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으며, 여배우 최진실의 자살에서도 인터넷상의 찌라시 유포와 악플이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헤어진 연인에게 보복하기 위해 수치심을 자극하는 동영상이나 사진을 올리는 일명 ‘리벤지 포르노’도 심각한 사이버폭력의 하나다. 인터넷상에서는 익명 뒤에 숨어서 고인까지 조롱하고 모욕하는 무자비한 악플러들이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집단주의 문화가 성인들의 사이버불링의 한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스스로가 존재감을 확보하지 못한 채, 어딘가에 소속되어 상호 의존하면서 약한 자의식을 확인받고자 하는 성향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곽 교수는 “악플러들의 심리를 살펴보면 사회적으로 어딘가에 편입되지 못한 것을 사이버 상에서 남을 공격하는 일에 동참함으로써 해소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곽 교수는 또한 성인들의 사이버불링 예방을 위해 시민의식과 소셜 스킬(social skill)을 증진시키는 국민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상대를 존중하는 문화를 확립해야 한다. 대인관계 증진이나 소셜 스킬을 높이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 상대방이 지금 어떤 감정인지, 자신의 글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등 감정이입을 할 수 있도록 배우고 신경 써야 한다. 언어라는 무기를 흉기로 사용하지 않도록 기본적인 의사소통의 룰을 배워야 할 필요성이 있다.”

사이버불링에 대한 계몽과 교육도 필요하다. 최민희 팀장은 “현장에서 보면 사이버폭력에 대한 어른들의 민감도가 너무 떨어진다. 아이들이 신고해도 선생이나 학부모가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그저 단순한 장난이나 놀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말했다.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사이버불링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사이버 폭력은 학교폭력 차원이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로 인식하여 국민적 차원의 대처와 예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시민의식 실종된 일본의 사이버 문화


▎섬나라 특유의 폐쇄성으로 타인과의 차이에 민감한 일본인들은 이질적인 것을 배척하려는 본능이 있다. 교복이나 유니폼은 개개인의 차이를 상쇄시키는 역할을 한다. / 사진·중앙포토
지난 4월 14일 진도7의 일본 구마모토 지진으로 총 49명의 사망자와 1684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의 상처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일본사회에 다시 한 번 큰 상처를 주었다. 이 국가적인 대참사에 많은 일본인이 자신의 블로그나 SNS를 통해 아픔을 공감했다. 구마모토시에 거주하는 여배우 이노우에 하루미는 자신의 블로그에 지진으로 인해 완파된 자택을 공개했다. 텐트에서 생활하게 된 가족의 일상을 중심으로 지진피해자들의 고통을 전달하고자 했다. 그러나 네티즌들로부터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 돌아왔다.

“힘든 사람이 당신뿐인가?” “스스로를 불쌍하다고 어필하는 게 짜증난다” 등의 악플이 쇄도했으며, 그녀는 결국 “지금으로서는 더 이상의 괴로움은 견디기 힘들다”며 5일 만에 블로그를 폐쇄했다. MLB 텍사스 레인저 소속의 일본인 투수 다르빗슈 선수의 전 부인이자 인기모델인 사에코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500만 엔의 지진성금을 낸 것을 인증했다. 하지만 그녀의 선행에도 “어차피 다르빗슈의 돈이잖아!” “돈 많은 거 자랑하지마” “위선자!” 등의 악플이 폭주했다. 모델 겸 배우로 인기 높은 니시우치 마리야는 자신의 트위터에 총무성 홈페이지에서 인용한 비상시에 지참해야 하는 물건 리스트가 그려진 일러스트를 게재하고 자신의 셀카를 함께 올려 네티즌의 질타를 받았다. “자아도취가 심하다” “재난을 자기 이름 파는데 이용하지 마” “당신 셀카도 필요물품인가?” 등의 비난 댓글이 넘쳐났다. 그녀는 해당 트윗을 삭제하고 “현 상황에서 제 말과 행동으로 불쾌하셨던 분들에게 사과드립니다”라는 사과문을 게재했다.

전 일본대표 피겨스케이트 선수인 안도 미키는 지진 발생 다음날인 4월 15일 약혼자인 하비엘 페르난데스 선수의 생일을 축하하며 자신과 그의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네티즌들로부터 융단폭격을 당했다. “배려가 너무 없다” “지진으로 울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너무 한다” “지진에도 자기 어필만 하는군, 성격이 너무 나쁘다” 등등.

당시의 악플은 연예인들만을 표적으로 삼지 않았다. 자위대 근무 경험이 있다는 한 남성은 “구마모토의 여고생들은 구호작업을 하는 자위대 차량을 보면 손을 흔들어 응원해달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려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여성을 우습게 본다”는 말부터 “자위대는 롤리타 컴플렉스 집단인가?” “위안부추진위원인가?” “미성년매춘의 예비범이다” 등의 욕설이 난무했다. 이용자 수 1000만 명을 넘는 일본 최대 게시판 전용 사이트인 2채널에는 “구마모토 현민들이 지진피해를 입었다고 너무 나댄다. 우리들은 위선과 선전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서 끝까지 싸울 것이다”라는 선전포고까지 등장했다. 지진으로 매스컴의 관심이 집중되고 각지에서 성금과 격려가 이어지는 현상을 ‘위선’과 ‘선전’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처참한 상황에도 흐트러지지 않는 질서정연한 모습과 의연한 자세로 세계를 감동시킨 성숙한 시민정신과는 정반대되는 분위기가 아닐 수 없다.

일본 총무성의 <정보통신백서(2014년도)>에 따르면 일본 국내 인터넷상의 악플과 비방은 트위터과 페이스북 등 SNS의 일본서비스가 시작된 2008년 이후 서서히 증가하다가 2013년에 그 절정을 이루었다고 한다. 원인은 인터넷 사용에 관한 교육의 부재와 인터넷을 익명으로 사용하는 습관에서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2013년 여름, 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아이스크림 케이스 안에서 낮잠을 자는 듯한 자신의 모습을 페이스북에 인증하자 삽시간에 수천 건의 비난 글이 쇄도했다. 결국 당사자는 전문학교 퇴학처분, 해당 편의점은 본사로부터 프렌차이즈 계약을 해지당하고 문을 닫게 되었다.

정의파들은 왜 남을 공격하는가


▎영화 <도쿄소나타>의 한 장면. 사회적 지위에 어울리는 평가를 얻지 못한 중년남성은 타인의 행동에 대해서는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경향을 보인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 사진·중앙포토
2013년 6월에는 아와테현의 현의원(縣議員)인 고이즈미 미츠오 씨가 사망한 사건의 원인에 인터넷 악플이 있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당시 고이즈미 미츠오(56) 의원은 한 종합병원에서 이름이 아닌 번호로 불린 에피소드를 자신의 블로그에 소개한 후, “여기는 형무소인가? 병원에서 번호로 불리다니…”라며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분노에 공감하지 않는 네티즌들이 그의 블로그를 공격하고 나섰다. 특히 “화가 나서 계산도 안하고 돌아왔지만 지금까지도 분이 안풀린다”는 내용이 네티즌들의 ‘정의감’을 자극해 그의 블로그는 삽시간에 악플로 도배되었다. 고이즈미 의원은 사건발생 하루 만에 해당 글을 삭제하고 사과문을 올렸지만 공격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후지 TV까지 취재에 나서면서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져갔다. 고이즈미 의원은 곧바로 사과회견을 열었지만 비난은 수그러들지 않았고 결국 자신의 차 안에서 의문의 죽음이라는 형태로 인생을 마감했다. 그의 죽음에 대해 경찰은 “자살 가능성이 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에도 “죽을 사람이 죽었는데 무슨 문제?” “쓰레기가 하나 치워졌으니 일본이 조금 더 깨끗해졌다”는 악플이 여전히 인터넷을 장식했다.

메이지 대학 교수이자 신경정신과 전문의인 이와나미 아키라 씨는 자신의 저서 <타인을 비난만 하는 사람들(他人を非難してばかりいる人たち)>에서 인터넷상에서 타인을 공격하는 네티즌들은 보기에는 ‘정의파’를 가장하고 있지만, 그들의 목적은 남을 철저하게 규탄하고 상처를 입히고 짓밟아버리는 데 있다고 분석한다. 이와나미 씨는 ‘공격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비난’이 사이버 공간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의 세 가지 요인을 들고 있다.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이웃’의 범위가 넓어졌고 이를 통해 남의 약점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인터넷의 익명성이 목소리를 과격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사회가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규정준수)를 중시하게 되면서 관용성이 사라지고 있다. 즉 자잘하게 마련된 규정과 룰을 위반하는 사람들이 발각되었을 때에 “나는 지키고 있는데…”라는 억압된 기분의 반동으로 비난의 불길이 과도하게 타오른다. ▷섬나라 특유의 폐쇄성으로 인해 자신과 다른 ‘차이’에 민감한 일본인들은 조금이라도 이질적인 것에 대해 배척하려는 본능이 있다. 결과적으로 이상의 3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르상티망(ressentiment: 강자에 대해 평소에 느끼는 분노와 복수심)을 품기 쉬운 일본인들은 공격할 수 있는 배출구를 발견하게 되면 감정이 순식간에 증폭되어 일상에서 억누르고 있던 공격적인 행동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한편 악플 등의 인터넷 비방전에 참가하는 사람들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있다. 국제대학교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센터의 야마구치 신이치 조교수는 약 2만 명의 네티즌을 대상으로 한 ‘인터넷 이용에 관한 앙케이트’를 분석,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설전에 가담하기 쉬운 사람의 특징을 정리했다. 그에 따르면 “자녀가 있는 고수입의 중년남성이 인터넷 설전에 가담하는 확률이 높다”고 한다. 사이버 상에서 종횡무진하며 문제를 일으키는 넷우익(ネトウヨ: 인터넷을 주요 활동 무대로 삼아 한국인과 중국인 등의 외국인에 대한 비방과 공격을 일삼는 집단)에 대해서도 비슷한 주장이 제기됐다. 넷우익 현상을 연구해 온 후루야 츠네히라 씨는 2013년 1000명의 넷우익을 대상으로 인터넷조사를 실시, “그들의 평균 연령은 38.1세, 수입은 일본 평균인 450만 엔(연봉)보다 높았으며, 학력은 63%가 대졸 이상이었다”고 주장했다. 비교적 젊고 저소득, 저학력 층이 많을 것이라고 여겨졌던 넷우익의 기존 이미지와는 크게 동떨어진 조사결과였다.

인터넷상의 공격, 생존과 직결된 문제일 수도


▎사이버불링은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이다.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사이버폭력 교육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 사진·중앙포토
<심술쟁이가 되어가는 일본(‘意地惡’化する日本)>의 저자인 사상가 우치다 다츠루 씨는 인터넷상에서 비난과 공격을 일삼는 중년남성들의 만행은 ‘충족되지 못한 아저씨’들의 보상 심리에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현대사회를 ‘화폐경제’와 ‘평가경제’로 규정지으며 고수입의 중년남성들은 화폐경제(수입)에서는 우위에 있으나 후자인 ‘세상으로부터의 좋은 평가’는 낮기 마련이다. 이로 인해 사회적인 지위와 경제력에 비해 주관적인 만족감과 크게 떨어진다고 보았다. 즉 과거에는 가부장적인 사회와 기업문화로 인해 타인들로부터 존경과 인정을 받았던 중년남성은 현대에 들어오면서 자신의 지위에 어울리는 평가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고독감, 허무함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일수록 타인에 대한 요구수준이 높으며 타인의 행동과 발언에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야마구치 조교수의 연구에서는 사이버상의 악플과 공격이 단지 수십 명 혹은 수 명에 의한 공격이라는 흥미로운 분석도 제기됐다. 그의 조사에 따르면 인터넷상의 비방전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전체의 1.1%, 그중에서 2번 이상 참가해본 사람은 0.6%에 지나지 않는다. 2채널의 창시자이자 사이트 운영자인 니시무리 히로유키 역시 2채널에서 비방과 공격을 일삼는 네티즌은 극소수로 본다. 5~6명의 실행범이 반복적인 공격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분석이다. 야마구치 조교수는 “(피해)당사자들의 과도한 반응은 오히려 문제를 크게 만들 경우가 있다”면서 “흔히 세상의 모든 사람으로부터 비난받고 있다고 느끼게 되지만, 사실은 극히 일부의 의견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유의하면 좀 더 냉정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소수에 의한 공격이라 할지라도 어느 날 무심코 올린 글이 도화선이 되어 사이버상에서 이름 모를 사람들로부터 숱한 비난을 받게 되면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릴 뿐 아니라 실생활에도 큰 피해를 초래한다. 자신의 개인정보가 유출되어 가족이나 직장이 알려지게 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적지 않다. 블로그나 SNS를 주 수입원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인터넷상의 비방과 공격은 생존과도 관련된 문제다. 최근에는 이러한 사이버상의 비방과 악플에 대한 피해보상 보험이 등장했다.

보험회사 아카데미디어는 2014년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넷상의 공격으로 인한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엔조엘’이라는 상품을 출시했다. 개인이 운영하는 홈페이지나 블로그, 트위터 등이 심한 중상이나 비방을 당한 경우 그 손해를 보상해주는 보험이라 한다. 구체적인 보상내용으로는 중상이나 비방으로 해당계정을 폐쇄한 경우는 위로금으로 10만~100만 엔까지의 보상금을 지급하며 사태가 수습될 때까지 매일 소정의 보상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인터넷 여론에 민감한 법인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 상품도 등장했다. 해당법인의 홈페이지와 SNS계정 등을 24시간 모니터링 하여 문제가 일어날 만한 내용을 삭제하는 등의 관리로 악플을 사전에 방지하여 비즈니스 리스크를 줄인다는 것이다. 인터넷 여론을 모니터링 한 리포트를 매주 작성해주며, 긴급사태 발생 시에는 1일 이내에 긴급 콜센터를 개설해 문제에 대처하는 서비스도 포함되어 있다.

SNS 등에 의한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인터넷 사용의 절제를 주장하는 전문가도 있다. 보통의 SNS는 공개범위를 개인이 설정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만큼, 스스로 관리가 가능한 범위 안에서 교제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는 것이다. 또한 글을 올릴 때는 ▷내용에 대해 일말의 불안도 느끼지 않는지 ▷글이 인터넷상에 널리 유포되어도 괜찮은지 ▷업무상 관계자가 봐도 문제가 없을지 ▷가족들이 알아도 괜찮은지 ▷특정인이나 계층을 언급한 경우는 당사자가 보아도 무관한지 등을 꼼꼼하게 체크하는 것이 좋다. 전문가들은 이런 리스트를 마련해두고 글을 올리기 전에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것을 조언한다.

- 김경철 일본 고단샤 서울통신원(뉴스잡지 부문)

201610호 (201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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