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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르포] 180명의 무교인(巫敎人) 민족통합 기원 백두산 방문기 

“북한 핵 위협과 남한 강경노선 마주 달리는 기차와 같아” 

글·사진 박성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1950년대부터 죽어간 숱한 영령의 치유, 화해가 통일로 가는 지름길 ... 작두 타던 무당에게 내린 신령 “국민을 편안하게 도와주겠다” ... 천지의 영험한 기운을 받은 무당·박수들이 말하는 신과 인간의 세계
무교인들의 모임인 사단법인 ‘대한경신연합회’ 소속 무당(무녀)과 박수(남성 무당)들이 8월 말 백두산 천지를 찾아 통일 기원 기도회를 연다는 소식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장백산’으로 불리는 중국령 백두산은 한국인들에게 천지로 오를 수 있는 유일한 루트다. 200명에 가까운 무당과 박수가 몰린다니. 게다가 돌아오는 길에서는 북한 신의주와 마주보는 중국 국경도시 단둥에서 유람선을 타고 압록강을 오르내리며 통일의 염원도 되새긴다고 했다. 그들에게 비칠 남북관계의 미래가 덩달아 궁금해졌다. 인천~단둥~랴오닝성 봉황산~지린성 백두산~ 압록강~단둥~인천으로 이어지는 5박6일의 여정이었다.


▎백두산에 오른 무교인들이 천지를 향해 합장한 채 마음에 품은 소원을 빌고 있다.
“서해 먼바다 위론 노을이 비단결처럼 고운데/ 나 떠나가는 배의 물결은 멀리멀리 퍼져간다/ 꿈을 꾸는 저녁 바다에 갈매기 날아가고/ 섬마을 아이들의 웃음소리 물결 따라 멀어져간다(…)”

8월 24일 저녁 인천 연안부두를 떠난 유람선 단동(단둥) 페리호는 서해의 물살을 가르며 중국 동항을 향해 내달렸다. 저녁 무렵 갑판에서 음미하는 서해 낙조는 부부 가수 정태춘·박은옥의 노래 ‘서해에서’ 노랫말이 일러주는 풍광 그 자체였다. 어두워지는 서해 바다에 섬 그늘은 길게 드리웠고, 뱃길에 찰랑대는 바람은 갑판 난간에 기댄 채 수평선을 응시하는 나그네의 볼을 간지럽게 한다.

뜻 모를 우수에 잠겨 얼마쯤 지났을까. 수평선 너머로 해가 떨어지고 사방이 적요한 어둠에 잠길 즈음 뱃길 오른편 하늘에는 별들이 총총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전 시골집 하늘에서나 보았을 법한 북두칠성, 북극성, 카시오페이아 성좌가 선명한 자태를 드러내고, 그 너머의 은하수는 인간이 영원히 닿지 못할 무한한 우주공간으로 끝없이 흘러가는 듯했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는 좀체 접하기 어려운 별들의 향연이 불빛 한 점 찾을 수 없는 서해 바다 위에 펼쳐졌다.

서해바다 수놓은 촛불의 행렬


▎중국 단둥항을 출발한 압록강 유람선 위에서 북녘 땅을 향해 큰 절을 올리는 대한경신연합회 회원.
바다 위로 쏟아져 내릴 듯한 별들을 헤아리던 기자는 갑자기 ‘쟁 쟁 쟁’ 하고 울려 퍼지는 소리에 돌아보니 아니 이게 웬일인가! 믿기지 않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유람선 고물 3층 갑판 둘레에 쳐진 난간을 빙 둘러가며 수십 명의 승객이 저마다 제물을 정성껏 차린 자리 위에 촛불을 켜고 바다와 하늘을 향해 기도를 하거나 연신 큰 절을 올리는 게 아닌가.

지긋이 눈을 감은 어떤 이는 한 손에 방울, 또 한 손엔 부채를 들고 주문을 외었고, 마치 신이 내린 듯 선 채로 두 팔을 하늘로 벌려 뭔가를 갈구하듯 춤을 추는 젊은 여성도 보였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이런 장면은 4층 승조원 사무실로 가는 뱃머리 어딘가에서도 벌어졌다고 한다. 이들은 이른바 ‘기(氣)를 받기’ 위해 백두산 천지 기도순례에 나선 대한경신연합회(이사장 이성재, 이하 경신회) 회원들이다. 흔히 무당, 박수로 부르는 무업(巫業)에 종사하는 이들이 자연과 신령으로부터 영험한 기운을 받고자 갑판에서 무구(巫具)를 동원해 의례를 올린 것이다. 배를 통째로 전세 낸 건 아니지만 3층 갑판은 분명 하늘과 땅, 바다, 바람, 별 등 자연에 깃든 신령들에게 치성(致誠)을 올리는 무당과 박수들의 신당(神堂)과 다를 바 없었다.

수원에서 신당을 운영하는 무당 김승희 씨는 “기운이 좋다고 여겨지는 자리에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신령님께 기도를 올리고 제사를 지내는 게 무당과 박수”라고 설명했다. 바다를 가르는 유람선 위에서는 ‘서해용왕’, 또 하늘을 향해서는 칠성님, 큰 산과 깊은 강에서도 그곳에 깃든 영령과 마주한다는 것이다. 바로 신령과 무당의 접신(接神) 과정이란다. 앞서 갑판에서 어떤 무당은 어린아이의 영혼이 빙의(憑依: 혼령이 옮겨 붙음)된 듯했다.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중년 여성을 향해 어린아이의 음성으로 칭얼대듯 원망과 분노를 쏟아내기도 했다.

밤을 새워 12시간가량을 달린 유람선은 이튿날 아침 중국 단둥 인근의 동항에 닿았다. 랴오닝성, 지린성 육로를 나흘간 오가는 관광버스 투어의 시작이다. 지린성으로 가는 도중 랴오닝성 봉성시 소재 봉황산(해발 836m)에서 차가 멈춰 섰다. 아니나 다를까 이들은 산자락에 자리한 삼신각, 전각, 연못 등에 기도할 자리를 폈다. 고구려 오골성터로도 알려진 봉황산은 화강암석이 절경을 이루고 산세가 험준해 도교의 기운이 강하고 신령이 깃든 명산이라는 설명이 따랐다.

이들과 동행하면서 자연스레 갖게 되는 의문점 하나. 도대체 신은 누구에게 내리는 것이며, 인간은 언제 어떻게 접신을 하는 걸까? 무당은 강신무와 세습무로 나뉜다. 신이 들려서 무당이 되면 강신무, 집안 내림의 무업을 승계하게 되면 세습 무가 된다. 대부분의 강신무는 신이 내릴 때 이른바 무병(巫病)을 격렬하게 겪는다고 무당 김승희 씨가 말했다. “멀쩡하던 사람이 금전, 재산상의 재앙을 겪는 것은 물론이고 몸이 망가지거나 가족이 비운에 가면서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렇게 혹독한 시련을 안겨야 신령이 원하는 제자가 무릎을 꿇기 때문이다.” 김씨의 신딸(수양딸이 돼 대를 잇는 젊은 무당)도 젊은 시절 가족이 눈앞에서 참변을 당한 충격에다 원인 모를 질병으로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서야 신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신령은 자신이 점 찍은 사람을 어떻게든 무당, 박수가 되도록 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이다.

치마 끌면서 오거나, 저벅저벅 걸어오는 신령들


▎이성재 대한경신연합회 이사장(왼쪽)이 백두산 자락의 소천지에서 남북의 화해와 통일을 기원하는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 사진제공·대한경신연합회
일반인들이 무심히 길을 가다가 예컨대 ‘신령’이든 ‘귀신’과 맞닥뜨린다면 까무러치듯 놀랄 것이다. 무교인들은 어떨까? 이성재 경신회 이사장은 “늘 그 속에서 사니까 놀랄 일이 없다”면서 “아 오셨구나 하고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오는 방식에 대해서도 물었다. “눈을 감고 기도하면 치마를 끌면서 오는 느낌이 드는가 하면, 저벅저벅 걸어오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치성을 드리면 갑자기 싹 나타난다.”

30년 가까이 서울 은평구에서 무업에 종사해온 무당 이평자(54) 씨는 처음 보는 사람의 얼굴만 보고서도 그의 과거와 현재를 얼추 맞춘다고 했다. 누군가에게 영매(靈媒)의 세계와 신령의 존재를 설명할 때는 먼저 상대방을 읽어냄으로써 무장을 해제시키는 스타일이다. 이씨는 “영(靈)은 존재한다.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것도 있다”고 강조했다. “일반인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천지신명이 영감을 준다. 그래서 얼굴만 보면 다 떠오른다. 조상의 내력까지 다 읊으면 끝내 신령의 존재를 수긍하게 된다. 모든 성직자도 우리와 같은 맥락에서 경험하지 않겠나.”

8월 26일 오후 드디어 중국 방문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백두산 천지를 눈앞에 뒀다. 백두산 북파(北坡, 북쪽 비탈)로 가는 거점도시 이도백하를 지나 북파산문에 이를 즈음 현지 가이드가 회원들을 향해 다짐을 받듯이 거듭 이렇게 일렀다. “천지 주변에서는 북, 장구 등 무구 사용은 물론이고 촛불을 켜거나 방울, 부채를 흔드는 일은 엄격히 금지되고 있습니다. 과일, 떡과 같은 음식물을 중국측 관리원들이 문제삼기 시작하면 이후 일정은 모두 꼬이게 됩니다.”


▎신령이 깃든 명산으로 알려진 중국 랴오닝성 소재 봉황산을 찾은 무교인들.
전날까지만 해도 때이른 폭설(보통 백두산의 첫 눈은 9월 초순에 온다)이 내렸다는 백두산은 이날 오후 한국에서 온 180여 명의 영매들에게는 더없이 청명한 하늘과 눈이 시리도록 푸른 쪽빛의 천지를 허락해주었다. 앞에는 민족의 영산 백두산의 장엄한 천지가, 뒤로는 구한말 선조들이 새 삶의 터전을 일군 광활한 만주 벌판이 펼쳐졌다. 반도에서 대륙으로 뻗어나가는 출발점에 선 듯한 기분이 든다.

백두산의 정기를 머금은 천지는 일명 용왕담(龍王潭)이라고도 한다. 방문객의 안전을 위해 무릎 높이로 둘러쳐진 손가락 굵기의 철근 난간 쪽으로 바짝 다가선 경신회 회원들은 다소곳이 두 눈을 감고 천지를 향해 양손을 모았다. 이승과 저승을 잇는 매개자 역할을 하는 이에게 천지는 하늘에 가장 가까이 닿은 이승의 끝이기도 했다. 다들 백두산 정상과 천지가 주는 고요와 신성한 기운을 온몸으로 흡입하려는 듯 심호흡을 하는가 하면 예의 알 듯 말 듯한 주문을 외는 이들도 있었다.

천지 주변을 관리하는 중국인들과 사전조율이 있었던지 준비해온 과일이며, 과자를 천지를 향해 펼쳐놓고 축원하는 회원도 눈에 띄었다. 이 회원은 “백두산과 천지에 사는 신령님께 간절한 염원을 빌었다”면서 “관리자들도 사람인지라 적당히 구슬리면 웬만한 행위는 제지하지 않는다”고 빙긋 웃었다.

경신회는 출국에 앞서 백두산 기도제에서 낭독할 ‘출정선언문’을 미리 준비했다. 나라와 민족의 안녕과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았다고 했다. 천지에서는 일체의 정치적, 집단적 행사도 금하는 중국측 방침에 따라 북쪽으로 약 3.8㎞ 거리에 있는 소천지로 장소를 옮겨서 기도제를 봉행할 수 있었다. 소천지에서 신령들에게 제의를 올린 이성재 이사장은 회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출정선언문을 낭독했다. 그는 “백두산 그곳은 백두천왕이 계신 곳이고 우리 민족 최초의 공동체인 신시(神市)가 열린 곳”이라며 “하지만 우리가 백두산을 향하는 마음은 편할 수만은 없다”고 남북이 칼끝 대치를 거듭하는 한반도 정세를 다음과 같이 열거하기도 했다.

“세계 4강(强)은 시대를 초월해 우리를 압박”


▎대한경신연합회 소속 무당이 백두산 인근의 한 조선족 식당에서 제물을 앞에 두고 굿을 하고 있다.
“한반도 북한의 핵무기 위협과 이에 대응하는 우리 남쪽 정부의 강경노선은 마주 달리는 기차와도 같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세계 4강의 각축은 시대를 초월해서 조금의 변화도 없이 우리를 압박하고 있으며, 일제하의 암흑만큼 분단과 북핵 위기의 고통이 상존합니다. 우리 내부 위기는 더욱 절박합니다. 정치혼란과 경제위기 그리고 사회적 갈등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이 이사장은 나아가 “민족 내부의 슬기로 이러한 난국을 극복해야 하기에 오늘 우리들은 그 근원의 힘을 백두 천왕이 신 한아버님께 얻고자 한다”면서 “부디 우리들의 정성을 거부하지 마시고 받아주소서. 그래서 민족의 이름으로 오늘의 난국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기를 바란다”고 국태민안을 기원했다.

기도제를 마치고 하산하는 길에 이 이사장에게 남북관계, 통일 등 민족의 장래에 관한 영감이나 계시가 있었는지 물어보았다. 잠시 생각에 잠기던 이 이사장은 “당분간은 어떤 기대나 희망을 품기 어렵다”고 조심스레 운을 뗐다. 박근혜 정부 임기 동안에는 얼어붙은 남북관계에 해빙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이리라. 그는 “아마도 그게 여당이든 야당이든 다음 정부가 들어서야 남북관계가 풀리는 계기를 맞이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 무교인의 의견에는 궁극적으로 자신이 모시는 신령의 목소리가 반영된다는 점에서 씁쓸하고도 묘한 여운을 남기는 대화였다. 통일은 정말 아주 멀리 있는 것일까?

천지를 다녀온 날 밤, 기자는 ‘신 내린’ 무당이 작두를 타는 장면을 두 차례 마주했다. 백두산 북파에서 버스로 5시간 거리에 있는 퉁화시 인근의 한 조선족 음식점. 경신회 소속 일부 회원이 굿판을 열었다. 한 번은 집안에 운수가 형통하기를 비는 ‘재수굿’, 또 한 번은 말문을 터서 인정을 받는 ‘불림 굿’에서 무당의 진면목을 생생하게 접하게 됐다.

굿은 한 거리를 하는 데 족히 3~4시간이 걸렸다. 장구, 대금, 피리, 아쟁 등을 하는 악사들의 연주에 맞춰 무당이 넘실넘실 춤을 추고, 아랫배에서 울려 나오는 듯한 애절한 목소리로 사설을 읊조리자 굿판은 신명으로 서서히 달아 올랐다. 어느 순간 신이 내리기 시작했을까? 재수굿을 진행하던 무당 추은숙 씨는 작두가 준비된 마당을 향해 냅다 뛰쳐나갔다. 굿을 구경하는 이들도 덩달아 건물 출구로 우르르 몰렸다. 미리 준비된 날카로운 작두 앞에 멈춰선 무당은 버선을 벗더니 제물로 바쳐진 돼지를 양 어깨에 들춰 업었다. 이어 사람의 어깨 높이에 차려진 작두를 타고자 칼날 위에 올라섰다. 주변은 일순간 숨을 죽였다.

장구와 아쟁 등 악기 소리에 맞춰 조심조심 작두를 타던 무당은 공수(신이 인간의 입을 빌어 의사를 전달하는 일)를 시작했다. “내년 대선에서… 종묘사직을 편안하게 하신 사도세자님이 아니시더냐. 이 나라가 너무 어지럽고 하다 해서 세상에 편안하게 도와드리리라. 낯선 인간을 보더라도 화나지 않고 억울하지 않게 보아드리리다.” 내년 대선에서는 국민들을 편안하게 하고 화합을 추구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리라는 게 정치 관련 공수의 요지였다.

내년 대선은 국민을 사랑으로 안고 통찰력 가진 이에게?


▎재수굿을 주관하며 작두를 탄 무당 추은숙 씨는 내년 대선에 관한 공수를 하기도 했다.
이어진 불림굿에서는 신이 내린 지 3년째라는 김나현 무당이 나섰다. 스승인 이성재 이사장에게서 3년 동안 배운 무업을 검증받고 무당으로서 말문을 트게 하는 의식이다. 김나현 씨 또한 작두에 올라 공수를 했다. 김씨는 옆에 있던 사람들에게 액운을 피할 방법과 가려야 할 장소를 일러주기도 했다.

무당굿은 원래가 흥겹고 재미 있으며, 해학과 유머가 흐른다. 경외의 대상인 신령들이 친근한 대화 상대나 희화화된 영혼으로 다가온다고 <무속, 신과 인간을 잇다>는 설명한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주관한 한국문화사 간행 시리즈 38번 출판물인 <무속, 신과 인간을 잇다>는 “무당굿에서는 제의성과 신성성뿐만 아니라 놀이성과 세속성이 공존하고 있다”고 규정했다. 그럼 신이 내릴 때는 어떤 기분이 들까? 작두를 탄 두 사람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신이 내린 지 3년이 됐다는 무당 김나현 씨는 백두산 인근 퉁화시에서 불림굿을 진행했다. / 사진제공·대한경신연합회
신은 어떤 방식으로 오나?

추은숙 씨: “말로 어떻게 표현하긴 어렵다. 굿의 내용이 다 틀린지라. 기분이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 일단 신령이 오시면 머리가 맑아진다. 정신도 집중된다. 그게 아마 신령님과 나와의 코드일 것이다. 어떤 신령님이 오시느냐에 따라 차이도 있다. 여신이 올 수도 있고 남신이 오기도 한다. 작두를 탈 때도 장군님이 오시기도 하고 여신할머니가 오시기도 한다.”

김나현 씨: “원래 한국에서 중국으로 오는 페리호 위에서 불림 굿을 할 계획이었는데 스케줄이 다 깨졌다. 굿을 못하게 될 줄 알고 마음을 졸였는데 고맙게도 이번에 퉁화시에서 생각지도 않게 너무 잘했다. 마음은 목욕하고 나온 듯 개운하다.”

작두를 탈 때 내년 대선에 관한 얘기를 했는데 그것도 신령의 말씀인가?

추씨: “신령님께서는 국민을 자식처럼 깊이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분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까 싶다. 지금 많은 국민의 마음이 아픈 상황이다. 스트레스도 많고 불안하다. 국민을 사랑으로 안아주고 통찰력이 있는 분들에게 신령님의 기회가 가지 않을까?”

개인의 생각인가 신령의 얘기인가?

추씨: “대통령이 아니라 옆집에 사는 이웃 얘기라도 신령님이 얘기를 안 해주시면 모른다.”

천지에서나 작두를 탈 때 남북통일에 대한 계시나 말씀은 없으셨나?

김씨: “남북통일이 안 되는 것은 6·25 전쟁 때 많은 이가 희생된 탓이다. 돌아가신 분들의 영혼이 치유받지도 화해하지도 못한 것이다. 이들의 영혼을 달래지 못하면 통일은 어렵다는 말씀을 내리셨다.”

항상 신령과 함께 있는 건가? 접신하는 일이 힘들진 않나?

추씨: “ 늘 신령님의 말씀이 내린다면 좋고 영화로운 일이다. 그런데 그러면 사람이 살 수 있을까? 늘 접신이 돼 있다면 그건 정말 힘든 일일 것이다. 그래서 필요할 때 신이 나를 찾아오고, 내가 필요할 때 ‘신령님 오세요’라고 하는 것이다. 도력이 높다면 신령님을 더 빨리 오시게 할 수 있겠지. 세상 일이란 모르는 것이므로 신령님이 늘 오실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게 우리 무당이다.”

특정인의 복을 비는 재수굿에서 작두를 타는데 신령이 나랏일을 말해주는 경우도 있나?

추씨: “소천지를 품은 백두산은 고대 신령님들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나라를 아끼고 위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고 재수굿에서도 그런 염원이 전해졌으리라 본다. 신령님도 그에 감응해 통신했을 것이다. 신령의 뜻을 개인이 만들어내지 못한다.”

영혼과 영매의 존재를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


▎퉁화시에서 작두를 탄 무당 김나현(왼쪽)과 추은숙 씨는 신령이 내리면 머리가 맑아진다고 했다. / 사진·김경록
무교인들의 경험은 어쩌면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는 것만 모두 진실은 아닌 것이다. 다시 돌아가 그 시절이 오더라도 나는 영혼과 영매의 존재를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2005년 3월 펴낸 자전적 에세이 <나 돌아가고 싶다>에 초등학교 6학년 시절 목격한 신비로운 무당에 대한 기억을 이렇게 적었다. 술김에 낙동강을 헤엄쳐 건너던 마을 주민이 그만 물에 빠져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마을에서는 용하다는 무당을 불러 망자를 위로하는 초혼굿을 열었다. 무당은 마을 사람들 눈앞에서 깨끗하게 씻은 한 종지 분량의 쌀을 그릇에 담아 이중삼중으로 봉하고선 길다란 끈에다 연결했다고 한다. 그 그릇을 물에 넣은 채 변을 당한 수면 주위를 두 시간가량 배로 빙빙 맴돌았다. 혼백을 그릇에 담는 의식인 셈이다.

무당의 지시에 따라 배가 강변에 닿자 마을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그릇에 쏠렸다. 유족들이 그릇을 감싼 여러 겹의 헝겊을 한 꺼풀씩 벗겨내고 뚜껑을 열었을 때 어린 홍준표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 속에는 짧고 흰 머리카락이 쌀 속에 한 움큼 들어 있었던 것이다. 죽은 자의 머리도 하얗고 짧았던 까닭에 마을 사람들은 혼백이 돌아왔다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게다가 무당의 목소리도 죽은 자의 그것을 그대로 빼다 박았던 모양이다.


▎압록강 유람선에서 기도를 올린 무당과 박수들은 통일이 그리 쉽게 이뤄지지 않으리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 사진제공·대한경신연합회
홍 지사는 “속임수라고 보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의 이목이 집중돼 있었다”면서 “나는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을 수 없었다”고 그 책에 썼다. “믿지 못할 일이 벌어진 그날의 혼 굿에서 나는 영매를 믿을 수밖에 없었고, 사자(死者)의 영혼 문제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불가사의는 존재한다.”

이런 경험은 비단 홍 지사에게 국한되는 건 아닐 듯하다. 한국사회의 많은 지도급 인사가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불가사의’에 이끌려 역술인, 무당, 박수를 찾는다고 무당 이평자 씨는 말했다. “정치인, 고위공무원은 말할 것도 없고 화의 신청을 앞둔 기업인, 심지어 웬만한 대통령 후보들도 다들 액운을 떨치거나 행운을 비는 굿을 이런저런 루트를 통해 한다고 보면 된다.” 점잖은 체면에 내놓고 하진 못해도 물밑에서는 전통의 기복신앙인 무교에 기대는 게 한국의 상류층이라는 뜻이다.

선사시대에서 삼국시대까지 무속은 정치권력을 정당화하고 국가의 통합과 결속을 뒷받침하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했다고 <무속, 신과 인간을 잇다>는 지적하기도 했다. 삼국시대 불교가 전래되면서 무속은 정치적 기능을 상실하게 되고, 지역의 정체성을 확인하거나 지역의 결속력을 뒷받침하는 사회적 기능으로 유지돼왔다는 것이다. 급기야 조선시대 16세기 집권 사림파가 향촌사회를 성리학적 질서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무속적 전통은 배척당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로도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 해방 이후 서구 기독교 문화의 전파에도 불구하고 무속이 갖는 개인적 기능은 온존해왔다. <무속, 신과 인간을 잇다>는 그 이유를 이렇게 분석한다. “무속은 현세이익적 종교다. 무속의 초점은 도덕적 완성이나 내세의 구원이 아니라, 현세에서 고통 없이 건강하게 사는 데 맞춰져 있다. 따라서 무속은 길흉화복이라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에 맞설 수 있도록 한다. 이 점에서는 다른 종교가 무속을 대신할 수 없으며, 무속이 지금까지 존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알쏭달쏭한 ‘신의 말씀’만 남긴 채…


▎이성재 대한경신연합회 이사장은 “신을 향해 항상 마음을 열어둔다”고 말했다 / 사진·김경록
대한경신연합회는 ‘무속인’이라는 용어를 꺼려한다. ‘무속(巫俗)’이라는 말 자체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한국 고유의 정서와 신앙이 담긴 무업을 원시적이고 속된 것으로 비하하는 의도에서 유포한 용어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속인’보다는 무당, 박수 또는 둘을 아우르는 무격(巫覡)이라는 호칭을 선호한다. 무당과 박수가 받드는 세계를 그래서 무업이라고 표현하고 나아가 무교(巫敎), 신교(神敎)를 지향한다는 설명이다. 아직도 혹세무민이라며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이 많지만 확실히 무당과 박수의 세계는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뛰어넘는 기묘한 구석이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 근대화의 급진전과 함께 무속은 미신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하지만 일상에서는 신과 인간의 매개자로서의 무당의 역할은 수천 년의 세월을 이어오고 있다고 경신회 측은 주장한다. 어떤 식으로든 소비자들에게 어필하지 못했다면 합리주의와 과학적 세계관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 이런 비과학적 의식은 존속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는 2016년 <월간중앙> 8월호 인터뷰에서 “우주에는 과학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고 했다. 그는 “과학자들도 자기 방식으로 나온 결론을 현실이라고 얘기는 하지만 그걸 절대적 진리라거나 세상의 전부라고는 말하지 않는다”며 초월적 존재의 가능성을 열어두자고 했다.

경신회 중국 방문의 마지막 일정은 8월 28일 압록강 유람선 기도제였다. 북·중 국경도시 단둥과 신의주 사이는 거리가 짧은 곳이 불과 400m에 달하는 곳도 있다. 유람선에서 바라본 북한 땅은 손에 닿을 듯 지척이다. 중국인 승조원들도 배를 최대한 북한 땅 가까이 몰고 갔다. 강변에서 근무를 서는 초병, 일요일인 이날 뱃놀이에 나선 북한 주민들의 모습도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었다.

인천 연안부두를 출발하던 선상에서와 마찬가지로 압록강 유람선에서도 무당과 박수들의 기도는 끊이지 않았다. 서울 강동구 성내동에서 무업을 한다는 최영희 씨는 남북 관계가 개선되고 북한의 주민들이 궁핍한 상황에서 벗어나기를 염원했다고 말했다. 부친의 고향이 북한이라던 경신회 회원 원영식 씨는 두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원씨는 “조상의 뿌리가 있는 북한 땅에 가까이 오면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면서 “마음에서 어떤 기운이 일어나 애잔한 감정을 가누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또 “남북이 곧 통일되리라 기대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 같은데 내가 접한 신령은 통일은 아주 요원하다고 말씀하신다”고 전했다.

내년엔 19대 대통령선거도 있다. 무교인들이 점치는 정치인들의 새해 운세가 궁금해졌다. <월간중앙>은 간이 설문지를 미래 준비해갔다. 하지만 경신회 측은 난색을 표했다. 회원 개개인이 입장을 표하는 건 자유지만 사단법인으로서 설문을 실시하는 건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안이라며 고사했다. 그러면서도 백두산 자락의 퉁화시에서 신이 내린 말씀을 새겨두라고 했다. “이 나라가 너무 어지럽고 하다 해서 세상에 편안하게 도와드리리라. 낯선 인간을 보더라도 화나지 않고 억울하지 않게 보아드리리다.” 무(巫)는 하늘과 땅 사이에서 춤추는 사람을 형상화한 글자라고도 해석한다. 무교인들은 뭔가를 아는 눈치였지만 정치로 가는 경계선은 넘지 않으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알쏭달쏭한 ‘신의 말씀’만 남긴 채….

- 글·사진 박성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201610호 (201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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