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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제왕적 대통령 권한 축소를 위한 개헌 제언 

한국 현실에서는 의회제보다 미국식 순수 대통령제가 더 적합 

문우진 아주대 정치학 교수 wjmoon@ajou.ac.kr
한국 대통령에 권력이 집중된 이유는 의회제 요소 때문… 특정 지역에만 지지 집중된 정당에는 비례대표 배분 말아야

▎지난 5월 여소야대 국면에서 열린 20대 국회 개원식. 어느 때보다 개헌 논의가 활발하다 / 사진·중앙포토
최순실 게이트로 나라가 어지럽다. 대통령 및 대통령과의 사적 관계를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려 한 최순실 일가와 주변 비선 세력들이 이 사태의 주요 책임 당사자라 할 수 있다. 최순실의 존재를 알고도 묵인한 새누리당, 정치검찰, 언론, 비리 연루 기업들 역시 사태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대통령 주변의 관료나 여당 의원들은 왜 최순실의 전횡을 직언하거나 미연에 막지 못했을까? 언론은 왜 입을 막고 있었으며, 연루 기업들은 비선 세력의 요구에 저항하지 못했을까? 민주주의 역사상 초유의 국정난맥 사태의 원인과 방지책은 무엇인가?

최순실 게이트의 본질적인 핵심은 사실 제도적이고 구조적인 것이다. 규모와 정도는 다르지만 이러한 측근 비리는 모든 정권의 임기 말에 발생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측근 비리가 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이 질문은 결국 측근 비리를 방지할 수 없었던 구조적인 원인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한국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은 다양한 제도적·정치적 권한을 이용해서 여당·검찰·언론·기업들을 통제할 수 있다. 인사권과 공천권을 통해 관료, 검찰, 국세청과 여당을 장악할 수 있고, 필요하다면 검찰 수사와 세무조사 압박을 통해 언론 및 기업을 통제할 수도 있다.

이처럼 검찰·국세청·언론을 장악한 막강한 대통령에게 저항해서 소신대로 행동할 사람이나 집단은 거의 없을 것이다. 반면, 대통령이 자신에게 직언 또는 비판을 하는 개인과 집단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힘이 없다면, 여당 내 비판 세력이나 야당 그리고 언론이 최순실의 존재와 국정농단을 폭로할 수 있고, 최순실 게이트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의 이러한 막강한 제도적 권한을 제거하는 것이 이런 사태의 재발을 막는 방안이라 할 수 있다.

제도적 거부권 행사자, 정파적 거부권 행사자는 길항 관계


▎20대 국회 개원 첫날인 5월 30일 국회의사당 본관을 나서는 의원들. / 사진·전민규
그렇다면 어떠한 권력구조가 대통령의 권한을 약화시킬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는가? 정치권에서는 대통령의 권력분산을 위한 다양한 개헌 입장을 제시해왔다. 그러나 정치권의 제안들은 대부분 정략적인 것이다. 대통령을 배출할 가능성이 높은 정당(현 시점의 더불어민주당)은 현행 대통령제를 선호할 것이다. 당내에서 대통령을 배출할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경쟁력 있는 대통령 후보를 영입할 수 있는 정당(최순실 게이트 이전의 새누리당)은 권력 나눠먹기식 이원집정부제를 추구할 것이다. 당선가능성이 있는 후보를 당내외에서 구하기는 어렵지만 전국적인 정당조직과 정당지지를 어느정도 확보한 정당(현 시점의 새누리당)은 내각책임제(의회제)를 선호할 것이다. 또는 연합정부에 참가할 가능성이 높은 중도(제3지대) 정치세력은 유력한 대통령 후보의 유무에 따라 대통령제 혹은 의회제를 선호할 것이다.

이러한 정략적 입장들은 이론적이고 분석적인 시각을 결여하고 있다. 한국 현실에 부합하는 권력분산형 정부형태는 무엇인가? 권력구조 개혁만으로 측근 비리를 방지할 수 있는가? 한국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개헌 방향은 무엇인가? ‘거부권 행사자 이론(veto player theory)’은 이러한 질문들에 유익한 시각을 제시한다.

거부권 행사자란 집합적 의사결정을 위해 동의를 필요로 하는 사람 또는 기관이다. 예컨대, 대통령제에서는 입법부와 행정부(대통령), 사법부 중 어떤 한 기관이 반대하면 기존 법을 바꿀 수 없다.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이 핵심인 대통령제에서는 이들 거부권 행사자가 서로 견제하여 권력집중을 방지토록하고 있다. 이처럼 제도적으로 마련된 거부권 행사자들을 제도적(institutional) 거부권 행사자라고 부른다.

대통령제에 반해, 내각책임제로 불리는 의회제는 이러한 제도적 견제장치가 없다. 의회제는 효율성을 중요시한다. 양당 의회제에서는 다수당이 행정부(내각)를 구성하고, 행정부가 발의한 법안에 대해 의회가 찬반을 결정한다. 행정부는 다수당 지도부로 구성되므로, 행정부 법안은 의회의 견제 없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의회제에서는 다수당 지도부로 구성된 행정부에 권력이 집중된다. 권력집중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의회제 국가들은 비례대표제를 통해 다당제를 창출하고, 여러 정당이 연합정부를 형성해 서로를 견제하도록 한다. 이러한 거부권 행사자들을 정파적(partisan) 거부권 행사자라고 부른다.

이처럼 제도적 거부권 행사자 또는 정파적 거부권 행사자의 수를 증가시키면 권력자의 전횡을 견제할 수 있다. 대통령제는 제도적 거부권 행사자의 수를, 다당 의회제는 정파적 거부권 행사자 수를 증가시켜 권력을 분산시키는 정부 형태다. 대통령제라고 하더라도 한국처럼 대통령이 다수 여당을 장악할 수 있으면 권력은 독자적 거부권 행사자인 대통령에게 집중된다. 이럴 경우, 한국의 대통령제는 입법·행정·사법부가 서로 독립적인 미국의 순수한 대통령제보다는 양당 의회제와 더 유사하다.

의회제가 마치 권력분산형 제도처럼 오해받는 이유는 많은 의회제 국가가 다당제를 채택하고 있어서다. 다당 의회제에서는 연합정부에 참여한 다수의 거부권 행사자가 서로 동의하지 않으면 내각이 실각하게 되고 선거를 다시 치러야 한다. 반면 거부권 행사자가 다수당 하나인 양당 의회제는 가장 권력집중적이고 안정적이다. 의회제의 불안정성은 의회제라는 권력구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의회제 국가가 권력집중을 막기 위해서 비례대표제를 채택했기 때문에 일어난다. 이처럼 권력구조의 이름이 대통령제인가 의회제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권력분산의 핵심은 거부권행사자의 수다.

의회제는 불안전성을 바란다


▎한국 개헌의 한 모델로 거론되는 미국식 순수 대통령제를 상징하는 백악관 전경.
대통령제와 의회제를 구분짓는 특징은 전자는 제도적 거부권 행사자(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를 통해, 후자는 정당의 수를 통해 권력분산을 꾀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징 외에도 두 권력구조를 구분짓는 두 번째 특징은 행정부와 입법부 중 누가 의제설정권을 갖는가이다. 일방의 제안에 대해 상대방은 수정을 할 수 없고 이를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만 결정할 수 있는 거래를 할 경우, 먼저 제안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의제설정권이라 부른다. 의제설정권을 가지면 의사결정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끌어올 수 있다. 상대가 자신의 제안에 수정을 가할 수 없기 때문에, 의제설정자는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입장들 중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입장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회제에서는 행정부가 입법발의를 하고 의회가 이에 대한 동의여부를 결정한다. 반대로 미국식 순수한 대통령제에서는 의회가 입법발의를 하고 대통령은 이에 대한 거부권 행사 여부를 결정한다. 따라서 의회제에서는 행정부가, 대통령제에서는 의회가 의제설정권을 갖게 되고 자신에게 유리한 입법결과를 확보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의회제에서와 같이 행정부가 입법발의를 할 수 있고 행정부가 막강한 예산편성 권한을 가지고 있다. 특히 대통령이 다수여당을 지배하는 경우, 의회는 행정부의 안에 수정을 가하기 어렵다. 이럴 경우, 대통령은 의회제 하에서의 일당 다수 정부의 수상과 같은 권한을 갖게 된다. 한국 대통령에 권력이 집중된 이유는 한국 대통령제가 의회제의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도쿄의 국회의사당 건물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시민들. 일본은 대표적인 내각제 국가에 속한다. / 사진·중앙포토
한국에서 권력분산이 개헌의 중요한 목표라면, 어떤 정부 형태가 한국의 현실에 부합할까? 정부 형태의 설계는 권력 구조와 선거제도가 거부권 행사자의 수에 미치는 영향을 상쇄할 수 있도록 이루어져야 한다. 예컨대 다당제를 산출하는 비례대표제와 순수한 대통령제를 채택한다면, 이는 제도적·정파적 거부권 행사자의 수를 지나치게 증가시켜 입법 효율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 따라서 제도적 거부권 행사자의 수를 증가(감소)시키는 권력구조는 정파적 거부권 행사자의 수를 감소(증가)시키는 선거제도와 조합될 필요가 있다. 정치제도 설계는 거부권 행사자의 수에 적정한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면 미국식 양당 대통령제와 서구의 다당 의회제 중 어떤 제도가 더 한국의 현실에 더 부합할까?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대통령제와 의회제의 세 번째 본질적인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대통령제에서는 행정부와 입법부의 생존이 서로 독립적인 반면, 의회제에서는 서로 의존적이다. 대통령제에서는 대통령 정당과 의회 다수 정당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여소야대의 경우 입법적 교착이 발생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권은 유지된다.

반면, 의회제에서는 행정부와 입법부의 입장이 다르면 정부와 의회는 해산되고 선거를 다시 치러 행정부와 입법부의 입장이 일치하는 정권을 꾸려야 한다. 행정부와 입법부의 관계를 부부관계로 비유해서 설명하면, 대통령제는 의견이 맞지 않는 부부도 억지로 결혼생활을 유지하게 하는 제도다. 의회제는 의견이 다른 부부는 이혼하고 의견이 맞는 부부끼리 새 가정을 꾸려야 하는 제도다.

이러한 두 제도의 차이는 서로 다른 정치적 결과를 초래한다. 대통령제에서 여소야대 상황이 만들어지면 잦은 입법적 교착이 발생해서 시민사회 입법 요구를 처리할 능력이 떨어진다. 이에 반해, 다당 의회제에서는 입법적 교착을 정권교체를 통해 해소하나, 잦은 정권교체로 인한 정치 불안정이 야기될 수 있다. 특히 한국은 정당들이 정책보다는 혈연·학연·지연에 의한 인물 대결 중심의 선거 경쟁을 한다. 한국과 같은 국가에서 비례대표 제도를 채택한다면 수많은 인물정당과 소지역주의 군소정당들이 출현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국가에서 다당 의회제를 채택한다면? 군소정당들의 합종연횡에 의해서 연립정부가 형성되고, 이들의 이해의 변동에 따라 연립정부가 와해되는 정치 불안정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한국에서의 비례대표제 도입은 군소정당의 난립을 방지할 제도적 보완책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 5% 또는 그 이상의 정당득표를 한 정당에만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소지역주의 정당의 출현을 방지하기 위해 특정 지역에만 지지가 집중된 정당에는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지 않는 방안도 필요하다.

정치인이 유권자 이익을 추구하지 않을 경우


▎10월 27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개헌 관련 토론회에 여야 정치인들이 대거 참여했다. / 사진·전민규
개헌논의에서 마지막으로 고려해야 할 점은 대리인 문제(agency problem)이다. 대의민주주의에서는 주인인 국민이 대리인인 정치인들에게 권한을 위임한다. 그러나 정치인과 유권자의 이해관계는 서로 다르고 정치인은 유권자보다 더 많은 정보와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정치인이 유권자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대리인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대리인의 일탈을 막기 위한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유권자와 이해가 같은 정치인을 선발하는 사전적인 방법과 당선된 정치인을 감시·감독하고 유권자를 위해서 일하지 않을 경우 다음 선거에서 떨어뜨리는 사후적 방법이 있다.

두 가지 방법 중 사전적 방식이 이상적이고 효율적이다. 왜냐하면 지지자와 이해를 같이 하는 정치인을 선발하면 정치인 자신을 위해 일하는 것이 지지자를 위해 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적이고 제도적인 정당에서는 정당원들이 상향식으로 자신의 이익을 대변할 정치인을 선발한다. 이처럼 민주적인 정당이 발달한 국가에서는 의회제가 가장 효율적인 체제다. 의회제는 유권자가 다수당을 결정하고, 차례로 다수당이 정부를 형성하고, 정부는 다수의 입장을 대변하는 직렬적인 권력 위임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민주적인 정당제도가 구비되어 있지 않은 경우, 직렬형 권한 위임 구조에서는 유권자와 이해를 달리하는 다수당과 정부를 견제할 제도적 방법이 없다. 최순실 게이트는 이러한 의회제와 유사한 한국 대통령제의 직렬형 권한 위임구조와 비민주적인 정당 구조가 만나서 발생한 것이다.

상향식 정당이 발달하지 않은 국가에서는 전문 정치인이나 법조인과 같은 정치엘리트를 대리인으로 선발한다. 이들은 유권자들보다 전문성이 높지만 유권자들을 대변하는 것보다 자신이 재당선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국가에서는 사전적인 방법보다는 사후적 방법으로 대리인을 감독하는 게 유리하다. 순수한 대통령제는 다수의 대리인(행정부, 사법부, 입법부)을 선발해 서로를 사후적으로 견제토록 하는 병렬형 권한 위임 구조를 갖고 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한 기관(대통령)이 유권자의 이익이 아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경우, 다른 기관(입법부나 사법부)이 이를 견제한다. 상향식 정당이 발달하지 않은 한국의 현실에서는 의회제보다 미국식 순수한 대통령제가 더 적합하다. 대통령의 검찰총장·국세청장·감사원장·국무위원의 임명이 의회의 동의를 거쳐야 하면 대통령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다수 여당을 장악할 수 있으면, 미국식 양당 대통령제에서도 의회는 행정부를 견제하기 어렵다. 따라서 정당민주화는 제왕적인 대통령 견제를 위한 가장 근본적인 조건이다. 미국식 양당 대통령제는 궁극적인 방안이라기보다 차선책으로 적합하다. 대통령제의 사후적인 대리인 문제 해결 방식은 사전적인 선발 방식에 비해 한계가 있다. 양당제를 창출하기 위한 소선거구제는 사표를 발생시키고 정치적 소수를 대변하기에 부적합하다. 또한 정책 대결이 부재한 한국과 같은 국가에서 소선거구제는 선거 경쟁을 인물 대결로 이끌고 지역분할적 선거결과를 초래한다. 따라서 미국식 정치체제는 정당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한국의 정치체제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으로 고려될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미국식 정치체제의 단점들을 해소할 수 있는 정치제도를 추구해야 한다.

권력구조 또는 선거제도 개편에 앞서 가장 중요하게 해결되어야 할 문제는 정당민주화다. 이 문제가 해결되면, 대리인 문제의 사전적 해결이 가능하고 권력분산을 추구할 수 있으면서도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다당 의회제의 도입이 가능하다. 다양한 사회단체(직능단체, 이익단체, 시민단체)가 자신의 이해를 대변할 의원들을 직접 선발하면, 정당간의 정책적 입장차가 선명해지고, 선거경쟁은 정책대결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정당민주화가 이뤄지면, 다당제를 채택한다고 하더라도 정당들이 정책과 이념을 통해서 연합해 안정된 연합정부를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정책으로 연합한 정당들은 연합정부 내에서 서로 견제하지만 정책적 친화성 때문에 당리당략을 위해 이합집산할 가능성이 낮다.

현행 정당 공천방식은 대리인(정당후보)을 대리인(정당지도부)이 선발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대리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주인이 자신과 이해를 같이 하는 대리인을 주인들 내부에서 직접 선발하는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으로, 다양한 사회단체가 내부에서 자신의 대리인을 직접 선발하고 정당이 이들을 선택하는 제도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러한 제도에서 선결돼야 할 과제는 투명한 의사결정 제도에 의해서 집단구성원들의 이해를 수렴하는 사회단체에만 정당을 통해 자신의 이해를 대변할 권리를 주는 것이다.

이러한 단체들은 단체 내부에서 대리인을 선발하거나 외부의 법적 대리인을 스스로 선정한다. 이들 단체는 자신들이 확보한 소속원의 명단을 공개한다. 이어 자신들이 민주적으로 선택한 정당에 지지를 약속하는 대신 정당이 자신들의 대리인을 공천해줄 것을 제안한다. 정당들은 자신들의 이념이나 정책과 부합하는 단체를 선택한다. 정당들은 자신을 지지하는 단체들의 구성원의 수에 따라 비례적으로 후보직을 배분하고, 후보직을 배분받은 단체 구성원은 자신의 단체가 선택한 정당에 표를 행사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선발된 대리인들은 소속 단체의 규모에 따른 교섭력과 영향력을 정당에서 행사한다.

투명한 사회단체에 정당 공천을 주도하는 방안


▎2012년 시민단체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주도하는 헌법개정 서명운동에 참여하는 시민들. / 사진·중앙포토
국회에 진입한 대리인들은 주기적으로 열리는 소속 단체의 회합에서 입법 의제를 구성원들에게 전달하고 자신의 의정활동을 보고한다. 이 회합에서 단체 구성원들은 중요한 입법의제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민주적으로 결정하고, 자신들의 입장을 대리인에게 전달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의원들을 선발하면, 의원들의 거취가 당의 지도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선발한 단체 구성원의 평가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여당의 경우, 의원들은 자신의 출신 단체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므로 대통령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이 출신 단체를 위해서 의정활동을 할 것이다. 비례대표 의원은 이런 방식으로 선발하고, 지역구 의원은 예비선거를 통해 지역 구민의 민의를 수렴할 수 있도록 한다.

정당민주화 방안의 핵심은 상향식 의사결정이다. 이러한 방안은 정당 규율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사회단체들이 스스로 대리인을 선발한다고 해서 정당 규율성을 약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당 전체의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제도적 방안으로 의원들은 스스로 자신을 처벌할 강력한 권한을 당 지도부에 위임할 수 있다. 동시에 당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지도부에도 이익이 될 수 있도록, 지도부에 보상적 동기를 부여하여 개개 의원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한다. 따라서 당이 민주적으로 결정한 사항에 지배적인 권위를 인정하고 이를 위배하는 의원에게 강한 처벌을 내리면, 민주적인 정당도 규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이 글의 논의를 정리하면, 권력분산이 개헌의 목표라면 현시점에서 한국의 현실에 부합하는 권력구조는 미국식 순수한 대통령제이고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권력구조는 다당 의회제다. 그러나 이 권력구조 개혁에 앞서 반드시 선행돼야 할 근본적인 개혁은 정당민주화이다.

- 문우진 아주대 정치학 교수 wjmoon@ajou.ac.kr

201612호 (2016.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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