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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그래도 자유주의는 강력하게 작동한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우리 사회의 정설… 시민의 사회화 과정은 정설의 이해와 습득이 핵심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glutton4@joongang.co.kr

▎대한민국 보수가 지켜야 할 가치┃복거일 지음┃북앤피플┃1만6000원
“넋의 알몸을 드러낼 때다.”

한국 보수의 대표 논객 복거일 씨의 탄식을 듣는다. 서문 첫 문장에서 밝힌 소회다. “자신(보수)이 지지한 대통령이 도덕적 권위를 잃어서 직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되었으니, 자신의 선택에 대해 겸허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다시 탄식한다. “그런 성찰은 지적 정직과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어서 어려울 뿐 아니라 괴롭다.”

그는 오랫동안 보수의 철학을 개진했다. 복거일이 보기에 사회적 차원에서 보존하고 수호해야 할 보수의 대상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다. 복거일은 이런 일반적인 주장에서 한걸음 더 단호하게 나아간다. 우리 사회가 이념적으로 중립이 아니라는 점을 늘 상기시킨다. 우리 헌법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지향하므로, ‘보수’ 또는 ‘우파’라 불리는 자유주의는 우리 사회에서 ‘정통성을 지닌 이념’이라는 것이다. ‘진보’ 또는 ‘좌파’라 불리는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 공산주의, 민족사회주의 같은 이념은 좋게 말해서 ‘대안적 이념’일 따름이다.

그는 “우리 사회에선 자유주의와 다른 이념들이 동등할 수 없다. 자유주의는 정설이고, 다른 이념들은 모두 이설”이라 규정한다.

이 같은 쾌도난마는 사실 복거일의 스타일은 아니다. 그는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정교한 지식을 갖춘 인문주의자 중의 한 사람일 것이다. 그의 지식 체계는 그만큼 방대하고, 사유의 폭과 깊이도 대단하다. 문사철(文史哲)과 경제학, 거기에 과학적 지식에 대한 그의 탐구욕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그처럼 뛰어난 인문주의자가 보수주의 철학의 가장 영명한 수호자가 된 것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예외적인 일이다. 우리 사회의 이념 논쟁에 정교하고 너그러운 성찰이 필요한 대목이 산재해 있기 때문에 그의 존재는 더욱 독보적이다.

그의 말과 글은 늘 경청할 만하지만, 때로 오해를 부를 사고의 비약으로도 느껴진다. 이 책에 쓴 것처럼 말이다.

“대중의 득세는 모든 사람들의 자유를 위협한다. 개인은 궁극적 소수다. 그래서 대중의 뜻이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도덕이나 법 위에 자리 잡으면, 누구의 자유도 확고하게 보장될 수 없다. 조지 오웰이 경고한대로, 여론에 의한 지배보다 더 압제적인 정치는 없다. 그것은 어떤 압제적인 법이나 폭군의 지배보다 압제적이다.”

민중주의(포퓰리즘)에 대한 복거일의 반감은 뿌리 깊은 것이다. 이미 사라진 전체주의의 대를 이어 자유주의를 위협하는 도그마로 본다. 복거일의 보수 이데올로기는 그러나 선언적인 것은 아니다. 성찰의 대상으로 그 의미가 무궁무진하며, 국가 리더가 경청해야 할 창의적인 정책 대안도 많다. 다른 우파 논객과 복거일을 결정적으로 가르는 경계다.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 공군이 무인기 개발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그의 지적은 시의적절하다. 병역 체계를 논할 때 징병과 모병을 대립시키는 우리의 타성에도 일침을 가한다. 징집은 자유 사회의 원리를 거스른 원리이며, 그가 보기에 모병제가 불의라는 주장도 산술적 평등주의자의 어리석은 편견일 뿐이다. 복거일이 오르테가 이 가세트(Jose Ortegay Gasset)의 발언을 인용하며 공감한 자유주의의 아름다움은 숭고하다.

“자유주의는 가장 높은 형태의 너그러움이다. 그것은 다수가 소수에게 양보하는 권리이고, 그래서 이 행성에 울려 퍼진 가장 고귀한 외침이다.”

-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glutton4@joongang.co.kr

201702호 (2017.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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