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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리포트] 다나카-박정희 탄생 100주년 한·일의 상반된 풍경 

“영웅을 가지지 못한 나라는 불행하다” 

글·사진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다나카에 대한 관심 천황에 비견, 20여 년 만에 일본 정치의 대표주자로 부활... 전후(戰後) 한국의 대표적 인물 박정희는 기념우표 발행마저 논란의 대상으로 전락

▎다나카 당시 일본 총리가 1974년 8월 19일 박정희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만나 조의를 표하고 있다.
지난해 중순까지만 해도 탄생 100주년 박정희의 상황이 지금처럼 되리라고 상상한 사람은 극히 드물었을 것이다. 박정희는 보릿고개를 넘기는 데 공헌한 영웅으로 해석돼 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성대한 기념식이 예상됐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수감되고, 장기 징역형까지 점쳐지는 상황이 2017년 봄의 한국이다. 우표 발행 관련 논란은 이 같은 현실정치의 부산물이다.

50대인 필자는 박정희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독일 간호사와 광부의 눈물을 활용한 ‘미워도 다시 한 번’식의 찬미 풍조도, 이미 38년 전에 세상을 뜬 인물에 대한 끝없는 증오와 비난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자신의 아버지라 해도 한마디로 규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어려운가? 프랑스인의 나폴레옹에 대한 지지 여부는 사후(死後)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50대 50이다. 중요한 것은 ‘현재와 미래에 얼마나 도움을 주는 인물인가’라는 사실이다.

태극기 논리로 인해 100주년 행사가 엄청 과장되거나, 촛불 논리로 우표 발행 여부마저 오락가락하는 상황은 결코 정상이 아니다. 대안이지만, 입맛에 따라 다르게 엮을 것이 아니라 하나의 분명한 원칙을 세우면 어떨까? 박정희만이 아니라 이승만·전두환·김대중·노무현 등 모든 한국 대통령의 100주년 탄생 기념우표를 ‘항상’ 발행하는 식의 원칙이다. 박정희만 특별하게 처리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박정희만 왕따로 돌리는 것도 옳지 않다. 신화는 진부하고, 적폐론은 더더욱 한심하다.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 같은 극과 극은 피를 부를 뿐이다. 무책임하다고 비난할지 모르지만, 박정희 나아가 박근혜를 아는 모든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정상적인 판단이 설 듯하다.

탄생 100주년은 한국만이 아닌, 최근 이웃 일본에서도 키워드로 떠오른 말이다. ‘컴퓨터 달린 불도저’라는 별명을 가진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栄) 전 총리가 주인공이다. 박정희(1917년 11월 14일) 보다 6개월 뒤인 1918년 5월 4일이 다나카 100주년 탄생일이다. 박정희·다나카 두 사람은 동년배, 동시대의 정치가다.

다나카는 현재 일본인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심어준 정치가로 통한다. 2014년 말 전후(戰後) 70주년을 기념해 NHK가 조사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다나카가 1945년 이후 일본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인물로 선정됐다. 정치가만이 아니라 기업인·연예인·스포츠선수 모두를 통틀어 조사한 결과다. 응답자의 무려 25%가 다나카를 인상에 가장 남는 인물 1위라고 말했다. 2위는 미군정 기간 총리로 일하면서 미·일 군사동맹을 이끌어낸 요시다 시게루(吉田茂)로 13%, 3위는 일본 천황 히로히토(裕仁)의 9%로 일본인들의 기억 속에 선명히 각인됐다.

다나카에 대한 국민적 인상이 요시다의 2배, 천황의 3배에 달한다는 의미다. 인상에 남는다는 말이 반드시 긍정적 의미로 해석되지는 않을 것이다. 좋은 면도 있지만, 드높은 악명으로 인해 기억에 남는 사람도 많다. 다나카에 대한 일본 국민의 인상은 악명이 아닌, 좋은 면에 기초한 평가다. 부분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위대한 다나카’라는 측면에서의 평가가 주류다.

일본인이 기억하는 ‘위대한’ 다나카 씨


▎1963년 발행된 박정희 제5대 대통령 취임 기념 우표.
전체적으로 다나카와 비슷한 양상이리라 생각되지만, 박정희도 한국전쟁 이후 한국인에게 가장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인물이 아닐까 싶다. 비과학적 예측이지만 주변을 보면 대략 다나카와 비슷한 비율의 국민이 박정희를 전후 한국의 대표적 인물로 언급하지 않을까? 그러나 한·일 양국 간의 탄생 100년을 대하는 분위기는 비슷한 듯하면서도 전혀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닮은 듯, 다르게 나타나는 상황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두 사람의 평가를 둘러싼 과거와 현재 사이의 현격한 차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박정희의 경우 비교적 높은 점수를 누리던 어제의 긍정적 평가에서 한순간 급추락하는 상황에 처했다. 기념우표 발행 문제 같은 것은 좋은 예다. 다나카는 어떨까? 금권·파벌정치의 대명사로 통하던 악명 높은 정치가에서 탈피해, 난국을 극복하고 시대를 앞서간 인물로 급상승하고 있다. ‘상승세에서 하락세로 돌아선 박정희와, 저가주에서 돌연 블루칩으로 승천하는 다나카’라는 식의 엇갈린 평가가 100주년 탄생과 관련된 한·일의 분위기다.

다나카붐은 탄생 100주년 3년 전인 2015년부터 불기 시작한 풍경 중 하나다. 2015년 한 해 동안 다나카와 관련된 책이 20여 권 등장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무려 50권이 넘는 책이 출판됐다. 아마존닷컴재팬(www.amazon.co.jp)에 들어가 키워드로 ‘다나카 가쿠에이’를 검색하면 무려 583권의 책이 등장한다(2017년 4월 13일 기준). 박정희의 경우 교보문고 웹사이트에서 찾아보면 480권의 책이 나온다.


▎2012년 2월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문을 연 ‘박정희 기념·도서관’.
양쪽이 비슷한 듯하지만 내막을 살펴보면 다르다. 다나카의 총리 재임기간은 2년5개월에 그친다. 박정희의 18년 집권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수준이다. 상대적으로 다나카에 관한 책이 엄청나다고 볼 수 있다. 다나카 관련 서적은 정치가·행정가·인간미와 같은 다양한 각도에서 기술돼 있다. 이들 책의 대부분은 다나카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다나카에 대한 비난보다, 금권정치의 대명사이기는 하지만 결국 일본을 위해 좋은 일을 했다는 식의 얘기로 종결된다.

일본 정치무대에서 다나카는 가난의 대명사로 통한다. 워낙 쪼들렸기에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다. 열다섯 살에 도쿄(東京)로 올라가 건설기능공으로 출발하지만, 이후 토목기업 사장, 중의원, 장관을 거쳐 총리에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따라서 역경을 극복한 불굴의 인간이라는 측면에서 어린이가 배우고 존경해야 할 인물로 평가된다. 정치가로서만이 아닌, 인간 승리의 대명사로서 다나카에 대한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100만 권 팔려나간 이시하라의 정치인소설


▎1972년 9월 베이징 공항에 나타난 다나카 총리(왼쪽)와 마중 나온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
필자가 처음으로 다나카붐을 이해한 것은 지난해 가을이다. 필자의 은사인 오카다 구니히토(岡田邦人)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経塾) 숙두(塾頭, 교장)와 만난 자리에서 다나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한국의 경우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에서 보듯, 감옥으로 가거나 불명예스런 인생으로 연결되는 큰 인물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진실은 언젠가 밝혀질 것이다. 다나카조차 존경의 대상으로 떠오르는 것을 보면 역사의 진실을 체감하게 된다. 다나카는 돈으로 정치를 산 일본적 구습의 대명사다. 파벌정치는 그가 집대성한 일본정치의 수치이기도 하다. 그러나 1993년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0여년 만에 일본정치의 대표주자로 다시 부활하고 있다. 다나카에 대한 일본 국민의 관심이나 존경도는 천황에 비견된다.”


▎지난해 일본에서 출판된 다나카 관련 서적은 무려 50권이 넘는다.
필자의 기억이지만, 오카다 숙두는 25년 전까지만 해도 다나카를 악의 화신쯤으로 받아들였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난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더불어 돈과 권력에 취한 냉전 당시 악의 전형(典型)이 다나카라고 생각했다. 일본 국민의 평가라는 식으로 설명했지만, 다나카를 대하는 오카다 숙두 자신의 시선이 크게 변했다는 것이 필자의 직감이다.

헤어진 직후 곧바로 책방에 들러 다나카붐 검증에 들어갔다. 조그마한 동네 서점에 들어서는 순간 열도에 불기 시작한 다나카붐이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예 다나카 관련 서적 코너가 따로 만들어져 있다. 다나카 관련 책들만 모아 파는 곳이다. 지난해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은, 전(前) 도쿄도 지사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郎)가 쓴 <천재(天才)>는 다나카붐의 대표주자다. 2016년 11월 기준으로 이미 100만 권이 팔려 나갔다고 한다. 다나카의 고향은 만경봉호 출입 항구인 니가타(新潟) 지역이다. 한때 일본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알려진 곳이다. 이시하라의 소설 <천재>는 니가타 사람이라면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읽는 필독서라고 한다.

소설 <천재>는 이시하라가 쓴 1인칭 화법의 자서전이다. 이시하라가 다나카 마음속으로 들어가, 정치가·행정가·인간으로서의 언행을 독백 스타일로 풀어나가는 식이다. 이시하라는 정치가 이전에 소설가로 출발한 인물이다. 1950년대 청년문학의 대표주자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소설<태양의 계절(太陽の季節)>의 원작자다. 정치가로서는 우익으로 통하지만, 작품의 대부분은 철저히 대중성에 기초한다. 독자들의 기대와 요구에 응하는 대중작가가 이시하라의 진짜 모습이다. 이시하라의 정치적 성향을 규정하는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NOと言える日本)>이라는 책은 이시하라의 생각 이전에, 당시 일본 국민이 원하던 사고 패턴이었다고 해석해볼 수 있다.

이시하라는 소설 <천재>를 통해 다나카 ‘세탁’에 적극 나선다. 어둡고 불순하며 독재적 이미지가 아닌, 밝고 깨끗하고 결의에 찬 불굴의 인물로 ‘확’ 바꿔놓는다. 이시하라 자신의 생각인 동시에 다나카를 대하는 일본인들의 요구와 기대에 맞추는 식이다. 예를 들어 다나카가 기업으로부터 받는 돈에 대해 언급할 때도, 당시 관행으로 보면 안 받은 사람이 없고, 오히려 다른 정치가에 비해 적게 받은 것이라는 식으로 합리화한다. 초등학교 학력의 다나카가 보여준 엄청난 능력과 수많은 정치적 결단에 대한 찬미는 넘친다. 다나카의 정책사전인 <일본열도개조론(日本列島改造論)>도 극찬한다. 도로·철도·항만 건설에 대한 선견지명 덕분에 균형적인 국토발전이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초등학교 졸업 학력의 ‘컴퓨터 달린 불도저’


▎중국 국가주석 마오쩌둥(왼쪽)과 자리를 함께한 다나카. 그는 주변의 우려를 불식하고 중·일 수교를 단행했다.
2014년 일본은 고속도로 총 길이 1만㎞를 달성한다. 전국 방방곡곡 1일생활권은 1970년대 초 다나카가 제시한 국가 비전의 제일성(第一聲)이다. 도쿄 중심이 아니라, 남북 전국 주요 도시가 중심이다. 일본은 관료의 나라다. 거의 대부분의 법안은 관료가 상정해 국회에서 추인하는 식이다. 다나카는 관료를 믿지 않고, 스스로 법안을 만들어낸 정치가다. 중의원 재임 중 법안 발의를 가장 많이 한 인물이다. 50여 건의 법안 발의로 역대 랭킹 1위를 지키고 있다. 정계를 떠난 지 50년이 넘었지만 법안 발의에 관한 경쟁자는 전무하다. 다나카는 발의를 통해 모두 26건의 법률을 제정했다. 기존의 법과 충돌을 피하는 과정에서 다나카 스스로 육법전서를 전부 외웠다는 식의 평가도 나온다. 초등학교 출신이지만 1962년 44세의 나이로 최고 엘리트 관료집단인 대장성 장관에 오른다. 독학으로 지식을 쌓은 뒤 최고관료들과 정책대결을 마다하지 않는다. ‘컴퓨터 달린 불도저’란 별명은 정치가 다나카가 관료와 정책대결에서 승리한 뒤 붙여진 것이다.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할 당시 반대 여론이 비등했듯 다나카의 일본열도 개조론은 여야 할 것 없이 반대의 대상이었다. 엄청난 예산은 물론 당장 필요도 없는 초대형 토목건설이었기 때문이다. 다나카의 전국고속화계획이 발표될 당시 일본의 고속도로 총연장은 710㎞에 불과했다. 다나카는 이미 1960년대 초, 10년 뒤에 닥칠 마이카 시대를 예측한다. 전쟁의 상처를 막 극복한 나라가 마이카 시대에 도달할 것이라는 전망은 황당한 꿈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그 같은 전망은 현실로 나타난다. 다나카는 마이카 시대에 앞서 ‘희한한’ 세법 하나를 도입한다. 가솔린세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만, 당시 가솔린세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황당한 세법이었다. 한국의 높은 가솔린세는 다나카의 복사판에 해당한다. 미국 전직 하원의원으로부터 들었지만, 미국이 자국민에게 가솔린세를 부과할 경우 엄청난 재정적자가 2년 만에 전부 해소될 것이라고 한다. 가솔린세로 모은 세금을 다시 도로 건설에 투자하면서 고용과 국토 개발에 진력한 인물이 바로 다나카다. 공영단지 건설은 다나카의 부동산정책 중 하나다. 아직도 남아 있는 한국 내 임대주택이나 공단은 다나카 부동산정책의 재판(再版)이다. 싸게 장기적으로 서민들에게 대여하는 식의 주택정책이다. 다나카의 인기가 보통사람들에게 특히 높은 이유는 바로 자동차·열차·주택과 같은 서민의 주된 관심사에 진력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대중작가 이시하라의 소설 <천재>는 다나카 재조명이라는 측면만이 아닌, 이시하라 자신의 180도 변신이라는 측면에서도 화제다. 1932년생인 이시하라는 다나카보다 열네 살 연하다. 이시하라가 정치에 입문한 것은 1960년대 말이다. 곧바로 다나카가 최고권력자로 군림한다. 같은 자민당 소속이지만 청년 이시하라는 다나카의 금권정치를 정면으로 공격한 정풍운동의 선두격이었다. 다나카를 몰락시킨 5억 엔 뇌물 ‘록히드 사건’ 이후 다나카 퇴임을 공식적으로 요구한 인물이 바로 이시하라다. 말끔한 외모와 대중작가로서의 이미지를 통해 돈으로 얼룩진 ‘악의 화신’을 정면공격한 다나카의 천적(天敵)이 당시 30대 말의 이시하라다. 따라서 일본인들은 다른 사람도 아닌 이시하라가 다나카를 높게 평가했다는 사실에 크게 놀란다.

다나카의 몰락은 미국 CIA의 음모?


▎1972년 이뤄진 중·일 수교는 양국간 정치·경제적 실리를 고려한 윈·윈게임으로 평가된다.
이시하라는 다나카가 단행한 중·일 국교정상화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중국에 대한 이시하라의 반감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다나카가 중국과 국교를 맺지 않았더라면 주변국에 대한 중국의 위협이나 횡포가 한층 심했으리라는 식으로 분석한다. 현재의 북한과 같은 모습이 됐으리라는 의미다. 중·일 국교정상화에 부정적이던 미국의 의견을 무시하면서까지 밀어붙인 자주외교의 선구자가 다나카라고도 말한다. 사실 대부분의 일본인은 록히드 사건의 실체를 음모론으로 풀이한다. 다나카를 끝장내기 위한 미국 CIA의 정보 유출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다나카는 중국에 이어 러시아와 평화 조약을 준비하던 중 록히드 사건으로 추락한다.


다나카가 총리에 취임한 1972년 7월은 일본의 경제력이 미국을 뛰어넘을 것으로 여겨지던 시기다. 닉슨 대통령의 1972년 2월 베이징 방문은 당시 거의 내전상태로까지 간 미국 내 상황을 벗어나려는 고육지책(苦肉之策)이었다고 볼 수 있다. 베트남전쟁이 가장 큰 배경에 있는 것은 물론이다. 중국이 미국을 원했다기보다, 미국이 중국을 활용하려는 의도 아래 닉슨의 베이징 방문이 이뤄진 것이다.

닉슨에 질세라 5개월 늦게 베이징으로 찾아간 다나카는 훨씬 유리한 상황에서 중국과 대면한다. 일본이 중국을 필요로 하기보다, 문화혁명 이후의 중국이 일본을 원하는 상황 아래서 중·일 국교정상화가 전격적으로 이뤄진다. 출발은 늦었지만, 다나카 스타일 리더십에 기초한 전광석화(電光石火) 외교를 통해 수교한 것이다. 중·일 국교정상화 논의가 시작될 당시 다나카의 손발이 된 곳은 의회 내 건설족(建設族)이다. 일본 재계에서는 건설·토목 관련 업체들이 주류다. 다나카에 의하면 ‘지도를 바꾸는, 지구 전체를 캠퍼스로 한 예술가’가 후원자들이다. 1970년대 일본 전체를 비등케 한 건설붐과 함께, 중·일 수교에 따른 선물로 주어진 간접자본 건설용 정부개발지원(ODA)이 다나카 정치 파워의 배경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틈만 나면 중국에 대한 ODA지원 중단을 강조한다. 일·중의 앙숙관계를 고려할 때 진작 중단했을 법하지만, 사실 선뜻 자르기가 어렵다. ODA의 최종 수혜자는 중국이지만 ODA에 투입된 건설비용의 수혜자는 중국이 아닌 일본이기 때문이다. 중국에 다리 하나를 건설한다 해도 설계나 공사 책임은 전부 일본 기업에 맡긴다. 중국의 참여는 현장노동자를 통한 일당 획득 정도에 그친다. 생색을 내지만, 실제 수혜자는 바로 일본이다.

다나카는 바로 돌고 도는 ODA 지원방식을 창안해낸 건설족의 수장이다. 물론 ODA를 일본 기업에 돌리는 과정에서 거꾸로 거액의 정치자금도 그러모을 수 있었다. 다나카 파벌은 엄청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선거유세 지원을 통해 구축된 정치구도다. 1970년대 다나카 파벌이 맹위를 떨칠 당시 다나카 개인 이름으로 선거에 나서는 후보자에게 삼천만 엔씩 지원됐다고 한다. 돈을 전할 때는 반드시 다나카 쪽이 머리를 숙였다. 지원금을 통해 반드시 당선돼 나라를 위해 함께 일하자는 것이 다나카의 메시지였다. 뇌물이 아니라, 애국을 위한 활동자금으로 통하던 것이 다나카의 돈이다.

현재도 남아 있는 당시 다나카의 집은 지지자와 정치가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다나카는 넘치는 손님 맞이용 식당을 아예 집안에 만든다. 무려 300명이 한꺼번에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이다. 금권정치의 대명사 다나카의 파워는 바로 고도성장기의 일본 내 건설붐에 기초한 결과물이라 볼 수 있다. 한국인으로서는 일본의 다나카붐이 이해하기 어려울 듯하다. 아무리 봐도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정치가로 비친다. 나이가 들면 여유가 생기고 과거의 허물도 잊혀진다고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조금 다른 듯하다. 다나카를 찬미하고 존경하는 일본적 풍경을 이해하기 어렵다. 필자의 감각으로 치자면, 다나카붐은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에 비견될 만한 열기로 느껴진다. 한국에서 전두환에 대한 재평가가 가능할까? 한·일 간에 나타난 전혀 다른 세계관은 사물을 보는 근본적 시각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다나카와 상극인 아베의 선택


▎실각 후 뇌경색으로 말을 잘 못하던 다나카(왼쪽)지만 중국 정부는 그를 최고 국빈으로 대접했다.
핵심을 말하자면, 일본은 지지 않는 문화에 익숙하다. 이기는 문화가 아니다. 이겨서 상대를 누르면서 자신의 위상을 굳히는 것이 아니다. 이겨서 상대에게 절치부심(切齒腐心)의 자세로 몰아세우기보다, 패자 없이 서로 윈-윈으로 나아가자는 문화가 일상적이다.

어떻게 윈-윈으로 나아가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방법은 간단하다. 독식하지 않는 것이다. 나누고 자리를 비워두는 식이다. 상대를 몰아세울 경우 단기적으로는 절대적 우위에 설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언젠가 당하게 된다.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 일거에 잊혀져가는 존재로 변해가는 박정희를 둘러싼 2017년 한국 내 분위기는 그 같은 한국적 문화의 방증이다. 새삼스럽게 나타난 다나카에 대한 재평가는 바로 그 같은 원-윈 방식에 기초한 일본 특유의 정서를 배경으로 한다.

2018년 다나카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일본의 신문·방송들은 초대형 특집과 이벤트를 준비한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현재의 총리 아베는 다나카와 상극관계에 있는 정치가다. 아베의 아버지로 관방장관을 역임한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는 1970년대 다나카의 정적(政敵)인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파벌에 속했다. 엘리트 관료 중심의 후쿠다 파벌은 초등학교 건설족인 다나카 파벌과 사사건건 충돌했다. 다나카붐이 아베 총리 재임기에 일어났다는 것은 아베와 같은 현 정치세력에 맞서는 현상이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아베가 다나카를 싫어한다고 해도 내년 100주년 탄생 기념식을 무시할 수는 없다. 다나카는 아베의 호불호 여부가 아닌 국민 전체의 영웅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미 20여 년 가까운 과거지만 미네소타 주지사를 역임한 제시 벤추라를 만난 적이 있다. 특수부대 네이비 실(Navy Seal) 출신에 프로 레슬러로 활약한 전국적 지명도를 가진 정치가다. 그러나 운동선수 특유의 계산되지 못한 발언으로 인해 무식한 정치가의 상징으로도 해석된다.

그의 사무실 책상 위에서 필자는 무식한 정치가이기에 간단히 말할 수 있는 너무도 당연한 상식을 하나 발견했다. 독수리 조각에 새겨진 작은 글귀다.

“영웅은 누구라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 모두가 인정하는 국가적 차원의 영웅만큼 발견하기 어려운 존재도 없다. 영웅 자체가 아니라, 영웅을 만들어낼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영웅을 가지지 못한 나라만큼 불행하고 불쌍한 곳도 없다.”

박정희가 영웅이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박정희·노무현·백범·김대중 모두 영웅이라고 말하고 싶다. 영웅은 개개인의 세상을 대하는 겸허한 자세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영웅이 너무 많아도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영웅이 드문 나라, 당신만의 영웅이나 나만의 영웅만 존재하는 환경도 너무 척박하다. 2017년 한국의 영웅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 글·사진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201706호 (2017.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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