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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진단] 푸틴, 김정은을 부추겼나? 

北 수폭실험에 중국은 까막눈 러시아는 조직적 사전대비 

콘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현대 특별편집위원
‘러시아극동산악건설사’ 핵실험 터널 뚫어주고 김정은 도피로 건설 의혹…나진-하산 잇는 54㎞ 철도는 원유 수송 등 북한 제2의 생명줄 노릇

▎북한과 러시아 협력의 상징인 나진-하산 철도 구간 열차 시험 운행 장면.
세계 최강의 미국을 상대로 아시아 최빈국 북한은 어떻게 저토록 주저함 없이 강(强) 대 강(强)의 대결로 나서고 있는 것일까? 이 점이 현재 벌어지는 북한 위기를 보는 데 있어서 최대의 의문점일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는 러시아의 푸틴 정권이 김정은 정권을 완전히 백업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다.

김정은 정권의 배후에 러시아의 푸틴 정부가 있다고 확신하게 된 것은 9월 하순,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러시아 정치 전문가인 나카무라 이츠로(中村逸郞·60) 스쿠바 대학 교수와 잡지와 방송에서 두 차례에 걸쳐 대담을 하고 난 뒤부터다.

이 자리에서 평소 러시아 쪽 관점에서 북한을 연구하는 나카무라 교수는 매우 흥미로운 세 가지 문제를 지적했다.

① 수폭 실험 방조

“북한이 9월 3일 수소폭탄 실험을 강행했는데, 그 5일 전인 8월 29일 러시아 정부가 북·러 국경에 가까운 하산 마을 주민 약 1500명에게 갑자기 피난 명령을 내렸다. 러시아의 유력 일간지 <모스코프스키 콤소모레츠 (Московский комсомолец)>는 9월 7일 하산 마을 르포 기사를 실었다. 기사에 등장한 마을 사무소에는 김일성과 김정일, 그리고 푸틴의 사진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또 나진과 블라디보스토크를 잇는 북한의 여객선 ‘만경봉호’도 8월 24일 갑자기 운항이 중단됐다. 일본 언론은 “북한이 블라디보스토크의 항만 정박요금을 미납했기 때문에 러시아 측이 정박을 거부했다”고 보도했으나, 사실은 그 때문이 아니라 수폭 실험의 피해를 막으려는 조치였다고 생각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히로시마형 원자폭탄의 10배 규모나 되는 위력을 가진 고도의 수소폭탄 기술을 북한이 단기간에 독자적으로 개발에 성공할 수 없다.

관건은 블라디보스토크에 본사가 있는 ‘러시아극동산악건설’이라는 회사다. 원래는 소련의 국토교통성의 한 부서였으나, 푸틴이 대통령에 취임해 평양을 방문한 2000년에 민영화됐다. 이른바 ‘푸틴계 기업’인 셈이다.

이 회사는 북한의 인프라 정비를 위해 풀가동되고 있다. 이 회사가 가장 잘하는 분야가 산악 지대의 터널 건설인데, 이점 때문에 북한의 풍계리 핵 실험장의 공사를 수주받은 것 아닌가 생각된다. 터널 갱도를 800m나 캐고, 마치 인간의 대장 같은 복잡한 구조로 만들거나 하는 것은 아무리 봐도 북한의 기술 같지 않다.”

이상이 나카무라 교수의 발언이다.

북한 수폭 실험은 러시아가 있어 가능했다


▎지난 9월 중거리 탄도미사일 화성-12형 발사 장면을 지켜보는 북한 김정은 노동당위원장. / 사진캡처·조선중앙통신
9월 3일의 수소폭탄 실험은 1300㎞나 국경을 맞대고 있을 뿐 아니라, 실험장소인 풍계리에서부터 국경까지 100㎞남짓한 중국 측에 사전 통보를 하지 않았다. 시진핑 정부는 사전 통고가 없었던 것에 격노해 유엔 안보리의 9번째 대북 경제제재에 찬성했을 뿐 아니라, 중국 국유은행의 북한 관련 거래정지 조치 등 중국 독자의 경제 제재를 부과했다.

바꿔 말하면 북한이 중국을 무시한 채 수폭 실험이 가능했던 것은, 러시아의 전면적인 백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② 김정은 패밀리의 도주 루트 건설

“‘러시아극동산악건설’은 러시아의 하산과 북한의 나진을 잇는 길이 54㎞의 철도 건설도 맡았다. 이 철도를 건설할 때 철로 지하에 유사시 김정은 패밀리가 러시아로 도주하는 터널을 건설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2001년 8월 5일 모스크바를 방문한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푸틴 대통령과 ‘모스크바 선언’에 서명했는데, 그 제6항에는 다음과 같이 명기돼 있다.

‘양측은 한반도의 북남과 러시아, 유럽을 잇는 철도 수송로의 부설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이로써 조선과 러시아 간의 철도 연결 사업이 본격적으로 실현 단계에 이르렀음을 선언한다.’

필자는 과거 베이징에서 한 조선노동당 관계자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2000년 6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서 북남 정상회담을 열었을 때 한국에서 조선, 러시아를 거쳐서 유럽으로 연결되는 유라시아 횡단철도를 건설하는 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대화가 이루어지면서 분위기가 고조됐다. 그 첫걸음이 나진과 하산을 잇는 50㎞ 남짓한 철도 건설이었다. 이 철도는 일본이 식민지 시절에 건설한 것으로 일본의 패전 이후 구소련이 철로 폭을 넓혀서 운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만 공사하면 완성할 수 있다.”

하지만 ‘모스크바 선언’에서 칭송한 이 철도 건설은 그 후 7년 동안 정체된다. 그 이유에 대해서 평양지국장 경험이 있는 러시아인 기자는 과거에 베이징에서 나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구소련 시절인 1980년대, 북한에 빌려준 약 100억 달러의 채무가 불이행 상태로 있다. 이번 철도 건설도 러시아와 북한의 공동사업이라고는 하지만 북한이 또다시 전혀 자금을 대지 않을 위험이 있었다. 즉 북한에 대한 신뢰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러시아 측은 철도 건설을 주저했다.”

변화가 온 때는 2008년 10월이었다. 러시아인 기자의 설명을 좀 더 들어보자.

“북한은 나진항의 제3부두에 대해 49년간의 조차권을 주는 대가로 러시아가 항만 정비와 철도 정비를 맡는 것에 동의한 것이다. 당시 러시아는 2008년 8월 베이징올림픽을 치른 중국이 대국으로 부상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때문에 러시아와 북한의 수교 60주년 기념사업을 통해 북한을 활용함으로써 중국을 견제하려 했던 것이다.”

이 철도 건설과 병행한 움직임이 한국과 러시아 사이에도 있었다. 2008년 9월 취임한 지 반년 남짓 지난 이명박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 드미트리히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천연가스 개발 및 수입에 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2015년부터 2017년 사이 사업을 개시,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총 30년간 매년 100억㎥의 천연가스를 운반한다는 계획이다. 러시아의 하바로프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 하산을 거쳐 북·러 국경의 경성·원산을 경유, 한국의 강원도 고성에서 인천에 이르는 약 2000㎞를 파이프라인으로 연결한다는 장대한 계획이었다. 이에 따라 북한에는 연간 1억 달러의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통행료를 지불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이후 남북 관계가 악화되면서 그림의 떡이 됐다.

그 사이 나진-하산 간 철도 건설은 조용히 진행됐다. 그리고 2013년 9월 22일 나진항 제3부두에서 철도 개통식이 열렸다.

북한 측 대표로 참석한 전길수 철도장관은 기념식 축사에서 “이 역사적인 철로의 개통은 향후 북·러 양국 간 제휴의 모범 사례가 될 것이다”라고 자랑스러워했다. 모스크바에서 온 러시아 철도공사의 야쿠닌 사장도 “‘모스크바 선언’으로부터 12년이 지나 드디어 조선반도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최단 루트가 만개했다”고 감개무량해 했다.

덧붙이자면, 이 사업의 리더였던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은 당시 개통식에 불참했는데, 2개월 남짓 지난 그해 연말에 처형되고 말았다.

이 철도는 현재, 러시아의 석유와 북한의 일상 잡화품이 거래되는 루트로 활용되고 있다. 아홉 차례나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의 생명선을 잡고 있는 중요한 라이프 라인이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은 패밀리의 긴급 탈출용 땅굴 건설


▎2015년 백두산 지역에서 생산된 생수가 북한 나진항을 통해 부산항으로 들어왔다. / 사진·연합뉴스
필자는 이 철도 건설에 관해 이전부터 하나의 의문을 품고 있었다. 일제시대에 설치한 철로가 이미 깔려 있는 상태에서, 고작 54㎞를 정비하는 데 왜 5년에 걸친 시간이 필요했느냐 하는 점이다.

일단 일본의 한 철도회사에 근무하는 친지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1964년 도쿄올림픽에 대비하기 위해 도쿄-오사카 간 약 550㎞의 신칸센 선로를 깔았는데 그 건설기간이 5년이었다. 그에 비하면 나진-하산 간 거리는 10분의 1, 게다가 일제시대의 철로가 이미 있는 상태에서 부설에 5년이나 걸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나카무라 교수가 추측하는 것처럼, 만약 철로의 지하에 미군의 공습에 견딜 수 있는 지하 터널을 건설했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만 5년이 걸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지 않은가?

필자는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한 고위 탈북자에게서 다음과 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평양 김정일 관저의 지하에서 황해의 남포까지 60㎞ 가까이 비밀 지하도가 존재한다. 미군에 의해 평양이 공격받을 때 김씨 일가는 이 지하도를 통해 남포까지 달아난다. 그리고 남포에서는 공로 또는 해로를 거쳐 중국으로 망명한다.”

이는 김정일 정권과 장쩌민·후진타오 정권 간 밀월 시대의 이야기다. 현재의 시진핑 정부는 앙숙인 김정은 패밀리의 망명을 받아들일 리가 없으니 이 루트는 쓸 수 없게 된 것이다. 때문에, 북한이 추가로 북·러 국경 17㎞의 지하에 러시아로 향하는 지하도를 건설했다는 것은 사리에 맞는 추측인 것이다.

더불어 비용은 러시아 측이 전액 부담한다. 거기다 철도 건설이라는 명목으로 러시아가 당당하게 공사를 진행하면 미국의 첩보위성에 걸릴 위험도 줄일 수 있다. 아울러 러시아 측이 전면적으로 공사를 맡으면, 건설 후에 북한 노동자들이 북한 내에서 소문을 낼 수도 없다. 이처럼 김정은 패밀리의 긴급 탈출용 땅굴 건설은 북한에 일석 몇 조나 되기도 하고 매우 편리한 것이었다.

김정은의 마지막 안식처 스발바르 제도?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9월 4일자에 수소폭탄 실험에 환호하는 주민들의 사진을 게재했다. / 사진캡처·노동신문
③ 김정은 위원장 가족의 피신처 제공

“미국과의 전면전이 발발할 경우, 김정은 패밀리는 평양에서 나진까지 도주, 거기에서 지하 도로를 통해 러시아 국경을 넘어 하산에 도착한다. 하산에서는 군항인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이동, 그곳에서 군수송기를 타고 북극해에 위치한 무르만스크 군항까지 갈 것이다. 무르만스크에서는 군 수송용 헬기를 타고 거기서 1000㎞ 떨어진 스발바르 제도로 이동한다. 스발바르 제도는 북극해에 위치한 군도이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러시아, 노르웨이 등 여러 나라가 영유권을 다투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종결 후 파리강화조약에서 스발바르 제도를 영구 비무장지대로 확정했다. 이 스발바르조약에는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러시아와 미국 등 40개국 이상이 가입하고 있지만 실제로 섬을 운영하는 것은 노르웨이와 러시아다. 그런데 지난해 갑자기 이 스발바르조약에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가입한 것이 북한이다. 게다가 러시아인 거주지역에 현재 엄청나게 광대한 대저택을 건설 중이라고 한다. 그곳이 김정은 패밀리의 마지막 안식처가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무척이나 흥미로운 지적이다. 하긴 아무리 러시아령까지 도망친다 해도 극동에 정착한다면 언제 미군이 덮칠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또한 아무리 러시아라고 해도 국제사회로부터 독재자를 숨겨주고 있다는 비난을 받게 되면 입장이 난처해진다. 하지만 스발바르 제도는 엄밀한 의미에서 러시아령은 아니기 때문에 푸틴으로서는 국제사회로부터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사실 중국 정부도 과거 김씨 일가의 망명에 대해서 은밀하게 내부에서 검토한 적이 있다. 2002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비난한 후, 북·미 관계가 악화된 시점이다.

당시 결론은 ‘황장엽식 방식으로’라는 것이었다. 북한의 서열 26위였던 황장엽 씨가 1997년 베이징 한국영사관에 망명을 신청했을 때, 중국 정부는 3개월 이내에 출국할 것과 한국 이외의 제3국으로 갈 것을 조건으로 신변 안전을 보장했다. 마찬가지로 김씨 일가에 대해서도 3개월 동안의 체류 이 외에는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역시 골칫거리로 여긴다는 뜻이다. 올해 2월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살해된 김정남은 처음에는 베이징에 이어 마카오에 체류했는데 중국 측의 공식 설명은 “체류 비자를 내고 머물러 있었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1970년대에 시아누크 캄보디아 국왕을 숨겨주던 시절과는 사뭇 다르다.

따지고 보면 원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즉 지금의 북한은 구소련이 건국한 위성국가다. 당시의 소련은 1991년 말 붕괴했지만 러시아 복권을 꾀하겠다는 푸틴 정권은 이 극동의 골칫거리 소국(小國)을 어떻게 이용하면 자국의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을지를 생각한 셈이다.

러시아의 분기점은 소치동계올림픽을 개최한 2014년이다. 그해 3월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탈환하고(빼앗고),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국민들의 영웅이 됐다. 그러나 그 때문에 유럽과 미국을 완전히 적으로 돌리면서 경제제재를 받았다. 때마침 석유가격이 성수기의 3분의 1이하로 하락하는 더블펀치까지 두들겨 맞게 됐다.

이러한 위기를 맞아 러시아는 아시아로 눈을 돌렸다. 그때 러시아의 시야에 들어 온 것은 중국, 일본 그리고 조선반도다.

100년간의 ‘러시아>중국’ 역학관계가 역전된 순간


▎지난 9월 중국 샤먼시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만난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 사진·연합뉴스
우선 가장 중요한 중국은 같은 해 5월, 2018년부터 30년간 총 4000억 달러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천연가스 공급 계약을 맺었다. 이로 인해 러시아는 당장의 경제 위기를 탈출하는데 성공했으나, 동시에 국가 경제의 목숨줄을 중국에 건네주게 됐다. 과거 100년간 이어져 오던 ‘러시아>중국’이라는 역학관계가 역전된 순간이었다.

러시아로서는 이런 상황에 ‘보험’을 들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북방 영토’라는 당근을 사용해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도모했다. 시진핑 체제 아래 중국과의 갈등에 악전고투하던 아베 신조 정권은 곧바로 이 당근을 덥석 물었으며, 덤으로 일본이 극동지역 경제개발까지 해주게 됐다.

러시아가 극동에서 관계 개선을 꾀한 또 다른 국가가 옛 소련 시절의 위성국가인 북한이었다. 그리고 북한에 준 당근은 석유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이었다. 북한 또한 중국과의 관계 단절과 에너지 부족, 국내 경제침체 등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의 러브콜에 곧장 달려왔던 것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1년 말 아버지 김정일의 급사로 인해 북한의 실질적 지도자가 됐다. 이후 내정에 전념해 한 번도 출국하지 않았다. 하지만 단 한 번 출국을 결심한 적이 있다. 그것은 2015년 5월 러시아의 조국해방 70주년 군사퍼레이드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북·러는 그 정도로 밀월관계를 구축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김정은 위원장의 모스크바 방문은 취소됐고,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그 책임을 물어 처형됐다. 후진타오-김정일 시대에는 중국의 다칭유전(大慶油田)에서 파이프라인을 통해 ‘수력발전용 우호원조’라는 명목으로 매년 50만t의 석유가 북한에 제공돼왔다. 하지만 시진핑-김정은 시대 들어 공급량을 상당히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중국 외교 관계자는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시진핑 주석이 제일 싫어하는 정치 지도자가 아시아에 세명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대만 차이잉원 총통,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다. 그래서 이 세 명이 통치하는 한 일본, 대만, 북한과 우호 관계를 맺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본다.”

때문에 북한은 두 말 없이 러시아의 품으로 달려갔다. 북·러는 ‘우호가격’으로 러시아산 석유를 북한에 공급하기로 한 것이었다. 북·중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는 요즘 러시아 석유 공급이 북한의 생명선이 되고 있다.

북한의 ICBM에 대해 8월 14일 영국국제전략연구소(IISS)의 로켓 기술 전문가인 마이클 엘먼이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증언을 했다.

“북한의 ‘화성 14형’(ICBM)과 ‘화성 12형’(중거리탄도미사일)은 옛 소련의 로켓 엔진을 개량해서 사용하고 있다. 최근 2년여 만에 북한이 ICBM의 기술을 급속히 발전시킨 배경에는 구소련의 로켓 엔진 구입이 있었다.”

이 증언이 세계로 전파된 이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서로 상대에게 책임을 미루고 있다. “우크라이나 위기로 국내가 혼란한 우크라이나에서 ICBM기술이 유출됐다”는 것이 러시아의 주장이다. 한편 우크라이나는 “북한에 기술을 유출하지 않았다”며 푸틴 정권이 유출했음을 암시했다.

어느 쪽 주장이 진실인지는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설명한 북·러의 밀월에 비춰볼 때, ICBM 기술에 관한 ‘북·러 밀약’이 존재하지 않는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 혹은 우크라이나로부터 기술을 입수할 수 있는 경로를 러시아가 북한 측에 제공하거나 도와줬을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러시아로서는 북한이 조속히 ICBM을 개발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문제로 북·미 관계 악화가 확실시되면 미국의 시선이 이란·시리아 등의 중동에서부터 북한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또한 러시아의 최대의 적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강화도 미뤄진다. 아울러 북·중 관계를 악화시킴으로써 중국이 러시아를 배신할 위험도 경감된다.

러시아에 유일한 문제점은 한반도 위기로 극동 지역의 경제 개발이 늦어지는 것이지만, 그래도 북한이 ICBM을 휘두름으로써 러시아가 얻는 이익은 손실을 훨씬 웃돌고 있다. 러시아는 이제 중동의 시리아나 이란과 마찬가지로 극동의 북한을 또다시 위성국가로 삼고 싶은 것이다.

북한을 다시 위성국화하려는 러시아의 야심


▎북한 여행 중 억류됐다가 귀국 후 사망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미국으로 송환될 당시의 모습. / 사진·연합뉴스
북한은 당초 미국과의 직접 협상을 목표로 했었다. 올해 5월 8일과 9일, 북한 외무성의 최선희 북미국장(최영임 전 총리의 수양딸)이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미국의 토머스 피커링 전 유엔대사와 회담을 가졌다. 하지만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피커링 전 대사에게 주문한 것은 “북한에 감금된 4명의 미국인을 석방하라”라는 한마디였다고 한다.

결국 북한 측은 6월 15일, 의식불명 상태의 미국 대학생 웜비어 씨를 석방했다. 그러나 그가 미국에 귀국한 지 불과 4일 만에 사망함으로써 미국 측의 분노는 오히려 배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의 직접 협상은 어렵다고 판단한 북한은 다시 러시아에 매달렸다. 이 관계자가 말했다.

“6월 러시아가 중개하는 형식으로 북·미 협상이 이뤄졌다. 북한 측은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중지할 것,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것 등을 요구했다. 한편 미국 측은 북한의 핵개발 계획을 중단하라고 촉구했지만, 무엇보다 북한에 감금된 3명의 미국인을 석방하도록 요구했다. 3명의 석방이 협상의 전제라는 것이다. 그러자 이에 발끈한 북측에 의해 협상은 결렬됐다.”

하지만 북한이 러시아에 의지하는 자세는 변하지 않았다. 조국해방기념일인 8월 15일 <노동신문>은 김정은 위원장이 푸틴 대통령에게 보낸 축전을 공개했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모스크바 러시아 연방 대통령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푸틴 각하,

나는 조선 해방 72주년을 맞아 귀하와 귀국의
친선적인 국민에게 따뜻한 인사를 보냅니다.
나는 힘들었던 항일 대전의 나날을 함께하고
배양한 북·러의 친선 관계가 양국 국민의 이익에 부합하고
변함없이 강화, 발전할 것이라는 확신을 표명하는 바입니다.
나는 이번 기회에 강력한 러시아를 건설하기 위한
책임 있는 사업이 성과를 맺을 수 있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 김정은
주체 106(2017년) 8월 15일 평양’


이 축전에는 김정은 정권이 전적으로 푸틴 정권에 의존하고 있다는 기운이 강하게 느껴진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사상되거나 국외로 피난한 아수라장의 시리아에서 6년 반 동안 아사드 정권을 지키고 있는 푸틴에 대한 신뢰감인지도 모르겠다.

9월 26일 북한의 최선희 외무성 북미국장이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사흘 뒤인 29일 회담 상대는 브루미스트로프 순회대사였다. 나카무라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사진 한 장 없는 이 남자는 러시아 외무성이 아니라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옛 KGB) 출신이라고 한다. 같은 KGB 출신인 푸틴 대통령의 측근일지도 모른다.

11월 트럼프 대통령도 취임 이후 처음으로 아시아를 순방한다. 북한 정세를 보는데 있어서 미국뿐 아니라 러시아의 움직임에서도 눈을 떼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콘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현대 특별편집위원

201711호 (2017.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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