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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력취재] 정치신인 가로막는 악법? 정치자금법의 두 얼굴 

‘그들만의 리그’ 위한 보호법 유통기한이 지났다! 

허인회 월간중앙 기자
‘기울어진 운동장’ 극복 위해 예비후보자 등록 기간·후원금 한도 확대해야...풀뿌리 민주주의 활성화 차원에서 지방의원 의원 후원회 신설도 검토해야

▎7월 27일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고(故) 노회찬 정의당 의원을 추모하는 액자를 묘소 앞에 두고 있는 추모객. / 사진:연합뉴스
고(故) 노회한 정의당 의원은 7년의 의정활동 기간 동안 1029건의 법안을 발의했다. 그 가운데 정치자금법과 관련된 법안은 총 11건. 이 중 10건은 국고보조금의 합리적 배분, 정당 후원회 설치 등 정당에 관한 내용이다. 거대 양당의 틈바구니에서 미약한 영향력을 가진 소수 정당이 살아남고자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이다.

진보 정치, 진보 정당의 발전을 추구했던 그는 다른 여느 정치인과 마찬가지로 늘 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고 한다. 특히 2013년 ‘삼성 엑스(X) 파일’ 폭로 건으로 의원직을 박탈당하면서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망자는 말이 없지만 2016년 20대 총선을 준비하면서 개인적인 빚과 생활비, 선거운동자금 등 금전적 고민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그는 유서에 밝힌 것처럼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말았다. 노 전 의원이 원외 정치인이었기에 자금난에 더 시달렸을지도 모른다. 그의 죽음을 놓고 이준석 전 바른미래당 당협위원장은 “제도가 사람을 죽였다”고 말했다. 현역이 아닌 사람이 정치자금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선거 때밖에 없는 정치자금법의 맹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래서 현역의원에게만 유리한 정치자금법을 고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세상 바꾸려 한 노회찬, 정치 환경 바꾸려 한 ‘오세훈법’에 좌절


▎2004년 1월 15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정치자금법소위에서 각자의 입장을 밝히고 있는 의원들. 가운데가 오세훈 당시 한나라당 의원.
정치자금법은 1965년 제정된 이후 지금까지 20여 차례 개정했다. 지금의 정치자금법의 큰 틀은 2004년에 만들어졌다. 2002년 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 결과, 16대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 캠프가 대기업으로부터 약 800억 원에 달하는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일명 ‘차떼기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여론은 들끓기 시작했다. 노무현 후보 캠프 역시 수백억 원대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여야는 정치자금법 개정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현행 정치자금법은 일명 ‘오세훈법’이라 불린다. 16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당시 한나라당 간사였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주도적으로 개정에 앞장섰기 때문에 이름 붙여졌다. 정개특위는 정치자금법, 정당법, 공직선거법을 개정했다. 그 결과 법인과 단체의 정치자금 기부 금지, 지구당 폐지, 정치자금 통로 후원회로 일원화 등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 왔다. 현행 정치자금법상 후원금은 국회의원, 국회의원 예비후보, 지방자치단체장 후보, 대통령 후보 및 예비후보 등이 모금할 수 있다. 국회의원이나 국회의원 후보자 등의 모금 한도액은 1억5000만원이고, 공직선거가 있는 연도에는 연간 모금·기부 한도액의 두 배를 모금·기부할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장 후보자의 경우엔 선관위가 산출한 법정 선거비용 제한액의 절반이 한도다.

임성학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오세훈법’은 정치자금의 불법성과 후진성을 극복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평가했다. 임 교수는 “정치자금법이 단기간에 제대로 뿌리내린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없다”면서 “법을 준수하려 노력해 온 정당과 정치인, 이를 감시한 시민사회의 노력이 컸다”고 평가한다.

노회찬 전 의원도 한국 정치 환경을 바꿨던 이 ‘오세훈법’에 무너졌다. 2016년 3월 노 전 의원은 자신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드루킹의 측근인 도모(61) 변호사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약 5000만원의 정치자금을 받았다. 불법이었다. 피해갈 방법은 있었다. 5000만원은 1인당 후원 한도인 500만원을 넘기 때문에 편법이지만 ‘쪼개기 후원’을 통해 받을 수 있었다. 노 전 의원은 2016년 2월 20대 총선 출마를 위해 예비후보자로 등록했고, 그로부터 며칠 후 후원회를 개설했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 제60조에 따르면 지역구 국회의원에 출마하려는 예비후보자는 선거일 120일 전에 예비후보로 등록할 수 있고 등록 이후 후원회를 열 수 있다.

개설된 후원회 계좌로 입금되는 형식을 취했다면 적법한 후원금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후원회 계좌를 통해 돈을 받았어도 법망을 피해 나가기는 어려웠다. 공직선거법 제31조에는 ‘국내외의 법인 또는 단체는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5000만원은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라는 단체의 계좌에서 인출돼 노 전 의원에게 (현금으로) 전달됐다. 엄연한 불법이다. 노 전 의원은 유서에 “나중에 알았지만 다수 회원의 자발적 모금이었기에 마땅히 정상적인 후원 절차를 밟아야 했다”고 때늦은 후회를 했다.

은밀한 자금수수 유혹에 노출된 원외 정치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018년 2월에 공개한 2017년 국회의원 정치후원금 모금 현황에서 노 의원은 지난해 3억4246만원을 모금했다. 전체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둘째로 많은 후원금 액수였다.

대중적 인기 덕분에 후원금 한도인 3억 원을 거뜬히 넘겼다. 지난해에는 19대 대선이 있어 후원금을 3억 원까지 모금할 수 있었다. 후원금이 모금한도액을 초과할 경우 다음해 후원회 모금한도액 규모는 초과금액만큼 줄어든다. 초과금액이 한도액의 20%를 넘을 경우 그 금액은 후원자에게 반환되거나 국고에 귀속된다.

노 전 의원이 정의당에 특별당비를 납부하고 시민단체에 후원하며 활발한 의정활동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후원금 덕분이었다. ‘검은 돈’의 유혹에 넘어갈 이유도 없었다.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는 현역 국회의원이었기 때문이었다.

조성대 한신대 교수는 “현역 국회의원은 4년 동안 상시적으로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다”며 “반면 원외 인사들은 예비후보 등록 후 120일을 제외하고는 후원금을 받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임성학 교수는 “원외 인사가 현역 국회의원과 경쟁하려면 더 지역 정치활동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면서 “하지만 정치자금법의 현실은 정반대로 간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다 의원직을 박탈당한 노 전 의원의 경우 타격이 더욱 컸을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높아진 인지도와 위상 때문에 활동 반경과 씀씀이는 커졌는데 예비후보 등록 전에는 후원금을 모금할 수 없으니 금전적 압박이 심했으리라 본다.”

이는 원외 인사의 고통이기도 하지만 정치를 새로 시작하는 신진인사들에게도 같은 족쇄로 작용한다.

국회도 이를 잘 안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7월 25일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현행 우리 정치자금법에 따르면 선거가 있는 해가 아니면 정치 신인에게 정치자금을 모을 수 없다”며 “정치활동에도 돈이 필요한데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모금이 불가능하니 많은 원외정치인이 은밀한 자금수수의 유혹에 노출된다”고 꼬집었다.

이런 이유로 원내와 원외의 차별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우석 미래전략개발연구소 부소장은 “기득권자인 현역 국회의원과 도전자의 격차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간극을 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비록 동일한 출발선상에서 시작하지는 못해도 적어도 경쟁이 가능한 구조는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김 부소장은 “그러지 않으면 노회찬 전 의원과 같은 비극이 또다시 되풀이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해결책으로 떠오르는 대안은 예비후보 등록 기간을 확대하는 것이다. 예비후보 등록일이 현행 선거일 전 120일에서 가령 180일 혹은 240일 정도로 늘어난다면 후원회를 조기에 개설할 수 있고 늘어난 기간 동안 합법적 후원을 받을 수 있다. 원외 인사들이 음성적인 자금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보다 지금보다 여유 있는 조건에서 선거에 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정치자금 모금 한도 확대 방안도 ‘모락모락’


▎7월 23일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조문을 하고 있는 유시민 작가. / 사진:연합뉴스
정치자금의 현실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현행 1억5000만원으로 한도가 정해져 있는 후원금의 상한선을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김관영 원내대표는 7월 25일 “현역 의원의 경우도 선거가 없는 해라도 1억5000만원의 자금을 모을 수 있지만 그 한도액이 2004년 이후 물가 인상 또는 소득수준 향상 분을 반영하지 못했다”면서 “현실적인 수준으로 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고 밝혔다.

현장을 뛰는 국회의원 중에는 한 해 후원금 1억5000만원으로는 일상적인 경비를 충당하는 데도 벅차다고 혀를 내두르는 경우도 있다. A 국회의원은 “지역구 사무실 임대료, 인건비, 운영비 등 고정 지출만 월 2000만원 가까이 든다”고 토로했다. 1억5000만원 후원금으로는 턱없이 적어 적자를 본다. 그나마 선거가 있는 해는 후원금 상한이 3억 원으로 확대된다. “이때 더 끌어들인 돈으로 선거가 없는 해의 경비를 충당하는 식으로 근근이 버틸 수 있다”고 귀띔했다. 예컨대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올해는 지방선거가 있어 3억 원 모금이 가능하다. 여기서 생기는 여윳돈을 선거가 없는 해 경비로 돌려막는 식이다. B 국회의원은 “선거가 없는 해는 후원금으로 고정비용을 충당하는 것도 벅찬 것이 현실”이라고 고백했다.

최근 정당이 오픈프라이머리와 같은 상향식 공천을 일반화하면서 지역구 관리의 중요성은 과거보다 더 강조되는 추세다. 결국 돈 들어갈 구멍이 더 많이 생긴다는 말이다. 정당 민주주의 확대가 어쩌면 정치자금 수요를 끌어올리는 작용을 하는지도 모른다. 여당의 한 관계자는 “공천 심사 과정에서 여론조사나 당원 투표는 지역구 당원 대상으로 이뤄진다”면서 “평소 인맥을 관리하는 등 표밭갈이를 해놓지 않으면 공천 국면에서 낭패를 볼 수 있다”고 현지 기류를 설명했다. 그는 “의정 활동도 활동이지만 당원만 꽉 잡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면서 “조직의 힘만으로 다선에 오른 지방 의원도 많다”고 전했다.

수도권과 지방의 차이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준석 전 당협위원장은 “복합선거구를 가진 지방 의원들은 애로사항이 많다”면서 “인구가 밀집된 서울은 지역구 사무실을 하나만 둬도 관리가 가능한데 지방의 경우 적어도 2곳, 많게는 5곳까지 둬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정치자금법 제9조에는 “국회의원이 지역에 두는 사무소의 유급사무직원의 수는 5인을 초과할 수 없다”고만 명시돼 있을 뿐 지역구 사무실을 의무적으로 운영해야 하는 법적 규정은 없다. 복합선거구 지역구를 둔 국회의원이 선거구마다 사무실을 설치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현실은 다르다. 이 전위원장은 “지역구 사무실이 없는 곳의 주민들은 ‘우리 지역은 신경 안 쓰냐’는 얘기가 나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사무실을 내고 직원을 상주시키게 된다”고 말했다.

정치자금 상향에 대해 조성대 교수는 “정치자금 기부 행위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 영역에서 보호한다”면서 “상한선으로 기부 통로가 닫히고 나면 기부할 수 없고 이는 표현의 자유가 침해받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상한선을 올리면 상당한 자금이 정치권으로 흘러갈 수 있다. 하지만 시민들의 자유로운 정치적 의사 표현이라는 측면에서 개방된 자세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임성학 교수 같은 이는 고비용 정치구조 해소 차원에서 정해 놓은 정치자금의 한도를 높이는 문제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그는 “다만 상한선이 올라간다면 자신이 지지하는 국회의원이 의정 활동을 더 활발히 할 수 있다”면서 “이는 유권자의 활발한 정치적 의사 표현을 보장해 주는 일이기도 하다”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는 국회의원 입장에서 더 분발하게 되는 인센티브로 작용할 수 있다. 임 교수는 “다만 1억, 2억 원과 같이 무 자르기식으로 한도를 높일 게 아니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기준점을 제시해야 한다”고 방법론을 제시했다. 가령 지역구 운영비 등 고정적으로 지출하는 금액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필요한 증액 규모를 책정해야 한다. “국민이 동의하는 수준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국회의원의 몫”이라고 덧붙였다.

정치자금 상한선 문제는 원외 인사에도 해당돼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유세 차량과 현수막으로 북적이고 있는 서울 신도림역 일대. / 사진:연합뉴스
정치는 일종의 ‘돈 먹는 하마’다. 이 때문에 정치 신인인 원외 인사일수록 진입장벽을 넘어서기가 힘들다. 물론 무분별한 선거자금 지출을 막는 선거비용 제한액이 제시되고 일정 비율 이상 득표하면 선거 비용의 일부를 보전해 주는 선거공영제가 있다. 그러나 이는 선거운동 기간에만 해당하는 내용이다. 공직선거법 제33조에 따르면 국회의원 선거 및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 선거운동 기간은 14일이다. 14일 동안 쓰는 비용에 대한 제한이고, 보전이다.

선거 현장 얘기는 다르다. 20대 총선에 출마했던 정치권 관계자의 얘기를 들어 보자. “예비후보자 등록 기간에도 인력을 운용하지 않을 수 없다. 예비후보자 신분에서 선거 사무실 운영비, 회계책임자 인건비, 교통비 등은 따박따박 나간다. 공천받기 위해 정당에 납부하는 기탁금은 아예 선거비용에 포함되지 않는다. 경선까지 들어가는 비용까지 더한 비공식 선거비용은 일반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그건 온전히 후보자의 호주머니에서 지출된다”고 밝혔다.

이는 ‘제7회 동시지방선거 후보자의 선거비용제한액 공고’에도 명시돼 있다. “기탁금, 무소속 후보자가 선거권자의 추천을 받는 데 소요된 비용 등 선거운동을 위한 준비 행위에 소요되는 비용, 선거사무소와 선거연락소의 설치 및 유지비용, 후보자나 선거사무원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의 운영비용 등은 선거비용으로 보지 않는다”고 적시돼 있다.

선관위에 따르면 지난 20대 총선(비례대표 포함)의 평균 선거비용 제한액은 1억7534만여원, 지역구 후보자 1인당 평균 선거비용 제한액은 1억2116만여 원이었다. 여러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실제 총선 과정에서 드는 비용은 평균 2억 원을 웃돌고 남는다. 돈 있는 사람만 정치에 뛰어들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2018년 국회의원 재산등록’ 공개목록에 따르면 국회의원 286명의 평균 재산은 43억8696만원이다. 집을 두 채 이상 보유한 다주택자(본인·배우자 보유 기준)는 119명으로 전체 의원 가운데 41.6%를 차지한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원외 정치인의 정치 참여 통로를 넓혀준다는 측면에서 후원금 상한선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현행 1년 1억5000만원의 한도액을 높여 정치 신인들의 주머니 사정을 가볍게 해주자는 취지에서다. 한 국회의원은 “원외 인사가 발로 뛰어 선거에 통상적으로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2, 3억 원 정도 모금할 수 있는 기회 정도는 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강조했다. 후발주자라도 자기 노력 여하에 따라 최대한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두자는 게 이 의원의 논지다.

하지만 고비용 정치에 부정적인 시중의 여론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한 접근은 조심스럽기만 하다. 후원금 상한선을 올려본들 다 채우지도 못하리라는 비관론도 고개를 든다.

중앙선관위가 공개한 2017년 국회의원 후원금 내역을 살펴보면 지난해 후원금 한도(3억 원)를 채운 국회의원은 300명 가운데 고작 29명에 그친다. 한 현역 국회의원은 “후원금 관련 빈익빈 부익부가 상당하다”고 했다. 힘이 있는 집권 여당 의원이나 인지도가 높은 의원에게 쏠린다는 것. 그는 “후원금 한도의 절반도 못 채우는 의원이 많은데 원외의 경우 한도를 높여본들 실질적인 혜택이 얼마나 돌아갈지 의문”이라고 고개를 갸웃했다.

정치자금 증액 요구가 결국 다음 선거를 위한 발판이라는 비판도 있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정치활동의 기본은 정책 생산”이라며 “현재 정치인들이 정치자금 한도를 풀어 달라는 것은 조직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을 달라고 하는, 좀 과하게 말하면 ‘차떼기’ 시절로 돌아가겠다고 말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정책 정당화, 생활 정당화하면서 정치자금 요구해야”


정치인들은 내심 정치자금 상한선 확대를 바란다. 단지 국민 눈치 보느라 공론화시키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앞서 2015년 2월 중앙선관위는 모금한도액을 현행 1억5000만원에서 2억 원으로 상향조정하는 내용이 담긴 정치자금법 개정의견을 내놓은 바 있다. 당시 중앙선관위는 “10년 동안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후원금 모금한도액을 그동안의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현실화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현실적 타당성이 인정된다면 차제에 한도를 상향 조정하고 자금의 투명성 확보와 처벌 강화하는 방안을 찾는 논의를 해봄직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조성대 교수는 “시민들의 소액 기부를 통해 일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현행 취지를 유지하되 비영리 단체 기부를 허용하는 등 지혜를 모을 때”라고 제안했다. 이준석 전 당협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노회찬 전 의원이 방송에서 했던 말이다. 오히려 돈을 죄면 죌수록 좋아하는 것은 이념 정당의 활동가가 아니라 이룰 거 다 이루고 정치에 점 하나 찍고 싶은 사람들에게 유리하다.”

기초·광역 의원 등 지방의회에 도전하려는 후보자들이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도록 하자는 움직임도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지방의회 후보자는 물론 지방의원도 후원회를 둘 수 없다.

김광수 민주평화당 국회의원은 2018년 4월 정치자금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하며 “지방의회 의원 후보자도 후원회를 둘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거 활동에 소요되는 비용을 적법하게 조달하고, 다양한 계층의 주민의 정치 참여 기회 확대를 하도록 하자는 취지다.

지방의회 또한 참정권 담보의 대의기관으로 대표성을 기반으로 하는 의회 제도의 근간을 이루고 있지만 후원회 설치가 허용되지 않아 선거자금 전액을 스스로 마련해야 하는 처지다. 그는 “현행법으로 인해 불법적인 방법으로 선거자금을 모집할 가능성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특정 계층 중심으로 지방의회가 구성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박용진 민주당 국회의원은 지방의원 후보자 및 예비후보자도 후원회를 둘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정치자금법 개정안 발의를 준비 중이다. 그는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 신인에 대한 진입장벽이 너무 높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청년이 유권자가 아닌 정치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협소하다는 게 그의 문제의식이다. “외국의 경우 젊은 세대들이 지방의회에서 시작해 정치 훈련을 거쳐 중앙정치를 옮겨 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기 위해서 20~30대가 지방의회에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현행 정치자금법은 국회의원 중심으로만 돼 있다.”

“지방의회 후보자에도 후원금 허용해 등용문 역할 해야”


▎2014년 7·30 재보궐선거 당시 동작을 노회찬 정의당 후보의 지원유세에 나선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 / 사진:연합뉴스
여의도 정치권 사정에 밝은 한 소식통은 “좋은 기술과 아이디어가 있는데 돈이 없어 창업 못하는 사람들을 지원해 줘야 한다는 것이 사회 분위기”라며 “실패했을 때 재기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환기시켰다. “정치도 똑같다. 의지와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 정치권에 뛰어들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줘야 되는데 전무하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지방의회 도전자에게도 후원회를 둘 수 있도록 하자는 방안은 20대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 20대 국회 전반기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 몸담았던 한 의원의 얘기다.

“지방의회 후원금 얘기가 거론되자 일부 의원의 반응은 놀라웠다. ‘후원회를 허용하면 기초의원, 광역의원 버릇 나빠진다’ ‘지방의원들이 후원금 거둬 가면 우리는 뭘 가져가느냐’는 우려까지 나왔다. 지방의원들을 본인들 아래에 두고 부리는 사람 정도로 여기는 것이다.”

실제로 국회 정개특위 회의록을 들여다보자. 2017년 9월 1일 정개특위 회의에 참석한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들은 얘기라고 전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일부 의원님께서는 이런 말씀도 하시더라고요. (지방의회까지 후원회가) 확대되면 국회의원이나 국회의원 후원회 같은 경우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 부분이 있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후원금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은 한도가 있는데 이것이 확대가 되면 어차피 파이는 한정적일 것 같은데 국회의원 후원회 쪽에 위축을 가져올 수도 있다. 그다음에 두 번째는 국민들한테 과도한 정치적 부담을 줄 수가 있다 이런 말씀들을 비공식적으로 들은 적은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지방의회에 후원회를 허용하면 로비의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정개특위에 참여했던 또 다른 의원의 말이다. “로비의 위험성은 국회의원도 똑같이 노출돼 있다. 입법 로비하고 후원금을 받을 수 있는 현재 구조가 국회다. 그러한 우려는 현행법으로 처벌 가능한 일이다. 사안을 침소봉대하면서 지방의원에 도전하려는 정치 신인들에게 길을 열어주지 않는 것은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지방의회 후원회 허용 문제는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여건이 따라줄지 의문이라는 시각을 극복하는 게 관건이다. 앞서 2015년 12월 헌법재판소가 정당 후원회를 금지한 정치자금법 규정에 대해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리자 중앙선관위는 이듬해 8월 선거운동의 자유와 정당 활동의 자유를 확대하는 내용의 정치자금법 개정의견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정당 후원회 허용, 정당국고보조금 배분방식 변경 등 여러 개정 의견 가운데 지방의회의원 선거의 예비후보자 및 후보자도 후원회를 둘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 같은 중앙선관위 개정의견에 대해 국회 입법조사처는 2016년 9월 보고서에 “1만여 명의 후보자가 참여하는 동시지방선거의 규모를 감안할 때 이를 관리, 감독할 회계시스템과 각급 선관위의 조직, 인력 확보 등 행정적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채 후원회가 허용될 경우에는 큰 혼란이 초래될 수 있으므로 그 시행 여부와 시행 시 모금한도에 관해 보다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후원회가 없는 지방의원들은 오히려 현역의원들에게는 후원을 하는 게 한국 정치의 한 단면이다. 선관위가 공개한 2017년 후원금 내역 가운데 민주당 소속 김달호 서울 성동구의회 의장은 같은 지역구 홍익표 민주당 의원에게 총 350만원을, 윤종욱 성동구의회 부의장도 440만원을 후원했다. 자유한국당에서도 한창화 경북도의회 의원이 포항 북구 김정재 의원에게 400만원을 후원했으며, 김희수 도의원도 총 310만원을 기부했다. 국회의원이 지역구 지방의원 등으로부터 고액 후원금을 받는 것은 정치자금법상 제약은 없다.

김우석 미래전략개발연구소 부소장은 “재력가나 전략공천을 받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국회에 진출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고 있다”면서 “이는 다양한 계층의 민의를 담아야 하는 국회가 제 기능을 못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원외 인사의 정치활동을 지원하는 문제는 단순히 정치자금법의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풀지 못한다는 게 김 부소장의 주장이다. 그는 “얽혀 있는 사안이 많고 개헌만큼 힘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 현역 국회의원은 정치자금법과 관련해 거론되고 있는 모든 사안은 국회에서 결정해야 풀릴 수 있는 문제라고 강조한다. 그는 “기득권 내려놓기에 유독 인색한 의원들이 정치자금을 신인들과 나누겠다는 법안에 공감할지 의문”이라고 말한다.

스티븐 앤솔라비히어 하버드대 교수는 정치자금을 정치인이 아닌 유권자 입장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한다. 그는 2003년 ‘왜 미국 정치에 돈이 이렇게 없을까(Why is there so little money in US politics?)’라는 논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개인 기부자 대부분은 200달러 이하의 소액을 후원하며 이들 소액 기부자는 정치인이나 정부로부터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소액 기부자들이 기부 행위 그 자체에서 효용을 얻으며, 굳이 한도를 둘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이어진다.”

- 허인회 월간중앙 기자 heo.inho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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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호 (2018.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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