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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동향] 미래 기술 경연장… CES 2018의 모든 것 

섹스 로봇부터 두루마리 TV까지 상상이 현실이 된다 

이창균 이코노미스트 기자 smilee@joongang.co.kr
진화된 ICT 생활 속으로… 스마트시티·자율주행·블록체인 집중 조명

소비자가전전시회(CES·Consumer Electronics Show)는 매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가전 박람회다.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9월 독일 베를린의 국제가전박람회(IFA)와 더불어 세계 3대 정보통신 기술(ICT) 행사로 꼽힌다. 1967년 시작해 5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CES는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의 미래상을 미리 그려볼 대표 무대다. 올해 주목받은 신기술은 무엇인지 CES의 역사와 함께 짚어봤다.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8에서 관람객들이 전시된 LG의 OLED 디스플레이를 둘러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1월 9~12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8’은 보다 진화한 첨단 정보통신기술의 경연장으로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주최 측인 전미소비자기술협회(CTA)가 내세운 주제는 ‘스마트시티의 미래’다. 스마트시티는 지난해 각광을 받은 스마트홈에서 한층 확장된 개념이다.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AI) 같은 네트워크·소프트웨어 기술로 각 가정뿐 아니라 도시 전체와 모든 시민의 일상을 보다 풍요롭고 효율적으로 이끈다는 게 스마트시티의 방향이다.

스마트시티 기술이 적용된 가까운 미래의 예를 들어보자.

#2020년 여름, 미국 플로리다주 남부의 한 소도시. 며칠 전 인근에 몰아쳤던 기록적인 허리케인의 여파로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이 범람할 위험에 처했다. 지방자치단체 연구원들은 당황하지 않고 실내에서 모니터를 주시한다. ‘오전 8시35분 현재 가까운 강물의 수위는 몇m, 다른 수역 수위는 몇m…. 홍수가 임박했으니 조치가 필요합니다.’ 시민들에게 자동으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전파된다. 위기 경보부터 대피 장소 마련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사람이 일일이 데이터를 분석해 결정하던 것을 컴퓨터가 스스로 판단해 처리하니 시간이 절약되고, 홍수 피해가 최소화된다.

CES 2018에서 독일 업체 보쉬가 선보인 디지털 홍수 모니터링 시스템이 바꿀 미래의 모습이다. 보쉬는 독일 소도시 루트비히스부르크 인근 네카어강에서 이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다. 시스템은 보쉬의 IoT 클라우드로 데이터를 전송, 수위의 임계값이 넘어가면 지역주민들에게 실시간 문자메시지로 경보를 발령해준다. 홍수가 잦은 인도와 남미 등지의 지자체들이 이 시스템 도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자연재해 실시간 대비하는 스마트시티 눈앞에


▎일본 소니의 히라이 가즈오 CEO가 CES 2018에서 강아지 로봇 ‘아이보’를 소개하고 있다.
이런 스마트시티 기술은 도시의 모든 요소를 IoT로 연결,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만든다. CES 2018은 이런 ‘미래 도시’의 모습을 미리 그려보는 자리였다. 스테판 하르퉁 보쉬 부회장은 “2020년까지 세계적으로 화재·도난 경보기, 전기계량기와 가전 등 약 200억 대의 기기가 서로 연결될 것”이라며 “보쉬 전자제품을 2020년까지 웹에서 100%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보쉬 측은 글로벌 스마트시티 시장이 해마다 19%씩 성장해 2020년 8000억 달러(약 858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보쉬 외에 미국 아마존·페이스북·포드, 중국 화웨이 등도 이번 CES에서 그간 갈고닦은 스마트시티 기술을 뽐냈다. 개리 샤피로 CTA 회장은 “2020년까지 세계 스마트시티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비용만 353억 5000만 달러(약 38조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런가 하면 ‘미래 자동차’의 기반 기술인 자율주행도 CES 2018에서 집중 조명됐다. 1월 8일 개막 기조연설을 맡은 미국 인텔의 암논 샤슈아 수석부사장이 무대에 등장하자 객석이 술렁거렸다. 그는 12개 센서를 장착한 자율주행차에 탑승한 채로 무대에 올랐다. 이 차량은 최근 인텔이 상용화를 준비 중인 자율주행차의 시험용 모델이다. 샤슈아 부사장은 인텔이 인수한 자율주행 업체 ‘모빌아이’의 공동 창업자다. 이번에 공개된 인텔의 새 자율주행 플랫폼은 레벨 3~5의 자율주행을 지원한다. 레벨 4는 사람(운전자)의 개입 없이 주행 가능한 수준이고, 레벨 5는 완전 자율주행을 의미한다.

인텔의 브라이언 크러재니치 최고경영자는 “이번 CES에서 볼 수 있는 스마트시티나 자율주행 기술은 모두 ‘데이터’에서 시작된다. 모래나 물과 같은 자원은 한정됐지만 오는 2020년이면 자율주행차 한 대당 4테라바이트(TB)의 데이터를 생성할 것”이라며 데이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00년에 한두 번 볼 법한 사회·경제적 변화가 데이터에서 촉발될 것이라는 얘기다. 지난 반세기 동안 PC용 반도체로 막대한 부를 쌓아온 인텔은 이미 데이터 기업으로 변신을 선언했다. 자율주행차는 그 매개물 중 하나다. 현재 인텔은 그래픽처리장치(GPU) 분야 최강자인 엔비디아와 함께 미래 시민의 일상을 바꿀 자율주행차 부문에서 글로벌 2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CES는 이 같은 업계 지도를 명료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세계 최대 규모의 가전제품 경연장이 IoT나 자율주행 같은 첨단 정보통신기술의 경연장으로 변모한 일은 더 이상 놀랍지 않다. 4년 전 CES 2014 때부터 자율주행 업체들은 CES에 본격적으로 참가, 내로라하는 가전업체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전시 부스를 확장해왔다. ICT 업계 관계자는 “지금껏 CES 주인공은 TV나 오디오 같은 전통적인 소비자가 전(CE)이었지만 이제 ICT 관련 모든 신기술이 주인공이 된듯한 분위기”라고 전했다. 기술 발전으로 가전과 소프트웨어의 융합이 필수불가결한 시대에 발맞춰 CES도 그에 걸맞은 행사로 변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4000여 기업과 18만 관람객 성황


▎삼성전자 미국법인의 조셉 스틴지아노 전무가 CES 2018에서 마이크로 LED 기술로 만든 ‘더 월’ TV를 소개하고 있다.
CTA에 따르면 2013년 세계 3000여 기업, 약 15만 명의 관람객이 참가했던 CES는 올해 4000여 기업, 약 18만 명의 관람객이 150여 개국에서 참가한 행사로 규모가 한층 커졌다. 이번 CES는 진화를 거듭하는 ICT를 중간 점검하는 분위기였다. 4000여 참가 업체가 내놓은 IoT·AI 관련 제품은 2만 개에 달한다. 1967년 시작해 올해로 51년째인 CES는 각종 신 기술의 등장과 맞물려 글로벌 산업계와 소비자에게 늘 기술의 미래에 대한 화두를 던져 왔다.

실제 CES는 지난 반세기 동안 숱한 ‘히트작’을 배출하면서 인류의 역사를 바꿔왔다. 예컨대 1970년 제4회 CES에서 필립스가 선보인 비디오카세트 녹화기(VCR) ‘N1500’은 가정용으로 크기를 줄이고 가격을 대당 2000달러(기존 VCR은 7만 달러)로 낮춘 획기적인 VCR로 홈비디오의 대중화를 알렸다. 1982년 CES에 모습을 보인 ‘코모도어64’ 컴퓨터는 1994년까지 세계에서 약 1700만 대가 팔리면서 개인용 컴퓨터(PC) 시대를 열었다.

종전의 아날로그 전송 방식에서 벗어난 고화질(HD) TV도 1998년 CES에 등장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위성 디지털 방송 시대가 열렸다. 이는 세계 TV 시장을 장악한 한국과 일본의 고화질 TV대전(大戰)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2008년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 3차원(3D) TV(2009년), 스마트TV(2011년)가 CES에 잇따라 선보였다. 오늘날 산업계 다방면에서 활용도가 높아진 무인항공기 드론도 CES 출품을 계기로 발전했다. 2010년 패럿이라는 프랑스 업체가 CES에서 처음 공개한 드론이 지금처럼 4개의 프로펠러를 장착한 형태다. 당시만 해도 ‘값비싼 장난감’에 불과했지만 이젠 다양한 산업 현장 전반으로 활용도가 넓어지고 있다. 세계 게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테트리스’(1988년), 스티브 잡스가 극찬했던 태블릿(2010년)과 스마트워치(2012년)도 CES 무대의 주인공들이었다.


▎LG디스플레이는 CES 2018에서 65인치 UHD ‘롤러블 디스플레이’를 선보여 관심을 모았다. / 사진:연합뉴스
올해 CES에서도 스마트시티와 자율주행뿐 아니라 다양한 미래 가전 기술이 선보여 주목을 받았다. 전통적으로 CES 무대를 빛냈던 TV는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삼성전자는 신무기 ‘마이크로 발광다이오드(LED)’ 기술을 적용해 만든 세계 최초 모듈러 TV ‘더 월’ 146인치 모델을 공개했다. 삼성전자가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낙점한 마이크로 LED는 칩 크기가 10~100마이크로미터(μm)에 불과한 초소형 LED다. 더 월은 이 소재를 탑재해 광원(백라이트)과 컬러 필터 없이도 소재의 자체 발광으로 고화질을 구현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마이크로 LED 소재 적용 시 기존 화면보다 밝기와 명암비, 색의 재현 등 거의 모든 화질 영역에서 탁월해지고 시야각도 개선된다”며 “광원 수명과 소비전력 등 내구성·효율성 측면에서도 OLED 소재에 비해 앞선다”고 설명했다. 또 모듈러 방식으로 소비자의 기호에 따라 제품의 스크린 사이즈나 형태를 자유롭게 조립할 수 있다. 가전 업계는 최근 세계 시장에서 LG전자를 필두로 한 OLED TV 진영에 밀렸던 삼성전자가 마이크로 LED로 명예 회복에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한다. 시장조사업체 마켓앤 마켓에 따르면 마이크로 LED 시장은 지난해 2억5000만 달러에서 연평균 54.7% 성장해 2025년 199억2000만 달러(약 21조원) 규모가 될 전망이다.

경쟁자인 LG도 이에 맞서 디스플레이 신무기를 내세웠다. 세계 최초 65인치 초고화질(UHD) ‘롤러블(rollable) 디스플레이’다. 이 롤러블 디스플레이는 3840×2160 화소의 초고해상도 화면을 두루마리처럼 돌돌 말 수 있도록 설계됐다. 소비자가 사용하지 않을 땐 말아서 보관할 수 있어 공간을 그만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또 사용 목적에 따라 최적화한 화면 크기와 비율을 조정할 수 있다. LG디스플레이는 현재 TV에 탑재되는 대형 OLED 패널을 제조하는 세계 유일 기업이다.

CES 2018의 또 다른 주인공은 로봇이었다. 가사·쇼핑·반려 등의 분야에서 사람을 돕는 공감·생활형 로봇들이 대거 전시됐다. 일본 소니가 선보인 AI 강아지 로봇 ‘아이보’는 주인(사용자)의 성격이나 집안 환경에 따라 고유의 성격을 갖는 것이 특징이다. 호기심을 갖고 스스로 주변 환경을 탐험하고 학습한다. 환경에 익숙해지고 나면 행동에 더 자신감이 붙는다는 면에서 실제 강아지와 비슷한 점이 많다. 음악을 틀어주면 처음에는 쭈뼛거리다 흥에 겨워 춤을 추기도 한다. 소니 관계자는 “로봇과 AI에 이미지 센서 기술을 조합해 풍부한 감정 표현을 실현한 것이 아이보의 차별점”이라고 설명했다.

야한 농담도 서슴없이… AI 섹스 로봇 화제


▎CES 2018엔 다양한 로봇 신기술이 등장해 관심을 모았다. 사진은 자일스 워커라는 영국의 예술가가 만든 댄싱 로봇. / 사진:연합뉴스
프랑스 로봇 스타트업 블루프로그는 자체 개발한 가정용 로봇 ‘버디’의 새 버전을 발표했다. 가족과 대화하거나 집 안을 모니터링하는 일이 가능한 로봇으로, 음악 청취와 동영상 실행 등도 할 수 있다. 얼굴과 바퀴가 있는 AI 비서에 가깝다. 홍콩 핸슨로보틱스가 제작해 선보인 인간형 AI 로봇 ‘소피아’는 구글 AI 기술이 탑재돼 사람과 대화하는 것은 물론 대중 연설을 할 수도 있다. 세계 최초로 AI를 적용한 섹스 로봇도 등장했다. 미국 성인 로봇 전문업체인 어비스크리에이션이 개발한 ‘하모니’다. 이번에 공개된 하모니는 얼굴 표정이 실제 성인과 비슷하며 가끔 사용자에게 야한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한편 세계적으로 뜨거운 감자인 암호화폐의 기반 기술, 블록체인도 CES 2018을 장식했다. 기업들이 블록체인 기반의 새 기술을 공개하면서다. 코닥은 이번 CES에서 ‘코닥 원’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사진작가의 이미지 권한 관리를 위한 사업으로,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웹에서 무단으로 도용된 이미지를 찾아낸다. 시스템이 자동으로 해당 웹사이트에 라이선스 구입을 권유한 다음, 이를 자체 암호화폐인 ‘코닥코인’으로 결제하도록 유도해 이미지 저작권자에게 분배해준다. 블록체인이 CES의 핵심 주인공 중 하나로 떠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컨설팅업체 액센추어의 그레그 로버트 매니징디렉터는 “블록체인이 향후 뛰어난 효율성과 보안성을 앞세워 보다 많은 산업 분야에 도입될 것”으로 내다봤다.

- 이창균 이코노미스트 기자 smilee@joongang.co.kr

201802호 (2018.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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