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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특별기획(4) 지역르포] ‘보수의 메카’ 대구의 선택 

김부겸 빠져 김빠진 ‘대구 대첩’ 

권혁식 영남일보 기자 kwonhs@yeongnam.com
대구 與野 빅매치 통해 전국 보수층 결집하려던 한국당 계산 수포로…권영진 현직 시장의 독주 체제에 제동 걸 한국당, 민주당 도전자들 몸풀기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오른쪽)의 대구시장 선거 불출마로 자유한국당 흥행 전략에 차질이 예상된다.
오는 6월 대구시장 선거에서 최대 변수로 꼽혔던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의 출마 여부가 ‘불출마’로 결론났다. 김 장관은 지방선거에 출마할 공직자 사퇴 시한인 3월 15일(선거일 전 90일)을 넘기면서도 현직을 지킴에 따라 지방선거 관리자로 남게 됐다. 김 장관의 출마 여부가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그가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나오느냐 마느냐에 따라 대구시장 선거구도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만일 김 장관이 출마했더라면 대구시장 선거는 보수정당 텃밭에서 보수와 진보 진영의 명운이 걸린 빅매치가 펼쳐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대진표에서 빠짐에 따라 대구시장 선거는 의외로 싱거운 싸움이 될 수도 있다.

사실 김 장관의 출마 여부에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된 데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의 발언이 크게 작용했다. 홍 대표는 올 초 한국당 대구 북구을 당협위원장을 맡아 대구에 거점을 마련한 뒤 1월 22일 신년기자회견에서 “대구시장을 내주면 한국당 문 닫아야 한다”고 폭탄발언을 했다. 이미 ‘광역단체장 6석 사수’에 본인의 정치생명을 걸어놓은 상태에서, 6석 중에서도 특히 대구시장 한 석에 대해선 당의 생사를 걸 정도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다는 배수진의 각오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보수 정당의 ‘급소’를 스스로 지목함으로써 여권의 승부 근성을 자극했다.

즉각 민주당 일각에선 “대구시장 선거에 꼭 이겨 한국당 문 닫게 하자”는 호기(豪氣) 어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앞서 민주당 추미애 대표도 1월 16일 신년기자회견에서 “6월 지방선거의 관심은 수도권과 영남으로, ‘동진(東進)’에 초점이 있다”고 운을 띄워 놓은 상태였다. 게다가 문재인 대통령은 2월 28일 ‘2·28 민주운동’ 기념식 참석 차 대구를 방문해 2·28 유공자들과 가진 오찬 자리에서 “대구는 다소 보수적인 곳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과거 항일의병이 가장 활발한 곳이었고 독재시대에도 저항의 중심지였다”고 말해 미묘한 파장을 던졌다. 보수의 심장이라는 대구의 시민들을 향해 보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는 저항의 역사를 상기한 대통령 발언은 대구시장 선거구도에 뭔가 극적인 카드가 던져질 것이란 기대감을 호사가들에게 심어줬다.

지방行 접고 대선주자 행보?


▎문재인 대통령이 2월 28일 대구콘스트하우스에서 열린 2·28 민주운동 기념식장에 참석했다.
김 장관이 동진(東進) 주자로 주목받았던 이유는 올 초 일부 언론에 보도된 여론조사에서 그가 자유한국당 후보 누구와 맞붙더라도 큰 차로 이길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매일신문] 의뢰로 여론조사기관 폴스미스가 실시한 대구시장 가상 2자 대결(조사기간 2017년 12월 23~28일)에서 김 장관이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나설 경우 49.1%를 얻어 자유한국당 내 1위 주자인 권영진 대구시장(35.9%)을 13.2% 포인트 차로 앞서는 것으로 나왔다. 또 [영남일보]가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실시한 2자 대결(조사기간 2017년 12월 25~27일)에서도 김 장관 지지율은 57.0%로 32.8%를 얻은 권 시장보다 24.2%포인트 앞섰다. 한국당 여타 후보들과 붙으면 격차는 더 벌어졌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 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런 여론조사 결과가 대구시민들에게 신빙성 있게 다가갔던 것은 김 장관이 지난 지방선거에서 권 시장과 맞대결을 벌였을 때 비록 패했지만 의미 있는 득표율을 올린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2014년 6월 제6회 지방선거 때 김 장관은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출마해 40.3%를 득표, 56.0%를 얻은 새누리당 권영진 후보에게 15.7%포인트 차로 패했다. 김 장관의 득표율은 1994년 6월 제1회 지방선거 이후 2014년까지 20년 동안 매번 보수 계열의 후보가 승리를 차지했지만 2위 진보 계열의 후보가 얻은 가장 높은 점수였다. 그전에는 2002년 6월 제3회 지방선거 때 한나라당 조해녕 후보와 맞붙었던 무소속 이재용 후보의 득표율 38.8%가 가장 높았다.

주위 여건이 이러함에도 김 장관은 기회 있을 때마다 ‘불출마’ 의사를 밝힘으로써 자신에게 쏠리는 기대감을 차단하는 데 애써 왔다. 그는 불출마 사유로, 의원직 중도 사퇴는 자신을 국회의원으로 뽑아준 대구 시민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했다. 또 6월 지방선거와 개헌안 국민투표 주무장관으로서 수행해야 할 막중한 임무를 내세웠다.

그러나 이런 고상한 명분론보다는 대권 전략 차원에서 김 장관의 불출마 입장을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김 장관은 지난해 2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 출마를 포기했지만 대권주자 반열에 든다. 대권주자가 본선에 진출하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 하는 중간 관문이 당내 경선이다. 경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당원 조직표를 가장 많이 관리하고 있는 국회의원들 지지를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다. 지난해 민주당 경선에서도 문재인 후보를 승리로 이끈 원동력은 당내 대주주인 ‘친문(친 문재인)계’ 주류 의원들의 의기투합에서 나왔다.

불발에 그친 홍준표의 ‘미끼’ 전략


▎자유한국당은 지난해 9월 대구시 중구 반월당 동아쇼핑 앞에서 전술핵 재배치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 때문에 대권주자의 첫 과제는 당권 장악이며 이를 발판으로 당내 경선에서 승리해 본선에 진출하는 게 여의도의 공식처럼 돼가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새누리당에서 그 경로를 밟아 대권 도전에 성공했다. 이런 시류를 감안하면 김 장관이 잘 가고 있는 대권주자 궤도에서 이탈해 ‘지방행’을 자처할 이유는 없다는 분석이다.

김 장관의 불출마로 한국당으로선 당장에는 대구시장 선거를 수월하게 치를 수 있다는 이점을 누리게 됐다. 그러나 전국적인 선거 전략에는 중대한 차질이 초래될 수 있다는 분석이 당내에서 나오고 있다. 홍 대표는 2월 13일 대구를 방문한 자리에서 “대구·경북 지역이 보수의 본산, 한국당의 본산으로 역할을 제대로 해주어야 한다”며 “여기서 불이 붙어야 그 불이 충청·경기·서울로 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대구시장 선거에서 보수 후보 대 진보 후보 간에 빅매치가 벌어져 텃밭의 보수 표심이 먼저 결집하면 이것이 충청을 넘어 수도권으로 전파되길 바라는 기대감이 깔려 있었다.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기 위해선 김 장관 같은 대권주자의 출마가 필수조건이었다. 홍 대표의 “대구시장을 내주면 한국당 문 닫아야 한다”고 했던 발언도 김 장관의 출마를 유인하기 위한 일종의 ‘미끼’였다는 해석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홍 대표 측 관계자는 “모름지기 잠룡급 후보가 출마해야 수도권에 있는 출향 인사들도 고향 선거에 관심을 갖고 지켜볼 것 아닌가”라면서 “그런데 고만고만한 인사들이 ‘도토리 키재기’식 경쟁을 벌인다면 어떻게 보수 표심이 한데 뭉치고 바람까지 불 수 있겠는가”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자유한국당 경선 균형추는 당협위원장들


▎대구시 중구 대봉동 방천시장 김광석길을 찾은 시민들.
아무튼 김 장관의 불출마가 확정됨에 따라 민주당과 한국당 공천의 주인공은 기존 주자들 중에서 정해질 전망이다. 한국당 지도부는 ‘김 장관이 출마하지 않으면 누굴 내보내도 자신 있다’는 판단에서 ‘전략공천’ 없이 경선에 부칠 생각이다. 민주당도 후보의 지명도를 높이고 흥행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라도 경선을 통해 후보를 정할 가능성이 높다. 두 당 모두 경선 룰을 ‘당원(민주당은 권리당원, 한국당은 책임당원) 50%, 일반국민 여론조사 50%’로 정했기 때문에 당원 지지와 지역 민심을 모두 얻어야 본선 티켓을 딸 수 있다.

먼저 여당인 민주당에선 이상식 전 국무총리실 민정실장과 이승천 전 국회의장 정무수석비서관, 임대윤 전 대구 동구청장 등 3인이 예비후보 등록을 마쳤다. 이상식 전 민정실장은 대구지방경찰청장(치안감)과 부산지방경찰청장(치안정감)을 지낸 신예 정치인이란 점이 주목받고 있다. 경찰대 졸업 뒤 행정고시까지 합격해 경찰 내부에서 초고속으로 승진한 경찰 엘리트 출신이지만, 종합행정 경험이 없다는 게 지적 사항이다.

이승천 전 수석비서관은 오랫동안 대구권 대학과 진보 정치권에서 활약했다. 2010년 대구시장 선거, 2012년 19대 총선, 2016년 20대 총선 등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하는 과정에서 대구 동구 쪽에서 지지기반을 다졌다. 하지만 여전히 시민들 사이에 인지도가 낮다는 점이 극복 과제다.

임대윤 전 구청장은 지방행정과 중앙정치,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을 두루 섭렵한 경력을 갖고 있다. 14대 총선에서 15·17·19대 총선에 이르기까지 대구 동구 국회의원 선거에 민주당 계열 후보로 네 번 출마해 고배를 마셨다. 반면 지방선거에선 한나라당 후보로 두 차례 당선돼 민선 2·3기 대구 동구청장을 지냈다. 노무현 정부에선 대통령 비서실 사회조정1비서관을 지내면서 청와대까지 활동반경을 넓혔으나 시민들 사이에 너무 익숙하게 느껴진다는 게 오히려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에 맞서는 한국당에선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재만 전 자유한국당 최고위원, 이진훈 전 수성구청장, 김재수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등 4인이 뛰고 있다. 18대 국회의원 출신으로 재선에 도전하는 권 시장은 ‘현역 프리미엄’을 십분 누리고 있다. [중앙일보]가 지난해 12월 사내 조사연구팀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조사기간 12월 21~27일)에서 ‘(대구시장이) 다른 인물로 바뀌어야 한다’는 응답이 37.7%로 나와 ‘다시 뽑혀야 한다’는 응답(26.6%)보다 높았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하지만 권 시장은 ‘한국당 후보 적합도’를 묻는 각종 여론조사에선 1위를 독차지했다. 최근 들어 ‘대구공항 통합 이전’ 등 본인의 핵심 정책에 대한 반대 여론이 조금씩 커지고 있지만 대세에는 별 영향이 없을 전망이다.

대구 동구청장을 지낸 이재만 전 최고위원은 소통에 능한 정치인으로서 저력이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지난해 한국당 지도부 경선 때 자력으로 최고위원에 당선될 정도로 당원들 사이에 지지기반이 만만치 않다는 점도 강점이다. 4년 전 새누리당 대구시장 후보 경선 때 이 전 최고위원은 일반 국민 여론조사(비중 20%)에선 권 시장을 앞섰지만, 국민참여선거인단(비중 80%)에서 뒤져 2위에 그친 바 있다.

이진훈 전 구청장은 대구시와 수성구를 주무대로 공직 생활을 오래한 지방행정 전문가다. 3선 구청장 대신에 시장직 도전으로 선회한 이 전 청장은 권 시장을 겨냥해 ‘대구공항 통합 이전’ 반대 목소리를 내며 여론을 환기하는 데 힘쓰고 있다. 그 결과 수성구를 중심으로 대구 동편에선 어느 정도 지지세가 형성됐지만 서쪽으로 외연확장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 전 장관은 행정고시 합격 이후 주로 농림수산부에서 잔뼈가 굵은 농정 전문가다. 농림수산식품부 제1차관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 등을 거쳐 부처 장관까지 지낸 관록을 부각하며 지역 표심을 파고들고 있다.

한국당 경선에서 중대 변수로는 대구 지역 당협위원장들의 ‘의중(意中)’이 꼽힌다. 경선 총투표수에서 50%를 차지하는 책임당원의 표심에 당협위원장들의 영향력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과거 체육관 선거 때는 당원들을 투표소로 실어 나르는 과정에서 ‘오더(order)’ 형식으로 특정 후보에 대한 당협위원장의 지지의사가 당원들에게 전달되곤 했다. 이번에 모바일 투표가 도입돼 기존 방식과 병행 실시되긴 하지만 ‘오더’ 관행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결국 여론조사에서 현격한 격차가 나지 않는 이상 후보들을 저울질하는 당협위원장들 평가에 따라 승부는 어느 정도 판가름 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안보 훈풍’ 불면 여당에 유리?

이 대목에서 대구시장 선거 출마 예상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참고할 만하다.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코리아가 실시한 대구시장 여론조사(조사기간 2월 9일~10일)에 따르면 권영진 후보 30.6%, 이상식 후보 14.6%, 이재만 후보 11.1%, 이진훈 7.6%, 이승천 후보 5.5%, 김재수 후보 5.4% 순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 국민의당 사공정규 3.1%, 기타 다른 후보 6.3%, 지지 후보 없음 9.7%, 잘 모름 6.2%로 나왔다. 한국당 권영진 후보와 민주당 이상식 후보가 각 당 대표주자로서 차례대로 1·2위를 차지한 셈이다. 이는 각 당 후보 지지도 조사에서도 되풀이된다.

민주당 후보들만 대상으로 한 지지도 조사에서 이상식 후보 11.3%, 임대윤 후보 8.5%, 이승천 후보 6.5% 순으로 나왔다. 한국당에선 권영진 후보 35.6%, 이재만 후보 16.7%, 이진훈 후보 9.8%, 김재수 후보 4.7% 순이었다.

앞으로 양당 공천 후보가 결정돼 2강전이 펼쳐지면 민주당은 여당 프리미엄을 최대한 앞세워 표심을 유혹할 것으로 보인다. 여당 소속 시장이 탄생하면 지방분권 개헌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호흡을 맞춰 침체된 대구 경제를 살리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충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할 전망이다. 최근 정당지지도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이 30%대를 유지하며 한국당과 선두다툼을 벌이고 있는 점도 민주당에 자신감을 불어넣고 있다.

하지만 투표함을 열어보기 전에는 누구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특히 내륙도시인 대구의 표심은 순도(純度)가 다른 도시에 비해 높은 편이어서 짧은 시간에도 당락이 뒤바뀔 정도로 변화가 심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한국당은 이번 지방선거의 성격을 문재인 정권 중간평가로 규정짓고 철저히 정권 심판론으로 몰고 갈 태세다. 공공부문에 의존한 일자리 정책과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 과도한 시장개입 정책에 따른 민생 혼란을 적극 부각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남북한 정상 사이에 불고 있는 훈풍의 세기가 예사롭지 않다. 4월로 예정된 남북정상회담이 성공리에 개최되고 5월에 한반도 비핵화를 전제로 한 북미 정상회담이 어떤 식으로든 성과를 낸다면 보수의 심장 대구에서도 여당 후보에게 전에 없던 유리한 선거 환경이 조성될 것이란 관측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 권혁식 영남일보 기자 kwonhs@yeongnam.com

201804호 (2018.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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