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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 ‘同行-고령사회로 가는 길’(5)] 인터뷰 |‘白壽 청년’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75세까지 성장하고, 90세까지 달려라” 

글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1920년생 내년이면 100세, 강연·저술·인터뷰 왕성한 활동…일로 육체 건강 챙기고, 인간관계로 정서적 건강 유지해야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헬시 에이징의 비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세대 북문에서 서대문구청 쪽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 언덕으로 산책길이 보일 거예요. 20~30m쯤 올라가면 왼쪽에 원천교회가 있어요. 교회 내 카페에서 만날까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에는 힘이 넘쳤다. 인터뷰 장소를 설명하던 그는 “(인터뷰 시간으로) 한 시간 정도면 충분하겠죠?”라고 되물었다.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백수(白壽)이지만 일주일에 두어 번 강단에 선다. 신문사 두 곳에는 칼럼도 연재한다. 책 출간을 위해 매일 200자 원고지 30~40장 분량의 원고를 쓴다. 지난 2월에는 산문집 [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를 출간했다.

아직까지 지팡이와 보청기는 사용하지 않는다. 걷는 데도, 듣는 데도 불편함이 없다. 50대 후반에 시작한 수영은 반백 년 동반자다. 물살 한 번 가르고 나면 피로가 싹 풀린다. “혈압이나 당뇨는 관리를 잘한 덕분에 아직까지 괜찮다”는 김 교수는 “전립선비대증 약 말고는 매일 먹는 약은 없다”며 환하게 웃었다.

장수의 비결이 궁금합니다.

“장수의 비결은 건강이지요. 사실 요즘 신체적 건강은 의사들이 도와주는데다 음식이나 운동으로 관리할 수 있어요. 그렇더라도 의료 혜택을 지혜롭게 이용해야 할 것 같아요. 경험 많은 가정의학과 전문의의 도움을 수시로 받으면 좋습니다. 내 경우는 며느리가 소아과 의사라 도움을 받아요. 얼마 전 병원에 가서 관절 진단을 받았는데 아직은 약을 먹지 않아도 괜찮겠다고 하더라고요. 또 하나, 무리하지 않아야 합니다. 나는 100을 할 수 있다 하더라도 90에서 멈춥니다. 늘 여유를 둔다고 할까요.”

육체적 건강뿐 아니라 정신적 건강도 중요하지 않습니까?

“60대 이상은 정신적·정서적 건강이 더 중요하죠. 그 나이가 되면 신체적 건강은 의사들이 점검해주니까 큰 차이는 없을 테고요. 육체적 건강은 운동을 통해서, 정서적 건강은 일과 선한 인간관계를 통해서 얻는다고 봅니다. 육체적·정신적 건강을 위해서 수입에 연연하지 말고 반드시 일을 해야 해요. 세브란스병원 같은 곳에서 봉사하는 주부들과 집에만 있는 주부들을 비교하면 봉사하는 주부들이 더 건강하고 더 행복을 느낀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일본은 60대 이상 고령자들 중 노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개인을 위해서든 사회를 위해서든 일하는 게 중요합니다.”

1920년 평안남도 대동에서 태어나 일본 조치대(上智大) 철학과를 나온 김 교수는 1947년 월남(越南)했다. 서울 중앙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그는 1954년부터 1985년까지 연세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2남4녀를 모두 출가시킨 김 교수는 노모·부인과 함께 살았다. 노모와 부인은 먼저 떠나고 17년째 서울 연희동 집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시나요?

“아침 6시에 일어나고 밤 11시에 잠이 듭니다. 점심 먹고 오후에는 책을 읽거나 원고를 씁니다. 저녁에는 강연을 하고요. 일주일에 두어 번 수영도 합니다. 30여 년 전 정년퇴직하기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식사는 하루 세 끼 고르게 먹습니다. 수십 년째 아침에는 삶은 달걀, 우유, 감자나 빵, 과일, 커피를 먹고 있어요.”

수영을 즐기신다고 들었습니다.

“50대 중반까지는 너무 바빠서 운동 같은 것은 생각도 못했어요. 무슨 운동을 할까 고민하다 혼자서 즐길 수 있는 수영을 선택했죠. 정신적 측면에서 봐도 긍정적 몰입이 필요합니다. 요즘에도 강연 갔다 돌아오는 길에 수영장에 들르곤 합니다. 독일에서는 ‘국민 운동’으로 자전거 타기와 수영이 있어요. 중소도시에 가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고령사회를 위해서는 가장 좋은 것 같아요.”

남다른 건강관리 비결이라도 있으신지요.

“가장 어려운 게 혈압과 당뇨입니다. 50대부터 관리하면 80대까지 건강하게 가는 것 같더라고요. 가족력이 있는 사람들은 좀 일찍부터 관리하면 80대까지 가고요. 나는 전립선비대증 약을 먹긴 하지만 혈압이나 당뇨는 없어요. 건강에 너무 많은 관심을 갖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운동은 건강을 위해서, 건강은 일을 위해서 필요한 거죠. 목적 없는 건강은 필요 없어요. 건강의 목적은 일입니다.”

목표 있는 삶은 늙지 않아


군자삼락(君子三樂)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김형석 삼락’이 궁금합니다.

“특별한 건 없어요.(웃음) 열심히 일하는 게 첫째, 다음으로 선한 인간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 마지막으로 목표 있는 삶입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인생의 황금기는 어느 시기일까요?

“인생의 황금기는 60세부터 75~76세가 아닌가 싶어요. 그 시기에 인간적으로 성숙해집니다. 내가 나를 믿을 수 있게 되고요. 누구나 노력하면 70대 중반까지는 배우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 이후 성장 여부는 사람마다 다르죠. 노력하는 사람은 그 이후로도 성장하더라고요. 김수환 추기경, 김태길 교수, 안병욱 교수도 그랬습니다. 그분들은 80대 중반·후반까지도 성장했어요. 75세까지 성장하고 90세까지 마음껏 달려야 합니다.”

김 교수는 1960~70년대 김태길(1920~2009) 서울대 교수, 안병욱(1920~2013) 숭실대 교수와 함께 ‘철학자 겸 수필가’ 트로이카로 불렸다. 세 사람은 1920년생 동갑내기이자 친구로 매우 돈독한 관계였다.

늙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20여 년 전 정석해(1899~1996) 교수를 모시고 어디 가는 중이었어요. 차 안에서 교수님이 저에게 ‘김 교수,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시더라?’고 물으시기에 ‘76세입니다’라고 답했죠. 그랬더니 정 교수님이 ‘좋은 나이올시다’라며 껄껄 웃으셨어요. 80세가 넘어 신체가 약화되는 것은 어쩔 수 없겠죠. 그러나 정신적인 부분으로 커버하면 85~86세까지는 늙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있어요. 돌아보면 일하는 동안에는 늙지 않았던 것 같아요. 꽃이 피어서 떨어지는 게 50대라면 그 이후는 열매를 맺는 시기입니다. 사람은 늙는 것이 아니라 성숙해가는 것 아닌가요?”

헬시 에이징(Healthy Aging)의 비결이 있을까요?

“일을 사랑하는 사람과 인간관계를 선하게 이끌어가는 사람은 헬시 에이징이 가능합니다. 모든 스트레스는 인간관계에서 비롯돼요. 연세대에 오기 전에 중앙고등학교 7년쯤 근무했어요. 당시 인촌(仁村) 김성수 선생을 몇 번 만났습니다. 그분에게서 인간관계의 원숙함, 지혜로움을 배웠어요. 지도자가 되려면 아첨하는 사람을 곁에 둬서도 안 되고, 내가 아첨하는 사람이 돼서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직장이나 사회에서 편가르기는 안 됩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장관을 잘 쓰고도 아첨하는 비서들 때문에 무너졌어요. 박근혜 대통령은 편가르기가 너무 심해서 실패했어요. 인간관계를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죠. 부부싸움하면 늙고, 하지 않으면 안 늙습니다. 목표가 있는 삶은 늙지 않아요. 마라톤에서 종착점이 있으니 끝까지 열심히 뛰지 않나요?”

소유가 곧 목적이라면 행복 잃게 돼

무엇이 행복일까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다른 모든 것은 원하는 사람도 있고 원치 않은 사람도 있다. 그러나 행복은 누구나 원한다. 인격이 최고의 행복’이라고 했습니다. 독일의 시인 괴테도 ‘행복은 인격’이라고 했어요. 인격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나눠줄 수 있지만, 인격이 없는 사람은 주는 행복도 받지 못합니다. 소유가 목적이라면 행복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동양에서도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간다는 말이 있잖아요? 인격이 90이면 행복도 90, 인격이 60이면 행복도 60이에요.”

신앙심이 깊으신 걸로 유명합니다.

“어려서 건강이 안 좋았는데 아버지를 따라서 교회에 다니게 됐죠. 14세 때 ‘건강을 주시면 건강한 동안 나를 위해서 일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기도했습니다. 50세가 될 때까지는 늘 건강을 조심했습니다. 그때쯤 되니 남들과 (건강이) 비슷했고, 70세가 넘으니까 내가 더 건강해졌어요. 건강의 기준은 병원에 가고 안 가고가 아니라 누가 더 일을 많이 하느냐입니다. (또래들과 비교해) 지금은 내가 가장 많이 일하고 있어요.”

김 교수는 어릴 적 유난히 병약했다. 부모는 “우리 장손이 스무 살까지만 사는 것을 봤으면 좋겠다”며 노심초사했다고 한다. 건강에 자신이 없다 보니 무리하지 않았다. 늘 절제하고 조심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덧 100세에 이르렀다.

혹시 후회하시는 일은 없으신지요?

“후회라는 것은 두 가지인 것 같아요. 하나는 실수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와 고통을 줬다는 것이죠. (저는)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했어요. 후회가 있더라도 안고 가지 말고 잊어버려야 합니다.”

노년의 지혜에 대해 한 말씀 해주세요

“70세쯤 되면 사회에서 버림받는 사람과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나뉘게 됩니다. 늙었더라도 인간다움을 갖춘 사람은 작은 모범이라도 보이며 사는 법이죠. 가끔 자녀·손주들과 외식을 합니다. 자녀들은 그냥 나오는데 나는 식당 직원들에게 ‘우리 때문에 수고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합니다. 손주들이 ‘우리 할아버지는 어딘가 존경스럽다’고 하더라고요. 버스 탈 때마다 기사에게 반드시 먼저 인사합니다. 몇 십 년 된 습관이죠. 두 가지 의미예요. ‘당신의 직업은 대단히 소중하다. 내가 친절하게 대하면 당신도 다른 손님에게 친절하게 대할 것이다.’ 택시를 타게 되면 가급적 현금을 내고 조금 팁을 줍니다. 그건 내 마음이니까요.”

한 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 내내 김 교수는 잔잔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지친 기색도 없었다. “나를 위해서 사는 것은 남는 것이 없어요. 돈·명예 다 남지 않지만 국가와 민족을 걱정하는 마음은 남습니다. 인간적으로 좀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줬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도 강연도 저술도 그래서 하는 겁니다.”

- 글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jun.minkyu@joongang.co.kr

201805호 (2018.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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