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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종교학자가 엮은 ‘서세동점’ 기록 

‘기독교 제국주의’는 공자의 탈을 쓰고 왔다 

전성욱 문학평론가
서학(西學) 주창한 남인들조차 ‘상제가 곧 천주’ 비판해…서세(西勢) 무기력하게 수용한 한반도 근·현대사에 경종

▎그리스도교는 어떻게 중국을 공략했는가 / 심장섭 지음 / 자유문고 / 2만3000원
널문리라는 조그만 마을은 냉전의 역사 한복판에서 판문점이라는 이름을 새로 얻었다. 미국과 함께 휴전협정의 당사국이었던 중국을 배려한 결과였다. 격동하는 세계 정세를 읽어내지 못한 무능으로 외세의 식민 지배를 받았고, 여전히 지정학적인 판도를 읽어내지 못 한 결과로 분단의 형벌을 치렀다. 그리고 60여 년이 지난 어느 봄날, 한반도의 두 정상이 손을 맞잡은 그 때에 전 세계의 이목이 판문점으로 모아졌다. 서구의 위세에 중화 질서가 휘청거릴 때도 세상 모르고 안일했던 이 나라의 통치자들. 지금의 역사적 만남은 여러 상념을 불러온다.

황석영은 장편소설 [손님]에서 한반도 현대사의 비극적 기원을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라는 외래의 이데올로기에서 찾았다. 그중에서도 기독교의 서세동점(西勢東漸)은 동아시아의 근세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지금도 한반도 남쪽의 어느 한편에는 십자가를 들고 복음을 갈구하는 이들이 여전하지 않은가. [그리스도교는 어떻게 중국을 공략했는가]는 바로 그 동점의 서세적 기원을 더듬을 수 있게 해주는, 대단히 잘 정리된 역사 교양서다.

책의 제목에서 ‘공략’이라는 노골적인 어휘가 두드러진 만큼, 동서의 문명교류를 바라보는 저자의 견해는 지극히 선명하다. 그 ‘교류’란 조화로운 교섭이 아니라 일방적인 침투였다는 것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밝히건대, 저자는 기독교라는 종교 자체를 비난하지 않는다.

명나라에서 활동한 이탈리아 선교사 마테오 리치를 중심으로 예수회의 선교 역사를 살피는 가운데, 선교논리에 담긴 침략주의를 밝히는 데 주력했다.

1603년 마테오 리치가 펴낸 [천주실의(天主實義)]는 기독교 교리를 유교 언어로 풀어낸 책이다. 유교를 숭상하는 지배층에서부터 개종을 이끌어내려는 의도였다. 신유학의 무신론을 부정하고 고대 유학의 ‘상제(上帝)’를 ‘천주(天主)’로 환원한 식이다. 그러나 미숙한 논리와 무리한 적용으로 당대의 유가뿐 아니라 교황청의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기독교에 개방적이었던 조선의 남인 계열 지식인들조차 사상적 고뇌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상제를 방편으로 중세 주자학을 전복시키려 했던 마테오 리치의 기획이 근대적인 지향이었는가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공략과 다름없었던 예수회의 선교는 끝내 실패했고, 오히려 그 선교의 경험이 유럽에 ‘중국열’을 불러일으켜 계몽주의로 이어졌다는 것이 책의 결론이다. 선교사들의 주자학 연구는 라이프나츠와 볼테르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그 무신론 사상을 통해 유럽의 철학을 근대화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것이다. 중국의 우수한 문화가 오히려 유럽의 근대에 영향을 끼쳤다는 과감한 논리다.

편저에 가깝다는 저자의 솔직한 고백처럼, 이 책은 앞선 연구를 적절하게 편집한 것이다. 그래서 동서 문명의 교류사를 조망할 수 있는 장점과 함께 논쟁으로 비화될 과감한 주장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그런 과감한 논의가 지구상의 마지막 냉전국으로 남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정세와 판도를 읽어내는 나름의 교양적 근거가 된다면 어떠한가! 서구적 시각이 아닌 자기의 시각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 전성욱 - 동아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계간 [오늘의문예비평] 편집주간을 역임했다. 비평집 [바로 그 시간] [문학의 역사(들)]과 산문집 [현재는 이상한 짐승이다], 연구서 [남은 자들의 말]을 책으로 냈다.

201806호 (2018.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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