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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문재인 정부 ‘일방통행식’ 국정운영 문제 없나 

행정부는 안 보이고 청와대만 보인다 

권력 의지 없는 가운데 집권, 비전·철학 내면화하지 못한 탓…정부와 여당보다는 자신과 결 같고 배포 맞는 비서진에게 힘 실어줘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월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대사 신임장 수여식에서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 /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정권이 어느덧 1년 반이 흘렀다. 그 사이 많은 일이 있었다. 전직 대통령 2명과 10여 명의 전직 장관급 인사가 사법처리 되고 있고 그 적폐청산의 불길은 아직도 사법부를 비롯한 곳곳에서 꺼지지 않고 있다. 적폐청산은 문 정부의 제1호 국정의제답게 현 정부 중·후반기에도 계속될 것이다. 권력형 적폐청산을 넘어 생활형 적폐청산을 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언급이 이를 시사한다.

집권 초 의욕을 보였던 사업들 중 상당수는 실적이 좋지 않거나 여건이 되지 않아 주춤한 상태다. 일자리, 탈원전, 혁신성장 같은 것들이 그렇다. 반면 집권 초의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전을 보인 것도 있다. 대북정책이 그렇다. 1년 반 만에 남북 정상회담을 세 번이나 했으니 속도로만 보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임기 중 한 번밖에 못 했던 남북 정상회담이 아니던가.

그런가 하면 정치·협치·소통·인사 등 정치 영역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지난 1년 반 동안 정치가 있었던가. 문 대통령과 여권 주요 인사들은 잊을 만 하면 ‘협치’라는 단어를 꺼내들곤 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부터 ‘협치’를 위해 어떤 진정성 있는 행동을 했던가.

소통도 그렇다. 전 정권을 불통정권으로 매도하고 집권한 문 정권이니만치 다른 건 몰라도 소통은 열심히 하고 잘하겠거니 했다. 그러나 잘 기획된 이벤트는 있었지만 국민과 야당과 가슴을 터놓는 소통은 하지 못했다. 소통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의 문제다. 한국당과 태극기 집회를 청산해야 할 적폐세력으로 규정하고 있는 사고 구조에서 자유한국당과 태극기를 든 국민들과 과연 어떤 소통이 가능했겠는가.

인사는 참사에 가깝다. 국회가 아무리 인사 청문보고서 불채택으로 반대의견을 표명해도 문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했다. 문 대통령은 인사 청문보고서조차 채택 안 되는 후보자들을 ‘추천’하고 ‘검증’한 청와대 인사, 민정라인에 대해서는 한 번도 책임을 묻지 않았다. 이 또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의 문제다. 세상을 정의의 진영과 불의의 진영으로 나누고 불의의 진영에 철퇴를 내리겠다는 결의에 가득 찬 ‘정의의 진영’에 속한 후보자들의 흠결은 그것이 무엇이든 사소한, 이해할 만한, 사정과 이유가 있는 흠일 터이니 임명 강행은 현 정권 입장에서는 너무도 당연하다. 오히려 ‘별것 아닌’ 흠을 결정적 하자나 되는 것처럼 침소봉대하는 야당과 우파 적폐 세력이야말로 그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정략적으로 시비를 만드는 것이니 고려할 가치조차 없다는 뜻일 것이다.

이 같은 도덕주의 근본주의가 현 정권 핵심 실세들의 사고방식인 한 정부 전반기에 나타난 불통과 인사 참사, 일방통행 식 밀어붙이기 정치는 중·후반기에도 계속될 것이고 더 강화될 것이다. 대통령 지지율이 경향적으로 하락하면서 정권이 여유가 없어지면 질수록 ‘정면돌파론’이 더 강하게 대두하는 것이 그동안의 경험칙이라는 뜻이다.

지지율 떨어질수록 기승부리는 ‘정면돌파론’


▎11월5일 청와대 본관 접견실에서 열린 제1차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회의.
문재인 정부의 1년 반을 살펴보면 외형상 그들이 계승했다는 노무현 정부와 유사한 점들이 많이 보인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를 ‘노무현 정부 2기’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 면에서 문재인 정권은 노무현 정권과 다르다. 특히 문재인과 노무현 두 대통령의 리더십의 성격이 매우 다르다. 의사결정구조와 스타일도 다르다. 야당들과 국민들과의 소통 방식도 다르다. 노무현 정부에 몸담았던 사람들 중 많은 사람이 문재인 정부에 몸담고 있으므로 같거나 비슷한 정책들이 눈에 띄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권력 운용의 핵심인 대통령 리더십, 소통방식, 의사결정 방식이 다르다면 이것은 완전히 다른 권력이다.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 2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언뜻 비슷한 것처럼 보이는 문재인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실제로는 얼마나 다를까?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스타일 중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는 청와대와 정부 부처 간 역할에서 발생한다. 노무현 정부는 속내는 어떻든 국정운영에서 정부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해찬 책임총리로도 모자라 분야별 책임부총리로 김진표 경제부총리, 김근태 복지부 장관, 정동영 통일부 장관 등을 내세웠다. 각 부처 장관들이 국정의 전면에 설 수 있도록 했고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토론형 국무회의를 주관했다. 대통령과 총리와 부총리, 그리고 각 부처 장관이 국정 전반에 걸쳐 토론하는 자리에서 청와대 비서들은 배석자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없었다. 이런 자리들을 통해 ‘청와대 비서는 대통령의 참모, 정부의 총리와 장관들은 국정운영의 일선 지휘관’이라는 권력 본래의 역할분담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던 것이다. 노무현 청와대에도 정책실장과 수석들이 있었고 이들이 노무현 정부 국정운영의 밑그림을 그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전면에 나서지는 않았다. 개별적으로 ‘튀는 사람들’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나 비서는 ‘입이 없다’는 비서학의 기본을 처음부터 무시하고 나서는 일은 없었다.

문재인 정부는 청와대가 국정운영의 전면에 나선 정부다. 청와대 비서실장이 남북 관계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이 경제 분야에서 그리고 청와대 민정수석이 개헌과 사법개혁 분야에서 전면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언동만 보면 대통령의 비서가 아니라 영락없이 집행라인에 있는 책임자들이다. 아무리 ‘남북공동선언 이행 추진위 위원장’ 자격이라고 설명해도 임종석 실장이 국정원장, 국방부 장관, 통일부 장관과 함께 일선 부대 현장을 시찰하면 비서실장이 국정을 지휘하는 걸로 보이지 않겠는가. 대통령이 발의하는 헌법개정안을 민정수석이 3일 동안 언론에 나와 대국민 설명회를 하면 어느 누가 그를 대통령의 비서로만 볼 것인가. 다른 문제는 몰라도 적어도 개헌 문제와 관련해서는 민정수석이 최고 지휘자 역할을 할 수밖에 없게 된 것 아닌가 말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이것은 본질적으로 용병술과 권한 배분의 문제이므로 문제를 추적해 들어가면 문재인 대통령의 용병술과 리더십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게 된다. 문 대통령은 자신보다 정치 이력이 오래되고 자신이 퇴임한 후에도 정치를 계속할 더불어민주당의 중진의원들을 깊이 신뢰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또 어느 정도는 그 분야의 전문성을 갖추고 청문회 통과를 위한 여러 요소를 갖춰야 하는 장관들에 대해서도 깊은 동지적 신뢰와 애정을 느끼지는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 청와대 비서실은 대부분 정치 이력이 없거나 짧고 청문회라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만큼 자신과 결이 같고 배포가 맞는 사람들을 편하게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임종석 비서실장, 김수현 정책실장, 정의용 안보실장, 조국 민정수석, 송인배 비서관, 조한기 비서관, 탁현민 행정관 등이 그런 사람들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청와대 비서들에게 좀 더 힘이 실리고 대통령이 이들에게 좀 더 의지하게 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사실 이런 경향은 문 대통령한테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그랬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문고리 3인방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 때의 3철(이호철·양정철·전해철)도 실세였다. 그러나 이들은 국정 전면에 나서지는 않았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의 경우에는 이들 비서실 실세들이 국정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그 결과 문재인 정부에서는 정부와 여당의 역할과 존재감이 희미해져 버렸다. 정부는 청와대만 바라보게 되고 여당 또한 청와대의 의중을 헤아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 정도 되면 언론은 대체로 대통령의 ‘만기친람(萬機親覽: 임금이 모든 정사를 친히 보살핌) 리더십’을 비판적으로 지적하게 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에서는 그러한 비판도 별로 찾아볼 수 없다. 대통령 대신에 비서들이 전면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은 그나마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아서 여권 내의 위계 권력 질서가 유지될 때는 큰 문제가 안되고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대통령의 지지율이 30~40%로 추락하면 이 비정상적 권력질서는 일거에 허물어진다. 정부는 더 이상 청와대를 바라보지 않는다. 여당 또한 자기정치를 우선시하게 된다. 청와대는 기껏해야 ‘가만있어 주면 되는 존재’로 취급받게 될 것이고 비서실장과 비서들은 ‘호가호위’세력으로 공격받게 될 것이다.

국정운영의 철학과 비전은 집단주의 산물


▎남북 공동선언 이행추진위원장인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왼쪽 둘째)이 지난 10월 육군 5사단 비무장지대 GP에서 현장점검을 하고 있다.
이 모든 차이의 근본원인은 노무현과 문재인의 정치 리더십의 차이에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비록 체계적으로 사회 과학과 이념학습을 하지는 않았지만 오랜 진보·재야 생활과 정치활동을 통해 나름의 정치철학과 비전을 정립했다. 다시 말해 노무현은 대통령이 돼야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었고 대통령이 되어서 뭘 하겠는지에 대한 비전 즉 정치적 이념적 동기가 분명했다. 그랬기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된 후 자신이 대통령이 돼서 하고 싶었던 일을 하나하나 해나갔다. 책임총리도 자신이 하고 싶고 해야만 하는 일과 총리 이하 장관들에게 맡겨도 될 일을 구별할 나름의 안목과 구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에 반해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이 돼야겠다는 분명한 의지와 동기가 없었다. 문 대통령에게 대권은 그의 자서전 제목대로 ‘운명’처럼 다가왔던 것이다. 노무현의 죽음이 문재인을 정치판으로 끌어들인 것이지 문재인이 스스로 정치판에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문재인에게는 ‘…을 위하여’가 따로 있을 수 없었다. 운명처럼 정치판에 들어오게 됐고 운명처럼 대통령이 됐을 뿐이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 1년 반 동안 적폐청산 말고 뚜렷하게 국정운영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 것은 문재인 정부가 인수위 기간도 없이 황망하게 국정운영의 책임을 맡게 되어서가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운영의 비전과 철학을 내면화하지 못하고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철학과 비전은 어디서 나오는가. 아마도 대통령을 둘러싼 정권의 핵심 측근 인사들로부터 나오고 있을 것이다. 청와대의 임종석 비서실장, 김수현 정책실장, 정의용 안보실장, 조국 민정수석. 정부 쪽의 이낙연 총리,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박상기 법무부 장관, 서훈 국정원장, 조명균 통일부 장관. 당 쪽의 이해찬 대표, 홍영표 원내대표, 그 밖에 ‘3철’같이 대통령과 인연이 깊은 인사들이 바로 그들일 것인데, 이들의 면면을 일별해 보면 알겠지만 이들은 경력도 경험도 다 제각각이다. 국정운영 과정에서 이견이 광범위하게 노출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므로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들 간의 의견을 사전 조율하는 게 결정적으로 중요해진다. 그런데 장하성 정책실장과 김동연 경제부총리 간에 벌어진 갈등 양상에서 확인되듯이 대통령이 팀워크를 강조한다고 해서 이견이 사전 조율되고 팀워크로 국정이 운영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먼저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갈등을 직접 조정해 주지 않는데 이들이 무슨 수로 자체 조정 하겠는가 말이다. 권력 핵심 실세들 간의 이견과 갈등이 상존하고 증폭되는 상황이 근원적으로 해소되지 않는 한 문재인 정권의 정책은 좌충우돌 표류할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부는 부동산 정책이든 언론 정책이든 나름 일관성이 있었고 왜 그렇게 하는지가 분명했다. 그래서 찬성이든 반대든 근거를 가지고 행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일관된 설명도 약하고 그 근거도 빈약해서 논쟁구도 자체가 잘 형성되지 않는다. 정책 사안마다 정권 측 관계자들의 설명이 다르고 번복이 다반사다. 이 같은 차이 역시 노무현과 문재인의 리더십의 차이에서 찾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공론화 과정도 두 정권이 매우 다르다. 노무현은 자신이 공론의 중심에 서려 했다. 대통령이 주재한 토론형 국무회의가 그렇고 토론을 적극 유도하며 진행한 청와대 수석 보좌관 회의가 그랬다. 심지어 평검사들과의 공개토론까지 있었다. 평검사들의 공격성 질문에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까지 했으나 노무현은 공론의 장을 피하지는 않았다.

공론 주체의 실종, 애매모호한 결론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가운데)이 지난 3월 청와대에서 선거제도 개혁, 정부 형태 등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을 설명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공론의 장을 만들기는 하되 자신이 중심에 서지는 않는다. 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 대학입시제도 공론화위원회, 이 두 사례에서 보이는 공통적 특징은 공론 주체의 실종, 외부 인사들에 의한 공론과정 관리, 애매모호하고 막연한 결론이다. 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원전건설 재개, 대학입시제도 공론화위원회는 현행제도 유지와 약간의 보완이 결론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이 같은 공론화위원회의 운영을 통해 어렵고 곤혹한 이슈의 결정 과정에서 책임을 회피했을지는 모르나 국가적으로 볼 때 이 두 사안은 결과적으로 시간의 지체와 그에 따른 막대한 사회적비용 소요를 초래했다.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의 차이는 정치 영역에서 두드러진다. 노 전 대통령은 10여 년의 정치활동 끝에 대통령이 됐다. 정치권에서 좌충우돌하기도 하고 소수파가 되기도 했으며 해수부 장관에 임명되는 등 차세대 리더로 관리되기도 했다. 반면 문 대통령은 정치권 경험이 일천하다. 길어야 5~6년. 그것도 초선의원으로 바로 대권주자가 됐으니 그에게 정치적 부침과 정치적 격동의 기회는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는 과정도 험난했지만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쉽지 않은 과정을 겪었다. 국회에서 탄핵됐고 집권당 의원들의 비판에 직면했고 끝내 당을 탈당했다. 그런 와중에 제1야당에게 제안한 ‘대연정’은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반면 문 대통령은 취임 1년 6개월째인 지금까지 거의 정치적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높은 지지율 때문이겠지만 집권당 의원들 중 감히 대통령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직까지는 아무도 없었다. 야당의 비판이 있지만 그 정도도 안 하면 야당이라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정부 출범 1년 6개월이나 지나서야 협치를 내세우면서 여야정 상설협의체를 가동했으니 그동안은 별로 야당의 협조를 구할 일도 없었던 셈이다.


▎전국 9개 대학교 원자력학과 학생 대표들이 9월7일 국회 정론관에서 ‘탈원전 정책 졸속 행정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정권은 대선 때부터 한국당을 적폐세력으로 규정해 왔다. 그러므로 청산 대상인 적폐세력과 협치를 한다는 것 자체가 자기모순이다. 여야정 상설협의체를 가동한 지금도 문 대통령을 비롯한 문재인 정권의 핵심 인사들은 여전히 마음속으로는 한국당과 우파세력을 청산해야 할 적폐세력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의 ‘협치’가 과연 진정성 있게 구현될 것인가. 이는 비록 거절당하긴 했지만 진정성을 담아 대연정을 제안한 노 전 대통령과 많이 다른 대목이다.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매우 중요한 차이 중 하나가 언론환경이다. 노무현 정부는 결코 우호적이라 할 수 없는 언론환경에서 국정을 운영했다. 노 전 대통령 스스로 언론을 ‘기득권 집단’ ‘불량상품’이라 할 정도였다. 반면 절대다수의 언론과 문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매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이들 언론 대다수는 아직도 적폐청산과 같은 문재인 정권의 핵심 의제에서는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느 정권보다 우호적인 언론환경이 조성돼 있는 셈이다.

노무현 정권 2기? 둘은 전혀 다른 정권


▎지난해 10월 천안에서 열린 고리 원자력발전 5·6호기 운영 관련 공론화위원회 토론회.
그럼에도 현 정부가 보여주기 식 이벤트를 넘어선 실질적 소통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상황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확실히 일부 현 정권 핵심인사에게는 일부 언론의 보도가 편치 않은 듯하다. 특히 우파 유튜브에 대한 정권 실세들의 태도는 매우 적대적이다. 그럼에도 지상파·종편·라디오·신문 등 절대다수의 언론은 문 정권에 우호적이다. 이는 상대적으로 적대적인 언론환경에서 고투한 노무현 정권과도 다르고 그보다 더 언론과 적대적 관계를 유지했던 박근혜 정권과도 매우 다른 환경이다. 물론 이 같은 언론환경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또 이러한 관계가 문재인 정권에 진짜로 좋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따져봐야 할 부분이 있다. 권력과 언론 간의 건강한 긴장관계가 권력과 언론 모두에게 바람직하다는 점에서 특히 그러하다.

위에서 지적한 세 가지 이유로 필자는 문재인 정권을 노무현 정권 2기로 부르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같은 이념적 지향성, 핵심 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중첩이 있다고 같은 정권이라 할 수는 없다. 어떤 정권을 특정 정권의 2기로 부를 수 있으려면 막연히 ‘이념적 지향성이 같다’가 아니라 같은 이념적 지향성을 구현하는 국정운영 방식, 정권운용의 핵심인 대통령의 리더십 스타일과 그에 따른 시스템적 역할 분화와 소통 시스템 등에서 상당한 연속성과 유사성이 있어야 한다. 같은 곳을 바라보되 서로 다른 시각 다른 눈높이라면 굳이 1기, 2기로 부를 게 아니라 다른 정권으로 부르는 게 자연스럽다.

인수위도 없이 황망하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지만 1년6개월은 정부 나름의 특징이 형성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노무현 정부와의 유사성에서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 고유의 색깔을 분명히 하고 국민들에게 평가받아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 스스로 자신을 어떻게 설명할지 지켜보자.

- 고성국 ‘고성국TV’ 대표, 정치학 박사

201812호 (2018.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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