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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교육학자 부부가 쓴 ‘아이와 공존하는 법’ 

고급 유치원이 육아 해법 아니다 

이병곤 제천간디학교 교장
‘말 잘 듣는 아이’는 부모의 욕망 따르는 객체일 뿐…부모-자식 함께 성장하는 ‘하이스코프 교육법’에 주목

자녀를 키우는 일은 ‘막연한 불안감’과의 쟁투이며, ‘부모의 흔들리는 내면세계’와 정직하게 마주서야 하는 과정이다.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육아 관련 지침서는 마땅한 교육 없이 ‘부모가 되고만’ 숱한 어른들이 이 일에 얼마나 서투른지를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차상진·하태욱 부부가 쓴 [남들처럼 육아하지 않습니다]는 남다른 육아를 결심한 부모들에게 던져진 ‘기초체력 단련 입문서’ 같은 책이다. 육아라는 종합예술은 부모가 자신의 신념이나 욕망을 아이에게 투사하는 과정이 아니다. 되레 자녀와 함께 공존하는 지혜를 터득하는 일이라 저자들은 말한다.

이 책의 미덕은 당위를 주장하는 대신 올바른 육아를 위한 체계와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데 있다. 그 방법에 담긴 설득력은 저자들이 오랜 기간 공부하며 현장에서 적용해 온 ‘하이스코프’ 교육체계에서 나오는 것으로 여겨진다.

예를 들어 주도성을 가진 아이로 키우려면 가정 안에서 ‘예측 가능한 일과’를 먼저 만들어 보라고 권유한다. 이를 통해 계획을 짤 시간이 확보되고, 아이는 주도적으로 자기 생각을 발휘해서 무엇인가를 해나간다. 부모는 그 과정에 함께 참여하며 아이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화를 이끌어 간다. 이 밖에도 본문에는 ‘6단계 싸움 중재 방법’이나 ‘놀이가 갖는 5가지 중대한 의미’ 등이 포함돼 있다.

루소의 [에밀] 제3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당신은 자녀가 아직 어리기 때문에 순종하기를 바란다. ‘내가 너한테 요구하는 것은 다 너를 위한 거야. 내가 요구하는 것을 할 테면 하고 싫으면 관두렴.’ 부모의 이와 같은 ‘아름다운’ 말은 몽상가, 연금술사, 허풍선이, 협잡꾼 또는 온갖 종류의 미치광이가 자신들의 올가미에 상대를 걸려들게 만들려고 훈련시키는 것과 다름없다.”

루소의 [에밀] 전체를 살펴보면 자녀를 대하는 마음과 태도에서 1760년대 프랑스 귀족층과 오늘날의 부모들이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말도 제대로 떼지 못한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내는가 하면, 방과 후 과정으로 컴퓨터 언어까지 가르치기도 한다. 대체로 부모의 미해결 과제가 아이에게 투사된 경우다.

비인가 대안학교인 제천간디학교의 학부모들 역시 ‘교육불안증’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지난 21년 동안 졸업 당해 연도 대학 진학률 0%인 학교에 자녀를 보낼 만큼 배포가 두둑한 부모들이다. 하지만 부모-자녀 사이에 적절한 ‘방관과 개입’은 어느 때 어느 정도로 이뤄져야 하는지 여전히 서툴기만 하다. 졸업을 앞둔 자녀의 불투명한 진로 역시 불안감을 더해 준다. 정답 없는 양육의 길 위에서 몇 년 방황하다 보면 어느새 아이는 성인으로 다 자라고 만다.

[남들처럼 육아하지 않습니다]는 관계 맺기, 언어와 수학, 사회, 과학 관련 영역 공부하기에 관련된 부모의 교육방식을 구체적 사례를 예시하며 일러 준다. 더 나아가 방법적 지식을 넘어서 부모가 아이를 바라보는 관점을 입체적으로 든든하게 세워 준다. 일견 추상적으로 세운 양육관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방식으로 친절하게 안내하는 것이다. 독자들을 스스로 양육의 중심을 갖춤으로써 겸손하면서도 자신감 있는 부모로 거듭날 수 있게 지원한다.

저자들은 지난 수 년간 자신들의 삶터와 일터 주변에서 [육아정(育兒庭)]을 설립·운영해 왔다. 양육을 매개로 공동체와 지역사회, 사람 사이의 관계망을 연결하기 위한 시도였다. 저자들의 탐구심 외에 그것을 현실에서 살려내려고 애써 온 실천력으로 인해 설득의 힘이 더 돋보이는 책이다.

※ 이병곤 - 고려대와 동 대학원에서 교육학과 교육철학을 공부하고, 영국 런던대 교육연구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광명시평생학습원 원장과 경기도교육연구원 전문연구원 등을 거쳐 현재는 건신대학원대 대안교육학과 겸임교수와 제천간디학교 교장을 맡고 있다.

201812호 (2018.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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