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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재구성] ‘장자연 리스트’ 증인 윤지오의 민낯 

‘유일한 목격자’의 음모론에 모두가 속았다!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장자연 사건’ 공익제보자로 활동하다 의혹 제기되자 돌연 출국... ‘증인’ 성역화한 감정적인 ‘적폐몰이’가 진실 검증 어렵게 만들어

10년 동안 우리 기억에서 잊혀져있었던 이름 세 글자가 소환됐다. 적폐청산의 여론 바람을 타고서다. ‘장.자.연.’ 풀지 못한 그때의 수수께끼 현장으로 안내하겠다며 등장한 또 하나의 이름이 있다. ‘윤.지.오.’ 여론의 눈과 귀가 윤지오의 입에 쏠렸다. 그런데 사건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다. ‘유일한 목격자’라던 그는 진실이 놓여야 할 무대 중심에 스스로를 올렸다. 여론은 그녀의 용기에 열광했고, 두려움을 위로했다. 적어도 윤지오의 실체에 대한 증언이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윤지오가 돌연 캐나다로 떠나버린 지금도 그의 존재를 불가침의 성역처럼 믿는 이들이 많다. 스스로 만들어낸 각본의 주인공이었나.


▎장자연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를 자처하는 윤지오의 등장은 마치 잘 연출된 연극 같았다. 카메라 앞의 윤지오가 인터뷰에 앞서 머리를 다듬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한 여배우가 연예계의 유력 인사 성접대 의혹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이른바 ‘장자연 사건’. 그 사건의 유력한 증인으로 여겨졌던 윤지오(본명 윤애영)를 둘러싼 의혹이 대한민국을 집어 삼켰다. 지난 3월 윤씨가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입국했을 때만 해도 머지않아 사건의 실체가 밝혀질 것이란 기대감이 높았다. 윤씨는 스스로를 ‘유일한 목격자’, ‘유일한 증인’이라고 불렀다.

윤씨는 장씨와 같은 소속사 배우였다. 술접대 자리에 장씨와 동석하기도 했다. 2009년 사건 당시에도 여러 번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이후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건너가 생활해왔다. 윤씨의 존재는 사건과 함께 잊혀졌다. 그러던 그가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로 포장돼 등장한 건 지난해부터였다.

지난해 1월 출범한 검찰과거사위원회는 장자연 사건을 재조사하기로 결정한다. 그해 7월에는 MBC 시사고발프로그램 [PD수첩]이 장자연 사건을 재조명했다. 이 방송에 윤씨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윤씨는 [조선일보] 사주 일가 중 한 사람을 가해자로 지목했다. 사건 당시에 없었던 새로운 증언이었다.

윤씨의 새로운 증언은 불에 기름을 부은 듯 여론을 크게 일으켰다. 검찰 과거사 진상조사단은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과 방정오 [TV조선] 전 대표를 불러 조사했다. 진상조사단 활동을 하는 김영희 변호사가 윤씨에게 한국에 들어와 증언해줄 것을 요청했다. 여기까지가 윤씨가 한국에 들어오게 된 배경이다.

'13번째 증언'에 쏠린 대한민국의 눈과 귀


▎4월 8일 윤지오(흰 옷)와 그를 돕는 국회의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윤씨의 왼쪽 안민석 의원은 ‘윤지오와 함께 하는 의원 모임’ 결성을 주도했다. / 사진:연합뉴스
이맘때 [13번째 증언]이라는 책도 출간했다. 책이 나온 직후인 3월 초부터 윤씨는 자신의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고 언론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응하기 시작했다. 3월 5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실명과 얼굴을 처음 공개한 윤씨는 방송에서 성접대 상대의 이름이 적혀 있는 ‘장자연 리스트’를 직접 봤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증언이었다. 그는 “정확히 기억나는 이름도 있고, 아닌 이름도 있다. 이 같은 내용을 13차례 검경 조사 과정에서 일관되게 진술했다”고도 했다.

윤씨의 주장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각종 방송에 출연과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KBS(김제동의 오늘밤, 뉴스9, 거리의 만찬), MBC(뉴스데스크, PD수첩), JTBC(뉴스룸), SBS(8시 뉴스), TBS(김어준의 뉴스공장), CBS(김현정의 뉴스쇼), 고발뉴스(이상호의 뉴스 비평) 등 주요 언론사의 간판 프로그램들이 윤씨를 출연시켰다.

윤씨는 각종 방송과 자신의 SNS 라이브방송을 통해 지속적으로 신변의 위협을 호소했다.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싸우고 숨고 버티며 살아왔다”며 “증인으로서 어떠한 신변보호도 받지 않고 홀로 귀국해 매일 숙소를 바꾸고 있다”고 했다. 곧바로 국가가 나서서 윤씨의 신변을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3월 8일에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라온 윤씨의 신변보호 요청 청원글은 5일 만에 20만 명의 동의를 얻었다.

여성가족부가 나서서 산하 기관이 운영하는 안전 숙소를 제공했지만 윤씨는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구했다. 이를 받아들여 경찰은 서울시내의 한 호텔을 숙소로 제공했다. 3월 14일부터 4월 23일까지 윤씨의 호텔 체류비용은 927만4000원에 이르렀다. 비용은 범죄피해자보호기금으로 집행됐다. 이 기간에 윤씨는 두 차례 대검 진상조사단에 자진 출석해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윤씨는 점점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요구와 주장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3월 31일 그는 직접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신변 위협을 느껴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자 경찰은 윤씨에게 공개사과하고 여경 5명으로 ‘신변경호 특별팀’을 꾸려 밀착경호에 나섰다.

나중에서야 윤씨가 주장한 외부 침입 흔적과 112 긴급호출기 미작동은 사실무근으로 밝혀졌지만, 감정적 여론은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회의원들도 여론에 동요되긴 마찬가지였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중심으로 같은 당 권미혁·남인순·이종걸·이학영·정춘숙, 바른미래당 김수민, 민주평화당 최경환, 정의당 추혜선 의원은 ‘윤지오와 함께 하는 의원 모임’을 결성했다. 이들은 윤씨를 국회로 초청해 토론회를 열고 “국회가 윤씨의 방패막이가 되겠다”고 했다.

윤지오의 증언집 알고 보니 대필작가가 써줘


▎6월 1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윤지오를 상대로 한 후원금 반환 소송인단 대리인인 최나리 변호사가 취재진에게 소송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윤씨는 민간 경호업체를 이용하겠다며 자신의 후원계좌를 알렸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께서 직접적으로 재수사와 사실 규명에 대해 언급하고, 과거사위원회의 두 달 연장 수사가 확정됐다”며 “장기전에 대비해서 후원계좌를 오픈하게 됐다”고 자신의 SNS에 밝혔다. 삽시간에 크고 작은 후원금이 윤씨 계좌로 송금됐다. 윤씨의 이모부 김모씨는 “1억원이 넘는다고 들었다”고 했다. 윤씨는 아직까지 후원금 액수를 밝히지 않고 있다.

여기까지가 윤씨가 한국에 머무는 동안 활동한 내용들이다. 문제는 장자연 사건의 진실을 밝혀줄 새로운 증언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과거 검·경 조사 때와 진술이 달라졌다. 일부 방송과 인터뷰에선 이미 거짓으로 밝혀진 전준주(왕진진)가 조작한 리스트를 구분하지 못하기도 했다.

윤씨가 썼다는 책의 내용도 새로울 게 없었다. 사건 전개 과정과 과거의 수사기록들을 정리한 수준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개인의 성장과 연예인 활동 등의 내용으로 채워졌다. 그마저도 윤씨가 직접 쓴 게 아니라 대필 작가를 고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13번째 증언]을 출간한 도서출판 가연의 김성룡 대표는 기자와 통화에서 “윤씨가 가져온 자료를 참고해서 대필 작가의 도움을 받았다”고 밝혔다.

윤씨의 과거 행적과 주장의 모순이 하나둘 드러나면서 의구심이 커졌다. 그러나 의문을 제기하면 여론의 뭇매가 쏟아졌다. 윤씨도 지극히 기본적인 내용 확인을 요구하는 언론을 향해 “이게 증인을 대하는 태도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윤씨가 했다는 증언의 실체는 모호해지고 대신 윤씨가 운영하는 인터넷방송을 통한 신변잡기와 후원금 모금, 왕성한 방송활동이 주를 이뤘다. 한때 윤씨를 지지했던 네티즌(인스타그램 아이디 IT-**)은 “윤지오라서 사람들이 그녀를 지켜보는 게 아니라 장자연 사건의 유일한 증언자이기 때문에 관심과 화제가 되고 있는데도 장자연 사건에 가야 할 시선이 온통 증언자에게 가는, 주객전도 상황이 벌어졌다. 윤지오는 마치 카메라 속 여주인공이라도 된 듯했다”고 전했다.

윤씨에 대한 의구심이 터져 나온 계기는 인스타그램에서 페미니스트 작가로 이름을 알린 김수민 작가의 폭로로 시작됐다. 김 작가는 지난해 6월 말부터 올해 3월 8일까지 거의 매일 연락하며 윤씨와 친분을 쌓아왔다. 김 작가는 “윤씨가 지난해 책을 출간하는 문제로 조언을 구해오면서 개인사를 의논할 정도로 친밀해졌다”고 했다.

온라인에 남아있는 행적에 증언의 순수성마저 오염


▎장자연 문건의 최초 보도자인 김대오 기자(오른쪽)와 법률대리인 박훈 변호사가 4월 23일 서울경찰청에 윤씨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한 뒤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김 작가는 “윤씨가 귀국해 여러 매체 인터뷰를 하는 것을 보면서 그동안 이야기했던 내용들과 전혀 다른 내용을 봤다”며 윤씨와 주고받은 SNS 메시지를 공개했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메시지에서 윤씨는 개인적 이익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 작가가 공개한 카카오톡 메신저 중 윤씨가 쓴 내용 일부다. 맞춤법이 틀린 부분은 원문 그대로 옮겼다.

‘분명한 건 이슈는 되니까, 그 이슈를 이용해서 영리하게 그동안 못했던 것들을 해보려고. 그래서 출판하는 거고’ ‘경비도 안줄텐데 벌써부터 저러면 궂이 내가 도울필요가 없어요. 자기들이야 워낙 큰 사건이니 좋겠지. 근데 저는 법원만 서고 공식석상에서 인터뷰 두 개만하고 책이랑 유투브로 풀거라서’

‘사람들이 나도 자연언니처럼 여기고 불쌍하다 하는것도 너무나 화나고 솔직히 언니 유서랍시고 떠드는것도. 강요받았습니다. 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미란다커 자서전 그런 형식 생각하고 있거든요. 마지막에 별책부록으로 사건기록 삽입하구’

윤씨의 행동들은 10년 만에 진실을 밝히고 ‘친했다’던 장자연의 억울함을 풀 수 있는 다시 오지 않을 기회 앞에 선 증언자의 모습으로 보기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점들이 너무나 많다. 윤씨의 활동과 발언들에서 진실을 밝혀낸다는 진솔함이나 진지함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슈를 이용해 주목을 받고 난 이후 활동 구상에 골몰하는 모습만 있을 뿐이다.

사건 이후 10년 동안 신변의 위협을 느껴 숨어 살다시피해왔다는 윤씨의 말은 동정 여론을 자극했다. 그런데 온라인에 남아있는 윤씨의 과거 행동과 발언들이 네티즌들에 의해 발굴되면서 순수성이 오염되기 시작했다. 윤씨가 직접 언급한 것들은 사실관계를 살펴보면 거짓이거나 불가능한 허언이란 게 금세 드러난다.

▷위약금 1억원 주고 기획사를 나왔다: 윤씨는 여러 방송 인터뷰에서 2009년 당시 기획사를 나올 때 1억원의 위약금을 물어줬다고 주장했다. 거짓이다. 그는 자기가 쓴 책 [13번째 증언]에서 기획사에 물어준 돈을 600만원이라고 적었다.

▷캐나다에서 고등학교 4년 과정을 1년 만에 마쳤다: 증명할 자료가 없다. 현지 교민들에 따르면 1년 만에 조기졸업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한다. 윤씨가 졸업했다고 밝힌 ‘노스요크(North York, 토론토 북서부의 도시명) 고등학교’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의혹이 일자 “학교가 폐교됐다”고 했다.

▷IQ156으로 멘사 회원이다: 거짓으로 드러났다. 윤씨가 공개한 또 다른 지능지수인 FSIQ는 98이었다. 윤씨는 백분율이라고 주장했지만 역시 거짓이다. 평균을 약간 밑도는 수준이다. 멘사 회원이란 것도 거짓이다.

▷로클럭(law clerk)에 합격했다: 윤씨 스스로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 자격을 갖춘 사람이어야 되는데” 자기가 몇 년 전 합격했다고 주장했다. 윤씨는 대학교는 공개하지 않은 채 경영학과를 나왔다고 밝힌 적 있다. 네티즌들의 확인 요구에 아직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진짜 맘 잡고 공부하면 법조인도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4년 과정을 1년 만에 조기졸업했고, 스물세 살에 최연소 MBA(무 논문학점제 졸업과정)도 땄는데, 변호사나 검사, 판사 이런 거 공부 몇 년만 하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 중)


아예 윤씨의 거짓말과 앞뒤가 다른 행동이 담긴 자료를 수집해 놓은 인스타그램 페이지(justicewithus)가 운영될 정도다. 지금까지 230여 개의 영상과 사진 자료들이 올라와 있다. 하룻밤 새 다 볼 수 없을 만큼 방대한 분량이다. 개중에는 지금까지 불안해하며 숨어 지냈다는 윤씨의 주장과 전혀 다른, 낯 뜨거운 영상 자료들도 수두룩하다. 윤씨는 자기가 인터넷 방송을 하는 이유를 혹시 있을지도 모를 위협에 대비한 ‘생존방송’이라고 주장해왔다.

justicewithus 계정 운영자는 “윤씨의 증언까지 거짓됐다고 하는 게 아니다. 책의 일부 내용과 방송을 보고 황당하던 찰나, 10년을 어떻게 그렇게 살았느냐고 함께 울었단 국민들의 댓글을 보고 ‘이건 진짜 아니다’ 싶어 알리기로 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의 계정에는 윤씨의 평소 모습을 기억하는 캐나다 현지 교민들의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윤씨의 증언의 신빙성이다. 윤씨가 한국에 온 이유도, 그에게 상당수 국민들이 절대적 지지를 보낸 것도 장자연 사건의 핵심 증언자이기 때문이다. 윤씨는 2009년 당시 13번, 지난해 11월부터 올 4월까지 3번 등 모두 16번 사건에 관해 진술했다.

2009년에 했던 윤씨의 진술은 [조선일보] 출신 언론인 조희천이 장자연씨를 강제추행한 의혹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당시 술자리에 윤씨가 있었기 때문이다. 유일한 목격자라는 말이 여기서 비롯됐다.

그런데 2009년 진술에서 윤씨는 강제추행을 한 인물의 인상착의를 정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당시 조사기록에 따르면 처음에는 ‘50대 초반으로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는 신문사 사장’이라고 했다가, 두 번째 조사에선 ‘H신문사 사장, 나이는 40대 중반, 키는 168㎝ 정도’라고 번복했다. 다섯 번째 조사에서 조희천의 동영상을 본 윤씨는 그제서야 조희천을 추행 가해자로 지목했다. 하지만 인상착의, 신체조건 등 윤씨의 진술에 일관성이 부족했다. 검찰이 윤씨 진술을 신뢰할 수 없어 13번의 조사를 반복하면서 확인에 확인을 거듭한 이유다.

오락가락 진술 신빙성 부족해 진실 규명 실패


▎윤지오가 자서전 [13번째 증언] 출간 기념 북 콘서트에서 인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윤지오와 장자연은 나이 차이나 지역 연고 등 겹치는 부분이 없어 별로 친하지 않았다”며 “같은 소속사니 안면은 있어도 같이 술자리에 참석한 건 몇 번 안 된다”고 했다. 윤씨를 장자연 사건의 핵심 증인으로 보기 어려웠다는 말이다. 당시 수사 상황을 잘 아는 한 변호사도 “윤지오의 역할은 조희천의 강제추행 혐의를 입증하는 것, 딱 거기까지였다. 그 외에 ‘장자연 리스트’의 존재나 다른 성접대 의혹에 대해선 윤씨가 증인행세를 하는 바람에 스텝이 꼬여버렸다”고 했다.

결국 10년 만에 이뤄진 재조사는 무위로 돌아갔다. 지난 5월 20일 검찰과거사위원회는 “장자연 사건 과거 수사가 총체적으로 부실했으며, 이 과정에서 [조선일보]가 일부 외압을 행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성접대 의혹과 장자연 리스트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규명 불능으로 결론 내렸다.

장자연 사건의 진실 규명은 허무하게 끝났다. 그리고 윤씨는 장자연 사건보다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에 대해 한 주요 일간지 사회부 기자는 “윤씨의 모습은 진실 규명의 조력자가 아니라 흡사 오랜만에 활동을 재개한 여배우 같았다”고 했다.

당초 5월까지 한국에 머물겠다던 윤씨는 4월 24일 어머니의 건강을 핑계로 갑자기 캐나다로 출국했다. 윤씨에게 거짓 증언을 멈추라고 요구해온 박훈 변호사가 사기 혐의로 자신을 고발한 직후였다. 캐나다에 있다던 어머니가 한국에서 윤씨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도 윤씨가 한국을 떠난 뒤 밝혀졌다. 윤씨의 진정성을 믿고 응원했던 후원자들도 허탈감에 빠졌다.

연극은 끝났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


▎성접대 의혹을 폭로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배우 장자연씨. 10년 만에 재조사가 이뤄졌지만 진실 규명은 끝내 실패했다.
윤씨가 캐나다로 떠나고 흥분된 여론이 잦아들자 고소·고발이 이어졌다. 강연재 변호사는 윤씨와 그를 지지하는 시민단체가 홍준표 자유한국당 전 대표 명예를 훼손했다며 경찰에 고발했다. 윤씨가 진상조사단과 언론에 ‘장자연 리스트에 특이한 이름의 국회의원이 있다’는 취지로 말했고, 윤씨를 지지하는 시민단체가 기자회견을 열어 홍 전 대표의 실명을 거론해 명예가 훼손됐다는 취지다.

박민식 변호사는 윤씨를 범죄피해자보호기금법 위반과 사기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민갑룡 경찰청장도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함께 고발했다. 박 변호사는 “윤지오가 피해자인 것처럼 국가와 국민을 속여 범죄 피해자에게 사용돼야 할 기금을 부당 지원받았고, 박 장관과 민 청장은 기금을 관리·감독할 책임이 있는데 윤씨 호텔비 등에 낭비되도록 방치했다”고 지적했다.

윤씨에게 후원금을 보낸 후원자 439명도 후원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윤씨에게 1000만원의 후원금과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 등 3000만원을 청구했다. 윤씨가 받은 후원금 규모는 1억5000만원을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진실을 말해줄 증인으로 화려하게 등장했던 윤씨는 결국 사기 등의 피의자 신세로 전락했다. “윤씨와 끝까지 함께 하겠다”던 안민석 의원 등 국회의원들은 꿀먹은 벙어리가 됐다. 윤씨가 출국한 뒤에도 침묵했던 안 의원은 6월 14일 페이스북에 입장을 올렸다. 그는 “선한 의도로 증인을 도우려 했던 여야 국회의원들이 난처한 입장에 처했다. 모두 제 탓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회 간담회 이후 한 차례도 모이지 않았고, 저 역시 두 달 전 출판기념회 이후 윤지오와 접촉하지 않았다”고 거리를 뒀다.

윤씨를 영웅시했던 언론들도 침묵하고 있다. 박훈 변호사는 월간중앙과 전화 인터뷰에서 “장자연의 죽음의 원인에 관해 차분한 검토보다 윤지오를 내세운 여론몰이가 사건의 본질보다 윤지오만 보이게 했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2009년 사건 당시 윤씨의 진술과 지금의 진술을 종합하면 모순점이 금방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허황된 말장난에 장단 맞춘 세력들이 있었다는 것이 처참하다”고 했다.

애초에 윤씨의 등장과 논란의 과정들이 과거에도 있었던 음모론의 생성과 증폭, 소멸 과정을 빼닮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음모론을 제시해 여론을 증폭시킨 뒤 후원금 계좌를 열어서 모금하고, 진실이 드러나면 유야무야 돼버리는 기존의 공식을 그대로 답습했다는 것이다. 광화문에 사무실을 개업 중인 한 중견 변호사는 “윤지오 사건은 음모론을 이용해 자기 진영의 세력을 확장하고 이에 반대하는 이들을 적폐로 모는 전형적인 마타도어나 다름없었다. 다이빙벨이나 김광석 타살설, 광우병 사태, 천안함 폭침 의혹 등 근거 없는 음모론 때문에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분열과 갈등을 겪어왔는지 이번 기회에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훈 변호사는 “언론이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모든 것이 언론에 의해 증폭됐고, 사건의 본질이 왜곡됐다는 게 박 변호사의 지적이다. 그는 꼭 명심해달라며 이렇게 말했다. “사건에 대해 정확한 취재를 바탕으로 사실 관계 확인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임무를 언론이 수행한다면 이런 현상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사실과 진실만이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는 점을 명심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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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호 (201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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