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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가슴 뛰게 하는 중규모 국가의 길 

 


“메이지 시대 이후 대일본주의(大日本主義) 지향은 패전 이후 ‘경제대국에서 정치대국으로’의 형태로 지속해 왔다. (중략) 그러나 세계 경제에서 일본의 지위는 매년 낮아지고 있다. 정치 대국의 상징인 UN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가능성도 점점 제로에 가까워졌다.”

하토야마 전 일본 총리는 책 서문에서부터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화두를 던진다. “금세기 일본이 중규모 국가화의 숙명을 피할 수 없다면, 오히려 적극적으로 중규모 국가로 살아갈 길을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일본은 중국과 함께 동아시아를 경영해 본 유이(唯二)한 나라다. “중규모 국가가 숙명”이라는 총리의 말은 일면 자학적으로 들릴 법하다.

그는 일본의 정치대국 집착이 오히려 대미(對美) 종속을 부추겼다고 지적한다. 중국과 경쟁하려면 미·일 동맹에 매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UN에서의 권위는 떨어진다. 정치대국 전략의 딜레마다.

경제대국 타이틀을 유지하려 올림픽·엑스포 등 대형 건설사업을 유치하는 모습도 위태롭다. 인구 감소 등 사회 환경의 변화를 고려하지 않은 탓이다. 책의 해설을 맡은 문화인류학자 우치다 다쓰루는 “집안 살림을 전당포에 맡긴 채 ‘기사회생의 한판 승부’를 노리는 꼴”이라고 촌평한다.

하토야마 전 총리가 말하는 ‘중규모 국가론’은 생존법이 아니다. 일본이 진정으로 세계로부터 존경을 얻을 방법론이다. 그는 대미 종속을 끝내고 동아시아 공동체의 핵심 플레이어가 되자고 제안한다. 동아시아 다자 간 안전보장의 틀을 만들어 지역 패권국을 견제하자는 것이다.

한국의 상황은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내부로는 저성장과 고령화에, 외부로는 미·중 패권 전쟁 사이에서 고전하고 있다. 하토야마 전 총리의 구상은 한국도 함께 꿈꿔볼 만한 미래일지 모른다.

- 문상덕 기자

201907호 (201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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