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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문명의 시원에 대한 궁금증 풀이 

왜 인간인가, 꼬리에 꼬리 문 탐구 

직립보행·말하기·미술·종교·음악·돈·일부일처제… 16가지 주제 통해 지구별 공동체 이정표 보여줘

▎모든 시작의 역사 / 위르겐 카우베 지음 / 안인희 옮김 / 김영사 / 2만1800원
어쨌든 누군가 시작했다. 그게 무엇이든 말이다. 하지만 그게 누구인지, 왜 그랬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유튜브에 올려진 동영상도 없는데.

독일의 유력 일간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에서 2015년부터 공동발행인을 맡고 있는 저자는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인류 문명의 시원에 대해 원대한 궁금증을 품는다. 베를린자유대에서 철학·독문학·예술사·경제학을 공부하고, 신문 편집국에서 과학과 교육정책에 대한 글을 써온 기자 출신의 저자는 인문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뜨거운 관심으로 이 ‘문명적 성과들의 시작’에 대한 탐구의 여정을 떠나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갑론을박을 차근차근 소개한다.

그는 자신의 궁금증이 갖는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탐구는 우리에게 생각하기를 가르친다. 탐구는 계속 새로운 가능성들에 부딪치고, 태고사의 현장에서 형사처럼 잔존물의 의미를 탐색해 ‘그게 이렇게 되었던 것이 아닐까?’라는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그가 궁금증을 갖는 시작의 기원은 모두 16개다. 직립보행·익혀 먹기·말하기·언어·미술·종교·음악과 춤·농업·도시·국가·문자·성문법·숫자·이야기·돈·일부일처제라는 주제 항목만 가만히 들여다봐도, 인간의 문명을 이루는 DNA가 어떤 것인지 살짝 느낌이 온다. 모두 자연에는 없는 것들로, 인간이 인간일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다.

직립보행편에서 그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1968)에서 보여준 인간 형성의 과정 장면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네 발로 걷던 원숭이가 우연히 두 발로 걸으면서 자유로워진 두 손으로 무기를 사용한 결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가설은 일견 그럴듯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변화는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이뤄졌으니, 원숭이 말고 인간의 경우에만 있는 ‘대둔근’이라는 이름의 커다란 엉덩이 근육 덕분에 쉽게 넘어지지 않게 된 것이 그런 증거 중 하나다. 두 발 걷기가 중요한 이유는 편안함에 맞서 자연의 힘을 넘어 일어선 ‘인위적 생존’, 즉 자신을 넘어 더 멀리 내다보기 위한 인위적 생존의 시작을 알리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돈은 어떤가. 우리가 살면서 아마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 말이다. 저자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통해 ‘교환 가치’로서 돈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돈은 교환 매체로서 가치를 보존하는 수단이며 가치척도로서 상업의 거래비용을 떨어뜨리기 위해 발명된 것이다. 저자는 ‘동전’을 만들어 배포하는 과정에서 성분이 의심스러운 동전을 수용하도록 강제한 ‘국가의 사기’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한다.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논제를 흥미롭게 풀어내기 위해 저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례를 도입부에서 십분 활용한다. ‘음악과 춤의 시작’을 설명하기 위해 1950년대 초 존 케이지의 하버드대 방음실 연습 장면을 보여주거나, ‘일부일처제’를 말하며 톨스토이의 소설 [크로이처 소나타]의 한 장면을 언급하는 식이다.

저자가 보여주는 이 모든 관심의 근본은 ‘공동체’에 있다. 이 지구별에서 살아오고 앞으로 계속 살아갈 인류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또 지켜 나가야할 점이 있다는 것을 환기한 것이야말로 저자가 책을 쓴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른다.

- 정형모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실장 hyung@joongang.co.kr

201907호 (201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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