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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제국과 민족의 이익은 다르지 않다’ 

 


1959년 2월 27일 진보당 사건의 최종 판결 재판정. 당시 진보당 당수인 조봉암에게 사형이 선고된 법정엔 진보당의 강령을 기초한 이동화도 피고로 함께 서 있었다. 이동화는 도쿄(東京)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를 거쳐 월남한 뒤 진보 정치인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법관석엔 변옥주 대법관이 다른 네 명의 재판관과 함께했다. 그는 교토(京都)제국대학 법학부를 거쳐 조선총독부 판사, 서울고등법원장을 거쳐 대한민국 대법관으로서 진보당 인사들의 재판에 참여했다. 고등문관시험 사법과 조선인 합격자(272명) 셋 중 하나가 제국대학(이하 제대) 출신이었다.

이동화와 변옥주. 심판받는 자와 심판하는 자로 갈렸지만, 두 사람은 같은 제도 속에서 성장했다. 현해탄을 건너 일본의 구제(舊制)고등학교와 제대를 졸업하기까지 이들이 걸었던 여정은 거의 같았다. 무엇이 이들 삶의 행로를 이렇게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을까.

일제강점기 35년간 일본 본토 일곱 개 제대를 졸업한 조선인 학생은 784명이다. 올 한 해 서울대 입학정원(3134명)보다도 한참 못 미친다. 식민지 출신일뿐더러 수적으로도 소수였다. 더욱이 1931년 만주사변을 계기로 이들은 만주국 고등관료로 등용될 기회를 얻는다. 민족의 이익을 지킬 것인가, 제국의 이익을 좇을 것인가. 저자는 이들의 흔들리는 의식세계를 파고든다.

도쿄제대·교토제대 졸업생의 명부를 정리한 부록은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해방 이후 행적도 함께 기록해뒀다. 머리말에서 공언한 것과 달리, 졸업생들 간의 네트워크를 보여주지 못한 점은 아쉽다.

- 문상덕 기자

201908호 (2019.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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