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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중앙일보 대학평가] 창업 지원 성과 낸 대학들 비결 

동국대, ‘무료’ 창업 공간 ... 건국대, 드론 실습장 갖춰 

한양대, 사법시험반을 ‘스타트업 돔’으로 리모델링
국민대, 이론·실습, 제품 개발까지 완성하는 수업 진행


▎버려진 쌀을 사용해 영유아 교구를 개발한 동국대(서울) 창업 팀 ‘미플레이’. / 사진:김경빈 기자
10월 21일 서울 중구 장충동 ‘충무창업큐브’ 지하 2층. 약 36㎡(11평) 사무실 밖으로 ‘덜덜덜’ 하는 소음이 새어나왔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대형 식품건조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만난 김상우(26) ‘미플레이’ 대표는 “쌀에 함유된 수분을 빼내는 중”이라고 설명하며 기계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한쪽에서는 건조된 쌀로 접착제를 만들기 위해 반죽 준비가 한창이었다. 김 대표의 사업 아이템은 ‘쌀로 만든 유아 놀이용 교구’다.

김 대표는 현재 동국대(서울) 광고홍보학과 4학년으로 재학 중이다. 창업한 지 10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졸업 학기를 맞아 취업 준비가 한창인 동기들과는 다른 길을 택한 셈이다. 처음 반년간은 매출액이 ‘0’원이었지만, 이후 4개월 동안 1700만원을 기록하며 상승세를 타고 있다. 수익이 나지 않던 기간을 견딘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김 대표는 사실상 ‘무료’에 가까운 임대료를 꼽았다.

“공간 이용료로 매달 3만원을 냅니다. 이 금액에 지하철 역세권 사무실은 어림없죠. 학교 지원 없었으면 집을 사무실로 삼아야 했을지 몰라요.”

김 대표는 이번이 3번째 창업 도전이다. 매번 창업을 구상할 때 가장 먼저 든 고민은 사무실 얻기. 학과 사무실과 강의실, 카페 등을 돌아다니며 팀 회의를 진행하는 게 힘들고 번거롭기 때문이다. 미플레이는 지난해 충무창업큐브 개관과 동시에 입주하면서 걱정을 한시름 덜었다.

충무창업큐브는 동국대(서울)와 서울 중구청이 함께 마련한 공간이다. 입주한 팀 가운데 동국대(서울) 소속 창업 팀만 5개다. 이곳에서 5분여 거리에 위치한 또 다른 창업공간인 동국대 영상센터에는 20여 개 팀이 들어서 있다. 각각의 창업 팀은 독립된 공간을 제공받는다. 2~3개 팀이 한 공간을 나눠 사용하는 다른 대학들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전병훈 동국대 창업원 청년기업가센터장은 “학생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는 것부터가 창업의 시작이라 생각해 창업을 위한 공간 확보를 최우선으로 여긴다”고 설명했다.

밤낮없이 팀 토론, 제품 작업할 공간 필요


‘2019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 높은 창업 성과를 보인 대학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창업 공간과 시설이 풍부하단 점이다. 창업 시제품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데 공간 확보와 장비 마련이 가장 우선순위이기 때문이다.

한양대(서울)는 지난해 캠퍼스 내 창업 기숙사인 ‘247 스타트업 돔’을 개관했다. 창업자들이 정해진 시간에만 근무하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한 결과다. 학생들은 1년 동안 함께 동고동락(同苦同樂)하며 밤낮 구분 없이 팀 토론과 제품 작업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장상길 한양대 창업지원단 선임은 “창업자들은 서로 붙어 있는 시간이 많아야 하는 점에 착안해 기존 사법시험반을 창업 기숙사로 리모델링했다”고 말했다.

캠퍼스 내 창업 공간 조성은 학생들의 ‘모임 장소’라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 창업 효과를 높인다. 3D 프린터, 각종 기계 설비 등 학생들은 프로토타입(실험 모델) 제작에 필요한 고가의 장비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업화 과정에서 조언을 구할 전문가 접촉도 용이하다. 전공 교수나 컨설팅 전문가가 대학 안에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또 창업 동아리끼리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창업 공간에 함께 입주한 팀끼리 수시로 교류하며 창업에 필요한 정보 교환이나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다. 대학의 맥락 없는 공간 제공은 능사가 아니란 뜻이다.

재학생 대비 기업 수가 많은 건국대(서울)가 대표적이다. 이 대학은 2017년 약 1256㎡(380평) 규모의 스마트팩토리를 개관했다. ‘제작 실험실’로 불리는 이곳은 층고가 6m에 달한다. 무인 비행체(드론) 실험에 용이하도록 높게 설계했다. 드론운영실습장 외에 금속·목공 장비실, 3D프린터실, VR실 등 학생들이 사기 힘든 장비들도 마련돼 있다. 전담 지도 교수도 상주해 있어 수시로 기술 자문이 가능하다.

이곳을 거쳐 간 테크 기업만 한 해 평균 10팀가량이다. 반달소프트(대표 이봉학·컴퓨터공학), 테스크하드웨어(대표 김태산·기계공학), 얼티밋드론(대표 문창근·기계공학) 등이 대표적인 기업으로 꼽힌다. 모두 드론, 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 유망 기술을 사업 소재로 삼았다. IoT를 접목한 스마트팜 업체를 세운 이봉학(27) 대표는 “전공 수업은 주로 소프트웨어를 다루는 탓에 기계를 만져볼 기회가 없었다”며 “스마트팩토리에서 배운 경험과 전공 지식을 결합해 IoT 창업에 도전했다”고 설명했다.

대학의 창업 인프라는 창업 지원금, 즉 대학 예산에 따라 좌우된다. 그러나 아직 많은 대학이 정부의 지원 사업에 의존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사실상 정부의 창업 활성화 의지가 대학의 창업 분위기를 결정한다. 올해 정부의 창업 지원 예산은 1조1180억원이다. 전년(7796억원) 대비 43.4% 증가했다. 이런 추세에 따라 중앙일보 대학평가의 종합평가 대상인 50개 대학 대부분이 최근 3년간 창업 지원금을 꾸준히 늘려 왔다.

포스텍, 학생 1인당 65만원 창업 지원금


▎인천대 창업 팀 ‘쉐코’가 해양 기름 유출 사고 시 방제하는 무인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창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자금 지원은 공간 제공만큼이나 중요하다. 사업 초기엔 매출 대비 제품 제작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많은 창업자가 사업이 궤도에 오르기 전 자금 부족에 부딪히는, 이른바 ‘죽음의 계곡’을 경험한다.

2015년 한국무역협회 산하 국제무역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 창업기업의 창업 3년 후 생존율은 41.0%(2013년 기준)에 그쳤다. 비교 가능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7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30대 미만 창업자의 생존율은 그보다도 낮다. 2017년 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은 30대 미만 창업자의 5년 생존율이 19.5%(2015년 기준)라고 밝혔다. 상대적으로 기술·자금을 갖춘 40대(57.9%)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그만큼 청년 창업의 유지가 어렵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장세윤(27·포스텍 신소재공학 졸업) 마이다스 H&T 대표는 “창업비용을 스스로 충당할 생각하면 아찔하다”고 말한다. 장 대표는 지난 2017년 의료기기 분야 창업을 했다. 전공인 신소재 분야를 이용해 욕창 환자들을 위한 압력센서를 개발했다. 욕창으로 고생하신 할머니를 지켜보면서 김 대표는 1학년 시절부터 창업 아이템을 연구했다.

은사인 정운룡 신소재공학과 교수와 포스텍의 도움이 컸다. 부품 구매부터 실험까지 하는 데 들어간 비용 1억여원을 모두 대학에서 지원받았다. 포스텍은 학생 1인당 65만원의 창업 지원금을 제공한다. 장 대표는 학교 내 115㎡(35평) 규모의 연구실도 무료로 이용한다. 그는 “정 교수님과 대학 덕분에 비용 걱정 없이 마음껏 연구했다”며 “회사를 세운 지금은 투자와 연구 등 분야에서 대학과 함께 성장하는 관계가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정부와 포스텍홀딩스는 마이다스 H&T에게 총 약 14억원의 연구개발 투자를 했다.

인천대, 항만공사와 손잡고 해운·항만 벤처 지원

창업 전문가들은 대학 창업의 불씨를 키우려면 지속적인 창업 교육만이 답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 사회에서 창업 생태계가 아직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는 판단에서다. 대학에서 창업 교육을 시작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핀란드는 영·유아 단계에서부터 기업가정신의 개념을 적용해 교육한다. 이후 초·중·고·대학 등 각 교육 단계가 요구하는 기업가정신을 세분화해 커리큘럼을 설계한다.

국민대는 실용 교육을 중시하는 학풍에 걸맞게 창업 교육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이 대학 창업 팀 ‘런 투 비트’ 학생들은 학내에 위치한 창업교육 전용 공간인 지암이노베이터스 스튜디오(지암)를 찾아 ‘제자리뛰기’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들은 신발에 부착하는 웨어러블 기기 ‘런 투 비트’를 지난 10개월간 공들인 끝에 개발했다. 신발 뒤꿈치에 기기를 붙인 뒤 걸으면 걸음걸이에 따라 휴대폰에서 음악과 비트가 흘러나온다. 걸음걸이로 연주하는 전자악기인 셈이다.

국민대가 스튜디오 시설과 함께 운영하는 ‘지암이노베이터스 스튜디오’ 과목(3학점)은 이론과 실습을 병행하며 제품 개발까지 완성하는 수업이다. 지도 교수 평가에 따라 최대 전액 장학금까지 받을 수 있다. 매년 9월에는 교내 전시회를 개최해 각자 개발한 제품을 선보인다. 본인이 개발한 상품에 대한 소비자 반응을 간접적으로 살펴볼 기회다. 런 투 비트 팀원인 조성연(전자공학부 4학년)씨는 “구상한 아이템을 실제 제품으로까지 만들어보면서 창업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지울 수 있었다”며 “당장 창업을 하지 않더라도 사회생활이나 직장생활에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문태욱 창업진흥원 초기창업부 과장은 “창업에 흥미가 있는 학생과 창업을 준비하는 학생을 구별해 그에 맞는 창업 교육을 진행하는 게 이상적”이라며 “아직 대학에서는 각 교육에 맞는 창업 전문가 교원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진수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 겸 창업대학원 사업단장 역시 “아직 많은 학생이 일정 기간의 직장생활을 경험한 후 창업을 희망한다”며 “구글·아마존과 같은 회사를 창업하라고 요구하기보다는 창업 역량을 키워주는 게 대학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을 위한 창업 네트워크 형성도 중요하다. 인천대는 지난해 말 인천항만공사와 업무협약을 맺고 해운·항만 분야에 도전하는 기술 벤처기업 지원에 나섰다. 김영복 인천항만공사 실장이 인천대에서 1년 동안 파견 근무하면서 직접 학생들을 멘토링 한다. 김 실장이 현장 연계해준 창업 기업이 올해만 벌써 16개에 달한다.

스타트업 ‘쉐코’도 그중 하나다. 쉐코는 해양 기름 유출 사고 시 방제를 위해 무인 로봇을 개발하는 업체다. 대표 포함 직원 6명이 2년 동안 기술 개발에 공들여 지난 7월 회사를 설립했지만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쳤다. 인천 바다 인근이 보안구역인 탓에 허가 없이 바다에 함부로 기계를 띄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소식을 접한 김 실장은 항만공사의 협조를 얻어내 쉐코의 부두 시연(試演)을 가능케 했다. 권기성(28·무역학과 졸업) 쉐코 대표는 “바다에서 사용할 로봇이기 때문에 수조 실험은 한계가 있다”며 “인천항만공사와 대학 도움이 없었으면 시제품 개발에 어려움이 컸을 것”이라고 답했다.

- 대학평가팀=남윤서(팀장)·최은혜·김나윤 중앙일보 기자 / 이태림·장유경·정하현 연구원, 김여진 인턴기자 nam.yoonseo1@joongang.co.kr

201912호 (2019.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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