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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 논설위원의 ‘온 리버티(on liberty)’] 한국 보수의 길을 묻다(1) 보수란 무엇인가 

지키는 데만 머무르면 ‘수구’, 무엇을 지킬지 물어야 ‘찐 보수’ 

영국의 보통선거권 도입한 주인공은 ‘부르주아 당’ 보수당
‘태극기 부대’ ‘아스팔트 우파’ 목소리에만 휘둘리면 안 돼


▎4월 28일 서울 영등포구 63컨벤션센터에서 미래통합당 제1차 상임전국위원회가 정원수 부족으로 열리지 못했다. / 사진:연합뉴스
"우리에겐 ‘자멸’이라는 표현이 제일 정확하다, 이기려면 보수가 변해야 한다. 아스팔트 우파와 태극기 부대의 나라 걱정하는 마음은 알지만, ‘낡은 보수’의 주장에 끌려가는 모습은 고쳐야 한다.” (유승민, 4월 23일 MBC ‘100분 토론’)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시민이다, 자유우파의 필승을 위해 보수통합을 한다. 태극기 세력을 비롯해 자유한국당의 애국시민 등 자유우파가 함께 똘똘 뭉쳐야 한다.” (황교안, 1월 28일 유튜브 ‘신의 한수’)

유승민과 황교안은 대표적인 보수 정치인입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이 말하는 ‘보수’는 같은 뜻일까요? 이들이 생각하는 정치의 지향점, 우선시하는 가치는 얼마나 비슷할까요? 도대체 ‘보수’란 무엇일까요. 총선 막판 미래통합당에 영입돼 선거를 진두지휘했던 김종인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미래통합당은 보수란 개념조차 모르면서 보수 통합만 부르짖었다, (참패하고도)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희망이 없을 것이다.” 총선이 끝난 직후 그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시대가 변하면서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 대안을 제시해줘야 한다, 그러나 통합당은 그걸 안 하고 막연히 ‘보수’만 외치고 여당 비난만 했지 아무것도 안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 그의 말대로 “보수란 개념조차 모르면서 ‘보수’만 외친” 정치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아마도 반(反)문재인, 반(反)김정은 정도를 보수의 충분조건으로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통합당의 핵심 선거 구호는 ‘문재인 정권 심판’이었는데, 중도 성향 유권자들의 입장에선 “X 묻은 개가 덜 X 묻은 개에게 뭐라고 한다”고 생각했죠. 현 정권에 비판적이어도 차마 통합당을 지지할 순 없었다는 뜻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도 그랬고, 지금도 역시 통합당 내부에서는 ‘보수 혁신’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청년 정치인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당선자들 중심의 원내 정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제안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게 빠져 있죠. 앞서 김종인의 지적처럼 도대체 ‘보수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 말입니다. 유승민의 보수, 황교안의 보수가 제각각인 상황에서 그 어떤 훌륭한 대책과 인물을 내세운다 한들 그 효과는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결국 지금 미래통합당이 할 일은 21세기 대한민국에 필요한 보수의 역할은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선 가장 먼저 보수가 무엇인지부터 개념 정의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2년 후 대선, 4년 후 총선에서도 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지킬 것이 없을 때 보수는 망한다


▎프랑스혁명 이후 혁명정부는 ‘혁명을 지키기 위해’ 공포정치를 시작했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로 끌려가고 있다. / 사진:위키피디아
14세기 말 고려의 집권세력은 권문세족이었습니다. 이들은 원나라를 등에 업고 권력과 부를 독차지했죠. 반대편에는 성리학 이념을 바탕으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신진사대부가 있었습니다. 당시 권문세족은 과거(科擧)가 아닌 음서(蔭敍)로 벼슬을 대물림하고, 백성들의 토지를 빼앗아 거대한 부를 축적했습니다. 1492년 조선 문종 때 편찬된 [고려사(高麗史)]는 권문세족을 아래와 같이 ‘도둑’으로 묘사합니다.

“간악한 도둑들이 백성들의 땅을 빼앗는 경우가 많았다. 그 규모는 한 주(州)보다 크기도 하고 산과 강을 경계로 삼았다. 남의 땅을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땅이라고 우기며 주인을 내쫓았다.”

백성들이 너무 가난해 ‘송곳 하나 꽂을 땅(立錐之地, 입추지지)’이 없다는 말도 이때 나왔습니다. 하지만 권세와 부귀가 영원할 것만 같던 권문세족도 신진사대부의 등장과 함께 맥없이 무너집니다. 견고한 기득권의 성을 쌓기까진 수백 년의 세월이 걸렸지만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었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보수(保守, 보전하여 지킴)’해야 할 전통과 문화, 가치가 당시 백성들에겐 ‘송곳’ 만큼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고려는 멸망하고 신진사대부가 ‘민본(民本)’을 기치로 새로운 세상 조선을 건국했습니다.

국가의 흥망사를 살펴보면 대부분 집권세력이 자멸하면서 한 시대가 저뭅니다. 물론 다른 나라의 침략과 같은 외부적 요인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그 시작은 집권층의 부패와 타락입니다.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그의 책 [특혜와 책임]에서 백제가 망한 이유를 귀족들의 향락과 사치에서 찾았습니다. 송 교수는 “백제 멸망 시 나라를 위해 제대로 싸웠던 귀족은 계백 혼자뿐이었다”며 “군림만 하는 귀족들을 증오했던 백성들은 오히려 새로운 나라를 원했다”고 합니다.

이번 총선에서 보수정당이 몰락한 것도 이들이 ‘보수’하고 싶었던 것과 국민이 원했던 것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시대가 변해 보수라는 그릇에 담길 내용도 달라져야 하는데 보수 정치인들은 여전히 과거의 것에만 집착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국민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한 측면이 컸습니다. 그릇에 담을 콘텐트에 대한 치열한 고민 없이 오로지 ‘정권 심판’만 외쳐대다 자기들 먼저 ‘심판’ 받고 국민의 상식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그렇다면 보수란 무엇일까요. 이를 알기 위해선 먼저 국가가 무엇인지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인간은 정치(사회)적 동물’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는 뜻이죠. 타자에 견줘 자아를 발견하며, 그 관계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자아실현을 합니다.

가정에서 시작해 혈족 단위의 공동체를 이루고, 나아가 하나의 마을을 형성합니다. 마을이 커지면 지역사회가 되고, 종국엔 하나의 독립국가로 인정받죠. 그러면서 정치체제라는 것을 만들어 공동체가 지켜야 할 규율과 기준을 제시합니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복리를 증진하기 위한 선의의 목적으로 국가가 존재한다고 봤습니다.

이때 정치는 공동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기준을 만들고 공공의 복리를 증대시키는 행위입니다.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고, 외부의 침입과 내부의 혼란 같은 갈등과 범죄 행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며, 공동체와 각 개인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이끌어 가는 것이죠. 그 과정에선 필연적으로 조직과 집단, 개인 간의 의견 차이나 이해 충돌이 생기는데, 이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한정된 자원을 합리적으로 배분하는 것이 정치입니다.

이제 그 역할을 누가 어떻게 펼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이는 곧 정치 체제의 문제로, 우리가 어떤 시스템을 취하느냐에 따라 국가와 정부의 형태가 달라집니다. 오늘날 이를 설명하는 대표적 이론은 사회계약론입니다. 자연 상태에 뿔뿔이 흩어져 있던 개인들이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사회적 계약을 맺어 국가를 만들고 그 권한을 위임했다는 것이죠.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국가관과는 맥락이 조금 다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의 정체성을 ‘선의’의 목적을 추구하는 데 있다고 봤죠. 보통 이런 입장을 목적론적 국가관이라 부릅니다. 반면 사회계약론자들은 국가엔 그런 숭고한 목적 따위는 없다고 말합니다. 국가는 개인의 재산과 권리,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불가피하게 만들어진 일종의 ‘필요악’인 것이죠. 이는 목적론적 국가관과 대비해 발생론적 국가관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사회계약론의 원조는 토머스 홉스입니다. 1651년에 쓴 [리바이어던]에서 국가는 전쟁과 같은 외부의 침략과 위협, 내부에서 벌어지는 범죄와 무질서, 혼란 등을 막기 위해 사람들의 계약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국가는 개인의 생명과 자유,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합법적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세속의 신’입니다.

사회계약론자 “국가는 필요악”


▎영국 철학자 토머스 홉스의 저서 [리바이어던]의 표지. 인간이 뭉쳐서 만들어진 거인(인격을 지닌 국가)이 도시를 내려다보는 모습이다.
절대왕정 시대에 살았던 홉스는 신성한 권력을 휘두르는 주체인 국가에 개인이 절대복종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인간이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국가는 만들어진 순간부터 개인을 떠난 존재입니다. 국가는 그 스스로 이미 ‘인격’을 가진 존재이기에 국익은 언제나 개인의 이익보다 최상위에 존재하죠. 여기서 사회계약은 ‘신약’에 가깝습니다.

홉스의 국가론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강한 설득력을 지닙니다. 최근의 코로나19 상황을 보면 국가의 대응 방식에 따라 나라마다 혼란의 강도가 달랐습니다. 또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내전과 기아 등 국민이 큰 고통을 겪는 나라도 많습니다. 이는 국가의 역량이 달랐기 때문이죠. 훌륭한 방역체계, 반란군을 진압할 공권력 등 여러 요소가 합쳐 우수한 국가를 만듭니다.

[리바이어던]이 국가의 탄생 이유를 설명했다면 존 로크는 국가 권력의 주체가 누구인지 명확히 했습니다. 1689년 로크가 쓴 [통치론]은 홉스와 달리 국가 권력의 주체를 국민으로 설정했죠. 로크의 국민주권론은 오늘날 민주주의를 정치 체제로 하는 대다수의 나라에서 헌법의 기본 이념으로 삼고 있습니다.

우리 헌법의 1조 2항도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죠. 그렇기 때문에 제아무리 합법적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도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에 반해 권력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저항권’입니다. 국가가 주권자의 의사에 반할 때 국민은 사회계약을 해지해 국가를 부정할 수 있습니다. 이는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배를 엎을 수도 있다’는 공자 및 순자의 사상과 일맥상통합니다.

로크는 국가가 언제나 옳은 일만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죠. 그러므로 국가가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선 주권자인 국민이 만들어 놓은 원칙과 기준에 따라야 한다고 설명했는데 그것이 바로 법치주의입니다. 이는 절대권력인 국가의 명령에 모든 인민이 따라야 한다고 했던 홉스와 다른 입장입니다. 국가 권력의 정당성은 국민으로부터 창출되며, 국가권력을 대리하는 사람들은 주권자인 국민을 위해 정치를 펼쳐야 합니다. 권력을 행사할 때는 국민이 합의한 기준 ‘법’에 의해서만 모든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죠.

로크의 사회계약론을 발전시켜 완성한 이는 루소입니다. 루소는 국가와 정권을 구분함으로써 저항권의 개념을 좀 더 현실에 맞게 다듬었죠. 국민의 뜻에 맞지 않는 국가에 매번 저항권을 행사하긴 어렵습니다. 그래서 루소는 국가와 이를 운영하는 정권을 따로 떼어내면 혼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정치 세력이 있고, 이들이 각각 경쟁을 벌여 정권을 잡으면 국가의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만일 정권이 잘못된 정치를 펴면, 국가를 전복할 필요 없이 정부만 교체하면 됩니다. 이는 현대 정당 중심의 의회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초석이 됐죠.

마르크스 이론의 전제는 유물론입니다. 물질이 먼저 있고, 그다음에 정신과 의식 같은 형이상학적인 것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형이상학적 관념을 우선하는 관념론과 대비되죠. 물질의 세계는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습니다.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고 원래부터 있던 것이죠. 정신과 의식 같은 관념도 물질에 기초해 성립합니다.

마르크스주의자 “국가는 절대악”


▎지난해 12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의회 개원연설을 위해 하원이 열리는 런던 웨스트민스터 궁전을 방문하고 있다. / 사진:AP/연합뉴스
그런데 이런 물질의 본성은 늘 변화합니다. 고정된 상태로 불변하는 물질은 없습니다. 그 변화의 에너지는 내부에서 나오고요. 겉으로는 하나의 통일된 뭔가처럼 보이지만 내부에서 끊임없이 대립된 것들 간의 투쟁이 일어나고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새로운 것으로 변해갑니다. 바로 변증법적 유물론이죠.

이를 국가의 생성과 소멸, 역사의 발전 과정에 적용한 것이 ‘사적 유물론(史的唯物論)’입니다. 원시 공동체 이후 인간의 모든 사회는 내부의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지금에 이르렀죠. 상반되는 두 계급 사이의 투쟁이 역사를 발전시켰습니다. 국가는 투쟁 과정에서 지배층이 피지배층을 통제하고 착취하는 폭력적 기구였고요. 귀족과 노예, 봉건 영주와 농노,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건물주와 세입자 등으로 모든 사회엔 착취하는 사람과 당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때 계급을 나누는 기준은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입니다. 중세 지주들은 땅을, 산업혁명기 부르주아는 공장을, 현대 건물주는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노동의 가치보다 신성한 것은 없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합법적으로 생산수단(땅·공장·부동산 등)을 소유한 지배층은 경제활동을 통해 생산된 잉여가치 중 최소한의 몫만 노동자들에게 지급하고, 대부분의 몫을 이윤의 형태로 가져간다고 봤죠. ‘일하지 않고 더 많은 이윤을 챙겨가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 마르크스 이론의 출발입니다.

이런 생산관계를 깰 방법은 혁명뿐이라는 게 마르크스의 생각이었습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해서만 착취와 지배 구조를 전복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마르크스에게 국가는 국민의 권리를 지키는 수단도, 불평등을 완화해주는 장치도 아닌, 착취와 폭력의 도구일 뿐이었죠. 그래서 혁명이 완료된 세상에선 국가도 사라진다고 봤습니다. 이를 통해 ‘인간해방’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마르크스 이론을 따른 사회주의 국가에서 인간은 해방되지 않았고 국가도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인간은 더 많은 구속과 착취를 당했죠. 단지 억압의 주체가 자본가에서 독재자 또는 소수의 공산당 지도자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왜 그럴까요. 마르크스의 사상은 물질과 계급으로 역사와 자본주의를 설명하는 일종의 해설서입니다. 정작 혁명 이후의 구체적인 계획은 제시돼 있지 않죠. 역사의 발전 과정을 대립물의 투쟁으로, 자본주의 모순을 잉여가치의 차등 분배로 설명한 매력적인 이론이지만, 혁명 이후 어떤 정치·경제 체제를 갖춰야 하는지 구체적인 로드맵이 없습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두 가지 태도


▎4월 27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공판이 열리는 광주지방법원 앞에서 보수성향 단체 회원들이 집회를 벌이자 5·18단체 회원들이 항의하고 있다.
그렇다고 마르크스의 이론이 완전히 쓸모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불평등의 심화에 대한 그의 해석은 현대 사회에도 정확히 들어맞습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농담이 전 사회에 퍼져 있듯 불평등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문제입니다. [21세기 자본]으로 부의 불평등 문제를 제기한 토마 피케티의 문제의식도 마르크스와 궤를 같이합니다. 이상주의적 이론은 현실에서 실패로 끝났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그의 놀라운 통찰은 여전히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국가의 존재를 설명하는 이론은 다양합니다. 그중에서도 국가를 최고의 선으로 본 아리스토텔레스와 인간해방을 위한 조건으로 없어져야 할 대상으로 국가를 본 마르크스 사이에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언뜻 보면 둘은 양극단에 놓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에겐 인간과 세상에 대한 동일한 인식의 지점이 있습니다. 바로 인간이 세상을 설계하고, 의지에 따라 바꿔 갈 수 있다는 믿음이죠.

아리스토텔레스는 최고의 선을 실천하는 국가를 이상향으로 제시하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법들을 연구했습니다. 마르크스는 사적 유물론에 따라 역사 발전 단계를 서술하며 역사의 최종 종착지를 혁명 이후의 공산주의 사회로 설정했습니다. 둘 다 인간이 설계한 그림대로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굳은 믿음이 내재해 있습니다.

반면 사회계약론은 인간이 불가피하게 계약을 맺긴 했지만, 국가는 필요악이라고 규정합니다. 인간이 계약을 맺어 국가를 탄생시켰지만, 계약서에서 손을 놓는 순간 국가는 계약 주체인 인간의 손을 떠나 버립니다. 사회계약론에선 인위적으로 사회를 설계하고 유토피아를 만들어 가는 것이 불가능해 보입니다.

이렇게 역사와 사회를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은 공동체를 어떻게 변화시켜 갈 것인가 하는 문제의 해답을 얻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태도를 낳습니다. 한 편에서 인간은 충분히 유토피아를 설계하고 노력을 통해 이를 실천할 수 있다고 믿지만, 또 다른 편에선 세상은 인간이 그린 설계도대로만 움직이지 않으며 그 어떤 개인도 인류의 집단 문화유산인 과거의 전통과 관습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환경의 변화에 따라 제도와 문화 역시 바뀌어야 하겠지만 이를 급진적으론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죠.

위와 같은 구분에서 앞의 것을 우리는 진보라 부르고, 뒤의 것을 보수라 칭합니다. 즉, 보수와 진보는 단순히 변화의 속도만 차이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릅니다. 김의영 서울대 교수는 보수와 진보를 일종의 ‘성향과 태도(attitude)’라고 정의합니다. “보수·진보는 그 자체가 내용이 아니라 특정한 내용물을 담는 그릇이다, 시대가 변하면 보수·진보의 의미도 달라진다”는 것이죠.

결국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은 그 자체로서 만고불변의 철학과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어떤 내용물 자체이기보다는 그 시대에 필요한 이념과 가치를 담는 그릇에 가까운 것이죠. 예를 들어 미국의 민주당은 19세기 남북전쟁 때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는 링컨의 공화당에 맞섰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민주당이 노예제를 옹호하거나 인종차별을 지지하진 않습니다. 세상이 변하면 보수·진보라는 그릇에 담기는 내용물도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과거 우파의 자유방임에 맞서 좌파가 주장했던 복지국가 모델은 이제 보수·진보를 떠나 모든 민주 국가의 핵심 정체성이 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수와 진보를 명쾌하게 구분해 놓은 사람이 영국의 정치인·철학가 에드먼드 버크입니다. 버크는 1790년 쓴 [프랑스 혁명의 고찰]에서 혁명 정부와 계몽주의를 비판했습니다. 그의 논지는 명쾌합니다. 당시 유럽에선 인간의 이성과 합리에 근거한 계몽주의가 지식의 주류를 형성했죠. 인간 이성에 대한 자신감은 인간의 의지로 역사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했습니다.

보수의 아버지 버크


▎심재철 미래통합당 대표 권한대행이 5월 4일 이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합동분향소에서 분향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버크는 인간의 이성이 뛰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또한 불완전함을 완전히 이겨낼 수 없기 때문에 다가올 미래를 완벽히 설계하거나 대처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부실한 설계는 미래를 더욱 혼란과 갈등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지적했죠.

실제로 혁명 이후의 프랑스는 유토피아라기보다는 혼란과 갈등이 극심해진 사회의 단면을 보여줬습니다. 그 때문에 버크는 역사의 발전과 진화는 뛰어난 소수 엘리트의 설계가 아니라 과거에서부터 내려오는 전통과 관습에서 비롯된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과거의 유산이 때로는 극복해야 할 인습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이것이 오랜 시간 인류 역사에서 전통으로 내려오는 이유는 그만큼 정당성과 효용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평소 우리가 식당에 갈 때 블로그의 호평이 많고 줄이 많은 ‘맛집’을 찾아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에 대해 영국 정치철학자 로저스 크러튼은 “보수는 훌륭한 유산은 쉽사리 창조되지 않는다는 믿음”이라고 표현합니다. ([합리적 보수를 찾습니다])

반대로 혁명과 같은 급진적 변화는 오히려 혼란과 갈등을 부추길 뿐입니다. 버크는 “급진적 사회변혁으로 오히려 갈등과 혼란만 초대할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아울러 “혁명의 사상은 종교적 색채를 띠게 될 것이고 이런 광신적 믿음에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독재 정부가 나올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버크의 책이 출간되고 3년 후인 1793년 혁명 세력은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단두대에서 처형하며 부르봉 왕조를 몰락시키죠. 그러면서 혁명의 주동자였던 로베스피에르가 집권해 ‘공포정치’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로베스피에르 역시 자신이 세운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그다음은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나폴레옹의 시대죠. 혁명군 사령관에서 황제의 자리까지 오른 그는 잦은 침략전쟁을 벌이며 유럽을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이처럼 프랑스혁명에 대한 버크의 ‘예언’은 대부분 적중합니다. 보수주의자였던 그는 부르주아가 주축이 돼 안정적이며 점진적으로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영국의 전통을 중시했습니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시민의 권리를 명문화한 명예혁명 같은 사례가 사회 발전의 롤 모델이라고 봤죠. 즉, 혁명 이후 혼란과 갈등이 커진 프랑스 사회를 보면서 진보가 아닌 보수의 방법론으로 사회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21세기 보수가 나아갈 길

이처럼 버크가 주장했던 보수 정치는 영국을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로 이끕니다. 산업혁명을 통해 경제를 부흥시키고 입헌군주제 아래 민주주의를 발전시킵니다. 19세기 영국은 영광의 ‘빅토리아 시대’를 구가하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게 됐죠.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왕실의 철학을 다졌고 양당제를 중심으로 한 의회정치의 기반이 마련됐습니다.

보수는 과거의 유산과 전통, 문화를 지키며 점진적으로 사회를 발전시켜야 합니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수구’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죠. 하지만 보수의 가치가 국민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할 때는 오직 지도층의 기득권 유지 수단으로 전락합니다. 국민이 함께 지키고 싶은 가치와 신념이 있다면 건강한 보수가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사라져야 할 구시대의 유물 ‘앙시앙 레짐(Ancien Regime)’일 뿐인 것이죠.

4차 혁명으로 불리는 현대 사회는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빠르고 진폭도 큽니다. 그런 탓에 ‘보수’, 즉 지켜야 할 것이 과거에 비해 적어진 게 사실입니다. 또 우리는 일제강점과 한국전쟁을 겪으며 역사적 단절의 시기가 있었고, 그로 인해 유럽 국가와 같은 보수적 가치의 터전이 빈약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보수는 시대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고 더욱 빨리 변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보수가 시속 20㎞로 달렸다면 이젠 40㎞로 속도를 높여야 합니다. 그래야 80㎞로 달리는 진보와 균형을 맞춰 우리 사회를 안전속도(60㎞)에 맞출 수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영국의 보수당이 300년이 넘도록 살아남은 이유는 기존의 것만 ‘수구’하지 않고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했기 때문입니다.

보수당은 부르주아의 계급을 대변하는 정당이었지만 19세기 선거권 확대를 주장하며 국민정당으로 탈바꿈했고, 20세기 초 노조를 끌어안으며 좌우를 끌어안는 넓은 스펙트럼을 갖게 됐습니다. 위기 때마다 이념과 기득권 대신 실용과 개혁을 내세우며 지금까지 살아남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의 보수는 무엇을 지킬 것이며,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그에 대한 답은 다음 호에서 자세히 살펴봅니다.

※ 윤석만 논설위원/중앙일보 - 국회·청와대·교육부 등 다양한 출입처를 거쳤다. 2012년 한국기자상을 받았다. 고려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경희대에서 미래 사회를 주제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과학·기술·산업만이 아닌 인간과 문화, 의식과 제도의 측면에서 조망하며 미래인문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휴마트 씽킹] [리라이트] [인간혁명의 시대] [미래인문학] 등이 있다.

202006호 (2020.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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