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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분석] 박원순 서울시장의 ‘대권 조바심’? 

경쟁자는 앞서가는데 지지율 1년 전의 ‘반토막’! 

대선 2년 안 남은 시점에서 지지율 답보 상태 이어져
이낙연·이재명 등 뛰어넘자면 자신만의 컬러 살려야


▎박원순 서울시장이 5월 11일 시청에서 이태원발 코로나19 집단감염 관련 브리핑을 한 뒤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다들 가슴 쓸어내렸죠.”

6월 초 사석에서 만난 서울시 공무원은 입맛을 다시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또 (이슈를) 선점하는 줄 알았다. 다행히 정부에서 난색을 보였길래 망정이지….”

이재명 지사는 5월 29일 전 국민에게 20만원씩 2차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정부에 공식 건의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의 생활 안정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추가 재난지원금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부는 재정 여건을 들어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6월 1일 ‘2020년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정부 합동브리핑 후 질의응답에서 2차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가능성을 묻는 말에 “재정 당국을 맡는 입장에서 저는 추가적인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못을 박았다.

“가슴 쓸어내렸다”는 공무원의 말이 이어진다.

“코로나19 사태 국면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라이벌’ 이재명 지사에게 자꾸만 이슈를 선점당하는 것 같아 조마조마한 심정이었다. 만일 이 지사의 2차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제안이 받아들여졌다면 서울시의 당혹감은 상상 이상으로 커졌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여의도를 중심으로 “코로나19 정국에서 박원순 시장이 조바심을 내는 것 아니냐”는 말들이 나온다. 차기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는 이낙연 민주당 의원은 차치하더라도 같은 당 광역단체장인 이재명 지사와의 격차가 점차 벌어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곁들여진다.

‘리얼미터’의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월례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두 사람 간 지지율 변화 추이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확산하기 직전인 2020년 1월 조사에서 이재명 지사 5.6%, 박원순 시장 2.9%로 두 사람 간의 격차는 2.7%p에 그쳤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유행한 2월 이후 둘의 지지율은 크게 벌어졌다. 이 지사의 경우 13.0%(2월)→13.6%(3월)→14.4%(4월)→14.2%(5월)를 기록했다. ‘리얼미터’뿐 아니라 최근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이 지사는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를 3위로 밀어내고 2위로 올라섰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동물적 감각의 이슈 선점 능력이 이 지사 지지율 상승의 원동력”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반면 박 시장은 3.6%(2월)→3.5%(3월)→2.0%(4월)→2.3%(5월)에 그치고 있다(5월 조사의 경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1.9%p, 이하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 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같은 기관의 2019년 5월 조사(4.7%)와 비교하면 박 시장의 지지율은 반토막 난 셈이다.

더불어민주당 전략기획 파트 출신 정치 컨설턴트는 “코로나19 정국에서 이재명 지사와 박원순 시장의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면서 “이 지사는 유능한 행정가이자 이슈 선점 지도자라는 인상을 각인시키며 과거 자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덜어낸 반면 박 시장은 ‘따라잡기’에 급급한 듯한 모습을 비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리얼미터’ 정례 조사(5월 기준)에서 이낙연 의원은 12개월째 1위를 지켰다. 2위와의 격차도 20%p나 된다. 하지만 한 가지 눈여겨볼 대목은 총리가 아닌 ‘국회의원 이낙연’으로 변신한 첫 달(5월) 조사에서 전월(4월) 대비 6%p 가까이 지지율(34.3%)이 낮아졌다는 점이다.

이 의원의 지지율 소폭 하락은 이재명 지사, 박원순 시장 등 범여권 2위 후보군에게는 ‘희소식’으로 받아들여질 만하다. 예비 대선주자로서 2위 후보군의 운명은 필연적으로 1위인 이 의원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이 의원이 현재처럼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지지도 역시 한동안 고공 행진을 이어간다면 2위 후보군에게 원천적으로 기회 자체가 차단될 수 있다. 그렇지만 어느 한순간 이 의원의 지지율이 급락한 뒤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면 2위 후보군에게 공간이 열릴 수도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의원은 문재인 정부에서 주어진 기회(총리)를 자신의 캐릭터에 맞게 잘 살린 덕분에 대선후보 지지율 1위로 떠오른 케이스”라며 “만일 이 의원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처럼 갑자기 지지율 폭락 사태를 겪게 된다면 그때는 2위 후보군이 주목받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을 비롯한 범여권 예비주자로는 이낙연 의원을 비롯해 이재명 지사, 박원순 시장, 추미애 법무부 장관, 김부겸 전 민주당 의원, 심상정 정의당 의원 정도가 이름을 올린다.

2위 후보군(群)의 기회와 朴의 고민


▎박원순 서울시장 (오른쪽)과 정운찬 KBO 총재가 5월 1일 잠실야구장에서 만나 방역 현황 등을 확인하고 있다. / 사진:서울시
올 1월까지만 해도 범여권 대선주자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낙연과 아이들’ 정도였다. 이 의원이 30% 안팎을 유지하는 데 반해 나머지 주자들은 모두 한 자릿수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코로나19 정국 이후 이 지사가 ‘안정적’ 두 자릿 수로 올라서며 눈길을 끌고 있다. 이 지사, 박 시장 등을 모두 묶어서 범여권 2위 후보군으로 볼 수도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 지사가 2위, 박 시장 등은 3위 후보군으로 분류할 수도 있다.

박 시장 측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3선 서울시장으로서 쌓은 유능한 행정가의 이미지를 유능한 정치인, 차기 국가 지도자로는 잘 이어가지 못한다는 게 지지율 답보의 이유로 풀이된다.

2017년 대선과 2018년 지방선거의 잇단 승리가 역설적으로 ‘박원순이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라는 분석도 있다. 익명을 요청한 민주당 관계자의 주장이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과거 보수 정권 때처럼 정부와 서울시 사이의 대립각이 사라졌다. 또 2018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박 시장 한 사람뿐 아니라 이재명 지사, 김경수 경남지사 등 민주당 소속 광역 단체장 여러 명이 다자 구도를 형성한 것도 ‘박원순 지지율 하강’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처럼 서울시장이라고 해서 특별히 주목받는 구조가 아니다.”

또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이낙연 의원과 이재명 지사 사이에서 좀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하지 못하는 게 ‘박원순 부진’의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이 관계자는 “이 의원의 안정감, 이 지사의 추진력 틈바구니에서 박 시장이 고전하는 것 같다”며 “안정감과 추진력은 이미 다른 주자들이 선점한 만큼 박 시장으로서는 완전히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무기한’ 연기된 야구장 관중 유치의 꿈


▎박원순 서울시장 (오른쪽)과 이재명 경기지사가 5월 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지율 답보로 인한 박 시장 측의 조바심은 최근 행보에서도 읽을 수 있다. 박 시장 측은 지난 10년간 서울시장으로서 이룬 성과가 박 시장이 국가 지도자로 도약하는 디딤돌이 되길 바라지만, 사정은 그리 여의치 않아 보인다.

박 시장은 2020시즌 프로야구 개막 나흘 전인 5월 1일 잠실야구장을 방문해 정운찬 KBO(한국야구위원회) 총재와 만나 2020년 KBO 리그 개막을 앞두고 안전한 프로야구 운영을 위한 업무협약서를 체결했다. KBO 측은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방역수칙을 준수하고, 서울시는 프로야구가 안전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한다는 게 업무 협약의 골자다. 프로야구는 연간 정규시즌 총 관중이 700만 명 이상인 명실상부한 국민 스포츠다. 대통령 등 주요 정치 지도자들이 간혹 프로야구 시구자로 나서는 것도 야구의 국민적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 시장은 “7대 방역수칙이 제대로 지켜진다면 가능한 한 빨리 일부 관중을 (경기장에)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정운찬 총재께 드렸다”며 “개막전은 관중 없이 진행하더라도 이후 경기장 수용 인원의 10%를 허용하고, 그 후에 20%를 받는 등 점점 관중 수를 늘려가는 방향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5월 30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불기 2564년 부처님오신날 법요식에 참석한 이낙연 전 국무총리 (오른쪽)와 박원순 서울시장. / 사진:연합뉴스
“관중 수를 늘려가는 방향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발언은 읽기에 따라 ‘코로나19 정국에서 서울시가 방역에서 가장 앞서 나간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메시지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서울시가 사상 초유의 위기를 잘 극복하는 모습이 부각된다면 박 시장에 대한 주목도도 자연스레 높아질 거란 부연설명이 뒤따랐다.

모 구단 관계자는 “잠실야구장의 경우 한 경기만 무관중으로 치러도 입장 수입만 2억원의 손해를 본다”며 “관중 유치가 가장 절실한 건 구단들”이라고 털어놓았다. 이어 “구단들은 학생들의 등교 상황 등을 차분히 지켜본 뒤 KBO와의 협의를 통해 단계적으로 관중을 유치하려 했다”며 “서울시가 올해 잠실야구장을 LG·두산 두 구단에 빌려주고 받는 돈은 총 157억원(구장 사용료 30억원, 광고료 127억원)인데 요즘처럼 어려울 때는 그것부터 깎아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수원을 연고로 하는 KT 야구단은 무상 임대 조건으로 야구장을 사용하고 있다.

이에 서울시 관계자는 “당시(박 시장이 야구장을 방문한)는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생활 속 거리두기로 넘어가는 단계였다”며 “박 시장의 발언은 우선은 무관중으로 경기를 치러보지만, 나중에 코로나19 상황이 좋아진다면 방역수칙을 잘 준수하면서 관중을 유치하면 어떻겠냐는 뜻이었을 뿐 조바심을 낸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최근 박 시장 측의 행보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는 민주당 한 현역 의원은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는 박 시장은 이미 3선 서울시장으로, 정치인으로서 남은 일정은 사실상 대권뿐인 만큼 좀 더 당당하게 나서라는 주문도 잊지 않았다.

“누구는 ‘박원순이 대통령병에 걸렸다’고 하는데, 중견 정치인치고 대통령을 꿈꿔보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3선 연임 제한에 걸린 박 시장인 만큼 ‘서울시장으로서 10년간 이룬 성과를 보고, 앞으로 대한민국을 이끌어나갈 능력이 있을지 국민이 판단해달라’는 말을 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인가?”

이런 가운데 최근 박 시장이 ‘박원순계’로 불리는 민주당 의원들과 회동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대선후보 지지율 조사에서는 이재명 지사에게 밀리는 박 시장이지만, 국회 내에서만은 ‘내 사람’이 훨씬 더 많다. 이 지사와 가까운 인사들은 민주당 총선 공천 과정에서 대부분 낙천되는 바람에 현재 국회 내에 이재명계라 할 의원은 손에 꼽을 정도다.

민주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박 시장은 6월 7일 서울시내 모처에서 기동민·박홍근 민주당 의원 등 박원순계로 분류되는 의원 10여 명과 함께 식사 자리를 가졌다. 지난 4·15 총선에서 박 시장과 이런저런 인연이 있는 인사 20여 명이 원내 입성에 성공했다.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낸 김원이 의원, 행정1부시장을 지낸 윤준병 의원, 비서실장을 지낸 천준호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한 참석자는 “‘정치적인 것들에 너무 민감해하지 마시라’ ‘굵직한 의제에 집중하시라’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주실 필요가 있다’ ‘시정에 전념하시라’는 등 다양한 조언이 나왔고 박 시장은 대체로 경청했다”고 모임 분위기를 전했다.

‘박원순계와의 미팅’에 앞선 4월 말, 박 시장은 서울시장 비서실을 전면 개편했다. 종전 오성규 비서실장을 고한석 서울디지털재단 이사장으로 교체한 게 인사의 핵심이다. 고한석 신임 비서실장은 SK네트웍스 출신으로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지낸 전략가다.

이외에도 박 시장은 최병천 전 민주연구원 연구위원을 민생정책 보좌관에, 조경민 사단법인 서울산책 대표를 기획보좌관에, 박도은 서울시 국회·정당협력관을 대외협력보좌관에 각각 임용했다. 또한 메시지를 담당하는 소통전략실장에는 장훈 전 노무현 정부 청와대 여론비서관을, 정책비서관으로는 황종섭 서울시 교육감 정무보좌관을 앉혔다.

뭉치는 朴의 사람들


▎주요 차량이 빠져나가자 굳게 닫히고 있는 청와대 본관 정문. 청와대는 유력 정치인들의 로망이다.
박 시장은 7월 서울시 정기인사에서는 부시장단 등 고위 간부 교체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부동산 정책을 담당하던 진희선 행정2부 시장과 강맹훈 도시재생실장, 강병호 복지정책실장 등이 용퇴를 결정했다. 차관급인 행정2부시장 자리엔 김학진 서울시 안전총괄실장이 내정됐다.

최근 인사와 관련한 서울시 공무원 출신 민간기업 임원의 분석이다. “이번 인사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선거다. 박 시장이 대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각 파트에 특화된 인재를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대선이 2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박 시장은 신발 끈을 단단히 죄고 있지만, 당 안팎의 여론은 대체로 미지근하다. 어떤 이들은 정책이나 노선을 떠나 박 시장의 포지션이 애매하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민주당 출신 여론조사 전문가의 진단이다. “현재 민주당 내 대선 구도를 보면 이낙연은 중도와 호남을, 이재명은 진보를 선점하고 있다. 그런데 박원순은 이도 저도 아닌 것 같다. 괜찮은 행정가라는 이미지는 쌓았지만 ‘정치인 박원순’이 내놓을 만한 대표 상품은 마땅치 않은 것 같다. 박원순이 이낙연과 이재명 사이를 파고들 여지가 많지 않을 수 있다.”

‘대권 시계’의 분침이 빨라지면서 잠룡들의 발걸음도 분주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박원순 시장 측이 박 시장의 대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서울시장직 사퇴를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월간중앙 취재 결과 박 시장 사퇴 시나리오와 관련해 내부적으로 문건까지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장직은 언제 내려놓을까


▎2011년 11월 16일 박원순 서울시장 취임식장에 시민들이 건넨 메모지가 나붙었다.
서울시 등에 따르면 박 시장의 대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사퇴일 검토가 이뤄진 것은 지난해 말.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장은 선거일 90일 이전에 사퇴해야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

박 시장 측이 내부적으로 검토한 시점은 내년 7월 9일, 9월 9일, 그리고 12월 9일이다. 대선은 2022년 3월(예정)에 치러진다. “사퇴일을 검토한 것은 맞지만 박 시장의 지시로 사퇴 시점을 따져본 건 아니다”라는 게 서울시의 입장이다. 시장의 지시가 없었는데도 실무진에서 사퇴 시점을 논의했다는 건 상식적으로 봤을 때 어불성설이다. 만일 시장의 지시 없이 실무진에서 자발적으로 사퇴 시점을 논의했다면 기강 해이에 해당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공무원들은 예상되는 모든 상황을 다 고려해서 일을 기획해야 한다”며 “특히나 기조실은 기획 부서이다 보니 나름대로 시나리오별로 (상황을) 예상해서 (문건을) 만들어본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어 “박 시장은 대선 출마와 관련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문건 자체의 존재나 내용을 알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지지율 답보 속에서 박 시장은 코로나19와 관련해 존재감 부각에 매진하고 있다. 이재명 지사가 전 국민에게 일정액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주장하고 나서자 박 시장은 ‘재난긴급생활비’로 맞불을 놓았다. 이 지사가 경기도민 전체를 대상으로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한 것과 달리 박 시장은 중위소득 100% 이하 가구에 최대 50만원의 현금성 지원을 했다.

최근 들어서 두 사람은 ‘기본소득’과 ‘전 국민 고용보험’으로 2라운드를 펼치고 있다. 정부가 전 국민을 상대로 최대 100만원의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자, 이 지사는 “일회성 지급에 그칠 것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전 국민에게 일정액을 지급해 소비를 촉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에 박 시장은 ‘전 국민 고용보험’이 우선이라며 각을 세웠다.

박 시장은 6월 10일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 국민 고용보험에 관한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을 환영한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전날 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전 국민 고용보험에 대한 입장을 밝힌 데 따른 박 시장의 이슈 선점이란 해석이 나왔다. 박 시장은 “얼핏 모든 시민에게 현금을 나눠주면 공평해 보일 수 있다”면서도 “실제로는 재분배 효과를 떨어뜨려 오히려 불평등을 강화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최근 박원순 시장의 상황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여권 인사들은 “2011년으로 돌아가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2011년 10월 26일 박 시장은 보궐선거를 통해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제도권 정치에 최초로 발을 들여놓은 순간이었다. 이어 그는 2014년과 2018년에 거푸 당선되면서 사상 최초로 3연임 서울시장으로 기록됐다.

보궐선거가 열린 2011년 ‘안철수 현상’은 무척 뜨거웠다. 안철수 당시 서울대 교수 입장에서 서울시장은 떼어놓은 당상이었다. 안 교수의 지지율은 50% 안팎이었던 반면 시민단체 출신 박원순 변호사의 지지율은 5% 안팎에 불과했다.

A2, B2 아닌 C로 거듭나야


▎4월 23일 소상공인 지원 방안 브리핑에 앞서 안경을 고쳐 쓰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 / 사진:연합뉴스
두 사람의 범야권 단일화 논의가 한창일 당시, 박 변호사는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채 백두대간 종주 중이었다. 9월 6일 안 교수와 만난 자리에도 박 변호사는 덥수룩한 수염 차림으로 나타났다. 안 교수가 조건 없는 양보를 결정하자, 박 변호사는 그를 와락 안으며 “아름다운 합의”라고 화답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당시 박 변호사의 촌놈 같지만 진정성 있는 언행이 사람들에게 먹혔다”며 “정책도 물론 필요하지만, 대선후보에게는 큰 틀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만한 제스처가 더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같은 해 11월 16일 서울시장 취임 후 박 시장의 행보는 한층 더 파격적이었다. 서울시장으로는 60여 년 만에 최초로 집무실을 일반에 공개했다. 업무 공간과 휴게실뿐만 아니라 화장실·샤워실까지 인터넷을 통해 보여줬다. 그는 시종일관 중계 카메라 너머의 시민을 친구처럼 살갑게 대했다. 첫 인사말도 “시민이 시장입니다”였다.

박 시장이 새로 단장한 집무실에 들어선 뒤 첫 번째로 소개한 것은 시민 400여 명의 메시지가 적힌 부착형 메모지였다. 박 시장이 후보 시절 경청 투어에서 시민들로부터 받은 메모지를 한쪽 벽에 가득히 붙인 것이다. 박 시장은 이날 취임식 선서를 마치고 “저는 시민 여러분에게 늘 묻고 듣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전략통은 “박 시장이 지지율 답보 상태에서 탈피할 유일한 방법”이라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최근 10년 동안 박원순의 대표적인 감동 장면을 꼽으라면 2011년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때 안철수와의 포옹 그리고 시장 취임 때 공개한 서울시장실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남들을 따라 하려 할 게 아니라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해야 한다. 한마디로 절장보단(絶長補短, 장점으로 단점을 극복하다)이 필요하다.”

민주당 출신 여론조사 전문기관 관계자의 조언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는 박 시장의 행보가 현재 패턴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면 지지율 역시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 듯 말했다.

“안정감 면에서 박원순이 이낙연을 이길 수 있을까. 추진력 면에서 박원순이 이재명을 이길 수 있을까. 지금처럼 해봐야 결국 A2(이낙연 아류), B2(이재명 아류) 신세를 면키 어렵다. 박원순이 대권에서 승부수를 던지려면 C(새로운 존재)로 거듭나야 한다. 대체로 이낙연은 소탈함이 부족하고, 이재명은 소통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준다. 도인처럼 수염 기르고 나와서 격하게 포옹하고 집무실에 메모지 빼곡히 붙인 건 박원순만이 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202007호 (2020.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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