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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인국공 사태’ 20대 청년들의 이유 있는 분노 

청년의 고통을 ‘망원경’으로 들여다보는 정부여당 

취업 절벽이 주는 좌절감과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 심화
정부와 청년층, ‘공정성’의 본질 놓고 정면 충돌 양상


▎7월 7일 오전 인천공항공사에서 공사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관련한 항의 피켓을 들고 있다. / 사진:뉴시스
"이번 사태의 본질은 정규직화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 공정한 정규직화인지 아닌지의 문제입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차별과 차이를 구분 못 한 정책입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보안 검색 요원 정규직 전환 논란이 뜨겁게 달아오르던 6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주최 ‘인국공 사태 성토대회’에 참가한 청년들은 격앙된 목소리로 정부 정책을 성토했다. 이 자리에는 공기업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 일반 기업 취업준비생 등 청년 다수가 참석했다.

취업준비생 A씨는 “2019년 크리스마스 이브 날 가장 가고 싶었던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 최종면접 불합격 발표를 보고 공원 가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며 “올해 다시 인국공 준비를 하는데, 허무한 소식을 들으니 힘이 빠진다”고 토로했다. 현장에서 청년들의 울분에 찬 비판이 쏟아졌다.

이들은 특히 “청년의 분노가 한낱 가짜뉴스에 현혹된 어리광에 불과하냐”며 정부를 직격했다. 그러면서도 청년들은 “우리들의 분노를 밥그릇 뺏길까봐 전전긍긍하는 청년들의 이기적 행위로 치부하지 말라”며 외부의 시선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이었다.

6월 22일 인천국제공항공사는 보안검색 요원 1902명을 ‘청원경찰’ 신분으로 직접 고용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정책은 주로 청년층에서 엄청난 반발을 샀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중단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동의자가 청원 시작 2주 만(7월 10일 기준)에 30만 명을 돌파했다. 앞서 봤듯 취업준비생들은 극도의 거부반응을 보였다. 인국공의 정규직화 정책이 밤을 지새워가며 취업 시험을 준비하는 자신들의 미래 일자리를 가로채 간다는 이유에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인국공 기존 직원들조차 보안 검색요원 직접고용 계획을 ‘졸속 전환’이라며 절차상의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특히 인국공 정규직 노조는 헌법소원을 고려하겠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6월 29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는 성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공공기관 정규직 전환 정책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인국공 사태 관련 ‘역차별 우려 등 부작용을 고려해 정규직 전환을 보류해야 한다’는 의견이 45.0%, ‘장기적 고용 체계 변화를 위해 정규직 전환을 계속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40.2%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20대에서는 ‘정규직 전환을 보류해야 한다’는 응답이 55.9%에 달하는 등 전체 연령층 중에서 반대 비율이 가장 높게 나왔다.

하지만 청와대와 정부, 여당은 청년들의 분노가 한낱 가짜뉴스에 현혹돼 나타난 것이라고 항변한다. 그렇다면 그들의 말처럼 청년의 분노는 가짜뉴스에 현혹된 것일까. 월간중앙이 현장에서 만난 청년들의 주장과 논지는 꼭 하나로 수렴된다고는 볼 순 없지만 정부여당이 청년 취업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다는 반감의 정서를 공유하고 있었다. 게다가 인국공 정규직 전환 정책은 일련의 여권의 행보가 전반적으로 ‘공정하지 않다’는 인식과 맞물려 청년층의 대(對)정부 불신을 부추기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는 듯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국공 사태에 대한 청년들의 분노는 ‘이유 있는 반항’이기 때문에 정부 여당이 청년들의 목소리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 교수는 ‘세대론’을 언급하며 청년 세대들이 압축성장으로 혜택을 본 기성세대에 치여 많은 좌절을 경험했고 그것을 인국공 사태에서 표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정한 시험을 통해 사회적 삶 형성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서 열린 종합 시험운영 점검에서 가상 여객들이 보안검색요원들의 통제하에 전신검색대를 통과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당초 취업을 모색하다가 전문역량을 키우고자 대학원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는 김성철(27)씨. 그는 인천공항공사의 일방적 정규직화 정책이 청년들의 도전 기회를 앗아간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가뜩이나 고용 없는 성장으로 취업이 안 되는 현실에서 선호도 1위 공기업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을 통해 신규 고용의 통로를 좁혔다는 말이다. 김성철씨는 “정부와 여당은 결과의 평등에 집착하는 것 같다”면서 “우리 같은 청년들에게는 기회가 주어지는 게 더 절실하다”고 ‘기회의 평등’을 강조했다. “청년들은 일정한 노력이 성취를 보장하는 사회 속에서 자기 발전을 꾀하게 된다. 도전해서 실패하더라도 그 실패를 통해 성장해나간다. 일단은 도전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인국공 사태는 도전 기회를 차단한다는 점에서 청년층의 정서에 불을 질렀다.” 김씨는 사회적 합의를 동반하지 않는 인국공 정규직 전환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개인, 사회, 국가 모두 피해자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대기업 최종면접에서 낙방한 구현모(29)씨는 사회 진출의 관문이라 할 취업시험의 ‘실종’이 청년층의 조바심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한국인들은 어려서부터 시험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는 환경에서 성장했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우리 세대는 시험을 통과해가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기획하고, 증명하고, 인정받았다. 학창 시절 학기마다 보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에 이어 학창 시절 12년의 마침표인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통해 대학에 진학한다. 상아탑에서 반복되는 시험을 통해 평가를 받은 뒤 취업이라는 관문을 거쳐 사회로 진출한다. 최근 한국 사회는 이런 일련의 흐름이 끊겼다. 인국공 사태는 우리 세대의 불안, 불만이 총체적으로 분출되는 한 계기로 작용했다.”

또 다른 이들은 시험이라는 제도가 한국 사회의 공정성을 평가하는 척도의 기능을 한다고 했다. 언론사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김성국(28)씨는 “언제 청년들이 수십, 수백 대 일의 경쟁을 탓한 적 있느냐”면서 “희박한 합격률에도 계속 도전하는 것은 공정한 경쟁과 선발이 가져다줄 보상에 대한 기대심리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어려운 시험일수록 더 매력적이며, 그래서 각종 고시에 청년들이 몰리는 것이라는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가 보기에는 현 집권세력도 기성세대에 속한다. 그들의 일방적 공약과 요구로 인해 인국공 같은 기업이 기존 인력을 정규직화하는 것 자체가 청년층들의 진입을 막는 행위로 이해될 수 있다.”

그래서 불평등을 해소한다는 정부의 정책이 또 다른 불평등을 야기한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일반 사무직 취업을 준비 중인 대학생 송현도(24)씨는 “정부가 지향하는 평등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청년들이 원하는 평등은 이런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공정한 채용 과정에서 취업준비생들은 학점뿐만 아니라 스펙 마련에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며 “인국공 사태는 청춘의 노력을 무시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쩐지 양극화 해소, 부의 재분배를 지향하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청년들의 입신양명의 열망과 사회적 신분 상승의 욕구를 억제한다는 말로 들린다. 송씨는 “정부가 공정한 기회 자체를 무너뜨리도록 부추긴다”고도 말했다.

취업 절벽이 주는 반작용


▎7월 14일 서울 성동구청 희망일자리센터 취업게시판 앞에서 한 청년이 구직공고를 바라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로 인해 가중되는 취업난은 청년들의 인내심을 시험한다.

독서실에 상주하는 취업준비생 최정현(25)씨는 “현장의 목소리가 담기지 않은 정책과 여당의 지속적인 내로남불식 인재 등용에 크게 실망했다”고 운을 뗐다. 그는 문만 열린다면 중견기업이라도 들어가겠다고 했다. 일단 어디서든 경력을 쌓아야 더 큰 기업으로의 점프가 가능하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중소기업조차 채용공고가 잘 뜨지 않는다”며 고개를 젓는다. “내부 사정을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나 같은 취준생 입장에서는 인국공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그들만의 잔치로 비쳐지기도 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기업 10곳 중 7곳이 채용을 취소하거나 연기하고 있다.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기업들도 코로나19 사태가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자 ‘비상 경영’을 선언하고 나섰다. 취업 ‘바늘구멍’이 ‘미세 바늘구멍’으로 변화하며 취업 절벽에 청년들이 내몰리고 있다.

인천공항의 올해 신입사원 채용이 이를 적나라하게 대변한다. 인천공항에 따르면 7월 8일 올해 상반기 신입사원 70명 채용하는 데에 5390명이 지원했다. 이에 따라 모든 직군을 통틀어 경쟁률은 77대1이다. 신입사원 사무직군 최종 경쟁률은 203.8대1을 기록했다. 이에 더해 올해 하반기와 내년 인천공항 신규 채용인원이 더욱 줄어들 거란 전망이 나왔다. 배준영 미래통합당 의원이 입수한 ‘인천국제공항공사 일반직 신입채용 현황 및 향후계획’에 따르면 내년 일반직 신입직원 채용인원이 50명으로 잡혀 있다. 이는 지난해 채용인원 140명의 3분의 1 수준이다.

당장 공기업을 준비하고 있던 청년들에게도 발등에 불이 붙었다. 네이버카페 ‘공기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임’(공준모, 회원수 55만) 회원들이 6월 24일 ‘부러진 펜 운동’ 캠페인을 통해 공식 입장을 전했다. 공준모는 인국공 정규직 전환과 관련해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란 말에는 노동하는 분야가 다르다면 임금부분도 다른 게 당연하다는 말이 내포돼 있다”며 “다른 노력과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동일한 임금을 주고자 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인 자유민주경제체제에 벗어난다”고 주장했다. 부러진 펜 운동은 인국공의 결정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인국공 사태’, ‘#부러진 펜 운동’이라는 해시태그(Hash tag)를 올리는 캠페인이다. (공준모에선 6월 23일부터 ‘정부의 공공기관 기간제-정규직 전환 정책 찬반 여론조사’를 진행 중이다. 7월 15일 공준모가 공개한 투표 중간 집계 결과에 따르면 정규직 전환 정책에 ‘반대한다’ 의견이 2122표 (85.12%)로 ‘찬성한다’ 300표(12.03%)보다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모르겠다’는 71표(2.85%)로 나왔다. 투표는 7월 31일까지 진행된다.)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정문성(29)씨는 “정책을 수립하려면 그에 따른 반작용을 고려해 보완책도 내놓아야 한다”며 “정부가 청년 취업난에 더 세심한 배려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잘못된 해석으로 인한 분노 확대


▎4월 4일 경기도 안산시 와스타디움에서 치러진 안산도시공사 직원 공개채용 필기시험, 축구장 한가운데서 진행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그런 점에서 인국공 사태를 대하는 정부여당의 관점과 접근 방식은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는 게 청년들의 시각이다. 앞서 봤듯이 정부와 여당은 인국공 사태와 관련한 청년들의 분노를 연봉이나 전환 절차를 호도하는 ‘가짜뉴스’에 결부시켰다. 또 황덕순 청와대 일자리수석은 “비정규직 보안검색 직원의 일자리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라며 “현재 공사에 취업을 준비하는 분들의 일자리와는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정부의 설명은 나름의 근거를 갖고 있더라도 청년들이 갖는 역차별 의식이나 박탈감을 충분히 헤아리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김두관 더불어민주당의 “조금 더 배웠다고 비정규직보다 2배가량 임금을 더 받는 것이 오히려 불공정”, “그렇게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청년들의 바람이 연봉 3500만원 주는 보안검색이냐”는 발언은 2030세대의 거센 반발을 샀다.

병원에서 전문직종으로 종사 중인 조모(25)씨는 일한 지 3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한 달에 세금을 제하면 200만원 초반의 월급을 받고 있다. 조씨는 “3500만원이 적은 돈이냐, 도대체 김 의원이 생각하는 청년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고 힐난했다. 이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단지 그 과정이 잡음이 많고 불공정하게 이뤄지는 것 같아 화날 뿐”이라고 말했다.

실용주의적 성향 지닌 청년들의 외침


▎6월 29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인국공 로또취업 성토대회’에서 한 청년이 가림판 뒤에서 익명으로 인국공 사태 관련 비판 발언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임금근로자의 대졸 초임은 최저임금(2020년 기준 약 180만원)을 조금 넘긴 200만원 초반 수준으로 기록했다. 임금근로자의 월평균 소득은 297만원, 중위소득은 220만원이다.

기자와 만난 청년들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 취지에는 공감했다. 다만 그 과정이 공정한 상태일 때라는 단서가 달렸다. 올해 말 치르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는 삼수생 김승준(22)씨에게 인국공 정규직 전환은 ‘보여주기식 정책으로 와닿는다. 김씨는 “우리가 바라는 비정규직 정책은 공정한 절차가 있어야 한다”며 “몇몇 공사의 정규직화 과정에서 직원들의 친인척을 끼워 넣는다는 뉴스를 보면서 불신감이 증폭됐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인국공 사태에 분노하는 청년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삶과 연관된 ‘공정성’에 대한 깊은 회의다. 김성태 전 의원의 자녀 채용 비리 논란부터 조국 전 장관의 사퇴를 가져온 자녀 부정 입시비리 문제까지 ‘아빠 찬스’는 현실을 왜곡하는 하나의 실체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기성세대와 정부가 청년들을 이기주의라고 폄하하는 경향이 보이지만 이는 공정이 중요한 실용주의적 성향을 가진 청년들의 당연한 모습”이라며 “목소리를 내고 있는 청년들로 인해 사회가 발전하게 될 것”이라고 청년들의 문제의식에 공감을 표했다.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의론에서 규정하는 정의는 하나가 아닌 다원적 정의”라며 “직고용을 시켜야 한다는 정의와 불공정한 과정에 분노하는 청년들의 정의가 충돌한 것”이라고 여권과 청년층의 불편한 관계를 풀이했다. 줄을 잘 서거나 우연적인 요소에 의해 희소가치가 배분되는 상황은 결코 공정하다는 느낌을 못 준다는 게 김 교수의 지적이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 중 한 구절이다. 이번 사태로 인해 정부가 공정성 논란에 발목을 잡히는 역설이 발생했다. 인국공 사태는 여권으로 하여금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내놓은 평등·공정·정의에 대한 본질을 다시 성찰케 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 심민규 월간중앙 인턴기자 smkyu4958@naver.com

202008호 (2020.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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