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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 2021 격랑의 한반도, 4강외교 해법을 찾는다] 도쿄올림픽을 둘러싼 韓日의 동상이몽 

文, 도쿄올림픽에서 ‘제2의 평창’ 노리지만 스가 총리는 과거사 문제 한국 책임론 우선 

문재인 정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위해 대일 강경노선 변화 조짐
도쿄올림픽에 김정은·김여정 초청 가능성… 코로나19 진정세에 달려


▎도쿄올림픽 엠블럼과 마스크를 쓴 도쿄시민. / 사진:EPA/연합뉴스
"과거사는 과거사이고 한·일 간에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야 하는 것은 그것대로 또 해나가야 할 문제다. 양국이 수출규제 문제, 강제징용 판결 문제 등을 외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여러 차원에서 대화하고 있는 중에 위안부 판결 문제가 더해져 솔직히 좀 곤혹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2015년 한·일 정부의 위안부 합의가 공식 합의였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 토대 위에서 피해자 할머니들도 동의할 해법을 찾도록 한·일 정부가 협의하겠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 집행방식으로 (일본 기업 자산을) 현금화한다든지, 판결이 실현되는 방식은 양국 관계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1월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일 간 주요 현안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다. [마이니치신문] 등 일본 언론들은 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내용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문 대통령의 강경한 대일 정책이 유화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이 1월 14일 이임하는 도미타 고지 주한 일본대사를 청와대에서 면담한 자리에서 “한·일 양국은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조기에 복원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일은 가장 가까운 이웃이자, 함께 가야 할 가장 중요한 파트너”라며 “양국 간 소통과 대화, 교류 협력은 반드시 계속 발전시켜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이임하는 주요국 대사들과 면담한 적은 있지만, 사진 촬영을 하고 덕담까지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문 대통령은 새로 부임하는 강창일 주일 대사의 신임장 수여 자리에서도 “문제는 문제대로 해법을 찾고, 미래지향적 발전 관계를 위한 대화 노력은 별도로 계속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말부터 한·일 관계 복원 메시지를 일본 정부에 적극적으로 보내왔다. 지난해 11월에는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을 일본에 사실상 ‘특사’로 보내 스가 요시히데 총리에게 한·일 관계 정상화 의지를 전달했다. 정보기관의 수장이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 외국을 방문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었다. 특히 박 원장은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잇는 ‘문재인-스가 선언’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발표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으로, 당시 오부치 총리는 일제 식민 지배로 한국 국민에게 손해와 고통을 준 것을 사죄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발전을 모색하자는 내용을 담았다. 이 선언으로 역사 인식에서 비롯돼 깊어진 양국 갈등이 봉합됐었다.

그런가 하면 한·일 의원연맹 회장인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한국 의원 대표단이 지난해 11월 도쿄를 방문해 스가 총리를 예방했다. 김 의원도 스가 총리에게 한·일 관계를 조속히 정상화하자는 뜻을 밝혔다. 심지어 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화상으로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존경하는 의장님, 각국 정상 여러분, 특히 일본의 스가 총리님 반갑다”고 스가 총리를 콕 집어 인사하기도 했다. 대통령이 다자 정상회의에서 의장국 정상 등 정상회의에 참석한 이들을 부르며 예우하는 경우는 있지만, 특정 국가 정상을 대상으로만 인사하는 건 이례적이다.

文, 한·일 관계 복원 메시지 일본 정부에 보내


▎문재인 대통령이 1월 14일 청와대 본관 접견실에서 도미타 고지 주한 일본대사를 접견하고 있다. / 사진:청와대
문 대통령이 잇따라 일본에 대한 일종의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것은 2017년 5월 취임 이후 강경한 반일 정책을 추진해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문 대통령은 올해 신년 기자회견 전까지 단 한 번도 2015년 한·일 정부 간의 위안부 합의를 인정한 적이 없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위안부 합의에 대한 검토를 지시했다. 이후 2017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 검증 태스크포스(TF)는 결과 보고서에서 “피해자 중심적 접근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고 일반적인 외교 현안처럼 주고받기 협상으로 이뤄졌다”며 “조약이 아니라 정치적 합의”라고 결론을 내렸다.

양국은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인 2015년 12월 외무장관 회담에서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해 합의한 바 있다. 합의 내용을 보면 일본 정부의 책임 통감, 총리의 사죄와 반성, 일본 정부의 예산 출연을 통한 화해치유재단 설립 등이다. 일본 정부가 그동안 완강하게 거부해왔던 법적 책임을 사실상 인정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 당시 아베 신조 총리는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부인해왔고, 일본군의 관여를 인정한 고노 담화도 검증을 명목 삼아 인정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대표적인 진보학자인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도 “일본 정부가 이제야 겨우 책임을 인정했다”면서 “위안부 합의는 피해자와 시민운동이 쟁취한 승리”라고 평가했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TF 보고서를 바탕으로 “2015년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협상은 절차적으로나 내용으로나 중대한 흠결이 있었음이 확인됐다”면서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다시금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했다. 이어 2018년 11월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고 일본 정부의 출연금 10억 엔으로 설치된 화해치유재단 해산도 발표했다. 이후 문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나 대안을 지금까지 내놓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런 조치에 강력하게 반발해왔다. 위안부 문제에 한국 편을 들었던 일본 언론과 학자들도 “어떤 국가의 정부가 한국과 안심하고 상대하겠느냐”면서 문 정부를 비판해왔다.

강제징용·위안부 배상 판결에 日 “끝난 문제”


▎1998년 10월 일본을 국빈방문 중인 김대중 대통령(왼쪽)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 서명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 대법원은 2018년 10월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위자료 청구권은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 협정의 대상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며 일본제철(구 신일철주금)과 미쓰비시중공업이 피해자들에게 1억원씩 위자료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로 수십만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승소가 보장되는’ 소송의 문이 열린 셈이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2018년 12월 한·일 의원연맹 소속 일본 국회의원 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서 “대법원 판결은 한·일 청구권 협정이 유효하지만, 노동자 개인이 일본 기업들에 대해 청구한 손해배상청구권까지 소멸된 것은 아니라고 본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일본 정부는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보상 문제는 모두 끝났기 때문에 개별 피해자들에 대해 배상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후 강제 징용 피해자들은 2019년 3월 대전지법에 판결 이행을 미루는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국 내 상표권 2건과 특허권 6건에 대한 압류명령을 내려 이를 매각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2019년 12월 대전지법은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미쓰비시중공업이 이에 항고하면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일본제철 피해자들의 배상도 요원하다. 대구지법 포항지원은 2019년 1∼3월 “일본제철의 한국 자산을 압류해 달라”고 낸 피해자들의 신청 3건을 모두 받아들였다. 일본제철이 주식 압류명령에 불복하는 항고장을 제출했지만, 포항지원은 기각했다. 하지만 포항지원은 압류된 재산에 대한 실제 매각 절차에 나서진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서울중앙지법은 1월 8일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들에게 1인당 1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은 성명에서 “한국 정부의 책임으로 즉각 국제법 위반을 시정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강구할 것을 재차 강하게 요구한다”면서 “이번 판결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과 2015년 위안부 합의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일본 정부는 주권 국가가 다른 나라 법정에 서지 않는다는 ‘주권면제’ 원칙을 내세워 소송 진행 내내 무대응으로 일관했고, 항고도 아예 포기했다. 이런 일련의 재판 결과로 한·일 관계는 더욱 수렁에 빠져 있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이 기존 반일 노선을 바꾼 의도는 무엇 때문일까.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라고 볼 수 있다. 첫째는 미국에서 바이든 정부가 새롭게 출범했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이던 지난해 11월 문 대통령과의 첫 정상통화에서 “한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와 번영에 있어 핵심축(linchpin)”이라고 규정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올 1월 23일 서훈 청와대 안보실장과의 통화에서 “한국은 미국과 민주주의·법치 등의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으로서 앞으로 미국은 한국과 다양한 사안들에 대해 긴밀히 협의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설리번 보좌관이 “민주주의·법치를 공유하는 동맹”이란 표현까지 강조하고 나선 것은 한·미가 ‘민주주의 가치 동맹’인 만큼 한국이 중국 압박에 참여해야 한다는 뜻을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동시에 인도·태평양 전략에 적극 참여하라는 사실상의 압박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바이든 정부는 한·미·일 협력 중요성 강조


▎2018년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가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상고심 선고 공판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최종 확정했다
바이든 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한·미·일 3각 동맹을 적극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바이든 미 대통령과 스가 일본 총리는 1월 28일 첫 전화통화에서 인도·태평양 전략을 적극 추진하고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한·미·일 협력이 중요하다는 점에 합의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도 전날인 1월 27일 모테기 일본 외무상과 강경화 당시 외교부 장관 등과 잇따라 전화 회담을 갖고서 ‘한·미·일 3자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와 관련,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바이든 정부의 아시아 정책 우선순위 중 하나로 미·한·일 협력이 포함될 것”이라면서 “바이든 정부는 중국과 북한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미·한·일 협력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미 테리 CSIS 선임연구원도 “바이든 정부가 한국과 일본 사이의 관계 복원을 우선순위에 둘 것”이라고 강조했다. 궈하이 중국 화남이공대 연구원은 “바이든 정부가 역사 문제로 대립 중인 한국과 일본의 관계 회복을 추진할 수 있다”며 “미국 주도의 한·미·일 삼각 동맹은 중국에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맥락에서 문 정부는 바이든 정부와의 관계를 고려할 때 반일 노선을 변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게다가 바이든 정부를 북한과의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으려면 문 정부가 바이든 정부의 주문에 어느 정도 호응하는 모습도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이유는 ‘제2의 평창’ 전략을 추진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문 정부는 도쿄올림픽을 활용해 남북, 북·미, 북·일 관계 정상화를 위한 이른바 ‘제2의 평창’ 전략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왔다. 문 대통령은 1월 21일,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22개월 만에 처음 주재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올해 도쿄올림픽을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한 대회로 성공적으로 치러낼 수 있도록 협력하면서 한·일 관계 개선과 동북아 평화 진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도쿄올림픽 개최에 관심을 피력한 것은 도쿄올림픽을 제2의 평창올림픽으로 만들려는 구상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도쿄올림픽에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나 여동생인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이 참석하고 남북 선수단 공동입장 등이 성사되면 내년 2월 열리는 베이징 동계올림픽까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나아가 동북아 평화 구상을 진전시키는 토대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2월 평창올림픽에 김여정 부부장과 선수단 및 응원단을 파견하면서 그해 3월 남북 정상회담의 물꼬가 트였다. 이는 같은 해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이번에도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북·미 비핵화 협상을 중재해보겠다는 것이다. 2018년 북·미 간 중재에 깊숙이 관여한 정의용 전 청와대 안보실장을 외교부 장관으로 기용한 것도 이런 복안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한·일 정상회담 개최도 고려하고 있다. 이와 관련,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1월 20일, 익명의 한국 정부 관리를 인용해 “문 대통령이 도쿄올림픽 전에 스가 총리와 회담을 실현하고 일본 정부와 협력해 도쿄올림픽에 북한 고위급 관료를 초대하는 것을 조율하고 싶어 한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지난해 11월 박지원 국정원장과 한·일 의원연맹 회장인 김진표 의원이 일본을 방문해 도쿄올림픽 관련 협력을 제안한 것도 문 대통령의 의향이며 이는 한·일 정상회담 실현을 위한 것이라고도 전했다. [요미우리신문]도 1월 19일 “문 대통령으로선 바이든 정부가 하루라도 빨리 북한과 마주 앉도록 설득하기 위해 대일 관계 개선이 필요해졌다”면서 “문 대통령이 도쿄올림픽에서 북·미 정상의 만남을 통한 국면 전환을 기대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선 일본의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납북자 문제 해결 위해 北과 대화 원하는 日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화상회의로 열린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RCEP) 정상회의 및 협정 서명식에 참석해 일본의 서명식을 보고 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스가 정부로선 도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가 최우선 과제인 만큼 문 대통령의 전략에 어느 정도 호응할 수도 있다. 스가 총리가 그동안 김정은과 조건 없는 대화 의사를 수차례 밝혀왔기 때문이다. 스가 총리는 1월 13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도쿄올림픽에 참가하는 것에 대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나 대회 조직위원회 등에서 조율되겠지만, 기회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조건을 붙이지 않고 김정은 위원장과 직접 마주할 용의가 있다”면서 “일·조(북·일) 평양선언을 토대로 납치·핵·미사일이라는 모든 현안을 포괄적으로 해결하고 불운한 과거를 청산해 북한과 국교 정상화를 목표로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스가 총리가 김정은과의 정상회담 개최를 바라는 것은 무엇보다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서다. 일본은 그동안 북한이 납치한 자국민이 17명이라면서 사망한 8명과 송환된 5명을 제외한 나머지 4명에 대해서도 귀환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북한은 납치된 사람은 13명이라고 맞서왔다. 일본은 유엔 인권이사회 등 국제무대에서 북한 측에 지속적으로 납치 문제 해결을 요구해왔다. 스가 총리는 “납치 문제는 가장 중요한 과제이며 납치 피해자 가족이 고령이라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강조해왔다. 스가 총리는 김정은 또는 김여정이 도쿄올림픽에 참석할 경우, 흥행은 물론 북·일 관계 개선과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에 돌파구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의 기대와 달리 북한 대표단이 미국 대표단만 상대한 채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평양으로 돌아가면 스가 정부는 엄청난 곤욕을 치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와 관련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2월 2일 자 논평에서 “일본이 그토록 떠드는 납치 문제는 이미 되돌릴 수 없게 다 해결된 것으로서 더는 논의할 여지조차 없다”면서 “일본은 20만 명에 달하는 우리 여성들을 성노예로 끌고 다녔던 특대형 범죄를 절대로 가릴 수 없다”고 주장했다. 통신은 또 “일본은 우리 인민에게 감행한 천인공노할 반인륜 범죄부터 사죄하고 철저히 배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북한이 역으로 도쿄올림픽을 활용해 핵보유국임을 과시하면서 미국과 일본에 맞서는 모습을 보일 경우, ‘판’을 만들어준 스가 정부에만 비판의 화살이 쏟아질 것이 분명하다.

문 정부의 ‘제2의 평창’ 전략이 성사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실타래처럼 얽힌 한·일 관계를 개선해야만 한다. 스가 정부는 과거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관계 개선에 나서지 않겠다는 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위안부 판결에 강하게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스가 총리는 “국제법상 주권 국가는 타국의 재판권에 복종하지 않는다”며 문 정부의 조기 시정 조치를 요구했다.

스가 “한·일 갈등 해법, 한국이 내놓아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1월 7일 코로나19 긴급사태를 선언하고 있다. / 사진:AP/연합뉴스
한국 법원은 과거에 있었던 이와 유사한 소송을 주권 면제를 이유로 각하해왔다. 주권 면제는 한 국가의 법원이 다른 국가를 소송 당사자로 삼아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법 원칙을 말한다. 국가 차원의 전시 성폭력 범죄에 희생당한 위안부 피해자의 기본권은 반드시 회복돼야 한다. 하지만 한국 법원이 주권 면제의 보호를 받는 외국을 상대로 배상 판결을 내린 것이 바람직한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스가 정부는 문 대통령이 위안부 합의를 공식 합의라고 뒤늦게 인정함에 따라 더욱 강경한 입장을 보일 것이 분명하다. 일본은 그동안 위안부 합의에 대해 ‘최종적이며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을 국제사회에 강조해왔다. 일본은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문 대통령의 이번 발언을 강조해가며 위안부 문제가 종식됐다는 입장을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관련 판결에 대해서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일괄 처리됐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스가 총리는 1월 1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한·일 갈등의 해법을 한국이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제징용, 위안부 등 잇따른 한국 법원의 배상 판결에 일본 정부나 기업을 개입시키지 말고 문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한국 외교부는 성명을 통해 “일본에 대해 정부 차원의 어떤 추가적인 청구도 하지 않을 방침”이라면서도 “피해 당사자들의 동의 없이 진정한 문제 해결은 어렵다”고 밝혔다. 문 정부의 이런 성명은 2015년 한·일 정부 간의 위안부 합의를 인정하지만, 피해자 개개인이 제기하는 청구에 대해서는 막을 수 없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문 정부의 궁색한 입장은 지지 세력의 강력한 반발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방적으로 양보할 수 없는 입장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한·일 관계가 개선되지 못할 경우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문 정부가 그리는 커다란 그림(Big Picture)인 제2의 평창 전략은 성사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가장 중요한 점은 1년 미뤄진 도쿄올림픽이 코로나19 확산으로 취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스가 총리는 2월 2일 코로나19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도치기현을 제외한 10곳에 대한 긴급사태 기간을 오는 3월 7일까지 연장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올림픽 성화 봉송이 3월 25일로 예정돼 있어 긴급사태 기간 안에 코로나19를 억제하지 못하면 도쿄올림픽 개최가 어려워진다면서 스가 총리가 ‘배수진’을 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심지어 스가 총리는 최근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을 표명해 무관중 개최까지 검토하고 있다. 일본 안팎에서 도쿄올림픽 회의론이 퍼지고 있는 데다 국민의 80% 이상이 도쿄올림픽을 중단하거나 연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스가 총리로선 코로나19를 억제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는 셈이다. 집권 여당인 자민당에선 도쿄올림픽이 취소되면 스가 총리의 퇴진 요구 등 정치적으로 중대한 국면이 전개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문 정부로서도 도쿄올림픽이 취소되면 북한이 올림픽 참여를 명분으로 국제사회에 나올 기회가 사라지기 때문에 북·미, 북·일 간 중재에 나서기도 어려워질 것이 분명하다. 문 대통령과 스가 총리 모두 도쿄올림픽이 개최되기를 바라고 있지만, 서로의 셈법은 다른 것이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202103호 (2021.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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