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Home>월간중앙>사람과 사람

[신준봉 전문기자의 책과 사람(18)] 루쉰 평론 9권 번역 주도한 박재우 한국외대 명예교수 

“루쉰을 알면 지금 중국의 문제가 훤히 보인다” 

중국 인문학 핵심인 작가 세계 규명 [중국 루쉰 연구 명가 정선집] 출간
“중국 지도부, 알맹이 비판정신 별로 거론 안해… 정치적 이용가치 따라 부침”


▎중국 근대 작가 루쉰은 문학 울타리에만 갇히지 않았다. 잡감문이라고 불리는 자유로운 형식의 산문을 통해 근대 중국의 부조리를 강하게 질타했다. 박재우 외국어대 교수는 국내 최고의 루쉰 전문가다. / 사진:신인섭 기자
우리는 알게 모르게 루쉰의 그늘 아래 있다. 중국의 어지러운 근대를 바로잡으려 했던 작가이자 사상가, 혁명가였던 루쉰(魯迅·1881~1936) 말이다. 난처하거나 절망적인 상황을 마치 아무런 문제없거나 희망적인 것처럼 역설적으로 또 심리적으로 넘기려 할 때 그에게 저작권이 있는 ‘정신승리법’을 이미 활용하고 있는 거라는 얘기다. 건달들에게 두드려 맞고도 아들놈에게 맞은 거나 다름없다고, 돼먹지 않은 건 이놈의 세상이라고, 그래서 승리한 건 오히려 자신이라고 득의만만해하는, 그의 소설 [아큐정전]의 주인공 아큐처럼 말이다.

지금 읽어도 현대적인 그의 작품들이 이 땅에 소개된 지는 한 세기가 돼 간다. 아나키스트 유기석이 루쉰의 첫 소설 ‘광인일기’를 1927년 번역한 게 최초다. 만만치 않은 축적의 시간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부침이 많았다. 국내 정치, 국제 정세, 중국에서 루쉰의 평가가 복합작용한 결과다. 가령 냉전 시기에 루쉰을 읽는 것은 무척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앞서 언급한 문학가·사상가·혁명가라는 평가는 실은 마오쩌둥이 내린 것이었다. 당연히 냉전 시기 한국 연구자들은 온건한 루쉰, 좌파 이념의 색채가 삭제된 무해한 루쉰을 읽으려 했다. 대만에서조차 루쉰이 1987년 계엄령 해제 전까지 금서였다는 사실은 이념으로 얼룩졌던 동아시아 근대에서 끊임없는 비판정신으로 자신은 물론 세상을 갱신하려고 했던 한 근대정신을 읽는 일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이었겠는지를 말해준다.

루쉰을 자신의 스승이라고까지 얘기한 리영희 선생이 1980~90년대 활발하게 ‘선전’한 결과 국내에서 루쉰은 한동안 뜨겁게 읽혔으나 이후 대중의 그에 대한 열기는 이전 같지 못한 듯하다. 하지만 루쉰 감상과 이해를 위한 하드웨어는 오히려 탄탄해졌다고 해야겠다. 루쉰의 소설과 시는 물론 당대에 대한 직접 비판의 무기였던 이른바 잡감문(雜感文)을 빠짐없이 망라한 20권짜리 [루쉰 전집](그린비 출판사) 이 2018년에 완간된 데 이어, 최근에는 중국의 루쉰 전문가들이 그의 세계를 규명한 평론글들 전집이 출간됐다. 80년대 이후 중국의 루쉰 연구자 가운데 돋보이는 10명을 선정해 이들의 성과를 보여주는 [중국 루쉰 연구 명가 정선집](소명출판)이다. 9권이 한꺼번에 출간됐다. 역시 루쉰 연구에 있어 역량을 검증받은 한국학자 11명이 번역자로 참여해 하나의 분과학문 수준으로까지 성장한 한국과 중국의 루쉰학(魯迅學) 혹은 루학(魯學)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중국 교육부가 인정하는 최고 학자 등급의 장강(長江)학자


▎중국 인문학의 핵심으로 평가받는 루쉰.
루쉰 명가 정선집의 한국 주편을 맡아 번역자를 선정하는 등 한국어판 출간을 총괄한 박재우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를 만났다. 박 교수는 지난해 말 장강(長江)학자가 됐다. 중국 교육부가 인정하는 최고 학자 등급이다. 한국의 인문학 연구자 가운데 최초라고 한다. 절차가 그만큼 까다롭다는 얘기다. 한국인을 제재로 한 중국문학 연구, 루쉰 연구, 한·중 문학 교류 등 평생에 걸친 다양한 학문활동을 인정받았다고 했다. 코로나로 막혀 있지만 앞으로 왕래가 자유로워지면 중국 시안(西安)에 있는 섬서사대(陕西師大)에서 교편을 잡는다.

왜 지금 루쉰인가. 그는 어떤 사람이었고 그의 문학의 의의는 무엇인가. 박 교수와 이런 얘기를 나누고 관련 자료를 들추다 보니 방대한 루쉰의 세계는 틀에 박힌 하나의 이념 잣대나 예술 미학 안에 가둬두기 어렵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루쉰을 하나의 기준점으로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 얼마나 벗어났느냐에 따라 당대의 어떤 오류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점 말이다. 계획했던 10권의 명가 정선집 가운데 북경대 중문과 퇴직 교수이자 현 중국에서 보기 드문 비판적 지성으로 잘 알려진 첸리췬(錢理群)의 글을 묶은 한 권의 국내 출간이 늦어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심장하다. 이 시대 루쉰을 읽고 연구하는 일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말해주는 듯했다.

루쉰 촌철살인 꿰다 보면 거대한 사상 엿보여


▎(왼쪽부터) [중국은 루쉰이 필요하다], [루쉰을 멀리하면 용렬해진다], [루쉰과 현대 중국]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싶다. 왜 지금 루쉰인가.

“루쉰은 중국 인문학의 가장 깊은 핵심, 가장 높은 봉우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루쉰을 보면 중국 사람들의 깊은 속 생각, 문화의 핵심적인 것들, 또 전통이나 현대 문제, 이런 것들을 모두 알 수 있게 된다. 루쉰을 관통하면 중국의 문제가 훤하게 보이게 되는 것이다. 공자만 관통해서 중국이 보일까. 과거의 윤리적인 측면으로 형상화된 중국만 보일 뿐이다. 역사적인 현실은 잘 안 보인다. 그래서 인문학의 핵심이 루쉰이라고 하는 거고 그만큼 하나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생각이 인정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세계에 대한 체계화된 루쉰의 학설이 있냐 하면 그런 체계성은 없다. 그는 어떤 특정 분야에 대한 보편적인 이론을 장황하게 전개한 건 없다. 남긴 글들이 전부 문학작품이거나 잡문이다 보니, 그것들을 모아 꿰뚫어 연구를 하다 보면 세계적이라고 해야 할 어떤 보편적인 도리가 단편적으로 도처에 깔려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는 거다. 촌철살인의 표현의 형태로 말이다. 그런 것들을 읽다 보면 아하 이 분이 이런 정도 경지에 도달해 있었구나, 그런 생각에 다가가게 된다.”

어떤 사람이었나.

“우선 중국에서 사회비판 의식이 가장 앞서 있던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사회와 문화 곳곳에, 또 사람들의 의식 내면에 남아 있는 봉건적인 요소를 공격하고 비판하는 데 있어 가장 무자비하고 효과적이었던 사람이 루쉰이었다. 단순히 남만 비판한 게 아니었다. 철저한 사회비판 의식에 비춰 자기의 문제점, 자기의 부족한 점이나 오염된 점을 스스로 비판할 수 있는 안목과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일종의 전투정신으로 끊임없이 뭔가를 추구했지 안일하게 살지 않았다. 그가 살았던 시대 자체가 안일하게 살 수 없는 시대이기도 했다. 군벌의 파시즘 독재, 외국의 침략, 이런 일들이 그가 생존했던 내내 계속 됐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시대와 불화하면서 계속해서 자기를 끊임없이 격려해가면서 전투정신을 발휘해가며 살았던 거다.”

그런 루쉰이지만 언제나 한결 같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이번 명가 정선집에 실린 ‘횃불이여, 영원하라’는 글은 100년에 걸친 중국의 루쉰 연구 역사를 회고한 글인데, 학문적 평가에 있어서 부침이 보인다. 그리고 그런 변화의 배경에는 정치적인 요소가 작용하는 것 같은데.

“80, 90년대까지는 루쉰이 인문학의 핵심, 중심 중에 중심이었는데 21세기 들어오면서 중국 당국의 중시도가 떨어지는 것 같다. 정치적 활용가치가 별로 없어졌다고 보기 때문인 것 같다. 활용가치가 높다고 여겼을 때는 최고 지도자였던 장쩌민도 나서고 후진타오도 나서서 루쉰정신을 기렸다. 그런데 지금은 정치지도자들이 하는 많은 강연 중에 루쉰을 언급하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뭔가 루쉰의 진짜 알맹이인 비판정신은 별로 거론하지 않고 그저 중국의 주요 소프트파워의 하나로 루쉰을 언급한다는 느낌이다.”

권위주의로 흐르는 현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면이 있을 것 같은데, 그러면서도 루쉰을 버리지는 못하는 것 같다.

“중국의 지금과 같은 국내 정치 상황에서 루쉰이 부각될 공간은 별로 없어 보인다. 과거 루쉰은 1등 성인 반열이었다. 마오쩌둥이 그렇게 했다. 옛중국의 성인이 공자라면, 신중국의 성인은 루쉰이다, 이런 평가가 30년대에 이미 이뤄졌고, 40년대에는 루쉰이 위대한 문학가이자 사상가, 혁명가라고 했다. 그로부터 70, 80년이 흘렀지만 그 권위를 당장 어떻게 하기는 어려우니 그냥 놔두는 거라고 할 수도 있다. 중국 학계에서 80년대는 루학이 오히려 강화된 시기였다. 과거 문화대혁명 시기, 고칠 건 빨리 고치자는 정치 논리에 루쉰을 이용한 데서 벗어나 루쉰의 본래 모습을 실사구시로 연구하자는 풍조가 생겨나면서다. 민간에서 이뤄진 일이지 관방이 도와준 게 아니었다. 2000년대 들어 관방에서는 오히려 루쉰이 그 봉건성을 비판했던 전통문화를 중국의 주류적 가치로 급부상시켰다. 전통문화의 대표로 공자를 소환하여 세계적으로 공자 학원을 전파시켰다.”

루쉰이 공자에 비판적이었나.

“공자가 자신이 믿는 이상을 안 될 줄 알면서도 끊임 없이 추구했던 것은 루쉰과 통하는 부분이다. 루쉰은 공자의 그런 측면에 감탄하기도 했다. 하지만 봉건 세력이 자기들 필요에 따라 공자를 통치에 활용하는 모습에는 칼날처럼 비판적이었다. 특히 20, 30년대 군벌들의 공자 이용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이었다.”

중국 학계나 일반 독자들 사이에서도 루쉰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것 아닌가.

“이번 명가 정선집 가운데 [중국은 루쉰이 필요하다]라는 책이 있는데, 중국은 더 이상 루쉰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니까 이런 책이 나오는 거다. 중국의 개혁 개방 이후 루쉰에 비판적인 목소리가 커졌는데, 대표작 ‘아큐정전’이나 잡문 등을 통해 루쉰이 중국인들의 정신승리법이나 노예근성, 우매한 측면, 권력자에 대해 맨날 저자세로 숙이는 민족성 같은 것들을 지나치게 추하게 표현해냈다는 거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보면 민족주의에 역행하는 효과를 발휘했는데, 지금 중국은 민족 문화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때가 됐고 국력도 커진 만큼 루쉰 당대에는 필요한 자극을 주기 위해 극단적인 얘기를 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 시대에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역사적으로 루쉰을 이해하자, 이런 생각들이다. 루쉰 같은 사람들이 열정을 갖고 투쟁을 했기 때문에 오늘날 중국이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으니 그런 열정은 평가를 하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루쉰을 무작정 찬미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무작정 비판하는 것은 오히려 루쉰보다 못한 게 되니 우리는 루쉰을 넘어서자, 오늘날 필요한 것을 루쉰에게서 가져와야지 루쉰을 절대화해서는 안 된다, 이런 목소리도 있다.”

리영희 선생 영향으로 한국에서도 루쉰 연구 열기


▎ 사진:신인섭 기자
얼핏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데, 이번 정선집의 주장들은 그와는 다른가.

“그렇게 볼 사람은 봐라, 그러나 우리가 볼 때는 루쉰 본래의 모습이 필요하다, 이런 입장들이다. 흥미로운 점은 인터넷에 익숙한 중국의 젊은 세대 가운데 루쉰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그가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것이다. 작년부터 올해에 걸쳐 중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터넷 강의를 할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 당신들에게 루쉰이 필요하지 않다면 우리가 가져가겠다 그러면 다들 죽을려고 한다.”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에서도 루쉰 수용의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나.

“한국에서는 80년대 후반 이후 리영희 선생의 영향이 굉장히 컸다. 민주화 운동 시기, 루쉰의 잡문들을 활용한 긴장감 넘치는 글을 써서 시대를 일깨우는 역할을 많이 하셨다. 중문학계에서 아무리 루쉰이 중요하다고 떠들어봤자 사회적 울림으로 연결되기 어렵잖나. 그야말로 몸으로 때워가며 당대에 맞섰던 분이 리영희 선생인데, 그런 분이 루쉰은 사실상 자기 스승이라고 하고, 자신이 수십 년간 한국사회 민주화에 기여한 바가 있다면 루쉰의 목소리를 전달한 것일 뿐이라는 얘기를 하니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학계의 루쉰 연구 열기도 덩달아 뜨거워졌다.”

일본에서는.

“도쿄대 중문과는 루쉰 연구자가 중심을 잡고 맥을 잇는 전통이 있을 정도다. 루쉰 연구를 자기 인생 명제로 생각하는 학문적 전통은 다케우치 요시미(竹内好·1910~77)로부터 시작됐다고 보는데, 다케우치는 중문학계뿐 아니라 일본 지식인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한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이 루쉰 연구를 리드해 나갔다. 그의 학문 세계는 복잡한데, 일본 제국주의가 중국을 침략한 역사를 반성하는 차원에서 루쉰을 끌어다 쓴 것 아닌가 생각한다.”

인생 성찰에서 나오는 깨달음이나 감정을 생생하게 넣어

루쉰 작품 얘기를 해보자. 대표작인 ‘아큐정전’이나 ‘광인일기’ 같은 작품은 지금 읽어도 여전히 현대적인데.

“루쉰은 사마천의 [사기]를 무척 높게 평가했다. 궁형을 당하고도 당시 왕조 체제의 불합리를 겨냥했는데, 정통적인 방법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억울한 일을 당한 인물들과 사건에 주목해 그들 안에 자기 감정을 투입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글을 썼다. 루쉰이 그런 측면에 상당히 공감한 것 같다. 객관적으로만 글을 쓰면 감흥을 전달하기 어려운데, 현실의 민감한 문제를 다룰 때도 자기의 인생 성찰에서 나오는 깨달음이나 감정을 생생하게 넣어서 글을 쓰다 보니 사람들에게 강한 울림을 주는 것 같다.”

중국 현대문학 작가들의 소설을 보면 당국의 검열 경계선상에서 아슬아슬하게 사회비판을 시도한다는 느낌을 받곤 하는데, 그런 특성은 역시 루쉰의 영향인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모옌, 명작가 위화와 옌롄커를 포함해 루쉰의 영향을 받지 않은 중국 작가는 거의 없다고 본다.”

결국 당대의 부조리를 아무런 사심 없이 볼 수 있었다는 게 루쉰의 장점 아닌가.

“핵심적으로 말하면 그렇다. 시선이 맑고 투명하다고 해도 사회 부조리가 보이는 사람 있고 안 보이는 사람 있을 텐데, 루쉰 이 양반은 척 보면 사태의 깊은 본질까지 딱 잡아낼 수 있었던 거다.”

루쉰의 세계를 맛볼 수 있는 작품을 추천한다면.

“대표작 단편들이 들어가 있는 소설집 [납함(呐喊)], 문학적 모더니티가 돋보이는 산문시집 [야초], 빼어난 잡문을 골라 편집한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를 꼽고 싶다.”

장편소설은 안 썼나.

“안 썼다. 당대 상황에 대해 순발력 있는 칼럼 글들을 많이 쓰다 보니 장편을 쓸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일반인들에게는 어렵겠지만 이번 정선집 가운데 그래도 의미 있는 책을 꼽는다면.

“10권 모두 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 그래도 고르라면 우선적으로 [중국은 루쉰이 필요하다] [루쉰을 멀리하면 용렬해진다] [루쉰과 현대 중국] 이렇게 세 권 정도 들 수 있겠다. 출간 예정인 [살아있는 루쉰]도 추천할만 하다.”

※ 신준봉 문화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 1993년 중앙일보에 입사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신문사에서 10년 가까이 문학담당 기자로 일하며 본격적으로 문학과 인연을 맺었다. 상식의 눈에는 괴짜인 문인들, 그들이 생산한 영롱한 것들을 초롱초롱한 독자들에게 중개하는 일, 제도로서 문학의 생로병사에 관심이 많다.

/images/sph164x220.jpg
202109호 (2021.08.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