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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지주사 대표, 사내이사, 미등기임원은 법망 피하는 꼼수? 

1000대 기업 중 80곳, 오너 경영자가 미등기임원으로 활동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연이은 중대재해에도 동국제강 오너家 처벌 가능성은 낮아”
정몽규 회장은 HDC현대산업개발 대신 지주사 대표직 지켜


▎정몽규 회장이 지난 1월 17일 HDC현대산업개발 용산 사옥 대회의실에서 광주 아파트 외벽 붕괴 사고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그는 HDC현대산업개발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HDC㈜의 회장직은 유지하고 있다. / 사진:장진영 기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깃털(전문경영인)만 처벌을 받는 사례가 나올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몸통 격인 일부 오너 경영자 입장에서는 처벌을 피할 방법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CXO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그 유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오너가 중대재해 발생 가능성이 낮은 지주회사 등의 대표이사직을 유지하되 사업회사 대표나 임원에서는 물러나는 경우다. 둘째, 등기임원직을 맡되 대표이사가 아닌 사내이사만 유지하면서 법적 책임 1순위를 피하는 식이다. 셋째, 미등기임원으로 활동하면서 경영 전반에 관여하고 보수도 고액이지만 법적 책임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형태다.

이 중 오너들이 가장 선호하는 꼼수는 셋째로 보인다. 미등기임원으로 경영 활동에 관여하면서 기업 내 최고 직위인 대표이사보다 많은 보수를 챙겨가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등기임원의 권한과 혜택은 누리면서도 중대재해 등 여러 법적 책임을 덜 진다는 점에서 일석삼조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번 조사에서 1000대 기업 중 오너가 미등기임원으로 등재된 곳은 80군데였다. 80개 기업 중 33곳에서는 오너가 회장, 부회장, 명예회장 등으로 여전히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가장 많은 보수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들 기업에서 30억원 이상의 고액 연봉을 받는 오너만 7명이나 됐다. 최고액 연봉자는 조동혁 한솔케미칼 회장이다. 2021년 사업보고서 공시 자료에 따르면 조 회장은 지난해 이 회사에서 60억3600만원을 받았다. 이는 전문경영인 박원환 대표가 받은 29억1100만원보다 배 이상 많은 액수다. 미등기임원인 조 회장과 전문 경영인 간 보수가 30억원 넘는 차이를 보였다.

CSO(최고안전책임자), 오너 처벌 막는 방패막이 되나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도 지난해 보수로 57억2500만원을 챙겼다. 전문경영인 김연극 대표는 8억원 정도를 받았다. 장 회장은 전문경영인보다 무려 7배 이상 많이 받아간 셈이다. 재계에서 동국제강은 최근 8년간 노동자 5명이 사망해 중대재해 처벌 대상 요주의 기업으로 꼽힌다. 지난해 2월 부산공장에서 50대 노동자가 철강 코일에 끼여 사망했고, 지난 3월에는 포항공장에서 천장 크레인을 수리하던 30대 하청업체 노동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문제는 미등기임원인 장 회장은 물론 그의 동생인 장세욱 대표이사 부회장도 법적 책임을 질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장 부회장은 지난해 연봉 49억원을 수령했다. 이 회사의 최고안전책임자(CSO)는 최고운영책임자(COO)를 겸직하고 있는 김연극 대표이사 사장이다. 장 부회장을 대신해 CSO가 처벌대상 우선 순위자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조사를 총괄한 오일선 한국CXO연구소장은 “자칫하면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해 오너 경영자는 빠져나오고 전문경영인만 처벌받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오너 일가와 전문경영인이 함께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타 기업에도 해당할 수 있는 사례여서 주목을 끈다. CSO 제도가 자칫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오너 일가의 처벌을 막는 방패막이로 전락할 수도 있는 셈이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최근 일어난 사고와 관련해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며 “사고의 책임이나 귀책 여부 등을 저희가 결정할 수 없는 사안인 만큼 참담한 심정으로 수사에 최대한 협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김만수 동아타이어 회장(34억9000만원) ▷박영우 대유에이텍 회장(33억6700만원) ▷김유진 휴니드테크놀러지스 회장(32억4600만원) ▷김승연 한화건설 회장(30억100만원) 등도 지난해 각 회사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은 미등기 오너 회장으로 확인됐다.

정몽규 HDC그룹 회장은 중대재해 발생 가능성이 높은 사업회사 대신 지주사 대표이사직만 유지한 경우로 분류된다. 정 회장은 현장 노동자 6명이 숨지고 1명이 다친 광주 화정아이파크 건설 현장 붕괴 사고 이후 HDC현대산업개발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사고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전인 지난 1월 11일 발생했다. 다만 정 회장이 HDC현대산업개발의 미등기임원이었던 만큼 그의 회장 퇴진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미등기 회장직까지 내려놓으면서 오히려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만 강해 보인다는 시각이다. 정 회장은 지난해 HDC현대산업개발에서 연봉으로 15억6200만원을 받아갔다. 같은 기간 이 회사 전문경영인 2명의 보수는 5억원이 채 안 됐다. 정 회장은 HDC현대산업개발에서만 전문경영인보다 최소 3배 넘는 연봉을 챙겨간 셈이다. 그는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HDC㈜의 대표이사 회장직은 유지하고 있다. 향후 추가 중대재해 발생 가능성이 있는 사업회사에서는 손을 완전히 떼는 대신 지주사의 수장으로서 그룹을 계속 지배하려는 심산으로 보인다. HDC그룹 관계자는 “정몽규 회장은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다”며 “지주사 회장직을 유지하고 있는 것 역시 대주주로서 소임 차원의 결정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정 회장처럼 지난해 10억원 이상 고액 연봉을 받은 미등기 오너는 ▷김상범 이수화학 회장(19억1500만원) ▷조수익 삼현철강 회장(17억6700만원) ▷이화일 조선내화 명예회장(16억7300만원) ▷김근수 한국내화 회장(16억8000만원) ▷김상범 이수페타시스 회장(15억9200만원) ▷허경수 코스모신소재 회장(15억원) ▷백정호 동성화인텍 회장(13억8900만원) ▷허경수 코스모화학 회장(13억8000만원) ▷최성원 동양고속 회장(12억8400만원) ▷박영우 대유에이피 회장(12억4600만원) ▷박영우 위니아 회장(12억원) ▷윤세영 태영건설 창업회장(11억7000만원) ▷이해욱 DL이앤씨 회장(10억7500만원) ▷고우종 성창오토텍 회장(10억2300만원) 등이다. 이들 미등기임원의 연봉 또한 각 회사의 대표이사보다 많았다.

대표직 대신 사내이사만 유지한 사례도 182곳


▎삼표산업 양주사업장에서는 지난 1월 29일 채석장이 붕괴되면서 노동자 3명이 숨졌다. 사진은 서울 성동구 ㈜삼표 성수레미콘 공장. / 사진:연합뉴스
이수화학과 이수페타시스에서 미등기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김상범 회장은 지난해 두 회사에서 받은 보수만 해도 35억원 이상이었다. 코스모신소재와 코스모화학에서 최고 연봉을 기록한 허경수 회장은 작년 한 해 보수가 28억원이 넘었다. 지난해 무림P&P와 무림페이퍼에서만 18억원 이상을 받은 이동욱 회장도 두 회사의 미등기임원이지만 급여는 가장 많았다.

이번 조사에서는 오너 경영자가 대표이사직을 따로 맡고 있진 않지만 등기임원으로 사내이사직만 유지하고 있는 사례도 1000곳 중 182군데로 나타났다. 상법상으로는 사내이사도 법적 책임이 일반 미등기임원보다는 무거운 편이다. 하지만 중대재해 처벌법으로 보면 사내이사는 대표이사보다 상대적으로 책임을 면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오너 경영자들이 향후 등기임원을 맡더라도 대표이사 대신 사내이사로 전환할 개연성이 높은 이유다.

삼표시멘트는 오너 경영자가 대표이사 대신 사내 이사직만 유지하고 있는 사례다. 정도원 회장과 그의 아들 정대현 사장이 등기 사내이사직을 맡고 있다. 삼표시멘트는 올 초 노동자 사망 사고가 발생해 사회적 이슈가 됐던 ‘삼표산업’과 같은 삼표그룹 계열사다. 삼표산업 양주사업장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틀 뒤인 지난 1월 29일 채석장이 붕괴되면서 노동자 3명이 사망했다. 삼표산업은 사업보고서를 따로 제출하지 않아 이번 조사에서 빠졌지만 지난해 매출 7060억원(별도 재무제표 기준)을 기록했다. 매출 규모로 봤을 때 삼표시멘트(5504억원) 보다도 덩치가 큰 회사다. 삼표산업의 최대주주는 지분 98.25%를 가진 ㈜삼표다. ㈜삼표는 정도원 회장이 지분 65.99%를 보유하고 있다. 법원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정 회장은 삼표산업에서는 등기 임원을 맡고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참고로 삼표그룹은 상장사인 삼표시멘트 1곳을 비롯해 삼표산업 등 비상장사 45곳 등 총 46개 계열사를 두고 있다. 그룹 지배회사의 정점에는 지주회사 격인 ㈜삼표가 자리 잡고 있다.


▎동국제강은 최근 8년간 노동자 5명이 사망해 중대재해 처벌 대상 요주의 기업으로 꼽힌다. 동국제강 당진공장에서 후판이 생산되고 있다. / 사진:동국제강
문제는 삼표산업 사망 사고로 지난 2월 9일 이 회사의 전문경영인 이종신 대표이사만 검찰에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는 점이다. 이는 향후 삼표시멘트에서 삼표산업과 비슷한 수준의 중대재해가 발생하더라도 오너보다는 전문경영인이 처벌 대상 1순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삼표시멘트 관계자는 “계열사라고 해도 엄연히 별도의 법인인 만큼 일어나지도 않은 상황을 가정해 얘기하기는 어렵다”며 “중대재해의 처벌 대상이 오너인지 전문경영인인지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수사기관의 몫”이라고 말했다.

대검찰청은 최근 ‘중대재해처벌법 벌칙 해설’에서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는 곳에서 사망 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재벌 총수도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실제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대표이사를 맡지 않고 있는 오너 경영자가 처벌을 받기까지는 상당한 입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중대재해 발생 가능성이 높은 기업에서는 오너 경영자들이 대표이사가 아닌 사내이사 수준에서 경영에 관여하는 사례가 점차 증가할 것으로 점쳐지는 이유다.

한편 이번 조사 대상 1000대 기업 중에선 삼라마이다스(SM)그룹 총수인 우오현 회장이 경남기업, 대한해운, 티케이케미칼, 우방, 남선알미늄, 대한상선 등 6개 계열사에서 비상근 사내이사직을 맡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장은 “각 회사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더라도 그룹 총수인 우 회장은 대표이사가 아닌 만큼 우선 처벌 대상자에서 빠질 수 있다는 얘기”라고 분석했다.

-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choi.eunseok@joongang.co.kr

202205호 (2022.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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