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심층취재

Home>월간중앙>특종.심층취재

신년특별기획시리즈 

[한국 시민사회운동의 새로운 미래는 있는가(최종회)] 시민성 갖춘 ‘풀뿌리 지구시민’ 길러야 

개인의 시대에서 ‘시민성’ 갖기 어려워, ‘공론장 참여’가 해법
‘살아있는 실험실’ 가미야마 지역 재생 프로젝트는 좋은 모델


▎‘2022 가미야마 예술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마친 참석자들의 모습. 이곳 출신인 오미나미 신야 전 그린밸리 대표는 1999년부터 이 프로그램을 시작해 일본의 전형적인 농촌 소도시였던 가미야마를 활기가 넘치는 도시로 바꿨다.
지금까지 한국 시민사회운동 쇠락 현상의 원인을 크게 운동성의 상실과 MZ세대의 외면을 중심으로 진단했다. 이어 처방으로 보조금 딜레마를 벗어날 수 있는 선순환적 자원동원 메커니즘을 새롭게 만드는 것, 그리고 디지털 플랫폼으로 모든 것이 수렴하는 정보 체제(Information Regime)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어떻게 아래로부터 감시하고 대응할 것인가를 도전과제로 제시했다. 이제 어떻게 시민성을 갖춘 풀뿌리 지구시민을 한국 시민사회 생태계에서 길러낼지를 제안하는 것으로 이번 기획 시리즈를 마치려고 한다.

시민의 시대는 저물었고, 개인의 시대가 왔다. 모든 것을 개인 스스로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니 자신의 지식·경제력·자원동원 능력만을 바라보게 된다. 저자들이 몇 년 전 집필한 책 제목은 [주민과 시민사이]였다. 이 책을 통해 일정 경계 안에 머물면서 주민으로 사는 것에 만족하며 그 경계(지리적·인식적·활동적 측면) 안에 안주하려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근래에 그 주민과 시민 ‘사이’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현실은 인권사회 아닌 생존을 위한 이익사회


▎일본 가미야마 지역 재생 프로젝트는 미국 스탠퍼드 대학 출신의 오미나미 신야 전 그린밸리 대표의 애향심에서 출발했다. / 사진:[in Kamiyama] 홈페이지 캡처
이보다 더 심각한 사실은 주민과 개인 ‘사이’가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웃하는 주민은 물론 심지어 가족 간의 사이도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초 국적화된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경쟁 속에서 이제 개인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실이 개인을 압박하고 있다. 디지털 혁명과 인터넷의 발전으로 개인은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연결할 수 있게 됐지만, 그 연결은 개인 간의 영혼 없는 연결이며 호혜와 협력의 연결망이 아닌, 디지털 플랫폼 위에서 정보를 서로 퍼 나르는 소비자에 불과하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어떤 것이 옳고 그른가를 개인 스스로 판단하지만, 그것은 보이지 않는 알고리즘 지배 속에서 개별화된 정보를 통해 내리는 판단과 선택에 불과하다. 개인은 이런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최대 화두는 인구절벽이다. 합계출산율 0.78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초저출산율을 보이는 한국 사회에 미래는 없다고 정부나 미디어에서 경고성 공익광고를 쏟아내고 있다. 최근의 한 여론조사를 통해 결혼을 기피하는, 혹은 결혼해서도 아이를 낳는 것을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경력 개발과 사회적 성취에 아이가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그들을 단순히 이기적인 세대라고 비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도 아이를 낳으면 자신의 소득 40%를 양육과 교육에 투자할 것이라고 답하기 때문이다.

왜 젊은 세대는 중산층만이 결혼하고 출산할 수 있다고 생각할까? 시민성을 갖춘 시민은 사라지고 완전히 개인으로 돌봄과 교육의 문제를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을 기피하는 젊은 여성을 자신밖에 모른다고 비난할 수 없다. 그들이 아이를 싫어해서 결혼·출산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를 제대로 기르고 책임질 자신감이 부족하고 불안하기 때문에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를 제대로 기르고 책임진다는 것의 기준을 어디에 맞춰야 하는가? 왜 한국 시민사회는 이 부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것인가? 누가 최소한의 교육 기준을 만들었는가? 서로 모방하고 따르는 이 기준이 심각하게 왜곡돼 있다면, 이것에 대해 왜 한국 시민사회는 도전하고 새로운 대안을 위해 연대하지 않는가?

개인의 시대에서는 이러한 도전과 저항이 불가능하다. 모두의 인권이 함께 존중되는 인권사회가 아닌 자신의 생존을 위한 이익사회로 전락한 상황이다. 이런 맥락에서 개인이 감당할 수 없기에 결혼·출산을 포기하는 것이다. 인구절벽은 결코 정부의 정책 개입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개인의 시대에서는 저출산, 인구절벽, 돌봄 문제에 대한 답을 국가에 요구하지만, 그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개인이 시민의 공간으로 나와야 할 매우 중대한 시점이다.

자녀 출산에 이렇듯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젊은 세대가 부모 돌봄에 대해서 그 이상의 뭔가를 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너무나도 순진한 생각이다. 한국 사회에서 돌봄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시민성을 갖춘 시민의 공동 과제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가가 한정된 재원에서 돌봄 문제를 국가 정책으로 해결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자녀에 대해 아낌없이 투자할 의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지역사회 공동의 문제를 마주한 지역주민과 함께 협동과 연대의 방식으로 해결하지 않는가? 신자유주의 세계화 아래서 적자생존의 논리로 인해 너무 빨리 개인의 시대로 내몰리면서 과거의 공동체 경험이 스러지고 지역주민과의 만남과 협동이 급속히 사라졌다. 당위적 차원에서 정답을 제시하면서 이 목표를 위해 모두가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과거의 시민사회운동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많은 지역공동체, 마을기업, 사회적 경제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덜컹거리고 실패를 거듭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회자본, 관계자본, 신뢰자본을 쌓기 위해서는 시민성을 갖춘 시민이 동시에 형성돼야 한다. 한국시민사회 생태계는 이런 사람에 대한 관심보다는 사업 성과에만 관심을 가졌다. 거버넌스 사업도 당위적으로만 추진됐다. 봉사활동을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스펙 쌓기와 안정적인 직장을 갖기 위한 도구로만 인식하는 개인은 결코 시민성을 갖춘 시민으로 자라지 않는다.

한국 시민사회 생태계는 사업 성과에만 관심


▎일본 가미야마에 사는 아이들이 저녁에 인형극을 보고 있다. / 사진:[in Kamiyama] 홈페이지 캡처
평생 주기적인 관점에서 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시민참여의 기회를 끊임없이 마련해야 한다. 그러한 참여과정 속에서 그들은 대화하고 고민하면서 자신의 가치관을 바꾸게 된다. 이러한 시민성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것은 억지로 이뤄지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시민교육이 중요하며 그 방식도 일방적인 지식과 정보 전달로는 부족하다. 정부 지원으로 시민사회 생태계가 저절로 안정화될 수 없으며, 기업이 ‘사회적 가치’를 품은 서비스로 우리의 필요를 채워줄 것이라고 기대해서도 안 된다. 그들을 다시금 다양한 온·오프라인 공간으로 불러내 참여하도록 시민사회운동이 나서야 한다.

새로운 정보 체제에 사는 개인들은 자유롭게 정보를 공유하면서 스스로 디지털 정보 기술을 관리한다고 착각한다. 보이지 않는 알고리즘에 의해 유인·관리되고 있음을 독해하지 못한다. 그 결과 쉽게 연결된 우리는 더 잘 관리되고 감시받으며 디지털 플랫폼으로 깊숙이 빨려 들어간다. 문제는 디지털 플랫폼에서 시민의 저항이 결집하기보다는 개인의 선호와 혐오라는 반응으로 축소되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은 그저 ‘좋아요’ 혹은 ‘싫어요’를 누르는 이른바 ‘클릭운동(Clicktivism)’에 머물거나 나누고 싶은 내용을 게시물로 올리는 것에 만족한다. 이런 온라인 활동은 비판적 독해와 대안을 마련하는 데 한계가 있다. 서로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나누고 축적하기보다는 자극적인 사진과 짧은 동영상 이미지로 남의 관심만 끌려고 한다. 디지털 공간은 지역공동체의 삶 구석구석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그저 현상의 문제, 즉 이미지로만 도배된다. 이런 경우 시민들의 공론장(Public Sphere)이 형성되기 어렵다.

비록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의 눈부신 발전으로 삶이 편리해졌지만, 시민성을 갖춘 시민이 성장하는 데는 오히려 부정적 효과가 크다. AI의 도움으로 방대한 내용의 정보를 빠르고 손쉽게 얻을 수 있는 환경 때문에 요즘 소셜미디어 공간에서는 도무지 타인 존중과 경청의 자세를 찾아볼 수 없다. 타자 인정과 존중의 자세 위에 나선 대화와 소통 능력은 시민성의 기본 자질이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은 민주주의의 성숙은 허상에 불과하다. 한국 시민사회운동은 국가 혹은 기업, 정당을 싸잡아 불통의 이익집단으로 평가하곤 한다. 그러한 이익집단에 편승해 자신의 이해만 추구하는 개인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이제 한국 시민사회운동은 타자를 존중하고 대화하려는 시민의 재구성을 시민사회운동의 근본적인 과제로 설정해야 한다. 시민성을 갖춘 시민이 형성된다면, 이들이 국가·정당·기업에 들어가 협소한 집단이익에 반하는 저항 행동을 전개하도록 그들을 끊임없이 독려하고 소통해야 한다. 그들을 공론의 장으로 나오게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앞으로 해야 할 시민교육의 핵심과제다.

‘시민성을 갖춘 시민을 위한 교육’ 필요


▎서울시 노원구가 서울시, SH공사, KCC건설과 손잡고 2013년부터 국토교통부 공모사업으로 추진한 에너지 제로 주택.
안타깝게도 새로운 정보 체제에서 우리는 모두가 동일한 정보와 사실을 접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혹은 집단마다 맞춤형 정보를 받게 된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알고리즘에 의한 것이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과 듣고 싶은 것만을 수동적으로 받게 된다. 각 개인에게 맞춤화된 정보에 기반을 두고 소통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소통은 파편화·분절화되며 사회 안에 집합적 범주에 따른 단절을 가져온다. 공론장의 위기이자 위협이다.

‘시민성을 갖춘 시민을 위한 교육’은 이러한 알고리즘 지배에 의한 정보 파편화·분절화·개인화를 넘어서는 것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데이터 사회’에서의 정보는 파편화·맞춤화된 정보라는 것을 직시하고, 정보 주체의 시민으로 위기의식을 갖고 공론장으로 나가야 한다. 개인적 혹은 집합적 경계 너머에 위치한 타자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이것을 막는 정보 체제는 우리를 각자의 확증편향 아래 분절·분리·단절시켜 통합을 저해한다.

개인의 시대에 선거는 이런 맞춤화된 정보전달 방식에 의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시민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공론장은 사라지고 공명 없는 자신의 목소리, 혹은 준거집단의 선전과 선동만 난무하게 된다. 더 심각한 것은 공론장을 지키려는 시민의 노력에 AI 로봇이 대적할 것이라는 점이다. 시민은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와 정체성에 부합하는 정보만을 일방적으로 확산하는 AI 로봇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공론장에서 타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민교육이 평생 주기적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것은 정보 체제에서 AI 로봇에게 지배당하지 않기 위한 시민사회 저항운동의 첫출발이 될 것이다.

에너지 전환에 이은 탄소 중립의 선도적 사업으로 잘 알려진 노원구 ‘에너지 제로 주택’을 오랜만에 찾았다. 이 사업은 자치단체가 에너지 자립과 전환이라는 화두에 선도적으로 대응한 유의미한 실험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많은 지자체와 건설사, 그리고 공기업이 에너지 제로 주택 실험을 배워 벤치마킹하는 일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전체 120세대(117세대 임대주택+3세대 커뮤니티 활동가) 중에 90%가 신혼 세대, 10%가 노년 세대로 구성돼 있다. 안타깝게도 젊은 세대 가정은 바쁜 직장 일로 커뮤니티 활동을 조직하는 데 이르지 못하고 있다. 에너지 제로 주택 입주자는 무조건 협동조합에 가입해야 하지만, 공동체 활동에 대해서는 아직도 참여가 저조하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람들이 네트워크를 공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에너지 제로 주택 입주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에너지 전환이라는 가치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지 충분한 고려가 이뤄지지 않은 데 있다. 에너지 제로 주택은 재생에너지를 통한 에너지 전환과 자립의 가치에 동의하고 이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공동체 실험이다. 지역 주민들이 탄소 중립, 기후위기, 에너지 전환을 위한 아래로부터의 자발적 활동을 통해 이른바 풀뿌리 지구시민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짧은 시간 안에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협동적 경험이 전무한 젊은 세대를 일정 공간 안에 결합했다고 저절로 시민으로 성장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기후 정의 가치를 먹고 사는 지구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로드맵과 미래 비전을 마련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공동 이슈를 토론하며 어젠다를 만들고 새로운 사업을 궁리하는 공론장을 활성화해야 한다.

창조적 혁신은 풀뿌리 지구시민에서 시작


▎스마트 시티에 인공지능(AI) 기술을 사용하는 국가들. AI의 눈부신 발전으로 삶이 편리해졌지만, 알고리즘 지배로 시민성을 갖춘 시민이 성장하기 힘들어졌다는 주장도 있다. / 사진:AU Global Surveillance Index, Carnegie, 2019
지난 10여 년 동안 지역사회를 발전시키기 위해 지방정부, 기업, 그리고 시민사회 모두 헌신적으로 노력했음에도 성공적인 모범사례를 찾기 어렵다. 왜 실패했을까? 지역 재생, 마을공동체, 사회적 경제 모두 좋은 주제들이며, 중요한 사회적 가치다. 과거의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한 활동가들이 당위적인 방식과 열정에만 기초해 접근한 것은 아닌가? 시민사회가 정부와의 협치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그것이 지역의 변화·혁신을 가져오지 못한 원인을 살펴봐야 한다. 정치적 목적으로 동원된 정책, 토건세력의 무책임한 투기적 개발, 지역사회 발전전략과 비전에 대한 풀뿌리 주민 공론장의 부재 등으로 갈등이 주기적으로 반복됐기 때문이다. 일례로 햇빛발전소, 풍력발전소를 비롯한 다양한 재생에너지 사업은 정부와 기업 주도로 진행됐거나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 사업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주민들이 얼마나 에너지 전환을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지를 주목해야 한다.

‘에너지 전환과 경제적 가치의 충돌에서 전자를 선택하는 시민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에서부터 시민사회운동은 출발해야 한다. 노원구의 에너지 제로 주택 사업의 출발은 지방정부 주도였다. 에너지 전환이라는 매우 훌륭한 공간이 만들어졌지만, 에너지 전환의 가치를 구현하는 사람들은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다. 앞으로 에너지 전환을 위한 사업에 참여하는 풀뿌리 지역 주민 중에서 기후 정의를 위한 가치와 삶의 방식 변화가 보인다는 평가가 넘쳐나야 한다. 이러한 풀뿌리 시민 참여가 시민교육의 ‘살아있는 실험실(Living Lab)’이 되는 것이다. 이제는 풀뿌리 주민 중심으로 30년의 로드맵을 그려보자. 그들 스스로 다양한 협동적 실험을 제안하고 참여해 보는 것을 적극적으로 권장하자. 시민성은 이러한 풀뿌리 참여와 시민교육으로부터 자라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지역의 문제를 전 지구적 차원과 연결해 30년의 지역 살리기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일본의 가미야마(神山) 실험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일본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1시간 비행 후, 1시간의 버스 이동으로 도착하는 전형적인 일본 농촌 지역 소도시인 가미야마 지역은 성공적인 마을 재생 프로젝트로 한국에도 많이 소개됐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가미야마 마루고토 기술대학(Marugoto College of Technology)은 AI와 소프트웨어, UI/UX 디자인교육, 사회적 기업가 교육 등을 진행한다. 기술과 디자인, 사회적 기업이 합쳐진 지역특화대학 교육과정인 셈이다. 200명 학생(5단계 그룹별 40명), 21명 교수진, 50명의 외부 전문가 강사진을 구축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가미야마 타운 자체가 캠퍼스로 활용된다는 점이다. 지역 주민, 정부, 기업이 풀뿌리와 전 지구적 연계로 어떻게 미래지향적인 정책 대안을 만들어갈지 흥미진진한 실험이다.

한 사람의 애향심이 지역을 바꿨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는 사람들 사이의 네트워크 공유를 어렵게 만들었다.
사실 가미야마 지역 재생 프로젝트는 이곳 출신인 오미나미 신야(大南信也) 전 그린밸리(Green Valley) 대표의 애향심에서 출발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출신으로 1992년에 가미야마 국제교류협회를 만들어 1999년부터 가미야마 예술가 레지던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것이 2004년에 민간 비영리 단체(NPO) 그린밸리로 전환했다. 일본의 농촌 지역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서는 결국 사람들을 통해 지역을 창의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는 ‘창의적 인구 감소(Creative Depopulation)’ 개념으로 지속 가능한 지역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창의적 인구 감소는 인구 감소 경향을 막을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대신 적은 인구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젊은 청년을 지역으로 초대하고, 다양한 형태의 일(농촌 지역에서 예상할 수 없는 직업, 상점 등)을 할 기회와 공간을 제공했다. 청년들이 이곳에 와서 도시보다 더 풍성한 삶의 질을 영위할 수 있다면 결코 지방을 거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풀뿌리 지역과의 관계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사회적 기업 ‘가미야마 연결 주식회사’를 만들었다. 이것이 하나의 플랫폼으로서 다양한 글로벌 지향 기업을 지역으로 연결해주었고 17개 기업이 참여했다.

특히 우리는 풀뿌리 주민들의 협력과 동의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50년에 2만1000여 명의 인구가 2060년에는 1100명, 즉 약 5% 수준으로 감소할 것이라는 발표에 풀뿌리 주민은 절체절명의 상황임을 인식하게 됐다. 창조적 인구를 유인하기 위해 주민이 선택한 개방성, 톨레랑스(Tolerance·관용), 수평적 열린 체계는 매우 중요한 가치전환이었다. 이것을 추동한 것이 바로 지역 출신 애향심을 가진 NGO 활동가였다. 이 단체는 주민과 함께 현실을 공유하고, 그들의 미래를 함께 걱정하며 더불어 살기 위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협력하기로 한 것이다. 아마도 그린밸리 NPO가 가미야마 지역 주민에게 전 지구적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다면 풀뿌리 주민들의 관심을 이끌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이제 30년의 경험을 축적했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꿈꾸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위한 미래 교육과 일자리 창출이 새로운 도전과제였다. 이를 위해 준비한 것이 지역 대학 설립이고, 그 첫 실험으로 2023년 4월에 시작된 마루고토 기술대학은 가미야마 지역 재생의 새로운 ‘살아있는 실험실’이 될 것이다.

※ 임현진 - 서울대 명예교수이며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이다.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연구 저서로 [전환기 한국의 정치와 사회: 지식, 권력, 운동], [비교시각에서 본 박정희 발전모델: 라틴아메리카의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 칠레와 아시아의 한국] 등이 있다.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창립소장이며 경실련 공동대표를 지냈다.

※ 공석기 -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관심 분야는 정치사회학, 사회운동론, 시민사회론, 사회적경제 등이다. 주요 연구 저서로 [글로벌 NGOs: 세계정치의 와일드 카드], [뒤틀린 세계화: 한국의 대안 찾기] 등이 있다. 현재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경희대 공공대학원 겸임교수, 환경운동연합 국제협력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202305호 (2023.04.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