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심층취재

Home>월간중앙>특종.심층취재

[인턴이 간다] 순국선열 후손들 어떻게 살고 있나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란 말 이젠 없어져야” 

이상우 월간중앙 인턴기자
경제적 가난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후손들 다수
“보훈부, 사각지대 놓인 순국선열 후손에 관심 가져야”


▎순국선열 후손들의 권리 증진을 위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김시명 전 순국선열유족회 회장. 그는 “소외된 후손들이 너무 많다”며 정부의 관심을 촉구 했다. / 사진:이상우 인턴기자
"국가의 품격은 국가가 누구를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어제 국가보훈처가 국가보훈부로 승격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영웅들을 더 잘 살피고 예우할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제58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독립유공자와 호국영령에 대한 기억과 예우를 강조했다. 보훈처를 보훈부로 격상해 우리나라 영웅들에 대한 존중과 대우를 보다 체계적이고 확실하게 하겠다는 점을 시사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는 독립유공자와 호국영령 및 후손들의 현실을 반영한다. 폐지를 줍고 다니는 6·25전쟁 참전 유공자들의 사례는 익히 알려진 바다. 특히 순국선열 후손들의 궁핍한 현실은 영웅들이 아직 생존해 있을 때 필요한 지원과 예우를 다해야 하는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독립유공자는 크게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로 나뉜다. 순국선열은 독립운동가 중 광복을 위해 활동하다 목숨을 잃은 사람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유관순 열사, 윤봉길 의사가 순국선열이다. 독립운동을 했지만, 해방 당시까지 목숨을 잃지 않은 사람은 애국지사라고 불린다. 백범 김구 선생이 대표적이다.

애국지사는 해방 이후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 받으며 나름의 명예를 얻었다. 국가로부터 물질적인 지원도 받았다. 그래서 애국지사 후손들은 대개 삶의 기본 토대 위에서 큰 어려움 없이 성장한 것으로 여겨진다. 반면 조국 해방을 보지 못하고 이국에서, 감옥에서 눈을 감은 순국선열들의 후손은 어려서부터 피폐한 환경에 놓여 있어야 했다. “순국선열들만 국가를 위해 희생한 것이 아니라 그 후손들마저 희생당하고 있다”는 김시명 전 순국선열유족회장의 말처럼 망자(亡子)와 그 후손에게 주어진 건 명예로운 호칭뿐인 경우가 많다.

순국선열유족회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순국선열·애국지사 사업기금법’ 등에 의해 1965년 대일청구권자금으로 기금을 조성한 이래 2004년부터 10년간 집행된 기금 481억여원 중 96%인 467억 여원이 애국지사와 그 후손들에게 돌아갔다. 순국선열 후손들이 받은 건 고작 15억여원에 불과했다. 그들이 사회의 사각지대에서 궁핍의 대물림에 힘겨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탈북자한테도 잘해주는데… 서운함 느낄 때 많아”


5월 31일 저녁, 통인시장 인근 카페에서 만난 50대 초반의 김성철씨 얼굴에는 고단했을 삶을 보여주는 듯 깊은 주름이 패어 있었다. 이날도 오전까지 공사장에서 일을 하고 왔다고 했다. 그는 일송(一松) 김동삼(1878~1937) 선생의 증손자다. 구한말 한학자였던 일송은 사재를 털어 만주로 건너가 신흥무관학교의 전신인 신흥강습소를 설립해 무장 독립운동의 토대를 닦았다. 1918년에는 지린성에서 김좌진 등 38인의 독립선언서 발표에 참여하고 상해임시정부 조직에도 참여했다. 하지만 1931년 만주사변 때 하얼빈에서 붙잡혀 강제송환된 뒤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 서대문형무소에서 광복을 보지 못 한 채 순국했다.

일송이 모든 재산을 처분해 독립운동에 투신한 만큼 해방 후 그 후손의 삶이 궁핍한 건 당연지사. 김성철씨의 아버지는 생계를 잇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1962년에서야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돼 명예를 회복했지만, 그뿐이었다. 김성철씨는 “아버지께서도 경제적으로 고생만 하시다가 돌아가신 기억이 여전히 또렷하다”며 “저 역시도 집이 워낙 가난해 교육받을 형편이 안 됐고 나아가 제대로 된 직업을 얻을 수 없었다”고 했다.

김성철씨와 같은 상황에 처한 순국선열의 후손들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또 다른 순국선열의 후손인 김명우(가명)씨는 “순국선열의 후손인 건 언제나 자랑스럽다. 그러나 국가가 미울 때가 많다”고 했다. 김명우씨 역시 김성철씨와 마찬가지로 가난 때문에 고등교육을 받지 못해 막노동을 전전하며 살았다. 김명우씨의 조부는 청산리 전투에서 전사했고, 후에 순국선열에 추증됐다.

경제적 궁핍은 순국선열 후손들이 공통으로 꼽는 가장 큰 문제다. 대다수 순국선열이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 등 중국으로 이전하면서 국내의 모든 재산과 삶의 터전을 정리했기 때문에 후손들은 무일푼으로 해방을 맞이해야 했다. 순국선열 후손을 국가가 금전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한 건 1967년 관련 법이 제정된 이후다. 해방 후 20년 넘게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더구나 순국선열 유족에 대한 연금은 3대까지만 지급된다. 일송의 증손자인 김성철씨의 경우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의 연금마저 끊겼다. 그가 물려받은 거라곤 돈 안 되는 증조부의 훈장과 가난뿐이다.

그나마 연금을 받고 있는 김명우씨도 만족스럽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탈북자한테도 정착지원금이라며 2500만원을 주고 생활에 부족함 없도록 지원해준다는데, 유독 우리(순국선열 후손)만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독립유공자 유족 보상자 수만 비교하면 2017년 기준 순국선열 후손은 783명이고 애국지사 후손은 6706명입니다. 터무니없이 많은 차이를 보이죠.”

김시명 전 순국선열유족회 회장은 상기된 얼굴로 순국선열 후손에 대한 열악한 대우를 조목조목 짚었다. 그는‘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의 천편일률적인 적용이 열악한 대우의 근본 원인이라고 말했다. 법률에 따르면 보상금 수령 대상은 독립유공자와 배우자, 자녀(자부), 손자녀까지다. 애국지사의 경우 해방 후에도 생존해 일정한 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던 반면 해방 전에 순국한 순국선열은 당사자가 아닌 유족부터 보상이 이뤄졌다. 김 전 회장은 “순국선열의 평균 사망 연도는 1919년으로, 정작 당사자들이 정당한 예우와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자녀 세대에 이르러서야 받을 수 있었다”며 “사실상 가장 중요한 한 세대가 보상을 받지 못한 것이니 이를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희생과 공헌에 상응하는 예우와 지원 시급”


▎순국선열을 추모하는 ‘순국선열의 날’은 매년 11월17일이다. 사진은 박민식 보훈부 장관이 지난해 제83회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에서 독립유공자 포상을 수여하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나아가 그동안 정부의 지원이 애국지사 후손들에게만 치중됐다는 게 순국선열 후손들의 불만이다. 이들은 애국지사 후손들이 주축이 되어 조직한 광복회가 보훈처의 독립유공자 예우 정책에 깊이 관여했고, 이에 따라 순국선열 후손들은 등한시됐다고 주장한다. 광복회 정관에 따른 총회 구성원 비율을 보면, 순국선열 유족은 5.9명으로 정원(91명)의 6.5%에 불과한 데 반해, 애국지사와 그 후손 비율은 85.1명(93.5%)에 이른다. 순국선열 유족들이 “독립운동으로 3대가 망한 집안을 돕겠다며 문재인 정부 때 마련한 돈도 대부분 애국지사 후손들에게 돌아갔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다만 순국선열 후손들의 주장과 보훈부의 입장은 다소 차이가 있다. 김영훈 보훈부 사무관은 “보훈부는 훈격에 따라 보상금을 일괄 지급하고 있다. 특정 단체의 입김으로 특정 부류에만 유리하게 보상금을 적용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일축했다. 실제로 독립유공자 보상금은 훈격(건국훈·포장, 대통령 표창)에 따라 지급액을 달리하고 있다. 다만 김 사무관은 “법률상 독립유공자 본인이 유족보다 보상금이나 대우를 더 많이 받으므로 순국선열 후손 입장에선 당사자가 받지 못한 것을 두고 불만스러울 수 있는 점은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보훈처를 보훈부로 승격시키며 “순국선열을 포함한 유공자들이 희생과 공헌의 정도에 상응하는 예우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더 세심하게 보훈 정책을 펼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김태열 영남이공대 교수는 “정부의 공언이 공수표에 그치지 않으려면 유공자들의 후손에 대한 맞춤형 지원이 신속하면서도 정확하게 이뤄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나라에서 임대아파트라도 제공해주면 소원이 없겠어요.” 일송의 증손자 김성철씨의 말이다. 그는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해 고시원 단칸방에 산다. 나라의 무관심 아래 오늘도 하루 벌어 하루 몸 누일 곳을 전전하는 순국선열 후손들이 제법 많다고 김씨는 귀띔한다.

김씨의 소박한 바람을 실현해줄 답은 이미 윤 대통령의 말 속에 있다. “국가의 품격은 국가의 영웅을 어떻게 기억하고 대우하냐에 달려 있다.” 지난 현충일 윤 대통령이 비장한 표정으로 힘주어 한 말이다.

- 이상우 월간중앙 인턴기자 shinetosky@naver.com

202307호 (2023.06.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