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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의 일본 직설(直説), 요설(妖説) 그리고 곡설(曲説) I 새연재] ‘귀여움’에 대한 명상… ‘카와이 세계’로 본 일본 유전자 

글로벌 ‘서브 컬처’ 상징으로 변한 도쿄 아키하바라 

도쿄 ‘코끼리밥솥’ 성지에서 남녀노소 모두 교감하는 공간으로 재탄생
비결은 ‘카와이 캐릭터’…일본에만 있는 제품 구입하려는 외국인 몰려


▎슈퍼 마리오는 이탈리아 배관공을 모델로 한 캐릭터다. ‘J컬처 없는 J컬처’가 카와이 세계의 특징이다. / 사진:유민호
올해 일본을 방문하는 한국인이 600만 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대략 한국인 10명 중 1명이 일본에 다녀온다는 얘기다. 일본 방문 해외 관광객 1위도 한국인이라고 한다. 엔저(円低)가 ‘관광 붐’의 배경에 있다지만, 뿌린 만큼 거두는 것도 필요하다. 알고 느끼는 만큼 세계를 한층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한국에서 보는 일본은 아직 멀고 먼 존재다. 반일·친일과 같은 흑백 개념이 아닌, 일본에 대한 근본적 이해가 필요하다. 역사·민족·국가보다 문화가 글로벌 키워드 자리에 올라서 있다. 21세기 일본 대중문화를 이해하면 이웃 나라에 대한 이해의 폭도 깊고 넓어질 수 있다. [일본직설(日本直說)]의 저자 유민호 씨가 ‘일본 직설(直説), 요설(妖説) 그리고 곡설(曲説)’을 연재한다. 고대 로마 역사를 논하기 전 당대 계란 값부터 파악하라는 말이 있다. 21세기 일본문화의 각론을 통해 일본, 나아가 한국의 모습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편집자 주]

21세기 글로벌 단어로 정착된 최고 인기의 일본어는? 여러 가지 답이 있겠지만, ‘카와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것 같다. 일본 문화인류학계의 정설이지만, 일본어 ‘카와이(可愛い)’를 원형으로 하는 영어 ‘Kawaii’가 2001년 이래 최고 인기 글로벌 일본어다. 스시(Sushi: すし)는 20세기를 대표하는 글로벌 공용 일본어다. 카와이는 21세기 스시에 해당될 단어다. 스시를 모르는 사람이 없듯, 카와이란 말도 전 세계에서 통한다. 만약 카와이란 단어에 익숙하지 않거나 친밀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꼰대’ 범주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반일·친일 여부를 떠나 글로벌 차원의 무식꾼이나 아웃사이더다. 인터넷에 들어가 한글로 카와이나 영어 Kawaii를 쳐보자. 21세기 인류 컬처에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이 카와이 영역에 들어가 있다.

원래 21세기 글로벌 무대에서 통하는 카와이의 대상은 캐릭터·망가(漫画)·애니메이션 등장인물이나 물건 같은 것에 한정됐다. 귀엽고 예쁘고 앙증맞은 일본 캐릭터로, 키티켓이나 포케몬이 대표적이다. 가까이하는 것만으로도 모성애나 부성애를 자아내게 만드는 깜찍스러운 것들이 카와이 대상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카와이 영역이 점차 확산된다. 캐릭터와 사람은 물론 동물·패션·음식·도구, 심지어 자연이나 자연 현상도 카와이 영역에 포함된다. 귀여운 것만이 아닌, 불독이나 뱀처럼 못생기고 기묘한 동물도 카와이 대상이다. 인간의 감정이 밴 형용사로 수식될 전 세계 모든 것이 카와이 범주에 들어간다.

카와이는 영어 ‘Cute’로 번역될 형용사다. 명사와 달리 형용사는 해석 폭이나 대상이 넓다. 사람·캐릭터·물건·추상적 세계에 대한 카와이 의미도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사람을 대상으로 한 카와이의 의미를 이해한다면 다른 영역에서 해석도 가능해질 것이다. 일본에서 통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카와이의 일반적·일상적 의미를 풀어보자.

‘솔직하고 겸허하다. 항상 긍정적 세계관을 갖고 있다. 장식하지 않은 자연미를 지녔다. 사람에 맞춰 태도를 달리하지 않고, 모두를 동일하고 평등하게 대한다. 유머와 함께 애교가 넘치면서 항상 웃는다. 주변 공기를 읽는 능력이 탁월하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간다. 다른 사람의 공감을 얻으려고 노력한다.’

21세기 최고 인기 글로벌 일본어 ‘Kawaii’

카와이는 일본발 국제 공용어란 점에서, 대상과 근거도 철저히 일본 가치관에서 출발한다. 예를 들어 미국 캐릭터의 상징인 스누피는 카와이 영역에 들어가지 못한다. 왜 헬로 키티(Hello Kitty)는 되고, 스누피는 안 될까? 필자도 답을 내기 어렵다. 그러나 위에서 설명한 카와이 ‘사람’에 대한 감각이 있다면 왜 스누피가 카와이 대상 밖인지 간단히 이해할 수 있다. 카와이 세계는 반드시 일본·일본인·일본 물건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에서 카와이로 불리지 않을 경우 일본 밖에서는 카와이로 해석되기 어렵다. 카와이는 일률적으로 정해진 정의나 분기점이 없다. 일본 문화의 특징이지만, ‘모두에게 흐르는 공기’를 통해 만들어지는 무형의 합일점이 카와이 세계의 특징이다. ‘모두’는 일본인만이 아닌 외국인도 포함된다. 사실, 카와이 개념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매일 카와이로 불리는 것들을 가까이하면서 관심을 갖는다면 금방 파악해낼 수 있는 ‘단순한 세계’가 카와이 영역이다. 카와이는 사상이나 철학이 아닌 누구나 쉽게 접하고 이해할 ‘팝(Pop)세계’의 일부다. 미리 공부하거나 외울 필요도 없다. ‘쉽고 간단하다’는 사실은 카와이를 글로벌 인기 키워드로 만든 가장 큰 이유다.

‘당신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음악 뒤에 드리워진 마음(The Mind Behind the Music You Can’t Get Out of Your Head)’ 4월 20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실린 흥미로운 글이다. 4월 중순, 개봉 즉시 전 세계 흥행 1위로 올라선 3D 애니메이션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와 관련된 기사다. 한국에서도 1일 관람객 43만 명이라는 경이적 기록을 세운 영화로 화제가 됐다. 슈퍼 마리오는 2025년 탄생 40년을 맞는 닌텐도(任天堂) 비디오 게임의 주인공이다. 추정하건대, 50대 이상 한국인 가운데 슈퍼 마리오가 일본 캐릭터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모자에다 콧수염을 기른 이탈리아계 배관공이 슈퍼 마리오 캐릭터의 배경이다. 게임 속에서 공주를 구출하자는 것이 슈퍼 마리오 임무이자 사명이다. 일본적 분위기와 무관하다.

WSJ 기사는 글로벌 흥행에 성공한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의 원작인 비디오 게임, 게임에서 흘러나오는 8비트 디지털 음악이 포인트다. 슈퍼 마리오 배경음악 작곡가는 곤도 고지(近藤浩治)라는 일본인이다. 디지털 음악세계에서는 20세기 모차르트로 불리는 유명한 인물이다. 필자 귀에도 익었지만, 슈퍼 마리오 사운드는 카리브해 레게 풍(風) 리듬과 일본식 정서가 스며든 기묘한 음악이다. 한번만 들어도 기억할, 아니 꿈속에서도 들릴 것 같은 간단하면서도 중독성이 강한 리듬·박자·멜로디다. 청각이란 차원에서 카와이 개념을 이해할 최적의 본보기다. 놀랍게도 슈퍼 마리오 배경음악은 지난해 미국 의회가 공인한 ‘세기의 음악’ 중 하나다. 존 레넌의 ‘이매진(Imagine)’, 레드 제플린의 ‘천국으로 가는 계단’도 지난해 미국 의회가 선정한 세기의 음악이다.

세계인 모두를 대변하는 ‘J컬처’의 매력


▎에로는 카와이 특징이자 방향이다. ‘에로 카와이’를 통해 인간이 가진 원초적 본능을 자극한다. 어린이용 캐릭터도 예외가 아니다. / 사진:유민호
WSJ 기사를 자세히 읽어보면 카와이 문화가 왜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 잡았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이 앞세우는 K컬처와 비교하면서 장·단점을 비교해 볼 수 있다. 한국은 문화와 관련한 거의 모든 것이 K컬처라는 틀 속에서 해석된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앞세운 문화다. 인스턴트 라면 하나를 먹어도 ‘K라면’이다. 카와이 세계는 어떨까? 일본, 즉 J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한국과 달리 가능하면 J의 헤게모니를 빼는 데 집중한다. 극단적으로 말해 J컬처 흔적이 없을수록 더 높게 평가하는 식이다. ‘J컬처가 없는 J컬처’라고나 할까? 3D 영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를 둘러싼 상황을 이해한다면 J컬처 없는 J컬처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일단 할리우드 제작사 유니버설 픽처스 작품이다. 감독은 1980년생 미국인으로, 제작진 거의 대부분이 일본과 무관하다. 제작비가 1억 달러지만, 14억 달러 규모 흥행에 성공하는 과정에서 J컬처에 관한 얘기가 거의 없다. 일본 슈퍼 마리오 비디오 게임을 원작으로 한 것이지만, 자세히 보면 캐릭터 모습도 원형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할리우드가 일본 캐릭터를 바탕으로 제작한 ‘고질라(ゴジラ)’와 ‘철권 아톰(鉄拳 アトム)’에서도 느낄 수 있지만, 미국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뭔가 뚱뚱하고 강하며 무섭다는 느낌마저 든다. 미국판 고질라의 경우 원형에 비해 육체미 근육형 괴물로 진화한 조폭 같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고질라와 아톰은 카와이의 대상이다. 고질라는 무조건 사람을 공격하는 괴수가 아니다. 원폭의 피해자로, 자세히 보면 귀엽고 앙증맞은 부분이 있다. 아톰도 마찬가지다. 아톰은 몸 전체가 곡선으로 이뤄진 중성 로봇이다. 강력한 힘을 자랑하지만, 악당만 공격할 뿐 상대는 물론 스스로도 피를 흘리지 않는다. 반면 미국판 고질라·아톰·마리오를 보면 카와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비슷하지만 다르다. 그러나 문제될 것이 없다. 특정 국가나 특정 이념을 앞세우지 않은, 글로벌 모두의 얼굴이자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 J컬처의 특징이자 장점이기 때문이다.

카와이 세계는 소프트 파워라는 관점에서도 해석할 수 있다. 20세기 국제정치를 풀이한 하버드대 교수 조지프 나이의 소프트 파워 일본판이 카와이 세계다. 군사·경제와 같은 하드 파워가 아닌 음악·스포츠·상품 등을 통한 글로벌 영향력 강화가 소프트 파워의 개념이다. 21세기 카와이는 글로벌 영향력이란 점에서는 소프트 파워와 비슷하다. 다른 점은 헤게모니 여부다. NBA·코카콜라·스타벅스를 통한 미국의 글로벌 영향력 확산이 소프트 파워의 결론이자 핵심이다. 카와이 세계는 다르다. 앞서 살펴봤듯이 일본판이라고 하지만, 내용으로 들어가면 ‘결코’ 일본을 내세우지 않는다. 한국인 중에서도 헬로 키티가 일본 캐릭터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1975년 탄생한, 입도 없는 기묘한 무표정의 캐릭터 헬로 키티는 J컬처 없는 J컬처, 나아가 헤게모니 없는 소프트 파워의 상징물로 느껴진다.

헤게모니 없는 소프트 파워의 상징물

일본판 서브 컬처(Sub Culture)에 관한 열기는 카와이 세계가 글로벌 컬처 최정상 키워드에 오를 수 있는 근거이자 배경이다. 카와이는 일본 서브 컬처의 특징이자 원형이다. 크게 보면 ‘카와이=서브 컬처’로 볼 수 있다. 서브 컬처는 상위 문화(High Culture)의 대안이자 반발에 해당된다. 프랑스 미식 레스토랑에 비교될 일본 체인점 요시노야(吉野家) 밥집의 500엔짜리 B급 고기덮밥이 서브 컬처의 정수다. 당연하지만, 하나만 파고드는 ‘오타쿠(オタク) 문화’는 서브 컬처의 기반이자 원동력이다. 오타쿠라는 고정 팬을 통해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고, 다른 세계와 비교하는 과정에서 서브 컬처의 세계도 깊어지고 확장될 수 있다. 카와이는 그 같은 서브 컬처 세계를 형용사로 표현한 ‘느낌표’로 볼 수 있다.

카와이 세계, 나아가 서브 컬처와 오타쿠의 의미와 흔적, 더 나아가 영향과 방향을 이해할 최적의 공간은? 답은 도쿄 아키하바라(秋葉原)다. 50대 이상 장년 한국인이라면 전기밥솥·카메라·비디오 쇼핑센터로 기억할 공간이 아키하바라다. 21세기 아키하바라는 카와이 세계를 오감으로 느낄 최상·최고의 무대로 변했다. 전자제품 밀집상가로서만이 아닌, 아날로그와 디지털 양면의 카와이 세계를 실감·체험할 수 있는 글로벌 서브 컬처의 현장이 아키하바라다. 필자가 6월 초 일본에 도착한 즉시 아키하바라를 찾은 이유도 글로벌 컬처 트렌드 현장에 대한 궁금증에 있었다.

아키하바라역(駅)에 내리는 순간 눈에 들어온 것은 두 가지다. 엄청난 수의 외국인 관광객과 수많은 캐릭터 포스터가 펼쳐졌다. 외국인은 초등학생에서 부터 70대까지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져 있다. 전기밥솥·카메라에 관심이 있는 관광객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서브 컬처를 보고 사고 느끼기 위해 들른 것 같았다. 아키하바라 고층 건물에 늘어선 수많은 캐릭터 포스터는 외국인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자극제다. 거리 곳곳에는 ‘메이드(Maid: 하녀)’ 차림의 10~20대 일본 여성이 줄지어 있다. 카와이 세계 중 하나지만, 메이드 코스튬 전문 카페에서 일하는 여성들이다. 일본은 행인을 쫓아다니며 말을 거는 식의 호객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손님이 다가갈 경우 선전물을 주면서 말을 걸 수는 있다. 광고 전단을 든 일렬 메이드 코스튬 차림 행렬 그 자체가 너무도 일본적인 풍경이다.

캐릭터 전문점은 외국인이 몰려가는 아키하바라 최고 인기 코스다. 어떤 캐릭터를 좋아하는지에 따라 나이와 세대를 구별할 수 있다. 일본에서 캐릭터가 본격 등장한 것은 1970년대부터다. 헬로 키티가 세계적 캐릭터가 되기 전에는 TV 드라마와 ‘망가(일본풍 만화)’, ‘아니메(일본 애니메이션)’가 주된 캐릭터 양산지였다. 최근 일본 문예춘추가 특집으로 다룬 ‘가면 라이더(仮面ライダー)’를 비롯해 ‘알프스 소녀 하이디’ 같은 노스텔지어 캐릭터들로, 주된 소비자가 일본인에 국한됐다. 놀랍게도 이들 노스탤지어 캐릭터 가격은 100만 엔을 넘어서는 게 다반사다. 필자 머릿속에 저장된 아톰, 도라에몽, 슈퍼마리오, ‘안팡만(アンパンマン)’, ‘크레용 신짱(クレヨンしんちゃん)’, ‘바이킨만(バイキンマン)’ 같은 것들은 20세기 흑백필름 당시의 아득한 추억이다. 20세기 말 인터넷의 등장과 21세기 초 모바일이 확산하면서 새로운 캐릭터가 대거 양산돼 글로벌로 진출한다. 현재 전 세계를 달구는 포케몬 시리즈를 비롯해 ‘원피스(One Piece)’와 ‘귀멸의 칼날(鬼滅の刃)’은 이미 40대가 된 밀레니얼 세대(1980년~2000년 사이 출생)나 X세대((1960년대 중반~1970년대 말 출생)를 지배한 글로벌 캐릭터의 대명사다. X세대는 어릴 때부터 포케몬과 원피스 같은 아니메에 익숙한 세대다. 이들 다수가 아카데미 최우수상 수상작보다는 25분짜리 도라에몽 아니메 에피소드 하나에 열중한다. 아카데미 수상작이라고 하더라도 2시간 가까이 집중해 볼 인내심이나 정신적 여유가 없다. 아무리 길어도 30분 정도에 그치는 상상과 공상의 캐릭터 세계에 주목할 뿐이다.

아키하바라 최고 인기 코스는 캐릭터 전문점


▎1960년대 미국 만화나 드라마를 본 떠 탄생한 일본 캐릭터. 외국이 아닌 일본에서만 통하는 캐릭터로, 100만 엔이 넘는 고가 캐릭터도 많다. / 사진:유민호
아키하바라 캐릭터 매장 손님은 밀레니얼 세대나 X세대에 그치지 않는다. 포케몬 시리즈를 함께 본 X세대의 자식들과 X세대 부모도 주된 손님이다. 이들은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는 추억 찾기의 일환으로 아카하바라에 들른다. 일본에서만 구할 수 있는 수백~수십만 엔 가격의 캐릭터를 구입하기 위해 타임 슬립(Time Slip) 여행에 나선다. 일본 엔(円)의 약세는 외국인 관광객이 캐릭터를 대량 구입하는 걸 돕는 ‘순풍’이다. 지난 5월 한 달 기준이지만, 일본 내 외국인 여행객 규모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의 70% 정도를 회복한 190만 명에 달했다. 다만, 외국인 관광객이 일본에서 쓴 돈은 팬데믹 이전인 2019년 수준을 넘어섰다고 한다. 이른바 ‘바쿠가이(爆買い)’로 불리는 관광객들의 고가·대량 사재기 열기가 여행객 회복 규모 70% 상태에서 이미 시작된 셈이다. 흔히 바쿠가이라고 하면 중국인부터 연상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일본에는 중국인 그룹 관광객이 거의 없다. 중국 정부가 일본 관광을 사실상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아키하바라에서 보면 바쿠가이의 주체는 인도인·미국인·대만인·동남아시아인, 나아가 한국인을 포함하고 있다. 무려 10만 엔 가격의 캐릭터 구매도 흔하다. “자국 내 캐릭터 가격의 3분의 1 수준”이라면서 “싸다”는 비명과 함께 닥치는 대로 사들인다. 필자 판단이지만, 고가 캐릭터일수록 잘 팔리는 느낌이다.

귀에 익은 사람도 많을 테지만, 일본 서브 컬처와 캐릭터의 특징 중 하나로 ‘에로 카와이(エロかわいい)’를 빼놓을 수 없다. 에로는 에로티시즘의 준말이다. 에로와 카와이가 결합된 세계인 셈이다. 에로카와이는 일본 서브 컬처를 한마디로 압축해 설명해 줄 키워드이기도 하다. 캐릭터를 예로 들면 어른만이 아닌 어린이용 망가 아니메에서도 에로 카와이를 만날 수 있다. 도라에몽에서 공부를 잘하는데, 부끄러움도 많은 여자 어린이 캐릭터로 ‘시즈카(シズカ)’가 등장한다. 도라에몽 팬이라면 알겠지만, 어린이인데도 뭔가 에로틱한 분위기와 모습을 연출한다. 수영을 할 때 아예 수영복 없이 속옷만 입은 채 물에 들어가기도 한다. 미국이었다면 소아성애(Pedophilia)를 유발할 캐릭터라면서 방송금지 대상이 됐을 것이다. 일본 캐릭터를 보면 어린이든 성인이든 여성 거의 대부분을 에로 카와이로 표현한다. 속옷이 비치는 짧은 치마는 기본이고, 엄청난 볼륨감의 몸매를 거의 전부 드러내는 식의 캐릭터다.

아키하바라 캐릭터 매장은 에로 카와이 전시장으로 보면 된다. 어린이를 위한 캐릭터라지만, 수영복이나 잠옷 차림이 보통이다. 일본이 말하는 카와이 세계는 에로 카와이를 기본으로 한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도 여성 가슴 크기를 여성미의 기준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전부 일본에서 들어온 에로 카와이의 유산이다. 가슴이 클수록 카와이 여성이 될 수 있다. 아직 남미처럼 엉덩이 크기에 주목하고 있지는 않지만, 분위기를 보면 가까운 시일 내에 ‘큰 엉덩이=카와이’로 여겨질 듯하다.

일본 서브 컬처를 압축한 단어 ‘에로 카와이’

일본 문학에 관심이 있다면 추리소설 작가 ‘에도가와 란포(江戸川乱歩)’를 기억할 것이다. 19세기 말 미국 추리소설 작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작품을 읽고, 필명도 비슷하게 해 활동한 인물이다. 그러나 단순히 미국 작가를 흉내 낸 것만이 아닌, 그 이상의 문학 세계를 개척한 아시아 최고의 추리소설 작가가 에도가와 란포다. 그의 초기 작품으로 ‘사람이 없는 사랑(人でなしの恋)’이라는 소설이 있다. 고백형 소설로, 신혼 초부터 자기를 멀리하는 남편을 추적한 스토리다. 막 결혼한 ‘교코(京子)’는 매일 밤마다 어딘가를 다녀오는 남편을 의심한다. 밤에 추적한 결과, 붉은 입술의 요염한 인형을 발견한다. 남편이 매일 밤 찾아가 얘기를 나누는 상대다. 질투심에 인형을 흔적도 없이 부수고 자른다. 남편은 그것도 모르고 다음날 밤 다시 인형을 찾아간다. 그런데 새벽이 돼도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다. 교코가 현장에 가 발견한 것은 박살난 인형을 끌어안은 채 자살한 남편의 모습이다.

카와이 세계가 지닌 마력이자 매력에 해당될 것 같지만, ‘키모 카와이(キモかわいい)’에 관한 부분도 빼놓을 수 없다. 일본어 ‘키모이(キモい)’와 카와이를 합성한 말이다. 키모이는 ‘기분이 안 좋은’이라는 뜻이다. 귀엽고 예쁘고 앙증맞은 것이 아닌, 투박하고 어둡고 잔인한 측면에서 본 카와이 세계다. 바로 에도가와 란포의 소설 ‘사람이 없는 사랑’에서 접하는, 붉은 피로 물든 인형에서 느낄 수 있는 카와이 세계다. 좀 더 극단적 예를 든다면 내장을 드러내면서 죽어가는 할복자살도 키모 카와이 세계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고질라는 키모 카와이의 대표주자다. 괴담이나 요괴 스토리는 키모 카와이의 최고 최적 모델이기도 하다. 반드시 아름다운 것만이 아닌 투박하고 어둡고 잔인한 것도 카와이 영역에 들어갈 수 있다.

곧 한국에서도 개봉하겠지만, 올해 제76회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화제가 된 [퍼펙트 데이즈(Perfect Days)]라는 작품이 있다.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야쿠쇼 고지(役所 広司)’가 주인공인 영화로, 그는 칸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잔잔하고 느리면서 각론에 주목하는 서정적인 작품이다. 퍼펙트 데이즈는 특히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그러하듯 독일인 감독이 제작한 J컬처 없는 J컬처 작품이다. 필자가 주목한 부분은 영화에서 야쿠쇼 고지가 맡은 역할이다. 도쿄 시부야(渋谷) 공공화장실 청소부가 영화 속 주인공이다. 필자는 영화에 나오는 시부야 화장실을 수차례 사용한 적이 있다. 화장실이라기보다는 첨단 건축 작품으로 꼽을 만한 쾌적하고 청결하며 아름다운 공간이다. 왜 일본의 카와이라는 단어가 글로벌 컬처 키워드가 됐는지. 일본판 카와이의 실체와 방향이 무엇인지. 왜 전 세계가 카와이 세계에 빠져 드는지. 이유를 알고 싶다면? 만약 시부야에 간다면 공공화장실부터 들르길 권한다. 의문에 대한 답을 전부,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간단하고 쉬우며 주변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카와이 세계다.

※ 유민호 -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에너지·IT 컨설팅 회사 ‘퍼시픽21’의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방송(SBS) 기자로 일하다가 1994년 일본 마쓰시타정경숙 15기로 입숙해 5년 과정을 마치는 동안 125개 나라를 순회했다. 조지워싱턴대학 E-Politics 프로젝트 디렉터, 일본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을 지냈다.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국 소프트파워] [미슐랭을 탐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202308호 (2023.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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