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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누군가의 ‘슈퍼맨’이 된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싱글 대디’ 심리상담 전문가가 쓴 아빠들의 마음 치유서
좋은 아빠 되는 건 ‘아이의 편’이 되어주는 것으로 충분해


▎아빠 반성문 / 조영진 지음 / 세이코리아 / 1만8800원
즐겨 보는 TV 프로그램인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오은영 박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이에게 있어 엄마, 아빠는 우주와 같아요. 세상의 전부나 다름없죠.” 이따금 이 말을 떠올리며 초등학생이 된 아이에게 세상의 전부로서 온전히 역할을 했는지 돌아보곤 한다. 과연 내가 좋은 아빠일까, 혹은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라는 자문의 해답은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이 책의 제목(‘아빠 반성문’)을 보자마자 첫 장을 펼친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이미 수없이 마음속으로 반성문을 써내려갔던 차에 ‘다른 아빠들도 마찬가지일까’라는 동질감으로 아이에 대한 미안함을 희석하고 싶었을 게다. 또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팁을 얻고 싶은 기대도 섞여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빠가 되었다’는 구절에는 아이가 태어난 순간 모든 아빠들이 느꼈을 당황과 기쁨, 부담감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명쾌하게 대변한다. ‘남자는 일을 하고, 육아는 엄마의 몫’이라는 전근대적 공식이 통용됐던 게 불과 수십 년 전이다. 그런 생활양식 속에서 자란 젊은 아빠들에게 남녀 구분 없는 맞벌이와 공동육아의 낯섦은 필연적이다. 그래서 좋은 아빠가 되고 싶은 열망이 커질수록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현실에 대한 자괴감도 커질 수밖에.

[아빠의 반성문]은 이처럼 복잡미묘한 감정으로 고민하는 아빠들에게 ‘괜찮다’며 등을 토닥여준다. 단순한 몇 마디 문장에는 아빠들의 자존감을 회복해주는 신통한 힘이 있다. ‘엄마와 할머니에게 그러지 마시라고 짐짓 큰소리를 치면 아이는 자신을 대신하여 억울함을 풀어주는 아빠의 능력에 어느덧 울음을 그치고 놀던 자리로 돌아간다. 누군가는 반드시 내 편이 되어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굉장한 일인가!’(242쪽) 이처럼 아이가 아빠에게 바라는 슈퍼맨의 역할은 큰 힘이나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게 아닌, 그야말로 ‘별것 아닌 일’이다.

‘아빠의 무관심’으론 좋은 아이를 만들 수 없다

대학에서 심리상담을 가르치고, 실제 상담사로도 활동하는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 제목이 ‘한보듬아빠(싱글대디)로서의 삶의 경험에 관한 연구’란다. 아빠의 역할에 천착해온 저자의 집념을 설명하는 데 있어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싶다. 책장을 넘길수록 ‘아이를 위해서’라고 합리화했던 지난 일들이 뇌리를 스친다. 아이를 잘 키우는 세 가지 조건 중 으뜸은 ‘아빠의 무관심’이라며 육아 불참을 합리화했던 건 또 어찌나 민망한 일인지. 어느새 마음속에 써내려간 반성문이 한 두루마리쯤 될 법하다.

제목은 ‘아빠 반성문’이지만, 문장들이 이끄는 곳에는 위안과 용기가 있다. 책을 덮고 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대단한 아빠가 되는 거 별 게 아니네.’ 당장 오늘 저녁 퇴근 후가 기다려진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2308호 (2023.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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