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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탈북 후에도 끝나지 않은 ‘절박한 삶’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푸른 낙엽’, 폭풍에 휘말려 세상 밖으로 던져진 탈북민들 은유
목소리 없는 존재로 살아온 탈북민의 힘겨운 삶 작품화한 수작

탈북작가 김유경의 세 번째 소설집 [푸른 낙엽]이 출간됐다. 작가는 9편의 단편소설을 통해 체제의 폭력 아래 부서지는 북한 주민들의 실상을 비롯해 탈북 이후 한국에 정착하면서 마주하는 극한의 상황들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때 주목받는 물리학 박사로 성장하다가 연좌제로 인해 변방으로 숙청된 자(‘평양 손님’), 인민을 수령에 충성하도록 만든 북한 체제로부터 세뇌돼 ‘시대가 빚어놓은 사생아’가 되어버린 인물(‘사생아’)에서 우리는 탈출할 수밖에 없는 북한의 비인간적인 사회 체제를 알게 된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사활을 걸고 국경을 넘은 후에도 한 가지 과제가 남아 있다. 바로 남한 사회에 정착하는 일이다.

탈북작가가 내미는 이해와 화합의 손길


그들은 낯선 곳에서 원치 않는 결혼 생활을 하다가 몰래 도망치거나(‘장첸 씨 아내’), 인신매매로 참담한 일을 당하거나(‘정 선생, 쏘리’), 북에 둔 가족을 빼내오는 일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붉은 낙인’). 표제작인 ‘푸른 낙엽’에서는 중국 노래방에 예속된 한 탈북 여성이 자신의 탈출을 도와준 남자를 버리면서까지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담겨 있다.

작가 김유경은 북한 조선작가동맹 소속 작가로 활동하다가 2000년대에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탈북민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쓸쓸한 체험의식이 담겨 있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때 이르게 땅에 팽개쳐진 푸른 낙엽은 안쓰럽고 처량하다. 그런 푸른 낙엽을 닮은 이들이 있다. 탈북민이다. 그들은 북한이라는 나무에서 거센 폭풍에 휘말려 어쩔 수 없이 세상 밖으로 던져졌다. 뒹굴고 찢기고 피 터지는 고난의 여정을 거쳐야만 한국이라는 안식처에 안길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소설은 기본권을 박탈당한 북한에서 목숨 걸고 탈출해 끝내 한국으로 입국했지만, 신분 없는 유민으로서 여러 후유증에 시달리는 그들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를 깨닫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그동안 목소리 없는 존재로 살아온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을 한발짝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반도의 절반 땅에나마 자유롭고 선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사회가 존재한다는 것은 한민족의 커다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 경이로움이 짝사랑이 아니기를 소망한다. 탈북민의 애환을, 이해와 화합의 바람을 그리고 희망을 나의 소설에 담았다.” 작가의 다짐이다.

-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ahn.deokkwan@joongang.co.kr

202310호 (2023.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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