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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시험대 오른 윤석열 대통령의 리더십 

민생 팽개친 ‘尹의 전쟁’에 민심 돌아섰다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윤석열 대 이재명’ 맞대결 된 강서구청장 보선 3년 전 격차로 참패
‘이념 갈등’, 일방통행 국정 운영, 불통에 대한 엄중한 경고 새겨야


▎윤석열 대통령이 10월 13일 전남 목포 공생원에서 열린 공생복지재단 설립 95주년 기념식에서 축사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 사진: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재명을 절벽에 세우려다 자기가 시험대에 올라간 꼴이 됐다.”

더불어민주당의 원외 정책통 인사는 얼마 전 치러진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를 이렇게 표현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사법 리스크와 당내 갈등으로 백척간두에 서 있던 이재명 대표를 ‘정리’하려다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는 얘기다. ‘거대 야당 심판’과 ‘정권 심판’으로 맞붙은 보궐선거는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민주당을 누르고 국정 운영의 탄력을 기대했던 윤 대통령의 바람은 꿈에 그쳤다.

10월 11일 보궐선거 결과 진교훈 민주당 후보가 13만7066표(56.52%)를 얻어 9만5492표를 얻은 김태우 국민의힘 후보를 누르고 당선했다. 둘 사이의 득표율 격차는 17.15%p로 꽤 컸다. 대선에서 윤 대통령에 손을 들어줬던 13개 동을 포함해 강서구 20개 동 전체에서 국민의힘이 패했다.

이번 선거는 ‘윤석열의 패배’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국민의힘이 내세운 김태우 후보는 보궐선거의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다.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감찰 무마 의혹 등을 폭로한 혐의로 지난 5월 집행유예가 확정돼 구청장직을 잃었다. 그런데 3개월 뒤 윤 대통령은 김 전 구청장을 광복절 특별사면·복권했다. 재출마의 길을 열어준 셈이다.

김 전 구청장을 후보로 세운 것은 구청장 선거를 ‘윤석열의 선거’로 확정한 거나 다름없었다. 선거의 성격이 정해지자, 민주당은 경찰 출신 진교훈 후보를 내세웠다. 검찰 수사관 출신인 김 전 구청장과 대립각이 선명해졌다. 단식을 마치고 병석에서 일어난 이 대표는 강서구로 달려갔다. 이 대표가 민주당 선거를 진두지휘하면서 ‘윤석열 대 이재명’ 구도가 완성됐다. 구청장 선거가 아니라 빅매치가 됐다.

유권자들도 보궐선거를 ‘윤석열의 선거’로 인식했다. 여론조사 전문업체 ‘여론조사꽃’이 10월 13~14일 전국 성인 유권자 10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면접 여론조사 결과다. 국민의힘 패배에 가장 책임이 큰 사람으로 윤 대통령을 꼽은 사람이 43.5%였다. 김태우 후보는 18.9%, 김기현 대표 7.1%였다. 같은 기간에 자동응답(ARS) 방식 조사에서도 53.3%가 윤 대통령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꼽았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윤석열 등진 강서 민심… 판 키운 게 독 됐다


▎인사청문 과정에서 ‘주식 파킹’ 의혹 등으로 곤욕을 치른 김행 전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도중 자료 제출 문제를 두고 야당 의원과 공방을 벌이다 퇴장해 ‘김행랑(김행 줄행랑)’이란 조롱을 받기도 했다.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 스타일에 대한 피로감이 표심으로 분출됐다는 게 여야의 공통 인식이다. 그동안 여러 여론조사에서 ‘소통 부족’, ‘독선적’ 등의 키워드가 늘 문제로 지목됐는데 달라지지 않았다는 거다.

특히 윤 대통령이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역사·이념 정상화’가 피로감을 키웠다.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이 대표적이다.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은 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가 나온 뒤 갑자기 불거졌다. 윤 대통령은 축사에서 반공 이데올로기에 방점을 찍었다. 윤 대통령의 현실 진단은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는 대목에 압축돼 있다. 반면 일본에 대해선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라고 규정했다.

그로부터 열흘 뒤 육군사관학교의 독립군 흉상 철거 논란이 터져 나왔다. 홍범도 장군이 소련 공산당에 입당한 경력을 두고 육사 정체성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육사와 정부가 내놓는 명분이 논란을 키웠다. 국방부와 합참 청사 앞에 있는 홍범도 흉상도 철거하고 손원일급 7번 잠수함인 홍범도함도 이름 변경을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사실상 ‘홍범도 지우기’나 마찬가지였다.

뜬금없는 이슈 제기에 국민은 냉담했다. KBS가 9월 말 추석을 맞아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에 반대한다는 응답자가 63.7%였다. 찬성은 26.1%에 불과했다.

인사 문제의 잡음도 윤 대통령의 독선적인 태도를 돋보이게 할 뿐이다. 지난 10월 10일 윤 대통령은 신원식, 유인촌 두 장관 후보자를 각각 국방부 장관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유 장관은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부적격 의견을 냈지만, 윤 대통령의 결심을 바꾸진 못했다. 신 장관은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임명을 강행했다. 현 정부 들어 18명의 장관급 인사가 청문보고서 없이 임명장을 받았다.

여야가 인사청문회를 정쟁의 장으로 활용하는 것도 문제지만, 국회 의견을 귀담아듣지 않는 듯한 모습이 달갑게 보일 리 없다. 인사청문회 도중 자료 제출 문제를 두고 야당 의원과 공방을 벌이다 퇴장해 ‘김행랑(김행 줄행랑)’이란 조롱을 받은 김행 전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도 당초 대통령실은 임명할 방침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윤 대통령 성격상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하지 않았다면 스스로 김행 카드를 거두진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일방통행식 국정 운영, 국민은 피로감


▎윤석열 대통령이 10월 1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신원식 신임 국방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신 장관이 국회로부터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이 불발된 상태로 임명을 강행해 논란이 됐다.
국회 임명동의를 얻지 못한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의 낙마 사태는 대통령실 인사 검증 시스템의 허점을 노출했다. 윤석열 정부는 민정수석실을 없애고 공직자 인사 검증 업무를 지난해 6월 법무부에 신설한 인사정보관리단에 맡겼다. 윤 대통령은 당시 법무부가 인사검증을 하는 게 적절하냐는 지적에 “미국이 그렇게 한다”고 했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의 비상장 주식 취득 및 미신고 사안이나 김행 후보자의 주식 파킹 의혹 등을 법무부가 파악하고 있었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국정감사에서 “객관적인 자료 수집 업무를 통상적으로 했다”고 밝혔다. 관련 의혹들을 미리 파악해 대통령실에 보고했는데도 대통령실이 후보 지명을 강행했거나, 애당초 법무부가 파악하지 못했거나 둘 중 하나다. 어느 경우에도 인사 검증 부실 비판을 피해가긴 어렵다.

야당과의 파트너십 부재(不在)도 결국 윤 대통령의 발목을 잡았다. 취임 후 1년이 지났지만, 야당 대표와 만남은 아직 성사되지 않고 있다. 이재명 대표의 단식에 정부·여당의 반응은 냉담했다. 김기현 대표는 단식 8일 차에도 “지금 단식하고 계신가요? 잘 모르겠습니다”라며 만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 대표가 병원에 실려 간 10월 18일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날 한 장관은 “수사받던 피의자가 단식해서 ‘자해’한다고 해서 사법시스템이 정지되는 선례가 만들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민주당이 탄핵을 언급하자, 한 장관은 ‘범죄자’라는 표현을 꺼냈다. 10월 6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는 “탄핵이란 중대한 제도가 민주당이 쓴 것처럼 ‘범죄자’를 옹호하는 도구로 악용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고 했다. 국민의힘 초선 의원은 “윤 대통령이나 한 장관이 야당을 대하는 태도는 정치적 미숙함으로 보기엔 지나친 감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 출범 때부터 끝없이 제기돼온 수직적 당정 관계도 여전히 공고하다. 국민의힘 안에서조차 ‘대통령실 여의도출장소’란 자학적 냉소가 나올 정도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로 이런 구조적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강서구로 달려간 국민의힘 지도부는 ‘윤석열 마케팅’에 올인했다. 선거운동 첫날인 9월 28일 발산역 앞에서 열린 김태우 후보 출정식에서 김기현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이 오죽 신임했으면 특별사면에 복권까지 싹 시켰겠느냐”고 했다. 당시 이철규 사무총장은 전국 당협위원장들에게 강서구를 방문해 선거를 지원하라고 주문했다. 언제 누구를 만나 어떤 활동을 했는지 사진과 함께 보고하라고도 했다. 사실상 충성경쟁을 유도한 총력전인 셈이다.

국민의힘 안에서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는 있다. 보궐선거 이후 5선 서병수 의원은 “대통령실만 쳐다볼 게 아니라 국민의 소리를 앞서 전달할 결기가 있는가. 그럴 각오가 없다면 물러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퇴한 당직자들의 자리를 지역 균형을 고려해 수도권과 강원권 인사들로 채웠지만, ‘친윤’ 색깔을 완전히 없애진 못했다.

경제 위기 쓰나미 다가오는데 정책 안 보여


▎국민의힘이 서울 강서구청장 재보궐 선거에서 패배한 뒤인 10월 15일 김기현 대표가 어두운 표정을 짓고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윤 대통령도 소통 강화 의지를 비쳤다. 윤 대통령은 10월 16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민 소통과 현장 소통, 당정 소통을 더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실은 우선 당정 소통 강화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다만 언론을 통한 대국민 소통은 감감무소식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8월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끝으로 1년 넘게 공식 기자회견을 안 하고 있다. 대선 후보 시절 윤 대통령은 “언론과의 소통이 궁극적으로 국민과의 소통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민심을 가장 정확히 읽는 언론 가까이에서 제언도, 쓴소리도 경청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에 취임하면 특별한 일이 없으면 주 1회 정도 기자들과 기탄없이 만나도록 하겠다”(2022년 2월 11일 한국기자협회 주최 방송 토론회)고도 했다.

취임 후 매일 아침 출근길에 진행한 도어스테핑(약식회견)도 지난해 11월 21일부터 끊겼다. 지난 8월 [기자협회보]가 현직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5.1%가 윤석열 정부의 대언론 소통이 잘못됐다고 답했다. 자신의 성향이 보수라고 답한 응답자 중에서도 부정 평가가 61.5%였다.

나날이 고조되는 경제위기 속에서 민생을 대하는 윤 대통령의 진정성은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 이념과 역사관에 있어선 뚜렷한 색깔을 내세우면서도 경제 정책의 방향성과 독창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해 6월 정부 5년의 청사진을 담은 경제정책 방향의 핵심은 ‘민간과 기업, 시장 중심으로 전환’에 방점이 찍혀 있다. ‘자유·혁신·공정·연대’ 4대 기조 아래 ▷거시경제 안정관리 ▷민생경제 회복지원 ▷민간중심 활력 제고 ▷미래대비 체질 개선 등 4가지 기본 방향을 정했다. 구체적으로는 법인세율, 종합부동산세, 재산세, 증권거래세를 인하해 세율을 낮추는 대신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세수 감소에 대응하기로 했다. 역대 정부처럼 특정한 목표를 내놓진 않았다. ‘추상적’, ‘MB노믹스 아류’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에 대해 “신자유주의의 아류”라고 평가절하했다.

최근에는 ‘따뜻한 경제’, ‘민생 체감 경제’를 경제기조로 내놨다. 문제는 이런 기조와 정책이 엇박자를 낸다는 점이다. 미국 국채금리 고공행진과 고유가 등 대외 여건이 갈수록 악화하는 상황에서 사회안전망 강화를 떠올리게 하는 ‘따뜻한 경제’ 기조가 부합하느냐는 의문이다. 또 민생 체감형 정책은 돈을 푸는 건데, 이는 정부의 재정 건전성 기조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

밀려오는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구체적인 청사진도 부족하다. 문재인 정부 경제부총리를 지낸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윤석열 정부에 거시적인 경제철학에 기반한 경제정책 방향이 없거나 (있어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3년 전으로 돌아간 민심, 변곡점에 선 윤 리더십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법무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가 10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렸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인사 검증 부실 논란에 휩싸였다.
결과적으로 ‘윤석열의 선거’로 치러진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는 윤석열 정부의 문제점만 노출한 채 총선 교두보 확보엔 실패했다. 오히려 민심은 3년 전으로 돌아갔다. 진교훈 당선인과 김태우 후보의 격차 17.15%p는 2020년 21대 총선에서 강서 갑·을·병의 민주당 후보 득표율(56.61%)과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의 득표율(38.73%) 차이와 엇비슷하다. 당시 양쪽 격차는 17.88%p였다. 미래통합당은 서울·경기·인천 103개 지역구에서 간신히 16석만 건졌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보수당에 대한 반감이 여전한 악조건이었던 점을 떠올리면 이번 선거를 통해 민심이 정부·여당에 보내는 메시지의 엄중함을 이해할 수 있다.

압승한 민주당에서는 이재명 대표 체제가 더욱 공고화될 것이 분명하다. 추석 직전 구속영장 기각으로 이재명 대표 체제가 완성되고, 이번 보궐선거 압승을 통해 이재명 체제는 이제 공고화 단계에 들어섰다. 한마디로, 이번 압승을 계기로 민주당은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완전히 안착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는 윤 대통령의 인식과 리더십이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걸 의미한다. 그동안 윤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제1야당 대표를 ‘범죄자’ 또는 ‘중대 피의자’로 규정하고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젠 개인적 감정과 신념을 접어둘 때다. 위기의 쓰나미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당면한 리더십 변화 요구에 윤 대통령이 어떻게 응답할지에 정권의 운명이, 나아가 국운이 달려 있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2311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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