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포토포엠] 세상의 첫날 

 

오광수

▎신라 문무대왕릉이 있는 경주 봉길리 앞바다 윤슬. 수면위로 막 떠오르는 햇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 사진:박종근 비주얼실장
바다는 늘 세상의 첫날이다
어떤 폭설로도 뒤덮이지 않고
엄청난 폭우에도 넘치지 않는다
태양을 질료 삼아 꽃을 피워낸 바다가
선착장 주막으로 들어서는 저녁
바닷속에서는 늘 그만큼의 물고기가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한다
혹등고래부터 노랑가오리나 고등어도
넘치지 않는 꿈으로 바다를 헤엄친다
웬만한 일로는 흔들리지 않는 바다가
밤새 통곡할 때도 있다
포구로 돌아오지 못한 지식을 부르며
어미들이 울부짖을 때면
바다는 집채만 한 어깨를 들먹이고
소풍 나왔던 멸치 떼도 숨을 죽인다
슬픔이 잦아들지 않는 밤과 새벽 지나
허기진 갈매기 몇
끼룩거리며 먹이를 구하는 아침
집게발을 곧추세운 어린 게 한 마리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고요를 헤집는다

※ 오광수 - 1986년 동인지 [대중시]로 데뷔. ‘비동인’ 동인시집 [그들은 다만 걸었다] 등에 다수의 작품을 발표. 2018년 12월 월간 [시인동네]에 발굴시인 특집으로 소개. 에세이집 [가수 이야기]와 [낭만광대 전성시대], 시해설집 [시는 아름답다], 시집 [이제 와서 사랑을 말하는 건 미친 짓이야]를 펴냄. 오랫동안 경향신문 기자였으며, 현재는 영상물등급위원회 광고소위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202401호 (202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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