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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분석] 너무 일찍 등판한 구원투수 한동훈 

여의도 문법 파괴해도 결국 ‘尹 아바타’?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구심점 잃은 친윤계, 한동훈 비대위원장·선대위원장 추대론 조기 점화
여의도 문법 파괴한 참신함은 강점… 자기정치하려면 윤의 후광 벗어나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2월 6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한동훈의 시간’이 오고 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반신반의였던 총선 차출론은 당연지사가 돼버렸다. 이젠 어느 자리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이냐는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넘어갔다. 물론 당사자는 자신의 거취에 대해 확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말보다 행동이라고, 그는 이미 법무부 장관 이상의 언행으로 영향력을 키워나가고 있다.

지난 12월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열린 국민의힘 정책 의원총회에서 가장 주목받은 이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었다. 표면적으로 한 장관은 출입국·이민관리청 신설 방안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참석했다. 그가 먼저 요청한 게 아니라 당 지도부에서 한 장관에게 참석을 요구했다. 여권 내에서 한 장관의 위상을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기현 전 당대표 사퇴 후 국민의힘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을 서두르면서 한 장관의 주가도 뛰고 있다. 여권 핵심부가 당 지도체제를 ‘한동훈 비대위’로 가닥을 잡았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당내에선 한동훈 비대위 체제의 가부 논쟁이 달아올랐다. 물론 한 장관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전개되는 상황이다. 한 장관은 의원총회에서 “제가 진퇴하는 것은 제가 정하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짧게 답했을 뿐이다.

여의도에는 비타협적, 국민 앞에선 한없이 친근

한 장관의 가장 큰 매력은 참신함이다. 기존 여의도 정치 문법에 신물 난 국민의 눈에 한 장관의 언행은 신선한 매력이 있다. 대중 앞에서 한동훈은 한없이 겸손하고 친근하다. 그가 보여주는 반듯함과 겸손함은 정치인들이 보여줬던 ‘연출’과 거리가 멀다. 정치 상대의 공격에 단호하게 받아치는 모습은 보수진영 지지자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한다. 한 장관 자신도 민주당 화법을 ‘여의도 사투리’, 자신은 ‘5000만 국민의 화법’을 쓰겠다고 했다. 기성 정치와 다르다는 참신함을 띄우려는 의도일 것이다.

새로운 문법에 당황한 쪽은 오히려 민주당이다. 2022년 10월 정치판을 뒤흔든 ‘청담동 술자리 의혹’ 이후 민주당과 한 장관의 대결에서 주도권은 한 장관에게 넘어갔다. 김의겸 의원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폭로한 의혹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 장관, 이세창 전 자유총연맹 총재 권한대행, 김앤장 변호사 30여 명이 청담동 고급 술집에서 심야 술자리를 가졌다고 김 의원이 주장하자, 한 장관은 ‘장관직’까지 걸며 강하게 맞섰다. 결국 경찰 조사에서 김 의원 주장은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이는 해프닝으로 일단락됐지만, 민주당에는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치명타가 됐다.

한 장관을 향한 민주당의 ‘헛발질’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2022년 5월 김남국 의원은 한 장관의 인사청문회에서 ‘이 모(某)’ 교수를 ‘이모’로 오인해 “한 후보자의 딸이 ‘이모’와 함께 논문을 제1 저자로 썼다”고 특혜 의혹을 제기했다가 망신을 자초했다. 최강욱 의원은 한 후보자 딸이 복지관에 노트북 25대를 기증했다며 ‘엄마찬스’라고 지적했지만, 알고 보니 관련 자료상 ‘한**’은 한 후보자 딸이 아니라 ‘한국쓰리엠’이었다.

이후에도 민주당 의원들의 한동훈 때리기는 시시때때로 되풀이됐다. 이에 한 장관은 정부과천청사 출근길이나 국회 방문 시 출입기자들의 물음에 답하는 약식 회견, ‘도어스테핑’ 형식을 빌려 민주당의 공세에 대응했다. 윤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하다가 중단한 도어스테핑을 한 장관이 자신의 정치활동 창구로 활용하는 것이다.

2022년 말 노웅래 의원의 비리 혐의와 관련해 한 장관이 “돈 봉투 부스럭거리는 소리까지 녹음돼 있다”고 하자, 민주당은 최고위원회에서 “밥 먹을 때도 부스럭거리는 소리 유의해야 한다”, “누구 만날 때 종이 부스럭 소리가 나면 돈 봉투 소리라고 생각할 것” 등으로 비꼬았다. 그러자 한 장관은 3일 뒤 정부과천청사 출근길에서 “제가 유머를 참 좋아하지만 국민들이 이것을 보고 정말 웃으셨을까. 공당이 뇌물 범죄를 비호하는 것이 웃긴가”라면서 “괴이하다”라고 직격했다.

헌법재판소가 검수완박법 유효 판결을 내린 직후인 2023년 3월 27일 국회 법사위 출석 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선 “앞으로도 그렇게 ‘위장탈당’시켜서 계속 입법할 게 아니라면 사과는 제가 아니라 민주당 의원들이 해야 한다”고 했다. 검수완박법을 법사위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민형배 민주당 의원이 위장 탈당했다는 비판을 내포한 발언이다.

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 수사에 민주당에서 ‘기획수사’라며 반발하자, 한 장관은 “의원 매수를 수사하는 것을 갖고 정치 탄압이라 한다면 승부조작을 수사하면 스포츠 탄압이 되나”라고 했고,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사건을 수사하는 수원지검을 민주당 의원들이 항의방문하고 연좌농성을 펼친 것을 두고는 “권력을 악용한 최악의 ‘사법 방해’이자 ‘스토킹’에 가까운 행태”라고 비판했다.

급기야 욕설까지 나왔다. 11월 9일 출판기념회를 가진 송영길 전 대표는 한 장관을 향해 “이런 건방진 놈이 어디 있나”며 “이 어린 놈이 국회에 와서(국회의원) 300명이 자기보다 인생 선배일 뿐만 아니라 한참 검찰 선배를 조롱하고 능멸하고”라고 했다. 물론 가만히 있을 한 장관이 아니다. 한 장관은 입장문을 내고 “어릴 때 운동권 했다는 것 하나로 사회에 생산적인 기여도 별로 없이 그 후 자그마치 수십년간 자기 손으로 돈 벌고 열심히 사는 대부분의 시민 위에 도덕적으로 군림하며, 이번 혐오 발언에서처럼 고압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생각으로 대한민국 정치를 후지게 만들어왔다”고 받아쳤다.

한동훈의 스타성, 민주당 덕분에 빛 봤다


▎지난 9월 18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국회 본회의 출석을 위해 본청에 입장하던 중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자신에 대한 공격을 촌철살인으로 응수하는 한 장관의 모습은 여권 지지자들에게 쾌감을 선사한다. 민주당의 선공은 늘 한 장관의 역공으로 끝난다. “168대 1의 싸움에 언제나 깨지는 건 민주당”이란 촌평은 솔직한 현실 진단이다.

2023년 11월 서영교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정섭 수원지검 2차장검사 처남의 마약 의혹과 관련해 한 장관을 걸고넘어졌다가 거꾸로 망신만 당했다. 서 최고위원의 “누구 마약은 잡고 누구 마약은 다 봐주냐”는 비판에 한 장관은 “깨끗한 척하면서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면서 서 최고위원을 겨냥해 “보좌진은 친인척으로 채운 분, 보좌진 월급에서 후원금 떼간 분, 자기 지인 자녀의 형사 사건에 압력을 넣기 위해 국회 파견 판사 불러서 전달했던 분”이라고 직격했다.

“사법고시 합격 하나 했다는 이유로 검사 갑질한다”고 목소리 높인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를 향해선 “송 전 대표 같은 일부 운동권 정치인들이 겉으로 깨끗한 척하면서 NHK 다니고 재벌 뒷돈 받을 때, 어떤 정권에서는 재벌과 사회적 강자에 대한 수사를 엄정하게 했었다는 말씀을 드리겠다”고 응수했다. 200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 전날 전대협 출신 386 정치인들이 광주 새천년NHK라는 유흥주점에 갔다가 물의를 빚은 사건을 말한다.

안민석 의원이 2023년 9월 대정부질문에서 한 장관에게 “국민이 우습냐”, “그동안 한 발언이나 태도에 대해 사과할 생각 없냐”고 쏘아붙이자, 한 장관은 “의원님은 민원인에게 욕설 문자 보낸 분 아니냐. 그런 분이 누구를 가르치려고 하는 건 적절치 않다. 제가 안 의원에게 그런 식의 훈계를 들을 생각은 없다”고 했다.

한 장관은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국민의힘이 저를 띄운다는 것에 대해 공감할 분들은 많지 않을 것 같지만, 민주당이 저를 띄운다는 점에는 많은 분이 공감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장관의 말처럼 지금의 인기스타 한동훈을 만든 건 민주당이었다. 때만 되면 한동훈을 불러냈고, 그때마다 민주당은 판판이 깨졌다. 한 장관의 대꾸가 ‘버르장머리’ 없어 보인다 해도 그건 민주당의 말문이 막혔다는 것을 의미했다. 결국 말미에 억지를 쓰고 목소리 높인 쪽은 언제나 민주당이었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사실 국회의원들은 적당한 훈계에 상대가 조아리는 모습에 익숙하다. 그런데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한 장관이 그런 여의도 문법을 깨버리니 당황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한 장관의 주가를 올려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왜 끊임없이 한 장관을 꺼내드는 걸까? 정치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욕먹는 것보다 잊히는 게 더 무섭기 때문”일 수 있다. “‘한동훈’은 주요 뉴스에 한 줄 걸칠 수 있는 무적의 키워드”(민주당 초선 의원).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어필하는 효과”(원외 당직자) 등 안팎으로 얻는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고 한다.

한동훈 비대위원장 추대론에 비윤 강하게 반발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대결을 펼쳤던 더불어민주당 전·현직 의원들. 왼쪽부터 김의겸, 김남국, 송영길, 안민석. /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3)
과거 민주당에서 활동했던 한 정치평론가는 “의혹을 제기할 때 좀 더 신중했으면 좋겠다. 팩트를 가지고 이야기했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볼 수 있는 거죠’, ‘계기가 되는 거죠’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질의해야 국민에게 선명하게 다가갈 것이다. 팩트를 가지고 한 장관이 꼼짝 못 하게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국민의힘의 정책통 의원은 “민주당에 일종의 X맨 같은 분들이 있다. 되지도 않는 이슈로 계속 한 장관을 돕는 느낌이다. 이걸 기뻐해야 할지… 근거, 팩트에 충실한 질의를 해야 정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정치인에게 대중적 인기는 최고의 자산이다. 의원 선수(選數)보다 국민 지지율이 자리를 결정한다. 초선에 불과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뚜렷이 보여준다. 한 장관의 앞날이 이 대표의 행로와 상당 부분 겹치리라고 정치 전문가들이 예상하는 이유다.

김기현 대표 사퇴 후 국민의힘은 비대위 체제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 장관은 단연 핵심이다. 한 장관의 역할이 총선 전략과 향후 여권의 권력 지형 판도를 결정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김 대표 사퇴 이후 위상이 흔들리는 친윤계는 한 장관을 비대위원장으로 추대하자는 움직임도 보였다. 비대위원장은 혼란을 잠재울 리더십이 전제돼야 한다. 어지간한 정치 경륜으로는 초선에서 다선 중진까지 다양한 요구를 조율하기가 쉽지 않다. 한 장관이 명석하다곤 하나, 아직 그는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타협의 정치를 경험해보지 못했다. 한 장관 비대위원장 추대론은 대표직 사퇴와 불출마 선언으로 ‘김장(김기현·장제원) 연대’가 퇴장하고 흔들리는 계파 주도권을 회복하려는 꿈에 그칠 수 있다.

12월 15일 열린 긴급 의총에서 김성원 여의도연구원장은 “비대위원장을 중심으로 판을 흔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위기를 뚫고 나갈 수 있는 분은 한동훈 장관이다. 삼고초려해서 모셔와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참석자들은 전했다. 지성호 의원은 “전국민적 인지도”를 한 장관 비대위원장 추대론의 명분으로 내세웠다. 김석기 의원도 “이재명 대표에 버금가는 인지도와 지지도를 갖췄으면서 재판받는 이 대표와는 대비되는 인물”이라며 한 장관 추천에 가세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곧 큰 반발에 부딪혔다. 김웅의원은 “(한 장관 추대 분위기에) ‘깽판’ 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다”며 “우리 당이 용산 2중대 역할을 해서 국민들 지지를 못 받는데 대통령 아바타라는 한동훈을 어떻게 올려 총선을 이기겠다는 건가”라며 강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이러다 100석 이하로 가서 대통령 탄핵당하는 꼴 보고 싶냐”고 해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선대위원장 맡아도 지역·비례 양자택일은 고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선거대책위원장으로 거론되는 정치인들. 왼쪽부터 안철수, 김한길, 원희룡. / 사진:연합뉴스
비대위원장이 고난도의 정치력을 발휘해 당내 혼란을 수습해야 하는 자리란 점에서 정치 경험이 없는 한 장관보다 다른 인물을 내세워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김학용 의원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을, 이용호 의원은 “이기는 데 필요하면 악마라도 모시고 적장이라도 모셔야 한다”며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을 암시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내에서 비대위원장 대신 한동훈 선대위원장 역할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최재형 의원은 의총 이후 페이스북을 통해 “누가 비대위원장이 되면 마치 구세주처럼 우리 당을 위기에서 구해낼 것이라고 기대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며 “비대위원장은 적어도 민심의 소리를 가감 없이 대통령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이어야 한다”고 했다. 하태경 의원도 “아직 정치력이 검증되지도 않았는데 온갖 풍상을 다 맞아야 하는 비대위원장 자리는 한동훈을 조기에 소진하고 총선에도 도움이 안 될 수 있다”며 ”복잡한 국면엔 정치력이 확인된 사람이 비대위원장을 하고 한동훈에겐 선대위원장을 맡기는 것이 본인과 당을 위해 더 나은 선택“이라고 힘을 보탰다.

국민의힘 정치인 중에서 가장 압도적인 전국적 인기를 구가하는 한 장관이 선대위원장으로 전면에 나서면 확실히 컨벤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동안 국무위원이란 타이틀에 묶여 아직 보여주지 못한 진가를 이번 선거에서 발휘한다면 그 폭발력은 상당할 수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선 “당 내부의 정치력을 떠나 장관 딱지를 뗀 한동훈이 보여주게 될 대중적 퍼포먼스는 리스크가 전혀 없다는 게 최대 강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선대위원장을 맡게 되면 한 장관은 지역구와 비례대표 중 선택해야 한다. 강남과 같이 안정적인 지역구가 아니라 험지를 나가면서 전국 선거를 지휘하기란 쉽지 않다. 서울은 사실상 강남 3구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국민의힘에 험지나 다름없다. 비례대표도 문제는 있다. 당장은 안정적인 활동이 가능하지만, 4년 후 다시 황야를 개척해야 한다. 윤 대통령의 영향력이 굳건한 현재와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4년 뒤의 정치 상황은 전혀 다르다.

정치판은 주식판과 비슷하다. 정치인의 주가는 충성파와 바람을 탄 한시적 지지자에 의해 떠받쳐진다. 충성파는 최소 지지기반일 뿐, 극적인 주가 변동을 끌어내지 못한다. 폭발적인 가치 폭등을 만들어내는 건 바람을 타고 몰려드는 한시적 지지자들이다. 한 장관에게 지금 그의 가치 하나만 믿고 ‘장투’하는 충성파가 존재할까? 한 장관의 지지기반은 대개 윤석열 정부를 지지하는 이들이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발 심리로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택한 이들이다. 또 다른 주요 지지기반은 그의 외향적인 모습이나 언변, 엘리트 경력 등 외적인 요소에 호감을 가진 팬덤이다. 전 정권에 대한 반발로 표를 던진 이들이 온전히 한동훈으로 이동해야 진짜 정치인 한동훈의 홀로서기가 가능해진다.

대통령 권력은 같은 계파에 승계되지 않는다

여권 일부에선 한 장관이 주도해 총선에 승리하면 대권가도가 펼쳐질 거라는 ‘한동훈 대망론’을 꺼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실체적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희망사항에 가깝다. 객관적인 사실만 놓고 볼 때 대한민국 역사에서 현직 대통령과 같은 계파의 직속 후계자가 대권에 성공한 경우는 딱 한 번, 전두환에 이어 노태우가 3당 합당에 힘입어 정권을 계승한 것뿐이었다. 그 이후 한 계파가 대권을 연임한 경우는 없었다.

그런 점에서 당내 계파 없이 윤 대통령의 검찰 직계 후배로서 한 장관이 대통령 권력을 승계한다는 건 가능성이 작은 시나리오다. 김대중 대통령 이후 대권을 승계한 건 동교동계가 아니라 86세대의 전폭적 지지를 얻은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이명박 대통령 이후 대권을 차지한 건 MB계가 아니라 박근혜였다.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성공하더라도 그 주인공이 ‘윤석열계’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한동훈의 약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한동훈이 차기 대권을 꿈꾼다면 반드시 넘어야 할 조건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윤 대통령과 거리를 두고 정치인으로 온전한 홀로서기에 나서는 것이다. 박수영 여의도연구원장은 “한 장관은 73년생으로 X세대의 선두 주자라고 볼 수 있다”며 “그분이 나와서 기존의 586, 소위 운동권 세력 세대들을 물리치는, 그래서 새로운 세대가 부상하는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게 제 개인적인 바람”이라고 말했다.

한 장관이 쏟아낸 말들이 어느 순간 부메랑이 되어 그에게 돌아올 가능성도 있다. 과거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정국에 대한 견해를 짧은 글로 표현했고, ‘조국 어록’으로 꽤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조 전 장관과 가족이 입시비리 의혹 등에 휘말리면서 그가 했던 말이 도리어 자신을 공격하는 최고의 무기가 됐다. ‘조 선생이 국이에게’라는 식으로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한 장관의 발언도 그런 전철을 밟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당장엔 치솟는 인기 때문에 그에 대한 검증이 무의미하기에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윤 대통령 처가와 관련된 여러 의혹은 본래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총장으로 지명됐을 때 이미 불거졌었다. 하지만 당시 친문의 득세로 제대로 된 검증이 이뤄지지 않았다.

총선은 여의도 정치판을 짜는 일이다. 한 장관이 보다 높은 정치적 이상을 가졌다면 여의도 정치판을 자기 의도에 맞게 새로 짜야 한다. 총선에서 모종의 역할을 위해 나서야만 정치인 한동훈의 미래가 열린다. 그가 여의도 사투리를 전 국민이 사용하는 표준말로 바꿔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2401호 (202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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